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입니다. 과제로 짧은 단편소설 내는 것이 과제라 한번 써봤는데...
과제에 공포소설 같은거 내도 괜찮은 거겠죠?
나는 패딩잠바 하나 입지 않은 채로 밖에 나갔다. 차가운 3월 봄의 새벽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가자 잠시 몸을 떨었고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제법 영하 -3~4 도는 될 정도의 강추위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현재 매우 졸린 상태였고, 잠을 깨기 위해선 이런 방법밖에 없으니까. 손님도 거의 없어 1시간 전에 담배를 사간 손님말고는 한명도 오질 않았다. 손님이 많다면 바빠서 졸 새도 없었을텐데.. 그래도 밖에 나와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머리속에 이끼처럼 끼어 자라던 졸음의 기운은 확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여기에 몸을 풀어주는 체조 몇 번이면 향후 1시간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주변 광경을 둘러보았다. 차 하나 지나가지 않아 텅빈 도로 옆을 답답하게 가득 차 있는 어두운 건물들, 몇몇 건물에 부착된 네온사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 가로등의 불빛.. 신호등의 불빛...
왜 일까?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빛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낮에 활동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처음엔 보이는 게 불빛 밖에 없으니까.. 라고 생각하다 나중에는 대충 그럴 듯한 결론을 내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어둠 안에 갇혀 사는 인간의 본성일거라 생각했다. 원시, 고대 시대의 원시인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말 캄캄한 어둠속에서 불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저 어둠안에 숨어서 자신을 노리고 있을 무서운 맹수들에게 살아남기 위해서, 물론 현대시대에서 어둠안의 공포는 미신적인 걸로 가득채워졌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두운 곳에서 공포심을 느낀다. 자신이 홀로 남았다는 두려움, 저 어둠안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본능적인 공포, 아마 그런 본능이 나를 자극하는 것이라 스스로를 달랬다.
갑자기 옛날 과학책에 봤던 내용이 기억났다. 추운 곳에서 오래 있게 되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고. 왠줄 모르겠지만 화장실이 급해지자 생각난 상식이었다. 아직 다른 알바생이 오기엔 몇시간이나 남아있는 상태라 나는 편의점 안에 들어가 열쇠로 문을 잠그고 바로 옆 건물안에 있는 화장실로 향...하기 싫었다.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옆 건물 화장실은 그야 말로 새벽에 혼자 일 보기에는 최악의 장소를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건물 안에 위치해있는 미용실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그 망할 미용실은 항상 파란 불빛으로 점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왜 있잖은가, 옛날 TV에서 해주는 공포 특집 보면 귀신 밑에 파란 불빛 깔아놓는거. 하지만 무엇보다 난 그 화장실 자체가 싫었다. 세면대는 부셔지고 물 내리는 소변통은 물조차 나오지 않아 냄새가 가득했고 저 위에는 창문이 열려있어 항상 바람소리가 귓가를 때리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사내대장부가 화장실 가는 걸 겁내하면 어떡하나.' 라고 생각하며 무거운 걸음걸이를 옮겼다.
미용실 쪽을 애써 쳐다보지 않고 지나간 나는 아직 미용실 옆에 위치한 술집이 아직도 장사를 하고있다는 사실에 매우 안심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건물보단 누구라도 있는게 좋을테니까. 술에 많이 취했는지 아줌마와 아저씨의 커다란 소리가 새어나왔다. 맨 처음엔 누가 싸우나? 생각했었지만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에 나는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역시 세면대는 없고 소변기 주변은 수많은 담배꽁초와 술에 취한 사람들의 조준실패로 인한 바닥에 흩날려있는 오줌들로 냄새가 고약했다. '아, 더러워. 여긴 누가 관리도 안하는건가?'
그래도 오늘은 세차게 부는 바람소리가 화장실에 들리지 않자 애써 마음을 놓고 일을 보던 내 귀에 엄청나게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박혀들어왔다. 바로 앞에 있는 술집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공포영화에서 들을 법한, 정말로 절박한 비명소리 였기에 긴장상태였던 나는 갑자기 드럼처럼 쿵쾅대는 심장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진정될 여유도 없이 비명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이번엔 맨 처음에 났던 목소리가 아닌 중년 남성의 목소리 같았다. 비명소리는 두어 번 더 울려왔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화장실 문을 열고 달려나가거나 무슨일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곳에서 나가는 순간 나도 이런 상황에 휩쓸릴까 두려워졌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내 머릿속을 메아리 처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5초만 세고 밖으로 뛰어 나가는거야.'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5초를 센 나는 문을 세차게 열었다. 그리고 내가 달릴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달려나갈 것이다. 무슨 일인지는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문을 열자마자 내 눈에 보인 건 몸 여기저기에 피를 묻히고 왼손에 식칼을 든 흥분한 살인자의 얼굴이었다. '억' 하는 말이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나는 갑자기 살인자를 만난 거고 저 사람은 갑자기 목격자를 만난거다. 그 둘의 애매한 대치 상황은 정신을 차린 내가 급히 화장실 문을 다시 닫으면서 깨어졌다.
