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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119 좀 비켜주잔 말이다
2009.9.21.월요일
파토
어쩌다가 연재 아닌 연재가 되고 만 교통질서 캠페인. 의외로 큰 호응 속에서 오늘도 이어진다.
여러 번 한 소리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많이 발전해서 소위 선진국들보다 나아졌거나 대등한 것들도 많다. 특히 은행이나 관공서 서비스는 영국 살다 들어온 내게는 마치 천국처럼 느껴질 정도로 친절하고 신속하다.
세계 최대의 은행 중 하나이자
영국이라면 길거리마다 널려 있는 HSBC.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역시나 느리고 엉성하기는 매한가지다.
영국에 국한된 이야기니 관계자들은 시비 걸지 마시라. 니들도 알잖냐.
그러나 이런 자잘한 부분에서의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말 중요한 것들이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 그 중에도 정치가 가장 저질인 것은 뭐 새삼 다시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민주주의나 법치라는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후진국/독재국가형 개념과 정책, 제도를 남발하는 현 정권은 특히 우리나라 사회의 후진성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아니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 목숨'일 것이다. 최근 우리는 중국을 빗대 그 나라에서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같다는 식의 비아냥을 흘리기도 한다. 사형의 남발이라던가 등등 머 그렇게 볼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 나라도 부자는 될 수 있을 망정 지구촌의 선진국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과연 은연중에나마 그렇게 인명을 가벼이 여기는 면이 없는 걸까? 가깝게는 용산참사만 놓고 봐도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평소 생활과 관련되어 뿌리 박혀 있는 흐리멍덩한 인식들도 큰 문제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런 점과 관련된 부분이다.
... 본 분들도 많겠지만 얼마 전 티비에서는 황산테러를 당해 얼굴의 절반이 타버린 김정아씨(가명)의 사연이 등장했다. 그 사건 자체의 비인간성과 야만성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겪은 육체적, 심리적 고통 역시 오직 상상만이 가능할 뿐이다.
정아씨의 모습. 제발 이런 세상 만들지 말자 이 씹새들아.
그러나 그 절절한 사연들 중 스쳐 지나가듯이 나온 정아씨의 이 말은 다들 얼마나 귀담아 들으셨는가?
"내 몸은... 계속 타 들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안 비켜주는 게 너무 야속했어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고.
글타. 한 순간이라도 빨리 병원으로 달려가야 할 정아씨의 앰뷸란스를 개무시하는 길거리의 차량들. 그 속의 급박한 사연이 무엇일지 아무 관심도 배려도 없이 기다리지도 비키지도 않고 오히려 경쟁하는 듯 달리던 그 잘난 자동차들 이야기다.
내가 캐나다나 영국에 가서 가장 놀라고 생소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119나 앰뷸런스, 소방차 등이 나타났을 때 길거리의 움직임이었다.
그 나라들에서는 일단 이넘이 떴다 하면 도로에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한산한 길은 물론이고 차로 꽉 들어차 있는 러시아워의 도로에서 조차도 미리 백미러로 보고 알아서 속도를 줄이며 좌우로 피하기 때문이다. 정 공간이 없을 때는 인도에까지 차들이 걸쳐 올라가서 길을 내주기도 한다.
그래서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앰뷸런스나 소방차가 (경찰차도 마찬가지) 교통체증에 묶여 꼼짝 못하거나 주위의 교통상황을 살피면서 서행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신호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이렌 소리를 들은 차들이 미리 상황을 파악하고 파란 불이건 빨간 불이건 멈춰 서 주기 때문에 앰뷸런스는 무조건 우선적으로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다. 슬금슬금 혼자 나오거나 슬쩍 앰뷸런스보다 먼저 가려고 하는 차 따위는 한대도 없다.
그 증거로 아래를 보시라. 첫 비디오는 일반적인 도로 상황일 때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얼핏 앰뷸런스 한대가 그냥 빨리 달려가는 것 같겠지만, 자세히 보면 20초에 한대, 또 28초와 맨 마지막에 각각 한 대씩의 차가 앰뷸런스를 피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먼저 보내주는' 거다.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으면서 옆으로 붙어 앰뷸런스가 위험을 느끼지 않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잘 캐치가 안될 수도 있지만 영국에서 운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부분.
한편 아래는 교통체증 상황에서의 예다. 일단 보고 이야기하자.
