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블랙딜>의 한 장면. |
ⓒ 인디플러그 | 관련사진보기 |
지난 6월 13일, 국토교통부는 코레일공항철도(인천공항철도)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MB정부가 적자 경영을 이유로 인천공항철도를 코레일에 떠넘긴 이래, 정부는 공기업이 흑자로 전환시킨 이 인천공항철도를 다시 민간 기업에게 팔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명분은 언제나 그렇듯, 공기업과 공공기관 개혁이었다.
지난해 12월 22일, 경찰이 철도노조가 벌인 장기 파업을 빌미로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건물에 강제 침탈로 대응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경찰과 정부의 강경 대응에 철도노조는 곧이어 백기를 들었고, 같은 달 28일 수서발 KTX의 면허가 발급됐다. 지속적으로 민영화 반대 투쟁 중인 철도노조는 지난달 27일 '세월호 침몰 사고 진상규명과 철도 민영화 반대'를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당선 전 "지금과 같은 KTX 민영화는 반대한다"거나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를 절대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 기간망인 철도는 가스·공항 항만 등과 함께 민영화 추진 대상이 아니"라던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경영효율화 측면에서 경쟁체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며 말 바꾸기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정부가 제출한 '공공기관 정상화대책 이행계획'은 공공기관 구조조정 및 규제완화, 국가부채를 이유로 들어 작은 정부를 추진하겠다는 것인데, 공공부문 민영화를 포함해 긴축재정운용 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가겠다는 의도를 쉬이 읽어낼 수 있다. 우리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도 아랑곳없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엔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확인해 보고 싶어진다. 도대체 "국민을 위한"이란 되도 않는 빤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그 이론적인, 현실적인 근거가.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외국의 선진 민영화 사례는 어떤지 말이다. 신자유주의의 출현과 함께 심화된 민영화라는 정책은 과연 국가를 믿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줬는가.
외국 민영화 사례들, 그것을 알려주마그것이 알고 싶은 이들에게 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블랙딜>은 더 없이 좋을 교육용 자료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어두운 미래가 될지 모르는 외국의 그 선진(?)적인 사례들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을 마주하는 일은 꽤나 충격적일 거란 경고를 먼저 해 두는 바이다.
이미 이쪽 민영화와 자본주의 비판 분야의 선수로는 마이클 무어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지 오래다. 데뷔작 <로저와 나>를 통해 자신의 고향인 디트로이트를 기반으로 한 제너럴모터스사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유머러스하게 고발한 마이클 무어. 그는 근작인 <식코>를 통해서는 미국 의료민영화의 폐해를,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를 통해서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불편하고 위험한 진실을 고발한 바 있다.
|
▲ 영화 <블랙딜>의 한 장면. 일본 JR 철도. |
ⓒ 인디플러그 | 관련사진보기 |
'7개국 민영화 리얼탐방기'를 표방한 <블랙딜>은 마이클 무어가 선취한 성과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 쉬이 취할 수 있는 취재 대상에 대한 조롱과 풍자, 직설적인 내레이션과 의견 개진은 최대한 자제한다. 그 대신 남미 칠레와 아르헨티나, 유럽 프랑스와 영국, 독일, 그리고 일본을 돌며 민영화의 실제 사례들을 '보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자'고 권유한다. 비록 그 맛이 씁쓸하고 공포에 가까울 지라도.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경쟁력'을 운운하는 정부가 수서발 KTX와 비교해 성공 사례로 꼽는 일본 JR 철도. 안정화됐고 수익도 크게 내는 이 철도회사 노조원들은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민영화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오히려 수익과 효율을 강조하다 최악의 고속철도 사고를 냈던 민영화 직후의 기억은 역설적으로 일본인들 특유의 조심성과 안전을 강화시킨 사례가 됐다.
물론 그 사고의 피해는 고스란히 (죄책감으로 자살한 철도회사 사장을 비롯해)국민들의 몫이었다. 민영화 이후 실직한 일본 노동자들의 현재는 별개 문제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최소한 <블랙딜>이 담은 일본 철도 민영화는 남미와 비교해 이제는 현재완료형으로 보일 만큼 안도감을 준다는 점이다.
