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요약
1. 유래를 따져보면 ‘유저 비하, 조롱’을 위한 “심해”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2. “심해”의 정의에 따라 등급을 대입해보고, 과연 어디까지를 “심해”로 칭하기 적절한 지 살펴보았다.
3. 결론 : 그딴 거 없으니 그냥 서로 사이좋게 게임하자.
ps. APEX 시즌2 종료되는 시점쯤에서 작성했던 글인데, 귀찮아서 뭉개고 있다가 조금 다듬어서 이제야 올립니다. 시차를 감안하고 읽어 주세요.
이 “심해”라는 단어는 다들 아시다시피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슷한 용어로 하스스톤의 “방패병”, 스타크래프트2의 “잡금” 등이 있다고 합니다. 출처에서 대체로 언급되는 유래는 주로 낮은 티어 구간의 유저 비하입니다.
그럼 대체 우리는 “심해”라는 단어를 무엇 때문에 주로 언급하고 있을까요? 오버워치 게시판에서 “심해”를 검색하면 PC버전 기준(페이지 당 글 30개)으로 무려 13페이지의 검색결과가 나옵니다. 이제 막 종료된 오버워치 메이저 대회인 “APEX”를 검색해도 고작 3페이지 밖에 나오질 않는군요. 제목으로 검색한 결과가 이러니, 댓글에 포함된 것 까지 포함하면 우리가 얼마나 “심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지 짐작도 못하겠습니다. 오버워치 게시판에서 “심해를” 검색해서 나온 최근 30개 글로 간단히 범주화하여 아주 주관적이고 대충적으로(?) 분류해 봤습니다. ‘자학, 한탄, 조롱’의 몹시 부정적인 유형이 50%였습니다. 공략, 탈출기 등 격려성 글은 23%에 불과했고요. 이게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분명 비하와 조롱을 위한 저 “심해”라는 단어가 대체 왜 저렇게 대중적으로 쓰이게 된 것인지 의아하더군요.
그럼 일단 “심해”를 어디까지 구분해야 할지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단어 자체의 의미를 따져 보겠습니다.
「심해(深海, Deep sea)는 2km 이상의 깊숙한 바다로, 사람이 수압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그 이상의 공간을 뜻한다.」
위키백과에서 내리고 있는 정의입니다. 바다의 깊이는 평균 약 4km라고 하니, 보통 바다 수심의 절반 정도를 내려가면 심해로 분류되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심해란 매우 넓어서 면접이 전체 해양의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위 그림은 우리 모두 자주 사용하고 있는 오버로그의 순위표에 나오는 ‘평점 분포도‘입니다. 전체 점수 구간이 1점부터 5,000점까지 있으니, 위 심해의 정의대로라면 깊이로는 딱 절반인 2,500점 이하, 비율로는 전체의 90%에 해당하는 3,150점 이하를 가리키겠네요. (지금 현재는 해당 점수가 조금씩은 낮아졌네요)
경쟁전 등급을 대입해 볼까요? 깊이의 개념으로는 ‘브론즈부터 골드’까지의 구간이 되겠군요. 비율의 개념으로는 ‘브론즈부터 무려 다이아 초반’까지의 구간입니다. 실제로 ‘브론즈/실버/골드’ 구간을 브실골이라 하며 심해로 자주 일컫는 점을 생각해보면 얼추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깊이와 비율로 각각 50%, 90%에 달하는 대다수 유저들을 ‘심해’라는 비하와 조롱이 섞인 단어로 부르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뭐, 어쨌든 경쟁전이란 게 유저들 간의 실력을 점수 매겨 줄을 세운다는 점에서 상위권 유저들이 우월감 정도는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자학의 용도로까지 사용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겸손이 미덕이라 배워서인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예를 들어 플래티넘 유저께서 상위 20%대의 실력을 갖고도 자신은 심해라며 한탄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이지요. 또한 상위권 유저라는 우월감에 너무 도취된 듯이, 상위 20%대의 실력자가 30%대의 실력자에게 심해라고 조롱하는 경우도 보이고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삼성의 이재용에게 ‘거지’라고 얘기한들 딱히 와 닿지 않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정리하자면, 낮은 티어에서 통상 픽이 꼬인다거나, 대리/패작이 횡행한다거나 하는 점은 분명 원활한 게임에 방해요소가 될 수 있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높은 티어에서는 더 치열한 실력경쟁이 있을 것입니다. 좋게 생각하면 각 티어마다 경쟁의 요소와 특성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오버워치 좀 해봤다는 분들끼리는 어차피 다들 비슷한 구간에 있을테니 특별히 누구보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것입니다. 서로 심해니 천상계니 편 나눠서 싸울 필요 없이 즐겁게 게임했으면 좋겠습니다.
게임은 이제 E-SPORT라고 불리며 스포츠로서의 위상을 날로 높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에서 상위팀이 하위 팀을 조롱하기 위한 저런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단어가 있었나요?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나한테 진 선수는 다 운동 그만둬야겠다’라고 인터뷰하는 것을 올림픽정신이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버워치는 많은 유저들이 즐기는 게임인 만큼 핵, 패작, 대리, 부계정 오남용 등으로 내적으로도 논란거리가 사그라지지를 않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는 과도한 경쟁에 내몰려 오로지 이기는 것에만 가치를 두며 패자를 멸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오유에서는 많은 분들이 겸손 또는 자학의 용도로 쓰고 계시긴 하지만, 굳이 남을 비하하고 조롱하기 위한 “심해”라는 단어 사용을 조금은 자제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 티어에 대한 조롱을 멈추고 싶지 않은 분들께 한 마디 남기고 싶습니다. 오유에는 그런 분들은 없습니다만, 가끔 다른 커뮤니티 분위기나 게임 내에서 보면 부모님 안부를 물으며 ‘심해 게임 접어라’ 등등 좀 심한 언사를 일삼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어디까지나 상대점수이므로, 바꿔 말하면 그들이 잘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 못하는데 그저 그보다 더 못하는 사람들이 밑에 있어서 그들이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위에서 백분위를 통한 점수 배분을 설명 드렸죠? 그 ‘브실골’ 계정 내일 당장 다 없애면 그 다음부터는 당신이 심해입니다.
두서없이 생각 정리해서 쓰다 보니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긴 글 이만 마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