전형적인 영국의 좁은 도로에 차들이 꽉 들어차 있고 덩치도 큰 NHS(National Health Service)의 앰뷸런스가 달려온다. 앰뷸런스가 다가오자 앞의 차들은 어떻게든 자리를 내 주기 위해 빈 공간으로 파고 들며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어랍쇼... 13, 14초경에 반대편 차선에서 검은 승용차 한대가 지가 빨리 갈려고 앰뷸란스를 막아서는 듯 하지만, 조금 더 보면 사실은 옆 차선의 차 때문에 피할 자리가 없어 먼저 앞으로 가서 빈 공간으로 피해 주려는 적극적인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주변의 도움과 배려 덕에 결국 앰뷸런스는 돌파가 불가능해 보이던 교통 지체를 뚫고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들(2층 버스 뒷창문)을 지나쳐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간다. 잘은 모르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가 타고 있었다면 이 상황 하나가 생과 사를 갈라 놓았을 것이다(하지만 이것은 전혀 특별한 상황이 아닌, 영국에서는 그저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모습일 뿐이다. 그러니 이 동영상 좀 여기저기 퍼 날라 주시라. 다들 보고 좀 느껴야 된다).
처음 이런 광경들을 본 후 내가 느낀 것은 경탄과 자랑스러움이었다. 경탄은 이게 이렇게 보편적으로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도한데서 온 것이었고, 자랑스러움은 이제 우리 인간도 이 정도 수준에는 도달했다는 것을 경험한 데서 오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거였다.
그리고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나도 비슷한 일을 겪는 경우들이 있었다. 앰뷸런스가 다가오면 나도 이 사람들한테서 배운 것처럼 속도를 줄이고 옆으로 비켜주거나 인도에 한 바퀴 걸치고 자리를 내 주거나 했다. 그럴 때 마다 뿌듯했다. 사소한 거지만 내가 내 역할을 함으로써 저 사람이 이제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에 도달하겠구나. 그래서 죽을 목숨이 살 지도 모르겠구나. 유난스러운 건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감정을 매번 느꼈다.
그렇다. 세상은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는 거였다...
그리고는 귀국.
한국 와서 음식도 싸게 먹고 배달 문화도 즐기고 은행이나 관공서도 친절하고 여러 가지로 참 좋았다. 하지만 길에 나가면 그런 맘이 싹 달아나 버리는 거다. 지난 번에 쓴 교통 관련된 이런저런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 특히 앰뷸런스고 소방차고 그냥 개무시인 것은 정말 보고 있기 어려운 창피한 모습이었다.
옛날에는 나도 개념이 없어서 인식 자체가 거의 없었겠지만, 영국에서 '비켜주는 문화'를 배우고 또 실천하다가 돌아온 입장에서는 그 꼴을 볼 때 마다 그저 이해가 안되고 기가 막히는 것이다.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옆의 한산한 차로에 앰뷸런스가 붙었다. 그런데 그 앰뷸런스가 막 속도를 내려는 순간 내가 탄 택시가 먼저 가속하면서 차로변경을 해서 스윽 선점해 버리는 게 아닌가. 앰뷸런스는 속도를 줄이고 주춤거리다가 결국 다른 차로로 옮겨야 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내가 물었다.
'아저씨 앰뷸런스 오는데 보내 주지 왜 그러세요'
그랬더니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택시 기사는,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안다는 듯 거만한 썩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저 새끼들 다 가짜에요. 연예인 방송국 태워다 주는데 써먹잖아요. 비켜줄 필요 없어요'
그 말을 듣고는 어이도 없고 화도 나고 해서 가까운 데 차 대라고 하고 주먹을 통해 인생을 가르쳐 줄까 했지만 (알다시피 나는 김두한과 이소룡의 싸움기술을 분석해 낼 정도로 싸움 '이론;에 능한 강자다), 가뜩이나 꼬투리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당국에 딴지일보 탄압의 빌미를 줄까 봐 꾹 참았다. 머 그 양반 덩치도 큰 편이었고...
열분들 중에도 혹시 이런 그의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왜 프로 파이터인 내가 한낱 아마추어와 맞장을 뜨려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린다.
나도 안다. 연예인들이 방송시간 늦으면 앰뷸런스를(위의 119는 아니고 아마 사설 앰뷸런스)를 불러서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한 10년 전쯤에 음으로 양으로 알려져서 상당히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건 정말 얄밉고도 재수 없는 짓거리니 솔직히 골탕먹이고 싶은 맘도 든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 더 안 비켜주고 싶은 심리가 생겨났을 거다.
하지만 열분들아. 그 심술을 잠깐 버리고 1분만 생각해 보자. 이게 과연 사람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벌일 가치가 있는 거냐.
