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중소 철강업을 경영하던 K씨(57)는 지난 1월 회사를 처분하고 미국으로의 이민을 준비 중이다. 종업원 230명에 연간 매출액도 300억원 가량 되던 알토란같은 사업을 스스로 접었다. “참여정부 출범 후 부자를 괴롭히는 정책이 강화되고 있어 더 이상 고생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공장 부지와 설비 등을 파니 650억원 가량 되더군요. 아이들은 이미 유학을 보냈고, 조만간 저도 뒤따라 이민을 갈 작정입니다.”
일부 부자들이 돈 벌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미 하고 있는 사업을 정리하거나 주식시장을 떠나는 부자가 늘어나고 있다. 사업정리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사업을 늘리는 부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돈 냄새를 귀신처럼 잘 맡아 돈 벌고 불리는데 입신의 경지에 들어선 부자들이 부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엄청난 정체성 위기다.
공장 정리해 이민, 낙향..쇼핑도 해외로
경기 김포에서 150억원 규모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하던 B씨(54)는 올해 초 공장을 팔고 강원도에 있는 중소도시에 내려가 살고 있다. 그는 “공장 판 돈으로 서울 강남에 조그마한 빌딩을 사서 임대료를 받아 생활비로 쓴다. 이렇게 속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헛살았다는 생각마저 든다.”며 씁씁할 표정을 지었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에 100억원을 맡겨 놓은 서울 강남의 P씨(59)는 지난 4월 주식을 모두 팔고 현금으로 유지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710대까지 떨어지고 삼성전자 주가가 40만원 근처까지 하락했을 때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해서 매수하는 것을 고려했었습니다. 하지만 부유세 도입이 논의되는 마당에 굳이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어 당분간 현금으로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부자들은 돈 버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것마저 꺼린다. 한마디로 한국에서의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1996년부터 전업 주식투자자로 나서 수십억 원을 번 S씨(47)는 올 들어 일본 훗가이도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및 태국 푸켓 등을 다녀왔다. 주위 동료들과 골프도 치면서 쇼핑도 즐기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주중에 골프 치고 고가품을 사러 백화점에 가면 주위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바깥에 나가면 그런 께르침한 기분 없이 즐길 수 있어 2~3개월에 한번은 나가려고 합니다.”
“주식 투자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매매를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한 미군 감축과 부자를 불편하게 하는 정책 등이 이어지는 한 주식투자를 거의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차라리 달러로 바꾸어 놓거나 외국에 나간 기업에 지분 참여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부자를 도둑놈 취급하는 분위기 탓에 돈벌기도, 쓰기도 싫다
부자들이 경제활동을 포기하려는 것은 부자를 도둑놈 대하듯 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증권감독원(현 금융감독원) 간부를 지낸 S씨는 “과거에 가장 나쁜 욕은 개××였다. 1950~1980년대에는 빨갱이로 바뀐 뒤 몇 년전부터 도둑놈으로 변했다”며 “부자들이 욕먹으면서까지 굳이 돈을 벌고 쓸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회계업무를 대행해주는 C회계사는 “부자들이 남보다 더 고생하고 노력해서 번 돈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며 “돈 벌 기회가 보여도 돈을 빌려 사업을 벌이려는 부자들이 없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자들의 경제활동 포기는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창업 부진과 폐업 및 사업축소는 청소년을 위한 일자리를 줄어들게 한다. 주식투자를 하지 않으면 증시 침체를 장기화시킨다. 국내 소비를 줄이고 해외에서 쓰는 것은 부의 해외이전으로 성장률을 갉아 먹는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료를 지낸 K씨는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한국 경제의 생산능력은 1995년 이후 감소하고 있다”며 “부자들이 경제활동을 포기하면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큰손 지갑닫혀 경제에 악영향.."부자가 돈 안쓰는 나라는 망한다"
한 투자자문회사 사장은 “일본 경제는 지난 10여년간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소생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허송세월을 한 대가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대착오적인 재분배 정책으로 부자를 위축시킴으로써 경제 활력을 갈수록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경제하려는 의지를 떨어뜨리는 사회분위기는 한국을 ‘1만달러의 함정’에 빠지게 할 우려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은행장을 지낸 K씨는 ‘민주화 과정의 위기’를 우려한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올라서는 단계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요구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통제하지 못할 때 경제는 물론 민주화도 후퇴한다”는 것이다. 영국과 싱가포르는 ‘1만달러 터널’ 무난히 통과한 반면 남미 국가들은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최근 “부자들이 돈 쓰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고 말했다. 부자들이 돈 벌기도 싫어하고 쓰기도 꺼리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한국 경제의 미래는 상당히 어둡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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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이 소비를 해야 그들의 소비를 받아 벌어먹고 사는 이들이 더 부자가 될 것이고, 그 영향은 차츰차츰 아래로 이어질텐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는 부자들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풍조가 생겼더군요... 미국의 투자자인 워렌 버펫은 자신과 점심 식사를 하는 데 필요한 티켓 20만을 달러에 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수익의 전액을 노숙자와 빈곤층에게 기부한다고 하더군요... 이런 것이 정말 건전한 부자상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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