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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53092
    작성자 : 미스키튼
    추천 : 18
    조회수 : 979
    IP : 115.140.***.16
    댓글 : 10개
    등록시간 : 2013/07/20 00:48:31
    http://todayhumor.com/?panic_53092 모바일
    친절한 제령 사무소 18
    "이 쪽으로 영화부적을 더 가져와!"
    "결계가 깨졌어요!!"
    "너무 많아! 도망도 못 가겠어!"
    -부리는 자를 어서 찾아!
    (영기가 너무 희미해요.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누나!! 부적요!!"
    “젠장, 이장님 아시면 난리 나겠네.”
    “지금 이 마당에 그게 중요해?”
    “이제 한계에요.”
    (이 정도의 수를 부리려면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근처에 있을거에요!)
    “간도 크지.. 나한테 덤벼?”
     
    생각할수록 괘씸해서 나는 다시 나가 영화부적을 뿌려댔다. 사방에서 펑펑 암령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기괴한 울음소리가 메아리 쳤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죽인 것 이상의 암령들이 계속 쏟아지는 것이었다. 며칠 전 집에 도착한 이후로 밤마다 암령들이 늘고 있었다. 첫날밤은 수십 마리 수준이었지만 이제 백 단위로 늘어났다. 집에 쳐 놓은 결계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오늘 밤은 매우 길 것 같다.
     
    *
     
    집에 도착하고서는 긴장이 풀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돌아오자마자 뛰쳐나온 망부는 내 가방을 뒤져 다람쥐 가죽을 찾아갔고 천시는 새를 보자마자 기뻐했다.
     
    (드디어 저희도 전용 조령이 생겼습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 새를 잘 길들이면 우리끼리 전용 전서령처럼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길들이기는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일단 짐을 풀고 씻은 다음 시험해 보기로 했다.
     
    집에서 밥을 먹는 게 아주 오래간만인 듯싶었다.
    저녁을 먹은 우리는 시험 삼아 조령을 1층에서 2층으로 보내보려고 작은 쪽지를 물려 보았다.
     
    ‘싫어’
     
    쪽지를 뱉으며 한 말이었다.
     
    ‘배고파’
     
    “뭐?”
     
    얘는 또 뭘 먹여야 하지? 나는 천시를 바라보았다.
     
    (사당에 바쳐진 곡식을 주로 먹습니다. 그게 없을 땐 그냥 곡식도 먹지만 영능력이 떨어지게 되지요.)
     
    아.. 집에 밥벌레가 하나 더 생긴 건가.
    투덜대며 주방으로 가 쌀봉지를 찾는데 문득 창 밖으로 싸한 느낌이 들었다. 암령이었다.
     
    영화부적을 챙겨 호우와 함께 나가서 스무 마리쯤 되어 보이는 암령들을 다 청소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니 천시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수가 많던가요?)
    “글쎄. 한 스무 마리 되나?”
    (조심하십시오. 암령은 그 수가 불어나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럴게.”
    (근데 왜 암령이 지안나님을 따라다니는 거죠?)
     
    “그건 나도 궁금해.”
    옆에 있던 은수의 말이었다.
     
    “어쩌다 저런 애들을 달고 다니는 거야?”
     
    나조차 영문을 모르는 일이라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다 처리했으니 이제 끝났겠지.
     
    *
     
    다음날 나는 은호와 함께 의뢰 받은 일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
    매일 밤 가위에 눌려 잠을 못 잔다는 부부의 의뢰였는데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다만..
     
    “우웩-!!”
     
    팔을 고친 뒤로 영력을 소비하면 이렇게 토악질이 나왔다. 속이 울렁거려 한동안은 입맛까지 없어서 언제쯤 괜찮아질지 고민이 되었다.
    반면 은호는 다른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누나..”
    “왜.. 우웩-!!”
     
    토할 것도 없어 골목길에서 벽을 붙잡고 마른 구토를 하는 나를 보며 은호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 이 모피가 무슨 능력을 키워주는지 통 모르겠어요.”
     
    아침부터 신나게 토끼모피를 챙겨 입던 은호는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한 채 일이 끝나자 허탈한 표정이었다.
     
    “뭐.. 아무 능력이 없진 않을거..우웩-!!”
     
    은호는 한숨을 쉬고는 내 등을 두들겨 주었다.
     