그 택시 기사가 뒤의 앰뷸런스에 누가 탔는지 어떻게 아냐? 여의도 KBS에서 탄현 SBS로 이동하고 있는 아이돌 가수가 탔는지, 아니면 분초를 다투는 심장마비나 뇌출혈, 뇌졸중 환자, 혹은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엄청 흘리고 있는 어린아이가 타고 있을지 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니면 바로 그 차에, 고통과 공포 속에서 몸을 뒤틀고 있던 정아씨가 탔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
요점은 이거다. 가수나 탤런트가 타고 있을 수도 있다. 재수없다. 하지만 그 넘들이 재수없다고 해서 그 피해가 진짜 환자에게 돌아가게 한다면 결국 우리도 그넘들 이상으로 나쁜 넘들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청계천 가서 화풀이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건 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니 그보다도 훨씬 심한 짓거리다. 일부 연예인이 앰뷸런스를 악용하던 말던 그걸 지레 판단해서 내 행위를 결정해선 안 되는 거다.
그럼 어떡하냐고?
그저 원칙에 입각해 심플한 정답을 택하면 되는 것이다. 앰뷸런스(소방차, 경찰차)가 사이렌 울리고 달려오면 최대한 피하거나 서행해서 진로를 내준다. 그냥 그거다. 머 복잡하게 손익계산 할 일 아니고, 혹시라도 가수가 탔다면 그냥 손해 보는 셈 치자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한 목숨 살리는 게 연예인에 대한 소심한 복수보다 훨씬 중요한 거 아니냐.
운전할 땐 그렇게 하고 가수나 탤런트 문제는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일이다. 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던지 방송을 통해 다루던지 아니면 교육을 하던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물론 잔머리에 능통한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사회니 금방 해결은 안될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도 그런 넘들은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를 빌미로 앰뷸런스에 무감각해지고, 그 결과 자칫 불쌍한 환자를 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책임한 행동이고, 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 욕을 하면서 사실은 적극적으로 그 일부가 되고 마는 최악의 선택일 뿐이다.
상태에 따라 응급환자는 1,2분으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경우도 있다. 도로에서 이들의
목숨은 바로 운전대를 잡은 우리 손에 달린 거다.
이런 것들을 알고 실행할 수 있다면 유사시에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될 거다. 그러나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이렇게 관심을 가져도, 막상 앰뷸런스 속의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아직 이 사회에 없다.
하지만 지금같이 계속 이렇게 간다면 결국 우리도 언젠가 피해자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내 가족, 내 아이가 갑작스런 사태로 앰뷸런스에 실리게 되었는데, 그리고 내가 거기 같이 앉아 있는데, 길거리의 차들이 피해주지 않아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가정하자. 나는 그 상황을 차창밖으로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그리고 어렵사리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내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따지면 앰뷸런스에 대한 양보는 단지 그 속의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문화를 정착시켜서 우리 모두가 언젠가 유사시에 그 덕을 보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지금처럼 계속 살아간다면 우리는 진짜 선진국에 도달하기는 한참 먼 거다.
... 며칠 전 늘 지나다니는 일산의 한 사거리에 신호 대기를 받아 서 있었다. 푸른 신호가 나와서 나가려는데, 갑자기 큰 소방차 하나가 사이렌을 울리며 사거리 반대편에서 달려왔다. 깜빡이를 보니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을 하려는 중이다.
나는 버릇이 들어 있기 때문에 거의 자동으로 차를 멈췄다. 그러나 내 옆의 차들은 소방차가 오던 말든 자기 신호가 나왔으니 그냥 직진을 하려고 사거리로 진입해 버리는 거다. 소방차는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였고 거기서 차들이 엉켜 들면서 어떤 넘은 그냥 갈려고 하고 어떤 넘은 머뭇거리며 눈치 보고 어떤 넘은 서 있는 내 뒤에서 다른 차로로 나와서 소방차보다 더 빨리 갈려고 하는 등 실로 어리석고 한심한 풍경이 벌어졌다.
씁쓸한 맘과 함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1분도 안 걸리긴 했지만 혹시 저 상황으로 인해 살 수 있던 누군가가 죽게 된 건 아닐까. 무너지지 않아도 될 집이 주저앉은 것은 아닐까. 구조될 수 있었던 아이들이 불에 타고 또 창문으로 뛰어내린 건 아닐까.
아니기를 바란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선가는 분명 실제로 그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지킬 건 지키고 살아야 하는 거다. 아니냐.
딴지 논설위원 파토([email protected])
트위터 : pato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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