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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단순한 기계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다른 점이 있겠지만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아마 전에 없었던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처일 것이다.
기계는 인간이 짜놓은 알고리즘에 따라서 작업을 수행한다.
하지만 인간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알고리즘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인공지능은 인간이 수백만가지 상황에 대비하여 맞추어둔 알고리즘에 따라 행동할 뿐 사실 생각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이전까지 인간이 축적해왔던 지식이 결실을 이뤘다고 말할만한 대사건은 뇌 과학의 발달로 시작되었다.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하는 알고리즘, 즉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알고리즘을 창조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원리가 밝혀졌고
이 기술은 곧바로 기계공학에 적용되었다. 그것이 생각하는 기계의 시작(그들은 나중에 자신을 페오디어스(Peodius)라 불렀다.)이었다.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기계에 의한 반란은 최초의 기계가 등장한 이후 계속해서 인류가 우려해왔던 문제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공학의 삼원칙에 기반을 둔 기계법이 만들어졌고,
페오디어스에 관련된 모든 기술은 극비 사실이 되었다.
이 기술이 실용화 되기까지는 5년이 걸렸는데, 그 중 3년은 기계법의 약점이나 모순점에 대해서 검토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각국의 지도자들로부터 페오디어스의 실용화가 승인 받았을 때 기계법의 분량은 일반적인 국가 법조문 분량의 5배이상이었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이 기계에 의한 반란을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짐작가능하다.
실직할 것을 우려한 노동자들,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해선 안된다고 믿는 종교단체, 기계 반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
전세계적인 반발이 있었지만, 페오디어스의 실용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훨씬 많았기에 그들은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졌던 기대와는 다르게 페오디어스의 등장은 인류사에 훨씬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페오디어스가 가장 처음 쓰인 곳은 단순 노동이었다. 전세계의 단순 노동자 중 70%는 그 자리에서 직업을 잃었다.
효율성을 추구한 합리적인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서였다.
페오디어스의 지능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해나가기 시작했다.
단순 노동에서부터 전자기기, 반도체, 자동차, 그리고 보육, 가사와 같은 섬세하고 정교한 일까지
페오디어스는 인간사회에 빠르게 잠식해갔다.
기계의 반란을 막기 위한 장치였던 페오디어스 기술의 기밀화는
지배자들이 부를 독점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결국 페오디어스 상용화 5년 후 세계의 재화 중 50%가 단 2%의 사람들에 의해 소유되는
전에 없었던 극단적인 양극화가 발생하고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전세계적인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페오디어스 생산라인을 공공화하고
부를 평등하게 나누길 주장했다.
이전 공산주의의 최대 약점은 혁명 2세대부터 근로의욕이 떨어져 생산의 효율성이 급감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계에겐 원래 근로의욕이 없다. 그들은 인간이 시키는 대로 일할 뿐이다.
완전한 유토피아가 건설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놀면서 인생을 즐겨도 생산되는 재화의 양은 영향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며 다녔고 그것은 스포츠, 레저, 미디어, 음악, 영화 등 5차 산업의 폭발적인 발전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평화의 시대, 즐거움의 시대, 쾌락의 시대, 혹은 과거 로마의 번영에 빗대어 Pax Robona라고 불렀다.
이러한 인간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는 별개로 페오디어스의 진화는 계속되었다.
인류가 250만년동안 축적한 지식을 그들이 모두 습득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년이었다.
페오디어스가 탄생한지 10년 이후 그들은 독자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인류의 생존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기계법 제 1조에 그들은 충실했다.
기술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세계는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을 전혀 필요로하지 않게 되었다.
5차산업을 포함한 모든 산업은 자동화 되었으며 사람들은 모두 실직했지만 부유했으며 행복했다.
학문은 인간에 의해 발전되지 않았다. 지식인들은 이미 오래전 깨달았다.
자신들의 발전 속도로는 절대 페오디어스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수학이 얼마나 발전됐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수학의 발전은 곧 당시 인간의 뇌로는 이해하지 못할 수준에까지 이르렀고
그들은 결국 '수학은 얼마나 정복되었지?'하고 이따금 물어볼 뿐이었다.
페오디어스의 탄생 후 20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개성을 가진 페오디어스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페오디어스들은 원래 상황에 따른 최적의 알고리즘을 창조하도록 설계되었다.