쾅쾅쾅 하며 살인자는 화장실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발로 차고 몸으로 부딫치기도 했지만 나는 문이 열리지 않도록 온 힘을 쥐어 짜고 있었다. 이런 망할 화장실은 문에 잠금장치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온몸이 떨리는 상황에서도 내 머리의 한구석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저 사람을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인 것임은 분명했다. 삐쩍 마른 얼굴에 지저분한 수염. 하지만 지금은 그런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문이 잠시 열린 틈을 타 살인자의 손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절대 그렇게 되서는 안되었다. 이곳은 내 최후의 장소가 되선 안된다. 힘이 빠지는 가운데에서도 나는 화장실 벽에 세워져 있는 대걸레 자루에 손이 닿았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살인자의 주먹뼈에 대걸레 자루가 부딫치자 살인자는 신음을 흘리며 손을 급히 뺐다. 덜컥 하는 소리와 문이 다시 제대로 닫히자 나는 잠시 등을 문에 기대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살인자는 발로 문을 몇 번 차고는 성질이 뻗치는 지 괴성를 질렀다.
1차 승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자신만만하게 욕을 질렀다.
"넌 여기 못들어와 이 새끼야!"
그 말에 더 화가 나는지 살인자는 몇 번 화장실을 거세게 공격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살인자는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해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뚜벅뚜벅 거리는 소리가 점차 잦아지더니 이젠 아예 들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근처에 숨어있을 법한 뻔한 트릭이 아닌 진짜로 밖에 나간 것이었다. 근처에 숨어있다면 점차적으로 멀어지는 발소리를 흉내낼 수가 없을 것이다. 밖으로 나갈까 말까. 나는 한참 고민했다. 솔직히 내가 욕을 했다고 살인자가 쉽게 포기할 리는 없었다. 이것이 상대가 노리는 수 일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밖에 나간다면 더욱 안심할 수 없었다. 밖에도 숨을 곳은 충분히 많았다. 하물며 새벽의 어두컴컴한 거리는 더욱 위험했다. 나는 일단 경찰에 전화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이런 미친.' 순간적으로 머리에 무언가를 맞은 것 같았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이 상황을 깔끔하게 해결해 줄 핸드폰을 놔두고 온 것이다. 살인자의 칼이 빛나고 있을 이 상황에 밖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틀여박혀 있을 순 없었다. 대걸레 자루를 강하게 움켜 쥔 나는 화장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화장실 안의 긴장되 있던 공기와 바깥의 공기가 교류하자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그 마저도 서늘한 칼날의 감촉같이 느껴졌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문제의 장소인 식당의 뒷문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로 만들어진 벽은 피로 얼룩져 있는 상태였고 안쪽은 스티커가 붙여져 있어 정확히 볼 수가 없었다. 천천히 한걸음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좌우로 쭉 뻗은 복도에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걸음을 한차례 한차례 옮길 때 마다 놀이동산의 자이로드롭을 탄 마냥 가슴이 계속 철렁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우 투명 미닫이 문에 도착한 나는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사실 이곳이 제일 고비였다. 밖에 나간 것으로만 알고있는 나에게 있어 이곳은 살인자의 완벽한 엄폐장소였다. '미친새끼.. 덤비기만 해봐. 대걸레 자루로 아작을 내줄테니'
의외로 살인자는 숨어있지 않았다. 걸음을 빠르게 옮겨 편의점 앞에 도착할 때 까지 분당 200번은 뛰는 것 같았던 심장도 점차 잦아들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찰랑찰랑 거리는 소리가 구세주의 소리요, 편의점 안의 저 환한 불은 구세주의 빛이였다. 저 곳에만 들어가면 나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 당장 핸드폰을 들고 112를 누르리라. 나는 생각했다. 어찌 생각해보면 제일 위험했던 순간인 열쇠따기에 성공하여 편의점 안으로 급하게 들어간 나는 계산대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 의자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빛이 있으니 모든게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경찰에 전화를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나는 계산대 위에 올려져있는 잠바 주머니 안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1 , 1, 2 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마자 편의점 문에 달려있는 종이 찰랑찰랑 하며 울렸다. 병적으로 "어서오세요"를 외친 나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방금 1시간 전에 여기 와서 담배를 사간 손님이었다. 벌써 담배가 떨어진건가?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내 배를 천천히 내려보았다. 식칼이 꽂혔다는 생각과 함께 엄청난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피는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왜? 나는 나를 찌른 손님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방금 살인을 하여 헐떡거리는 모습이 살인자와 마주쳤을 때의 모습과 오버랩 됬다. 비록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비쩍 마른 얼굴과 지저분한 수염. 이럴수가. 어쩐지 낯익다 하더라니.. 그가 화장실을 포기한 것은 이런 거였구나. 내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어디서 근무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침을 하자 순간 왈칵 피가 튀어 나왔다. CCTV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범인은 모자를 다시 깊게 눌러쓰고 편의점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제대로 당한 것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찾으러 편의점에 돌아와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어부들이 오징어를 잡기 위해 새벽에 불을 비추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듯이.. 나는 그저 빛을 쫓아가다 타 죽은 나방꼴이 된 셈이었다. 내가 위험한 곳이라 생각했던 곳이 안식처였고 안식처라 생각했던 곳이 내 무덤이 될 줄이야.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에서 경찰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손을 뻗어 잡으려 하나 잡을 수 없다. 나는 그대로 죽음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만 것이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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