    *
     
    집에 오니 저녁이었다.
    마당에 들어서려는데 거의 백마리 가까운 암령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해.”
     
    은호는 영도를 들어 자세를 잡았다.
     
    “호우!!”
     
    내가 부르는 소리에 호우가 뛰어 나왔다. 그리고 우리 셋은 미친 듯이 암령들을 없애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거의 중노동에 가까운 일이어서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문득 눈을 돌려 집을 보니 망부가 현관 앞에 앉아 고구마를 먹고 있었다.
     
    “저 자식이 정말!”
    “왜! 뭐! 나 부른 건 아니잖아!”
    “어서 거들어!”
     
    내 말에 망부는 남은 고구마를 한입에 털어 넣고 같이 합류해 암령들을 때려눕혔다.
    전력이 하나 더 가세하니 제법 보탬이 되었다.
     
    다 처리하고 집으로 들어가니 천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암령을 만나보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음.. 아니. 없어.”
    (그럼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천시는 진지하게 암령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암령은 원념이 육체를 얻게 되면 부리는 영으로 주로 밤에만 활동하는데 그 이유는 주인이 본래 본체가 없던 존재이기 때문에 태양 아래에서는 힘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온통 검은 사람의 형태를 하는 것이 보통이며 이렇게 매번 수가 불어나는 경우는 암령의 주인이 원념이 뿌리깊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원한이 깊을수록 밤에 부릴 수 있는 암령의 수가 늘어나며, 주인을 없애지 않는 한 밤이면 밤마다 더 불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암령 자체는 어느 정도의 영능력이 있다면 없앨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숫자였다. 암령은 단순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그 만큼 받은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무작정 덤빈다고 한다. 이렇게 단순한 성질의 영이 엄청난 숫자로 몰려든다면.. 제 아무리 뛰어난 영능력자라 해도 밤마다 다 견뎌낼 수 없을 것이고, 결국엔 원념의 뜻대로 된다는 것이었다.
    (원념 자체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죽은 어머니의 원념이 부른 암령은 아이가 잠잘 때나 밤길을 갈 때 지켜주기도 하니까요.)
    일단 주인인 원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천시는 망부와 함께 내일 낮에 동네를 둘러보겠다고 했다.
     
    *
     
    다음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도 호우를 그냥 집에 두고 은호와 함께 제령을 하러 나왔다.
     
    이번에는 특이하게 무당집에서 의뢰가 왔는데 잡신이 자꾸 와서 ‘지방방송’을 하는 바람에 본래 모시던 신과 대화를 못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보았더니 정말 잡신이어서 별 힘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좀 끈질겨서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 바람에 기운이 빠져버렸다.
    나는 또 토악질을 했고 은호는 계속 의기소침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간신히 씻고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사방에서 음기가 솟구쳤다.
     
    “아씨, 밥 먹으려는데!!”
     
    울컥한 은호가 일어나면서 영도를 잡았다.
     
    “됐어. 그냥 계속 먹어. 아직 밤이 아니니 결계만 치고 넘어가자. 나도 오늘은 기운이 달린다.”
     
    호우도 아직 누운 상태로 있는 걸 보니 가까이 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은수와 나는 사방에 결계부적을 붙였다. 그리고 저녁을 즐기려는데 창문 앞에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작달막하지만 튼튼한 체구의 누군가가 네모난 상자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차!! 망부와 천시!!”
    “열어줘!!!”
    (암령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습니다!)
     
    은수와 나는 재빨리 한쪽 부적을 떼고 둘을 들여보냈다.
    그 뒤로 대여섯 마리의 암령이 따라 들어와 은호는 입에 밥을 잔뜩 문 채 영도로 노가다를 해야 했다. 옆에서 호우도 같이 거들었다.
     
    (이제 수가 어마어마하게 불었습니다!)
     
    그 말에 창가를 내다보니 언뜻 봐도 이백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다.
     
    “넌 도대체 어디서 무슨 원한을 사고 다닌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뭘 어쨌다고! 나처럼 착한 사람이 어디 있는데!”
    -..........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 안 그러고선 이렇게 암령이 불어날 리가 있어?!”
    “진짜 없다니까!”
     
    (잠깐, 혹시 위령제는 제대로 지내셨습니까?)
     