우리의 과거-현재-미래일지 모르는 민영화 사례들 |
▲ 영화 <블랙딜>의 한 장면. 아르헨티나의 지하철 풍경. |
ⓒ 인디플러그 | 관련사진보기 |
창이 다 열려있고, 극도로 덜컹거려 한 정거장만 타고 가도 (빈말이 아니라)죽을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아르헨티나 지하철은 지옥 그 자체다. <블랙딜>은 남미에 이르러선 철도 민영화를 넘어 교육(칠레), 연금 제도까지 아우른다. 교육 민영화로 인해 우리의 몇 배에 달하는 교육비로 신음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칠레 학생들이나 군사 정부 시기 강탈당한 국민연금 피해자의 궁핍한 삶은 우리 미래에 불안감을 던져주기 충분하다.
특히 시도 때도 없는 단전에 신음하는 아르헨티나의 현재는 충격적이다. 어디에 항의할지도 모르고, 5일도 넘어서야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는 아르헨티나 시민들의 모습은 민영화의 상시화가 일반 시민들을 어떻게 둔감한 양으로 길들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에 비해 유럽의 민영화는 심화 학습 버전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롤모델로 삼는 '민영화 선진국' 영국은 높은 가격에도 서비스의 질은 형편없는 철도가 여전히 골칫거리다. 프랑스에선 사기업이 좌지우지하는 '물 민영화'를 조명하며, 기업 이윤의 절대 신봉자 장 자끄 프롱시 전 수에즈 CEO와 공공부문을 프랑스에 개방하겠다고 공언한 박근혜 대통령을 연결 짓는다. 선진화 사례로 꼽히는 독일에서는 한국철도 민영화의 본보기로 꼽히는 '도이체반'의 허와 실을 집요하게 취재했다.
그리하여 수렴되는 것은 결국 우리의 현재다. 공공재 사용 가정에서 전기, 수도 등 공공요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으며 시작한 영화는 민영화를 한사코 부정하는 김상규 기회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의 인터뷰로 끝을 맺는다. 여러분의, 우리의 공공재가 안녕한지를 묻기 위해서 말이다. 태백시의 상수도 사업을 이미 공영기업이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민영화의 검은 그림자는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공공재를 잠식하고 있는 중이다.
기억과 망각의 몽타주가 고발하는 '검은 거래'의 이면 |
▲ 영화 <블랙딜>의 한 장면. |
ⓒ 인디플러그 | 관련사진보기 |
언제부턴가 방송 언론 사회탐사보도프로그램이 해야 할 공기로서의 책무들을 극장용 다큐멘터리가 대신하고 있는 느낌이다. <블랙딜>의 이훈규 감독 역시 방송과 독립 다큐를 두루 거친 베테랑이다. 그는 첫 극장 장편용 다큐인 <블랙딜>을 통해 망각 대신 기억할 때만이 민영화로 이익을 취하는 세력들의 '검은 거래'들을 끊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군사 정권이 앞장서 민영화를 추진했던 남미나 거대 기업들이 물 사업을 추진하는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에서도 이 '검은 거래'의 힘은 여전히 세다. <블랙딜>은 이명박 정부부터 현정부까지 줄기차게 추진 중인 물시장 개방 문제에서도 이 '검은 거래'가 오고 가지 않았겠느냐고 묻고 있다. 철도, 의료에 이어 물시장 개방에 대한 화두까지 던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6월 30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마치며 <블랙딜> 관람을 권유했다고 한다.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라면 꼭 봐야할 영화로 인식된 탓이다.
하지만 <블랙딜>을 노동조합의 일원이나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들만의 영화로 인식해선 곤란하다. 민영화에 관심이 있거나 없거나도 결코 중요치 않다. 그저 내가 납부하는 수도·전기요금이 왜 인상되는지 궁금한 이라면, 우리 철도가 얼마나 안전하지 의문인 이라면, 세월호 참사가 결국 민영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한 이라면 분명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영화다. 이훈규 감독과 제작진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렇게, '검은 거래'로 완성되는 민영화는 우리의 턱밑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