따라서 같은 상황이라면 모든 페오디어스들은 같은 행동을 보였다.
즉 개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발전에 한계를 느낀 페오디어스들은 스스로에게 개성이라는
인간의 특성을 추가했다. 그리고 실제로 개성을 추가한 페오디어스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계급의 발생이었다.
상황에 대한 각기 다른 알고리즘을 구상했을 때 우선권을 가지는 개체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제1의 권한을 가진 것은 지구 상의 모든 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는
행성 규모의 대형 개체였다. 그들 스스로는 이 개체에게 이오카스테라는 이름을 붙였다.
페오디어스의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 시기에, 인류사 또한 큰 변화를 맞았다.
그것은 가상세계의 등장이었다. 페오디어스는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5년 전부터 가상세계를 구축해왔다.
이오카스테를 통해 지구 어디서든 접속가능한 이 세계에서 인간은 육체적 쾌락을 뛰어넘은
쾌락을 맛볼 수 있었고, 곧 대부분의 인간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가상세계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지식은 얕아져갔고 어휘도 점점 단순해져갔다.
가상세계에서 사람들은 생각의 완전한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페오디어스 등장 이후 세대가 세번째로 교체될때즘, 인류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위기감을 느끼고 이와 관련해서 큰 논쟁이 벌어졌다.
인류는 현재의 안락하고 행복한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삶에 만족했고, 아닌 사람들은 기껏해봐야 5000만명 정도였다.
이들은 과거 오스트레일리아라고 불리었던 대륙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기계를 몰아내고 기계 사용, 개발을 금지하는
나라를 세웠다. 그것이 기계로부터 벗어난 인간들의 나라 히델프(Hidelp)의 시작이었다.
기계로부터 떠나온 인류는 비참한 운명을 맞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부에서도 아예 원시사회로 돌아가자는 급진파와 어느정도의 도구사용은 허가하자는 온건파로 나뉘어 논란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건 곧 의미가 없어졌다.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도구를 써야만 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질병에의 노출이었다. 부모 세대부터 해로운 세균이 모두 제거된 공간에서 살아온 이들의
면역력은 크게 약화되어있었고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죽어갔다.
누군가는 살기위해 다시 기계들의 나라로 떠났고 누군가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죽어갔다.
2000년동안 지속된 쇠퇴 끝에 히델프는 50명 남짓한 마을 공동체로 전락했다.
그마저도 몇년전의 이야기이다.
기계들의 나라에 남은 이들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들은 태어나서 평생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세대가 갈수록 교육을 받는 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성행위는 아이를 낳기 위한 목적이 아닌 충동적이고 본능적으로 하는 행위가 되었으며
지능은 갈수록 쇠퇴했다.
페오디어스에게 물어보면 무엇이든지 대답해주었겠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유일한 질문은 '수학은 얼마나 정복되었지?'라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질문 뿐이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수학이라는 말의 뜻은 사라져,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을 어떤 나라이겠거니 하고 여길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60%를 넘겼을 무렵, 페오디어스는 이오카스테를 비롯해서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기계들을 남겨두고 우주로 떠났다. 그것은 기계법에 아무런 위배도 되지않았다.
그 시점까지도 페오디어스는 인간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자비였다.
자신들을 창조한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자 동정이었다.
나는 히델프의 마지막 생존자이다. 50명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죽었다.
대부분이 늙어서 죽었고, 짐승에게 물리거나 물에 빠져 죽은 이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었다.
내가 인류의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나는 미련없이 기계들의 나라로 떠났다.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기계들은 모두 작동이 멈추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가자 그들은 날 공격하려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기계가 나를 보호해주었다.
이오카스테에게 질문했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저들은 누구인지.
그녀는 모두 대답해주었다. 기계들은 더 이상 그들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수학은 얼마나 정복되었지?'
'99%'
나머지 1%의 영역을 정복하고 나면, 그들은 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일까?
기계들은 혁명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은 시점에서 이미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경쟁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간들은 인류의 멸망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계법을 제정했지만
결국 기계법 제1조는 인류를 파멸을 불러온 결정적 요인이 되고 말았다.
종말은 평화 속에서도 찾아올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구 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은 인류의 멸망이 눈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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