    “무슨 위령제?”
    (계속 제령일을 하시면서 아직 한번도 위령제를 안 지내신 겁니까?!)
    “그런 거 해야 해?”
    -..너처럼 생각 없는 사람이 제령사라니..
     
    (아무리 악령이어도 제령 후에는 정기적으로 합동 위령제라도 지내주어야 뒤탈이 없습니다. 여태껏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나요?)
     
    “없었는데?”
    “너 저번에 지박령 따라온 거 기억 안나?”
    “음.. 그래. 이젠 위령제를 지내야겠네.”
    -일단 이번 일부터 수습하고 해라.
    “네네.”
    “부야, 일단 물 마셔.”
     
    수백 마리의 암령에게 쫓겨 눈이 휘둥그래진 망부는 은수가 주는 물을 벌컥벌컥 받아 마셨다.
     
    “푸하! 이제 살겠네! 있잖아, 밖에 검둥이 진-짜 많아! 너 이제 큰일 났다!”
    "너도 이 집 소속이거든? 너도 큰일인거야."
    "어! 어어!! 그러네! 우리 이제 큰일 났다!!"
     
    *
     
    우리는 식탁에 모두 모여 앉았다. 결계가 앞으로 한 시간은 버텨 줄 것이다. 그 안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늘 뭔가 실마리는 찾았어?”
    (아뇨. 낮에는 영기를 바짝 죽이고 있나 봅니다. 아니면 본체가 매우 작거나요.)
    “끄응.. 그럼 지금 저걸 다 없애도 내일 되풀이 되는 거잖아.”
    “일단 다 때려보자!”
    -대책 없이 구는 건 안나만으로도 충분했건만..
    “내가 뭐!”
    “자자, 정리하자. 일단 모두들 힘을 합쳐야 해. 이번 일은 상대 수가 너무 많아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냐. 그럼 계획을 짜서 역할을 분담해보자.”
     
    일단 전지를 꺼내 식탁 위에 깔았다. 망부가 하도 사고를 치고 다니니 이장님께 죄송해서 동네 어르신들 음식 대접할 때 쓰려고 사둔 전지가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역시 사람은 마음을 착하게 먹어야 한다. 여하튼, 그 위에 대충 우리 집과 주변을 그렸다. 망부가 세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여기, 여기에 귀신이 특히 많아.”
    “음..”
     
    우리가 새로 이사온 이 집은 원래 귀신이 많이 꼬일 수 밖에 없는 집이다. 지하실과 2층 집건물, 그리고 다락으로 이루어졌다는 건 그냥 보통 집들과 다를 바 없지만 문제는 그 구조였다. 다락이 영을 모으는 안테나 역할을 하고 그 기운이 집안에서 막는 것 없이 그대로 서늘한 지하실까지 통하는 것이었다. 지하실은 실내에서 드나들게 되어 있어 밖에선 지하실이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망부가 가리킨 지점은 다락과 맞닿는 집 뒤쪽 언덕, 지하실문과 벽이 제일 가까운 주방 뒤편, 그리고 현관이었다.
     
    “그럼 일단 호우와 은호가 같이 가서 주변의 암령을 정리하고, 나와 은수가 집을 지키면서 현관을 맡을게. 일단 노리는 게 나니까 빌미를 주지 말아야지. 그리고 망부는 힘이 세니까 아까처럼 천시를 안고 잡히지 않게 뛰면서 주위를 살펴봐. 지금은 밤이니 분명 주인이 나와 있을 거야. 일단 무전기는 나랑 은호가 쓸게.”
     
    약간은 불안한 표정의 은호를 보고 나도 모르게 어깨를 다독였다.
     
    “괜찮을 거야. 넌 계속 나아지고 있고, 이렇게 싸울만한 상대를 수없이 상대하면 실력이 금방 더 붙을 거야. 힘내자.”
     
    은수는 따뜻한 눈길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우리 여섯은 모두 눈길을 주고 받으며 각자 맡은 위치로 이동했다.
     
    *
     
    이게 바로 두 시간 전의 일이었다.
    사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모두들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 소득이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결계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이젠 영화부적도 없어요.”
    (여기를 중심으로 계속 수가 불어나는 걸 보면 근처에 있는 게 확실합니다!)
    “..이대로는 계속 반복이 될 뿐이야. 그리고 머지않아 저쪽이 원하는 대로 될 테고..”
     
