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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536025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17
    조회수 : 1064
    IP : 119.195.***.230
    댓글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9/28 20:42:15
    원글작성시간 : 2012/09/28 18:59:50
    http://todayhumor.com/?humorbest_536025 모바일
    배경음) 그 남자의 장례식 -2부-




    딱딱한 병원 침대가 허리를 깨무는 것처럼 불편했다. 허리춤까지 올려져 덮인
    누리끼리한 이불을 걷어내며 일어서려는데, 침대를 짚고 일어서는 손에 눅눅한 물기가 흥건했다.

    몸을 지탱하는 손을 내려다보니 누가 물이라도 한바탕 끼얹은 것 마냥 물기가 침대 시트에 가득 스며있었다.
    의사가 내게 몸을 가까이 들이밀자 의자 바퀴 발에서 끼긱 거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잠들어 계셨는지, 짐작이 가세요?"

    또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 의사 놈이 거슬리고 거슬려서 꽥하고 고함이 치고 싶었다.

    요즘 들어 참을성의 한계가 많이 낮아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치밀어 오르는
    성질머리를 통제 하기가 어려웠다. 의사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왜요?"
    "중요한 건 아니에요."
    "그럼 물어볼 필요도 없었던 거 아닌가요?"
    "그렇네요. 그럼 필요한 질문 좀 해도 될까요?"

    웃는 표정이 한 번의 변화도 없는 의사 놈이 능글맞아 보여 정말 이마빼기에 슬슬 열이 차 폭발할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내가 한마디를 뱉으면 손에 쥔 수첩에 볼펜을 갈겨쓸 준비를 하고 있는 의사 놈은 내가 분명히
    불쾌하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에 순순히 적응하는 듯 했다.

    "제가 어디 몸이 안 좋은 상태인가요?"
    "아니요. 건강하세요."

    의사 놈이 또 무언가를 수첩에 적어나갔다.

    "뭘 자꾸 쓰시는 거에요?"

    대답은 없이 눈만 꿈뻑이는 의사는 내가 앉아있는 침대의 시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꿉꿉하게 젖어있는 침대를 슬슬 쓸고 눌러보더니 다시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장례식장에서 누구를 보고 죽으라고 소리치셨던 거에요?"
    "누가 누구한테 소리를 쳤다는 말씀이세요?"

    내가 아버지의 귀신을 보고 소리를 쳤다는 미친 소리를 꺼낼 리 없었다. 안 그래도 의사의 요상한
    눈초리가 거슬리는 통에 내가 장례식장에서 보고 들었던 아버지 귀신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는 나를 정말로 정신병자 취급할 것이 뻔해 보였다.

    "고모님 되시는 분이 그러시던데요. 이제 제발 죽어서 사라지라고 고함치셨다고요."
    "그런 기억 없는데요."

    의사가 입꼬리를 삐죽 들추며 처 웃었다. 오른손에 베갯잇 한 자락이 슬슬 만져졌다.
    당장에라도 그의 머리통을 베갯자락으로 휘갈기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손이 다 떨리는 듯했다.

    "고모님한테 뭐가 보이지 않냐고 물어보셨던 기억도 없으세요?"
    "없어요."

    의사 놈이 또 무언가를 수첩에 적어나갔다.

    "뭘 자꾸!"

    내가 손을 뻗쳐 의사의 수첩을 낚아 채려하는데 몸에 하나도 힘이 없었다.
    힘차게 뻗쳤다고 생각한 손은 무쇠 추라도 달은 것처럼 무거웠다.
    손끝이 허우적거리며 공중을 가르는 모습이 영락없는 천치마냥 굼뜨고 어설펐다.

    "환자분은 지금 탈진상태에서 깨어나신 거에요. 너무 무리는 마세요."
    "당신 뭔데 아까부터 사람 가지고 노는 듯이 살살거리는 거야?"

    내가 언성을 높이자 의사 놈이 검지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가 입술언저리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그 모습을 위아래로 훑자 의사 놈은 표정을 잠깐 찡그리더니 쓸데없이 천장 모서리를 응시했다.

    "환자분 혹시 돌아가신 분의 영령 같은 걸 본 건 아닌가요?"

    의자가 나를 향해 자세를 고쳐앉았다. 끼릭 하는 의자바큇소리가 뜨끔하는 내 속내를 들추는 듯 소름이 끼쳤다.

    "이곳은 정신병원입니다. 환자분은 오늘로써 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곱 번째이죠."

