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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531337
    작성자 : xvz12
    추천 : 3
    조회수 : 301
    IP : 118.222.***.60
    댓글 : 14개
    등록시간 : 2013/01/05 23:08:44
    http://todayhumor.com/?gomin_531337 모바일
    제 인생의 진로에 심각한 회의가 듭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쭉 눈팅만 해오고 글은 별로 안 썼는데, 오늘은 마음이 심란해서 꼭 올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가장 좋아하는 일이 책 읽기였습니다. 부모님이 사주신 동화책이나 위인전들은 죄다 읽었고, 집에 없는 책들은 친척네 집에 가서 일부러 빌려와서 계속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하도 책 읽기를 즐겨하다 보니, 제 시력은 무척 나빠져서 일곱 살 때부터 안경을 썼고, 지금도 안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이었죠.)에 들어가자 학급 뒤편에 작은 서재가 설치되고 거기에 그리스 신화나 학습만화 세계사 같은 책들이 놓였습니다. 책을 워낙 좋아했던 저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이 되면 바로 서재 앞으로 달려가서 책을 꺼내서 읽었죠.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제 별명은 ‘책벌레’였습니다. 벌레가 파먹는 것처럼 책만 읽는다고 해서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죠.

     

      중학교에 진학하자 학교에 설치된 작은 도서관을 관리하는 일을 맡기도 했는데, 그 때 이문열씨의 평역 삼국지와 수호지를 비롯해서 각종 재미있는 소설들을 실컷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학교에 게임잡지 같은 잡지들을 가져오면 함께 읽었고, 그걸로는 모자라서 학교가 끝나면 동네 문방구로 달려가 세계 명작 동화나 최신 게임잡지들도 손에 쥐는 대로 읽었습니다.

     

      참, 당시에는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게임들이 무척 인기였죠. 제 친구들 중에서 집이 잘사는 아이들은 집에다 고급 게임기를 두고 그런 격투 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저는 그 정도까지 할 형편는 못 되었고, 그저 오락실에서 또래 아이들이 하는 오락을 지켜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무렵에 반 친구들을 통해서 일본 작가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 ‘은하영웅전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1990년대,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도서 1순위가 바로 이 책이었죠. 저도 ‘은하영웅전설’에 무척이나 매혹되어서, 친구들을 통해 읽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동네 도서 대여점으로 달려가서 적은 용돈을 모두 털어 빌려 본 다음, 나중에는 아예 14권 시리즈 전부를 사서 모으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비록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어머니가 이런 소설책들이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고 다 버리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은하영웅전설을 읽고 나서 느꼈던 감동과 재미는 제 인생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특히, 저는 소설 속 주인공인 얀 웬리를 좋아했는데, 그가 역사학자가 되려고 한 것처럼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고,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꼭 역사학과에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은하영웅전설을 다 읽고 나서부터 역사책들도 관심을 가지고, 자주 읽거나 사서 보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이런 저의 생활에 약간 지장이 왔는데,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재정이 비교적 가난해서 학교 내에 도서관이 없었습니다. 중학교에도 있었던 도서관이 말이죠.

     

      그래도 책을 좋아하는 저는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아꼈다가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는 길에 있었던 대형서점에 들러서 새로 나온 책들을 읽어 보다가 그 중,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씩 골라 사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산 책들을 학교에 가져가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마다 읽고는 했죠.

     

      고등학교 시절에는 남자가 가장 활력 있는 시기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어느 반마다 꼭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를 가져오는 친구들이 한 명씩 있었습니다. 그러면 모두 돌려 보았습니다. 참,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가 1990년대 중반이었던데, 그 때는 이우혁 씨의 퇴마록이 한창 인기였죠.

     

      저도 퇴마록을 무척 좋아했는데, 친구들을 통해 퇴마록을 빌려 볼 때마다 어른이 되면 이렇게 훌륭한 책을 써서 유명한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는 동네에는 작은 만화방이 있었는데, 고등학생들이 다 그랬지만 저는 소설이나 역사책 못지않게 만화도 좋아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시간이 날 때마다 만화방에 자주 갔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저를 무척 친절히 대해 주신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만화방에 가서 제일 읽기 좋아했던 책들은 단연 소년 챔프나 아이큐 점프 같은 만화 잡지였습니다. 부모님들은 고등학생인 제가 만화책을 집에 가져오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하셔서 무척 싫어하셨고, 때문에 저는 할 수 없이 만화방에 가서 다 보고 나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고등학생 시절이 우리나라 만화계에도 무척 전성기로 기억되는데, 당시에는 재미있는 만화들이 참 많았죠. 진짜 사나이, 마이러브, 붉은 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소마신화전기…… 물론 일본 만화들 중에서도 걸작들이 들어왔습니다.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는 지금도 기억나고, 또 그런 일본 만화들을 별책 부록으로 연재해 주던 잡지인 소년 챔프도 무척 좋아했죠.