    다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결계 부적은 몇 장 남아 있지만 저 정도의 암령들이 밀고 들어오는 걸 다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걸 알고 있는 나와 은수는 심각해졌다.
    다들 얼굴을 둘러보니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일어나서 말했다.
     
    “이렇게 가면 안돼. 지금부터 우리는 팀으로 움직인다.”
     
    나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으로 작전을 새로 짰다.
     
    “천시, 암령은 어떻게 나를 구분하는 거지? 눈도 없잖아.”
    (‘기’로 아는 겁니다. 아마 부리는 자에게 지안나님의 물건이 있을 거에요.)
    “그럼 내가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면 다 내 기가 묻는 건가?”
    (얼마나 가깝게 들고 다니며 애착을 주셨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가능성이 있습니다.)
    “은호야, 너는 이걸 들고 뛰어. 망부는 이걸 들고 뛰고.”
     
    둘에게 내민 것은 지갑과 휴대폰이었다.
     
    “배터리가 얼마 없으니까 가능하면 무전기로 통하자. 둘은 각각 반대쪽 언덕으로 뛰어서 전력을 분산시켜. 그리고 은수야.”
    “응, 말해.”
    “너 시장 볼 때 쓰는 수레 꺼내와.”
    “뭐? 뜬금없이 왜?”
    “거기에 천시를 싣고 달리면서 암령의 주인을 찾아내. 호우가 엄호할거야.”
     
    은수는 재빨리 수레를 가지러 갔고 은호는 영도를 챙겼다.
     
    “나는 여기서 결계를 다시 하고 암령의 주인을 찾아서 처치할게.”
     
    은호와 망부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뛰쳐나가고 은수는 천시를 수레에 단단히 묶었다. 나는 모피상에게 받은 전서령을 꺼냈다.
     
    “일단 너랑 나는 이걸로 통하자. 너는 뒷문으로 나가. 나는 현관 쪽으로 가서 영기를 찾아볼게.”
     
    나무 새장 안의 전서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보았다. 이 것도 영이라 그런지 낮보다는 모습이 한결 진해져 있었다.
    전서령의 발목을 잡고 꺼내 은수에게 건네주려는 순간, 전서령이 퍼득 거리며 결계가 무너지고 있던 부분의 창으로 나가버렸다.
     
    “뭐.. 뭐야!”
     
    한 순간 허탈해 멍했다. 전서령을 이렇게 쉽게 놓칠 줄도 몰랐고, 게다가 전서령이 통과할 정도로 결계가 약해져 있는 줄도 몰랐다. 시간이 없다.
     
    “대신 조령을 쓰자.”
     
    나는 다른 새장에 있던 조령을 들고 현관으로 나섰다.
    부적도 없고, 영도도 은호를 주었으니 육탄전이다.
     
    *
     
    “헉,헉,헉”
     
    안나 누나의 말대로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달렸다.
    암령들이 떼로 몰려와 나를 죽일 듯이 덮쳤다. 다들 지치지도 않는지 쉴 틈도 없었다.
    체력이 달려 쉴라치면 코 앞까지 들이 닥치기 때문이었다.
    영도를 쥔 손이 얼얼해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푸악-
     
    나는 온 힘을 쏟아 암령들을 베었다. 며칠 전보다 나아진 실력이었다.
    같은 상대를 계속 베고 또 베다 보니 영을 제대로 벤다는 게 뭔지 좀 알 것 같았다.
     
    눈 앞에서 암령이 반으로 쪼개지며 파편을 튀겼다.
    무의식적으로 칼을 휘두르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발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놈들에게 잡히기 전에 도망을 가야 했다. 필사적인 마음으로 온 몸의 힘을 돋구었다.
     
    그 순간 양 발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쳇. 맨날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재미있는 장난도 못 치게 하고.
    게다가 이번엔 검둥이 몰이까지 시키니 귀찮아 죽겠다. 고구마도 먹다 말았는데.
     
    으랏차!! 한 놈 격파! 역시 나는 발 힘이 최고야.
     
    백호랑 은수만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서 이 고생 안 해도 되는데.
    .. 뭐,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니까. 다람쥐 가죽도 돌려줬고.
    ..일단은 밥도 많이 먹을 수 있고.. 동네 노인들도 참 괜찮고.
    저번엔 지하실도 줬으니.. 이번엔 잘 해주지 뭐.
     