    바로 좀 전까지 귀신을 봤다는 기억이 뚜렷한 나를 관통하는 듯한 한마디였다.
    사실 내가 미쳤다고 사람들이 떠들어도 나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다만 그동안 이 의사 놈과 여섯 번
    얼굴을 마주했었다는 것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미쳤다는 것을 자각하게 됨으로써
    의사 놈의 말에 작은 신뢰감이 들고 말았다.

    "우리는 이전에도 이런 대화를 했었습니다. 이 이전의 여섯 번에도 정확히는 다섯 번이죠. 저와 만났던 일을 기억 못 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이번에도 애써 저를 기억해 내려고 하실 필요는 없어요. 괜히 정신적 피로도만 높아집니다."

    능글맞던 의사의 표정이 어느새 나를 통찰하고 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았다.
    나보다 낮은 곳에서 나의 시선을 맞추고 있는 의사의 눈빛은 그가 마치 맨발로 내 머리꼭대기에
    올라서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깨름직한 압박감이 들게 하였다.

    "아버지의 영혼을 보고 왜 죽어 사라지라고 고함쳤는지, 우리 다시 이야기해볼까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는 의사의 태도는 마치 나를 쪽지시험에 들게 하는 것만 같았다.
    이미 서로가 알고 있는 답을 다시 복습하는 이런 행동에 의미를 찾지 못하면서도 나는 술술 의사에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저는 아버지가 싫어요."
    "왜 그렇게 증오하세요? 왜 영영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대답이 없는데도 의사는 또 무엇인가를 수첩에 적어 내려갔다.
    이제는 궁금해지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반복적인 행동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랑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요?"
    "..."

    이번에는 꼭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 의사 놈이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그는 진득한 인내심을 뽐내기라도 하듯 자세한 번 바꾸는 일이 없었다.

    "사람은 눈물을 너무 많이 쏟으면 눈물샘이 말라 결국 피눈물을 흘린다고 하죠."

    대뜸 영문모를 소리를 떠드는 의사 놈을 돌아보았다.
    의사 놈은 나의 주목을 이끌어낸 것에 의기양양한 듯 표정이 밝아졌다.

    "환자분은 장례식날 울다 지쳐서 탈진하셨습니다. 오열이라고 하죠? 그건 기억하시나요?"
    "제가 그딴 새끼 죽었다고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렸을 것 같아요?"
    "사실이 그랬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
    "아버님을 많이 사랑하셨죠?"
    "무슨 개소리야."

    내가 욕지거리를 하자 의사가 또 삐죽하고 웃었다. 몸에 힘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온 힘을 다해 그의 뺨을 후려쳤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가슴을 끓어오르게 했다.

    "환자분 나이랑 성함 좀 말씀해주실래요?"
    "그런 것도 몰라요?"

    의사 놈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체 고개를 돌리곤 벽에다 대답을 던졌다.

    "김지선, 열여덟."
    "지선양."

    의사 놈의 꼴이 보기 싶어 고개를 벽에만 향하고 있는데 의사 놈이 수첩에 끄적이는 볼팬소리가 들렸다.

    "지선양은 혹시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신 일이 있으셨나요?"

    귀신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아버지의 손이 내 허벅다리를 쓸어올리던 일이 일순 머리를 스쳤다.

    "그런 일 없어요."
    "아버지가 지선양에게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거나 한 적도 없나요?"

    눈에 잔뜩 힘을 주어 뒤돌아 의사를 노려보았다. 의사 놈은 다리를 꼰 체 팔받침을 하여 턱을 괴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지선양에게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한 적이 없냐구요."
    "이 씨발새끼. 다 알면서 왜 또 물어! 너 이!"

    내가 몸을 일으켜 의사 놈에게 손을 뻗는데 몸에 균형이 무너지며 침대 밑 콘크리트 바닥으로 쑥 떨어져 나갔다.
    돌 바닥에 넘어지려던 나를 재빠르게 움켜쥔 의사의 양손이 내 어깨를 욱신거리게 했다. 내가 고개를 들자
    의사의 얼굴이 주먹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지선씨와 아버님께서 성관계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너무 화내지 않으셔도 되요."
    "뭐?!"
    "지선씨도 아버님도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이!!!!"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의사 놈의 고함 때문에 병실로 한가득 침묵이 찾아들었다.
    한참을 말이 없는 우리의 차디찬 공기가 머리를 식혀주는 듯 했다.

    "니가 무슨 수로 나를 치료하는데?"

    내가 눈을 돌려 의사를 바라보자 의사는 의기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살하실 것을 권해드릴게요."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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