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입경기록’ 위조 뒤늦게 시인…“날조죄 적용해야”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중국의 사법공조 회신을 핑계로 핵심 위조 문서인 허룽시 공안국 출입경기록의 위조 여부 판단을 미뤄왔던 검찰이 뒤늦게 위조를 인정하고 관련 수사를 재개했다.
뉴스타파가 지난해 12월 초 국정원과 검찰이 법원에 낸 유우성 씨의 중국 출입경기록이 위조라고 처음 보도하고, 지난 2월 중국 당국이 위조 사실을 통보한 지 넉달 만이다.
위조가 명백한 출입경기록에 대해 검찰이 판단을 미룬 것은 유 씨에 대한 간첩 혐의 공소 유지와 위조 관련자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상 날조죄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란 비판이 일고 있다.
위조 명백한 ‘출입경기록’ 위조 판단 미룬 검찰의 속내는?
검찰은 최근 지난 3월 3일 중국에 사법공조를 요청한 자료를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받았고, 이를 법정에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사법공조 회신 자료에는 검찰 측 문서가 실제 중국 당국이 발급한 것인지에 대한 답변과 허룽시 공안국 등 중국 기관들이 사용하는 관인 관련 정보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측은 이번 회신을 통해 지난 2월의 답변과 마찬가지로 국정원이 확보한 문서는 중국 당국이 발급한 것이 아니며, 유우성 씨 측 문서는 정상적으로 발급된 것이 맞다고 밝혔다. 검찰 증거조작 수사팀은 중국 측의 회신 내용에 허룽시 공안국 출입경기록이 위조라는 답변도 포함돼 있다고 밝혀 그동안 시한부 기소중지됐던 관련 수사가 재개됐음을 시사했다.
지난 4월 14일 증거 조작 사건 수사 발표 당시 검찰은 이 출입경기록이 핵심 증거인데도 위조 사실이 명백히 확인되지 않았다며 사법공조 회신을 받을 때까지 이 사건을 시한부로 기소 중지한 다고 밝혔다.
허룽시 공안국 출입경기록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유 씨의 간첩 혐의를 뒤집겠다며 검찰이 제출한 핵심 증거였다. 중국 당국의 위조 통보 이후 유 씨 사건 항소심에서 관련 증거들을 철회하면서도 끝까지 위조를 인정하지 않은 문서다.
“출입경기록 위조는 없던 사실 날조한 것…국보법 적용해야”
이에 대해 유우성 씨 변호인단은 검찰이 유 씨에 대한 공소를 유지하고 국보법 상 날조죄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 위조 판단을 미룬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윤갑근 수사팀장은 수사결과 발표 당시 “날조는 전혀 있지 않은 허위 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조작하는 행위”라며 “유 씨가 2006년 5월 27일에 북한으로 출경했다고 보고 이를 입증할 증거를 위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팀장의 발언은 국정원 수사팀이 유 씨가 북한에 들어가 보위부에 포섭됐다고 믿고 관련 증거를 위조했다는 의미로, 전혀 없는 사실을 날조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유일한 증거인 허룽시 공안국 출입경기록에 대해 중국이 위조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그동안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유우성 씨 변호인단은 검찰 스스로 주장했던 것처럼 전혀 없는 범죄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이상 지금이라도 관련자들에게 국가보안법 상 날조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위조 문서보다 유우성 측 문서가 더 궁금하다?
특히 검찰은 중국에 사법공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위조 문서보다 유우성 씨의 문서가 진본인지 여부를 검증하는 데 더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 검찰이 중국 사법공조를 통해 확인을 요청한 내용들
검찰 수사팀은 유 씨와 유 씨 가족들의 기록이 정상적인 발급 절차를 거쳤는지 중국 당국에 확인을 요청하며, 유 씨 기록에 북한에서 중국으로 세 번 연속 ‘입경’이 나타난 경위와 직원이 임의로 기록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 자세히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 ‘일출삼입’(출-입-입-입)은 시스템 오류” 재확인
이에 대해 중국 사법부는 유 씨 출입경 기록에 나타난 오류를 ‘一出三入’ (출-입-입-입)으로 표현하며, 유 씨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세 번 연속 입국 기록이 나타난 점으로 미뤄 시스템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가 분명하다고 답했다.
또 일부 언론에서 위조 의혹을 제기했던 싼허변방참 정황설명서와 관련해서도 중국 당국은 유우성 씨 대신 유 씨의 가족이 정상적으로 발급받은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회신했다. 검찰이 중국과의 사법공조 과정을 통해 유 씨가 제출한 문서의 문제점을 찾으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상적으로 발급받은 문서라는 사실만 재확인한 셈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3월 유 씨의 문서 발급 경위도 조사하겠다며 유 씨를 여러 차례 소환했고, 엉뚱하게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수사 발표문에 유 씨의 증거 위조 고발 사건을 끼워 넣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검찰은 유 씨에게 유리한 중국 측의 회신 결과가 나오자 증거 조작 사건 재판부에만 회신 자료를 제출하고, 유 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최종 판단을 내릴 대법원에는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도 중국 당국은 현재까지 출입경기록 위조 혐의자에 대해 파악한 정보가 없으며 한국에서 관련 정보를 제공하면 조사해서 형사 책임을 묻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측의 사법공조 회신에 따라 검찰은 시한부 기소 중지했던 출입경기록 관련 수사를 재개한 상태다.
“검찰 수사 한계…진실 밝히려면 특검에서 전면 재수사해야”
그러나 지난 검찰 수사가 국정원 지휘부와 유 씨 사건 담당 검사들에 대해 면죄부를 준 상황에서 향후 검찰 수사도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결국 남은 진실을 밝히려면 특검을 통해 이 사건을 전면 재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야당에선 최근 발효된 상설특검 1호 사건으로 간첩증거조작 사건을 다루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