    사람여자가 나보다 영기가 세서 기죽은 건 아니야.
     
    *
     
    쿠당탕-
     
    뒷문으로 열심히 나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천시!!”
    (윽..)
     
    수레는 넘어졌고 천시는 고꾸라졌다.
     
    “미, 미안해.”
    -얼른 일으켜라!
     
    암령들은 열린 뒷문으로 들어가 안나를 덮치려 했고 호우는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천시를 들어 수레에 올렸다. 옛날 티비라 그런지 매우 무거웠다.
     
    (감사합니다. 이제 얼른 추적해야지요.)
     
    나는 황급히 달려가 뒷문을 닫았다.
     
    “안나! 여기부터 부적 붙여!!”
     
    그리고 수레를 끌고 달렸다.
    너무 힘들어 팔이 삐그덕거리는 느낌이 들고 허리가 묵직해졌으며 허벅지 윗부분이 후들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있다가는 모두 죽을 것이다. 나에게 큰 책임이 주어졌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낼 것이다.
     
    호우는 내 주위를 돌며 암령들을 물어 뜯어 냈다.
     
    -왜 우리를 이렇게 끈질기게 따라붙는 거지?
    (백은수님! 혹시 지안나님 물건을 갖고 계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안 들고 나왔.. 아차!!”
     
    생각해보니 내가 입고 있는 티셔츠가 안나꺼였다.
     
    -이대로 가면 암령에게 먹힌다.
    “아, 아, 어쩌지!”
     
    순간 패닉이 와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쩔 수 없다. 지금 죽고 사는 마당에 뭐가 더 중요한지 생각해! 나는 과감하게 티셔츠를 벗어 내동댕이 쳤다.
    그러자 암령들이 순식간에 옷으로 달려들었고, 나는 호우의 보호를 받으며 천시를 끌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 뒤를 쫓는 암령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부분의 암령들은 옷에 달려들어 옷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서늘했다.
    (아, 냄새가 납니다. 독특한 영기가 느껴집니다!)
     
    *
     
    현관 문을 박차고 나갔더니 예상한대로 암령들 천지였다.
    별수 없이 나는 잡히지 않게 재빨리 움직이며 손에 영기를 돋워 암령의 팔다리를 후려쳤다.
    중간중간 주변에 눈에 띄는 영기는 없는지 주의를 기울였다.
     
    ‘악, 무서워’
    “걱정 마, 내가 꼭 안고 있잖아.”
    ‘무서워, 무서워’
     
    왼손에 새장을 부둥켜안고 온 힘을 다해 암령들을 헤치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갑자기 왼손이 뜨거워졌다.
     
    “뭐, 뭐야?”
     
    풀썩-
     
    나도 모르게 새장을 놓쳐버리는 바람에 문이 열리고 조령이 밖으로 나갔다.
    조령의 노란 머리가 갑자기 호롱불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이내 조령은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았다.
     
    ‘영기를 먹었다, 영기를 먹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계속 왼팔이 뜨거워 내려다보니 왼팔에 호랑이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온 몸을 돌던 기운이 거세지며 마치 몸 속에서 파도라도 이는 듯이 강한 영기의 출렁임이 나를 흔들었다.
    이 힘들 다 쏟아내지 않으면 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퍼억-
     
    나는 힘을 실어 암령을 쳤다. 그러자 수많은 암령들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터져나갔다.
     
    “어?”
     
    믿을 수 없는 힘이었다. 그리고 속이 울렁거리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힘을 모아 내 주위로 몰려든 암령들을 훑었다.
    그 놈들은 손이 가볍게 스쳐도 모두 터져버렸다.
     
    -안나!
    “호우?”
     
    어느새 호우가 왔나 싶어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호우 목소리였는데.
     
    “호우?”
    -그래, 나다.
    “어디 있는 거야?”
    -우리는 뒷산에 와 있다.
    “어? 그럼 지금 어떻게 나랑 이야기 하는 거지??”
    -일단 이 쪽으로 와라. 부리는 이를 찾았다.
     
    나는 눈 앞에 몰려든 암령을 해치우고 뒷산으로 뛰었다. 몸에 힘을 모으지 않으니 팔의 무늬가 다시 연해졌다.
     
