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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이야기는 저 밑에...
회사 IT짱이 숨도 쉬지않고 '니네들 짤렸다... 잘가라...'라는 발표를 하자마자 회의실은 정말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솔직히 누군가 일어나서 '야 이 XXXX야, 내가 이 회사에서 한 게 어딘데... 나를 이렇게 대하냐...' 라고 한번 뒤집어지는 걸 기대했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두들 조용히 숨죽이고 똘마니가 연설대에 올라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 참... 순박한 사람들이네... 라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조용했던 지, 똘마니의 구두소리, 뚜벅뚜벅... 마저 또렷이 들립니다.
그 숙연한 분위기에 똘마니가 연설대에 올라오더니 또 열심히 이야기를 합니다.
"음... 앞에 IT짱님이 이야기했듯이 니네들 오늘부로 다 짤렸다... 미안하다... 회사경영 문제 어쩌구 저쩌구... 세계경제가 어쩌구 저쩌구... 비용절감 차원에서 어쩌구 저쩌구..."
어차피 잘 들리지도 않는 영어... 충격 때문에 오늘은 더 안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내 이야기가 끝나는대로 각 테이블로 2명씩 갈 것이다. 1명은 인사과, 1명은 재취업센터에서 온 사람...
인사과 애들이 각자에게 정리해고패키지를 나눠줄 것이며, 재취업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이 설명할 것이다.
IT짱님이나 나는 더 이상 답해줄 게 없으니, 궁금한 사항은 각각 테이블로 가는 사람에 물어보거라... 그럼 나는 끝..."
아... 그 놈의 IT짱놈은 드럽게 챙기네... 내가 이 회사 있을 때에나 IT짱이지, 이제는 뭐... 잘 나가는 동네아저씨지... 머...
똘마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우루루 사람이 몰려오더니, 각각의 테이블로 흩어집니다.
저희 테이블로도 말끔하게 생긴 인사과에서 온 젊은 놈 하나와 나이드신, 측은하다는 듯이 테이블을 쳐다보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오십니다.
인사과 놈이 한명씩 이름을 호명하면서 서류봉투를 하나씩 나눠줍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도 저는 마음속으로 '제발 서류착오이기를... 나는 원래 아닌데 이쪽으로 잘못 되었기를...' 하고 바랬습니다.
그렇지만, 여지 없이 제 이름이 불리웁니다.
이로써 저의 해고는 빼도박도 못하게 되버렸습니다.
인사과 놈이 뭐라고 주절거립니다.
"지금 나눠준 패키지는 회의장에서 말고 반드시 집에 가서 확인해라.
교통편이 없는 사람은 이야기해라, 택시 준비해 놨다.
직원보조 프로그램에 의해서 너희들은 스트레스나 장래에 대해 상담을 받을 수 있으니, 그 상담을 받고 싶은 사람은 옆에 있는 흰 천으로 만든 박스에 가서 상담을 신청해라."
아... 옆의 박스가 그 용도였구나... 그런데 자르고 상담받으라니...? 웬 Bottle 주고 Drug 올리는 시츄에이션...
재취업센터에서 오신 아주머니도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충격이 크겠지만, 우리가 있다. 우리가 물심양념으로 도와줄테니 너무 걱정마라.
우리 센터에서 이력서, 커버레터, 인터뷰까지 다시한번 점검해 주고, 직접 일자리도 연결시켜줄 것이다.
나눠준 패키지에 센터에 관한 소개, 그리고 앞으로의 일정까지 잘 나와있으니 검토해봐라.
나를 믿고 따르라!!!"
이 절망적인 상황에 이런 복음을 전파하시니 하느님이 따로 없습니다. 갑자기 아주머니의 주름살이 좌르륵 펴지면서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습니다.
"머 더 이상 질문 없냐?" 인사과 젊은 놈이 말합니다.
그 때 제 옆자리의 머리 희끗한 분이 결연한 표정으로 손을 듭니다.
저는 속으로 '아... 이제 한따까리 시작하려는구나... 나도 같이 동조를 해야하나...' 하며서 가만히 목을 풉니다.
그 손 든 아저씨가 엄숙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이제 집에 가도 되나?"
아... 아저씨... 여기가 유치원도 아니고... 아...
이렇게 약 20여분 정도의 해고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저는 내일부터 뭐 먹고 살아야 하남...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서로 웃으면서 인사하고, 꼭 연락하라고 하라면서 전화번호 주고받고, 그러면서 회의장을 떠납니다.
아... 이 사람들은 집에 금송아지가 몇마리씩 있나...? 왜 저렇게 여유지?
