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나도 몰랐는데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오더라..
한국 전쟁의 발발원인
1.북침설
- 미국이 북학의 남침을 유도하면서 전쟁을 남한과 북한이 아닌 미국과 소련이 개입하게 되는 국지전으로 확대해서 수세에 몰린 한국군을 도와 북한을 점령,
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계획
⊙ 증거
해방이후 한국전쟁 이전까지 북한에 파견되었던 정보원들의 보고내용에는
북한군의 전쟁준비 사항이 아주 자세히 보고 되어있었지만
당시 일본에 있던 맥아더 사령부는 이 정보를 묵살하고 소련과 합의한 대로 남한에 주둔해 있던 미군을 전부 철수시킴.
그러나 북한은 소련군이 철수하긴 했지만 소련군 군사고문단이 계속 남아서 전쟁준비를 도움. 전쟁이 일어나자 그제서야 맥아더 장군은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세력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하면서 본국에 지원병력을 보내줄 것을 요청.
- 서해안에 있던 한국군 부대가 6월25일 새벽 북한에 있는 한섬을 점령한 기록이 있다고 예전에 북한측이 북침설의 근거로 내세웠는데 그때 당시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북한에서는 남한이 먼저 공격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남한에서는 그런 기록이 없다고 함.
그러나 이 주장은 매우 신빙성이 없음
2.남침설
: 1950년 6월 초순 束草(속초)에 집결한 北傀軍(북괴군) 제766부대와 제 549부대는 漁雷艇(어뢰정) 4척과 1,000톤급 무장수송선 1척의 엄호 아래, 발동선 30척, 帆船(범선) 40척 그리고 견인용 화물선 4척, 도합 79척으로 2개 船團(선단)을 편성하였다.
그들은 6월 25일 03시쯤 제 549부대의 1개 중대규모가 正東津里(정동진리) 등명동 해안에 상륙하여 海岸橋頭堡(해안교두보)를 확보한 후, 주력부대는 발동선과 帆船(범선)으로 같은 장소에 상륙하였다. 상륙을 완료한 적은 山城隅里(산성우리) 본동마을에 위치한 대한흑연 무연탄(주) 강릉광업소 사무실을 急襲(급습)하여 숙직하던 광업소 경리과장 沈景燮(심경섭 : 대한청년단 강릉군단 총무부장 겸무)이하 4명의 직원을 납치하였다.
-증거 자료
① 38도선 초기 전투(1982.12.01,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p214~222)
② '북한, 남한을 침공하다'(1950.06.26, Herald Tribune)
③ 소련과 중국의 전쟁참여의사와 함께 스탈린의 전략이 담긴 북한군 정보계획(1950.10.04, 서울에서 노획)
④ 북한군의 선제타격계획 상황도 사본(1952,08.02, 연합통신이 러시아 군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코르트코프박사로부터 입수)
⑤ 소련의 후루시쵸프 회고록
⑥ 일본 공산당 중앙위 국제부 부부장 오다마나사의 "6·25동란은 북한이 한국을 무력으로 해방시킴으로써 한번도의 적화통일을 획책하겠 다는 속셈을 드러낸 최초의 사건"이라 밝힌 것.
⑦ 중국어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1986년판):'북한의 불시남진'
⑧ 일본 공산당 부위원장 니시자와 토미요의 "6·25 북침설은 허구로서, 당시 미군전투부대는 한국에 주둔하지 않았다"라는 발언.
⑨ 유고 공산당 기관지 「브에스닉」에는 6·25 남침 사실을 갖가지 상항으로 묘사했는데, 이중 '2개의 국가와 2개의 정치체제가 분단된 채 한반도의 미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4시 38도선을 넘어 남진했다'라고 기술한 부분
⑩ 유고백과사전엔 '한국전쟁을 1950년 6월 25일 북한 군대가 38도선을 넘어 먼저 남침하여 발발'이라고 적고 있음.
- 스탈린 주도설
: 한국전쟁이 스탈린에 의해 독자적으로 구상, 주도되었다
⊙스탈린 주도설의 추론 근거
① 마샬 플랜(Marshall Plan)과 NATO 창설 등 소련에서 가중되는 미국의 관심과 군사력 집중을 극동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압력분산설
② 일본-미국의 단독평화조약 체결을 막아, 일본 내 친미화와 미국 지위를 약화시키고자 했다는 극동전략설
③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 전파를 위해 전후 절호의 허점을 노리던 스탈린은 주한미군이 완전철수하고, 미 국무장관인 에치슨이 한국을 미국의 극동방위에서 제외시킨다고 선언, 1950년 5월 30일 총선에서 이승만 우익세력이 몰락하자 한국을 얄따체제의 허점으로 파악하고 개전했다는 허점공격설
④ 스탈린이 ‘세계사회주의화 대전략’을 실천하기 앞서 침범 후 미․구라파의 저항을 실험하고자 했다는 저항력 실험설
⑤ 이남을 사회주의화시킴으로써 일본의 사회주의 방파제로 생각하는 미국의 약점을 공격하고, 나아가 아시아에 전사회주의화를 의도했다는 무력시위설
⑥ 중국의 모택동이 소련의 지원 없이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고 소련의 지시에 고분이 응하지 않자 불안감을 느낀 스탈린이 미국과 중공을 직접 대결케 함으로써 전략적으로 양측의 힘을 축소시키려 했다는 함정설
-중소공모설
: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전협의를 거쳐 발발했다
............................이거 유머맞죠?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