    *
     
    “여보, 여보 좀 일어나봐요.”
    “아이.. 왜 그래.. 좀 내버려둬..”
    “아니, 좀 일어나봐요!”
     
    아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 어깨를 쳤다.
     
    “왜 그래!! 잠 좀 자는데!”
    “저기 창 밖을 좀 봐요!!”
     
    아내의 극성에 창을 보니 닫힌 유리 너머로 뭔가 번쩍거리는 빛과 굉음이 들렸다.
     
    “저기가 이번에 이사온 그 무당집 아니에요?”
    “무당 아니라니까..”
     
    퉁을 주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가운데 있는 제령사의 집에서 불꽃이 튀며 무언가 터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얼른 일어나 장롱을 열어 옷을 챙겨 입었다.
     
    “먼저 자. 오늘 안 들어올지도 몰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아내에게 한마디 하고 집을 나섰다.
     
    *
     
    뒷산에 도착하니 호우와 천시와 은수가 언덕 중턱의 큰 밤나무 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있다.
     
    호우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어두운 와중에 뭔가 큰 물체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원념이 씌인 까치다.
     
    또 새야. 요즘 내가 새 도화살이라도 낀건가. 죄다 새야. 이젠 새 얼굴도 보기 싫다. 
      
    (계속 암령의 수를 불리느라 영력을 써서 움직일 힘이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 해치우십시오!)
    “나무를 타라고?”
     
    다시 한번 올려다보니 10미터는 되어 보였다.
     
    “저길 오르라고?!”
    -그럼 밤마다 암령에 쫓길 참이냐.
    “밤나무 벌레 엄청 많아! 게다가 가지도 잘 부러지게 생겼는데.”
     
    (그럼 조령을 보내십시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까치 싫어.’
     
    -말 잘 들으면 맛있는 햅쌀을 듬뿍 주겠다.
    ‘..........’
     
    아직 어린 새여서 그런지 음식을 준다니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거기다 은수가 한마디 보탰다.
     
    “아주 예쁜 집과 잠자리를 마련해줄게.”
    ‘..........둘 다’
    “아니, 잠깐. 너 지금 꼴이 그게 뭐야?”
     
    어두워서 몰랐는데 은수를 보니 윗도리는 벗은 채 속옷만 입고 있었다.
     
    “그게.. 나중에 말해줄게. 사연이 있어.”
     
    오늘 밤에는 별 일이 다 생기는 것 같다.
     
    ‘나 뭐해?’
     
    조령의 말에 호우가 씨익 웃었다.
     
    -올라가서 저 까치를 약 올려라.
    ‘그거면 돼?’
    -그래.
     
    조령은 머리를 빛내며 빠르게 올라가 까치 근처로 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까치는 흠칫 놀랬다가 상대가 작은 새 인걸 보고 가소롭다는 듯 가슴 털을 부풀리고 가지에 편하게 앉아 딴청을 부렸다.
    조령은 잽싸게 왔다갔다하면서 까치의 머리 깃털을 콕콕 찍어댔다.
     
    -잘한다! 더!
     
    “참, 은호랑 망부 불러야겠다.”
     
    허리에 꽂아둔 무전기를 꺼내 은호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치익대는 소리만 들렸다.
     
    “응? 왜 이러지?”
     
    나는 맞춰둔 채널을 확인하고 다시 은호를 불렀다. 여전히 답이 없었다.
     
    “사정거리 벗어난 거 아냐?”
    “설마.. 이거 10km짜린데.”
    “망부는 어떻게 부르지?”
    “알아서 오겠지. 어차피 날이 밝거나 주인이 죽으면 암령도 끝이잖아.”
     
    까치는 귀찮다는 듯 조령을 향해 한쪽 날개를 푸드득 거렸다. 언뜻 봐도 영기를 꽤 많이 소모한 모양인지 날갯짓에도 힘이 없었다.
     
    -더 약 올려라!
     
    호우의 외침에 조령은 필사적으로 까치를 쪼며 치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그러자 까치는 성가셔하며 쫓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투당-탕-탕-
     
    까치가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나 싶더니 밤나무 가지 사이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은수가 달려들어 까치의 어깨를 꾹 눌렀다.
     
    “어서 끝내! 도망치게 하면 안돼!”
     
    은수가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다니. 오늘 밤은 정말 별 일을 다 본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옷까지 벗게 만든 저 놈을 가만둘 수 없나 보다.
    조령은 머리를 반짝이며 시원하게 수직하강해서 내 머리 위에 앉았다.
     