아내가 차를 사용했기 때문에 교통편이 없었던 저는 그 인사과놈에게 택시를 신청하고, 택시비는 어떻게 되냐고 물어봅니다.
그 놈이 택시비는 회사에서 내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문득... 밴쿠버로 여행이나 갔다올까...? 아님 토론토 가서 한국식품 장이라도 봐 올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내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회의장 밖으로 나가서 건물 앞으로 나서니...정말 택시가 건물을 삥 둘러서 줄을 서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택시는 캐나다에서 처음 봅니다. 그 때서야 동료가 아침에 이야기했던 게 생각납니다.
'아... 그 택시 이야기가 이 택시 이야기였구나...'
캐나다에서 직장다니시는 분들... 아침에 건물 앞에 택시가 줄지어 서 있다면,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시고 Sick Day를 내시거나, 하룻만에 애를 만들어서 Maternity 휴가를 내시길 바랍니다.
가끔 한국드라마 등을 보면 정리해고를 당한 남편, 아버지들이 집에 그 사실을 숨기고, 하릴없이 그 다음날도 출근하는 척 하면서 공원가곤 하는 장면을 많이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은 그런 거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으면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빨리 털어놓고 해결책을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야죠.
택시를 타고 아내있는 곳으로 가던 중,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냅니다.
'자...기...야... 나... 정...기...예...금... 됐...어..."
아... 이 놈의 오타와 쓸데없는 단어자동완성기능... 손가락이 두꺼워서인지, 저는 한번도 제대로 메시지를 보낸 적이 없습니다.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뭘 잘못 눌렀는 지 오타가 났네요. 다시 제대로 보내려고 열심히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답메시지가 옵니다.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건드리면 죽어...'
참 일관성 있는 아내입니다.
아내에게 어느정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내 일(발랜티어링)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옆에 있는 커피숍, 팀호튼을 갑니다.
습관적으로 라쥐 더블더블을 외쳤다가, 갑자기 내일의 불확실성이 생각나서, 메뉴판을 뒤져서 제일 싼 스몰 아이스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서 조심조심 패키지를 열어봅니다.
서류뭉탱이가 우루루 나옵니다.
제일 많은 양을 차지한 건 재취업센터에 관한 서류들... 재취업센터에서는 무슨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운영되고, 앞으로의 일정... 등등등의 서류들입니다.
그리고 직원보조프로그램에 의한 직원서비스 내용들... 하여간 둘 다 별로 쓸데없는 서류들이었습니다.
그 다음 중요한 서류가 나옵니다. 정식해고장, 즉 해고를 법률적으로 적어놓은 글입니다.
와우... 1문장이 보통 10에서 15줄입니다. 다 아는 단어인데, 읽어보니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이리 꼬고 저리 꼬고, 문장이 워낙 기니, 뒤로 가면 앞에서 무슨 말을 써 놨는 지 까먹고... Lawyer들이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추천장도 2장 넣어놨습니다. 다음 회사 지원할 때 쓰라는 목적인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혜택 등은 맨 마지막에 넣어놨습니다.
일단 급여는 8주치를 한꺼번에 지급... 그리고 휴가도 짤린 날짜를 기준으로 소급적용해서 안 쓴 휴가도 휴가비 산정해서 지급... 다행히 휴가를 프로젝트 때문에 너무 바빠서 여름에 몰아서 가려고 모아놨었는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보험도 8주까지는 계속 커버가 되고, 심지어 RRSP 등도 8주까지 계속 회사에서 내준다고 합니다.
내일부터 당장 손가락 빨아야 할 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나마 안심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정리해고에 대해서 순응하고, 별 말썽 안 부린다는 항목에 사인하고 그걸 회사에 보내면 2주치를 더 주겠다...'
아무리 정리해고가 일반화되어 있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부당한 조치에 회사를 상대로 소송 걸고... 그런 직원도 있나 봅니다.
뭐... 법에 대한 지식이 많아면야 한번 따져볼만한 일이긴 하지만...
기분이 팍 상합니다. '아니, 이 자식들은 지들이 잘라놓고, 또 말썽부릴까 봐 이런 조항도 만들어 놔? 그깟 2주치 월급에 내가 헤헤 거리면서 바로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나? 도대체 사람 자존심을 어떻게 보고...'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으로는 재빨리 싸인을 정성스럽게 하고, 바로 그날 편지를 보냅니다.
뜻하지 않은 저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가고, 저의 백수생활이 시작됩니다.
*** 이 글은 예전에 경게에 올렸다가 카테고리 문제로 삭제하였지만, 이제 제대로 된 카테고리가 생겨서 다시 올립니다. ***
출처 | 나의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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