     

      그 무렵, 제가 제일 좋아했던 만화는 소년 챔프에 연재되던 ‘사신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를 모티브로 만든 만화인데, 환웅의 환생인 ‘한진우’라는 고등학생과 그를 지키는 네 명의 수호신인 ‘사신’들이 악의 무리인 범족과 싸워 세상을 지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사신’들이 무척 아름다운 미녀들이어서(저는 그 중에서 ‘백호’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 ^ ~) 보는 재미가 쏠쏠했었죠.

     

      고 3이 되자, 다른 급우들처럼 저도 대입을 준비하느라 학교가 끝나고 나면 저녁을 먹고 바로 입시학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저는 역사책과 소설 그리고 만화책에 푹 빠져 있던 때라서, 학원에 가면서도 가방 속에 책들을 넣어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학원에서 공부가 빈 시간마다 틈틈이 책을 꺼내서 책들을 읽었습니다. 학원에서는 학교와는 달리, 그런 저에게 별다른 제재는 안 가했는데, 그래서 저는 학교보다 학원에 가는 시간을 더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얼굴이나 이름도 기억 안 나지만, 저와 같이 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은 저한테 꽤나 잘 대해 주었습니다. 학원에서 쉬는 시간이 되면 자주 동네 오락실에도 함께 데려가고, 대입 수능 전날에는 단체로 노래방에 가서 간단한 파티를 벌이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그 때 저는 난생 처음, 맥주를 마셔 보았습니다. 고 3때까지 저는 술을 전혀 마신 적이 없었죠.

     

      대학 수능을 보고 네 군데의 대학을 알아보았는데, 집에서 가까운 대학들은 다 안 되고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지방대에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학에는 유감스럽게도 제가 애초에 가려고 했던 역사학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 끝에 꿩 대신 닭이라고 차선책으로 국문학과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대학교에 가자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대학교의 공기가 맑다거나 예쁜 여학생들이 있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대학교에 있던 도서관에서 매일 공짜로 책을 빌려 볼 수 있다는 점에서였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보았던 어떤 대형 서점보다 훨씬 크고 많은 책들을 보유하고 있던 대학교는 저에게 있어 온갖 보물로 가득 찬 보물 창고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같이 도서관에 들러서 꼭 책을 빌렸고, 다른 급우들이 자고 있는 통학버스 안에서도 빌려온 책들을 읽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한동안 저는 서울시와 정부에서 주최하는 행정 인턴 같은 임시직을 하면서도 책을 써 내는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부터 시작하여 처음 역사책을 출간했고, 2013년인 지금까지 총 12권의 책들을 냈습니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다섯 번째 책을 제외하면 어느 책들도 도무지 2쇄를 못 찍고 다들 소리 없이 묻히더군요. 제가 아는 친구들에게 책을 돌리고 메일을 보내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도, 별로 반응이 없었습니다.

     

      어느덧 제 나이도 34세이고, 이제 더 이상 젊다고만은 할 수 없는 나이인데, 살아온 세월에 비해 제가 이룬 것과 가진 것이 너무나 적어서 갈수록 날마다 회의가 듭니다. 내가 과연 계속 이대로 책을 써야 할까? 써봤자 팔리지도 않는 책들인데, 하고 말이죠……

     

      그나마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서 의식주의 부담은 덜합니다만, 두 분 다 건강도 별로 안 좋으시고 재산도 적은데 5~6년 후에는 진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차라리 대학 다니던 시절에 다른 친구들처럼 공무원 시험이나 보거나 아니면 교사 시험이나 보았다면, 하는 후회도 계속 듭니다.

     

      부모님은 틈만 나면 저한테 내 친구 아들 딸들은 전부 결혼해서 애 낳았는데 너는 언제 그러겠느냐, 하고 한탄하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 연애 못하고 결혼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저 원래 여자보다 책을 더 좋아했고, 대학 다니던 시절에도 그 흔한 미팅이나 소개팅도 안 해봤습니다. 여자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책을 읽을 때가 더 행복했거든요.

     

      기초 생활에 필요한 돈만 모아서 읽고 싶은 책들 사서 읽으면서, 인생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게, 저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저의 작은 꿈도 허락해 주지 않는 가 봅니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는 멀리 두바이의 호텔에서 요리사를 한다는데, 저한테 한 번 오고 싶으면 두바이로 오라는 연락을 했더군요.

     

      그래서 돈도 되지 않는 책은 그만 내고, 차라리 친구가 말한대로 두바이 호텔로 가서 요리사 보조 생활이나 해볼까, 하는 고민도 계속 듭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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