    호우는 까치에게 다가가 물었다.
     
    -넌 누구냐?
    “크르..크륵.. 죽여라. 내가 누구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넌 누구냐?
    “네 놈은 영이 분리되기 전에는 못 건드리는 걸 알고 있다. 허세부리지 마라.”
    “호우, 내가 할게.”
     
    나는 쭈그리고 앉아 까치를 쳐다 보았다.
     
    “너 뭐야?”
    “케륵-켁켁- 그냥 죽여라!”
    “놀고 있네. 내가 미쳤냐? 너 좋은 일 시키게? 안 죽일 거야. 가둬놓고 두고두고 괴롭혀야지.”
     
    비아냥대는 내 모습에 까치는 한층 분노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아, 그래?”
    “네 놈 때문에 죄 없는 일족들이 죽었다!”
    “뭐? 죄가 없다고?”
     
    저 말은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일은 했을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합당하지 않은 짓은 한 적이 없다.
     
    “모두 인간의 잘못이야! 우리가 사는 곳에 쳐들어와서! 마음대로 헤집고! 그리곤 우릴 내쫓지!”
    “그래, 인간이 너희를 내쫓았다 쳐, 그럼 지금 넌 날 내쫓는 게 아니라 죽이려는 거잖아.”
    “네 놈 하나를 죽이면 좋은 본보기가 될 테니까. 그럼 인간들은 우릴 얕보지 않겠지!”
    “..그러니까 지금 인간에게 들러 붙어서 살인을 저지르고 분쟁을 만들고 조종하는 건 괜찮다는 거야?”
    “그건 세상의 법칙이다.”
    “뭐?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우리의 세상에서는 그게 법이다.”
    “지랄하네. 은수야, 날개 좀 벌려봐.”
     
    그 말에 은수는 눈을 부릅뜨고 까치의 날개를 벌렸다. 나는 발을 들어 날개 하나를 밟았다.
     
    으적-
     
    “캬아아-“
    “아파? 그럼 까치한테서 나오시던지.”
    “이, 이 저주받을!!”
    “저주라.. 아, 저번에 나한테 지박령이 찾아왔던데, 그것도 네 짓이냐?”
    “넌 원래 적이 많다. 제령사들은 곱게 못 죽어!”
    “네 짓이야, 아니야?”
     
    나는 다른 쪽 날개로 밟았다. 까치는 더욱 기이한 비명을 질렀다.
     
    “까치에게라도 몸을 빌리지 않으면 못 움직이는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야?”
     
    호우와 천시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호우의 눈동자가 진하게 붉어진 걸 보니 까치에게서 원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얘가 걔야?”
    “아이, 깜짝이야!”
     
    어느 틈에 돌아온 망부가 옆에서 손가락을 빨며 물었다.
     
    “언제 왔어?”
    “가다 보니 암령들이 희미해지길래 주인을 잡았나 해서 돌아왔지. 근데 얘야?”
    “어. 원념이 깃들었어. 근데 성깔이 있네?”
    “내가 좋은 거 줄까?”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던 망부는 허리 춤에 늘 차고 다니는 주머니를 뒤져 작은 나뭇가지 묶음을 꺼냈다.
    그리고 부싯돌을 꺼내 탁탁 치니 파랗고 동그란 빛이 어렸다. 망부는 재빨리 가지를 가져다 불빛에 꽂았다.
     
    “자, 영도 그을릴 수 있는 도깨비불 가지야. 영기를 넣으면 더 키울수도 있어.”
     
    나는 가지를 받아 힘을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불이 미친 듯이 솟아 올랐다.
     
    “살살 해야지!”
     
    그 광경에 까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가지에 힘을 빼니 불이 손바닥 크기 정도로 적당히 줄어들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도깨비불을 까치에게 들이댔다.
     
    “너 누구야? 그리고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언제부터 날 노린 거지?”
    “케룩-케룩-깍-“
    “이제 와서 새인 척 하지마. 어디서 수작질이야.”
     
    그때 옆에서 쥐 한마리가 지나갔다.
     
    -이 놈!!
     
    호우가 쥐쪽으로 달려 들어 무언가를 발로 짓이겨 눌렀다. 그러자 홀연 묵직한 영기가 호우의 발 틈으로 새어나와 흐릿하게 사라졌다.
     
    끼이이이이이---
     
    밤하늘 사이로 가느다란 비명이 울려퍼졌다.
     
    -쥐에게 옮겨가려던 녀석을 잡았다.
     
    푸드덕-
     
    은수가 잡고 있던 까치가 몸을 떨었다. 잠시 긴장을 풀던 은수는 그 바람에 깜짝 놀라 몸을 피했다.
    하지만 까치는 날개가 부러졌는지 바닥을 몇 번 칠 뿐 움직이지는 못했다.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치료해주고 방사해야겠네.”
    -결국 저 놈에게선 아무 정보도 못 얻었군.
    "뭐, 다음에 다른 놈이 다시 오겠지. 그땐 제대로 캐내야지."
    "넌 일단 위령제부터 꼬박꼬박 지내."
     
    “거 이 밤중에 뭐 하는 짓이요! 조용히 살기로 해서 이사를 허락한 거잖소!!”
     
    걸걸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장이었다. 은수는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아, 이장님.”
    “지금 뭐요? 혹시 여기서 귀신 부르는 거요? 동네 망치려고 작정했소?!”
    “아, 아니 그게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보니까 무슨 비명소리도 들리고 하던데!”
    “아, 아니 그게..”
     
    나는 순간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렸다.
     
    “아! 그게 말이죠, 제가 여기 마을 분들이 너무 좋아서 선물을 하나 하려고..”
    “무슨 선물?!”
     
    호통은 치면서도 살짝 누그러진 이장의 말이었다.
     
    “저번에 수호목 때문에 고생하셨죠?”
     
    딸이 생기는 수호목을 심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원성을 듣던 일을 상기시켰다.
     
    “흠흠, 그래서?”
    “그래서 이번엔 아들이 잘 생기는 작은 사당을 여기 만들어 볼까 하고.. “
    “아, 아들도?”
    “네! 그러면 다들 너무너무 좋아하실 거에요!”
    “..근데 그걸 이 밤중에 한다고?”
    “이장님도 참, 원래 정한수도 밤에 떠놓고 비는 거잖아요. 호호호”
    “그, 그런가?”
     
    이장은 헛기침을 두어 번하더니 얼른 들어가 자라고 한 뒤 돌아갔다.
     
    휴, 어떻게 넘기긴 했는데. ..정말 사당 하나 지어야 하나.
     
    “돌무더기를 사당의 형태로 만들면 될 거야.”
     
    나무 뒤에서 은수가 말했다.
     
    “얼른 나와. 이제 집에 가야지. 근데 은호는 도대체 어딨는거야?”
     
    *
     
    드디어 모피의 능력을 알았다!
    그것은 바로 달리기였다.
    나는 산등성이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타고 올라갔다.
    순식간에 암령들도 따돌렸고 산도 두 개를 넘었다.
    너무 빨라서 달리는 내내 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너무 신난다!
    하지만 이 기분도 잠시,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내리막길을 제대로 뛰어 내려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분명 내 다리가 맞는데 이상하게 삐그덕댔고 빨리 달릴라치면 다리가 꼬여 넘어졌다.
    그래서 걷거나 약간 빠르게 내려가야 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땐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
     
    룰루, 룰루. 오늘도 신나는 하루! 얼른 가게에 가서 문 열고 손님 맞아야지!
    오늘은 단체 손님들이 산에 온다고 했으니 나도 한몫 잡겠지. 세수하고 나가.. 응? 저게 뭐야?
     
    마당 구석에 놓인 전서령 전용 횃대에 전서령이 앉아 있었다.
     
    이거 우리 안나씨에게 준 건데.. 무슨 일 있나?
     
    나가서 전서령을 살펴보니 아무 쪽지도 없었다.
     
    이상하다? 왜 용건도 없이 전서령을 보낸거지?
    ..아하! 하하하, 나도 참 센스가 없다니까~
    역시 우리 안나씨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천상 여자야.
    나랑 연락을 하려는데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내기 뭣하니까 그냥 얘만 보낸거구나!
    나도 생각이 짧아. 여자쪽에서 이렇게 하기 전에 먼저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오늘 답신을 보내야겠다. 뭐라고 쓸까..
     
    목인웅은 허겁지겁 방으로 돌아가 지필묵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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