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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은 1969년 6월 28일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술집 스톤월 인을 경찰이 단속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다.[2][3]
1969년 6월 28일, 경찰의 현장 급습에 맞서 동성애자 집단이 스톤월에서 자발적으로 데모를 일으켰다. 1950년대부터 60년대 사이에는 미국의 동성애자들을 반대하는 것이 합법이 되었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고군분투하였다.[4] 초기에 그들은 반대 운동에 맞서 백인주의 사회 안에서 동성애자들도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노력했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두 부류가 대치되지 않고 동등한 입장이라는 교육을 추진시켰다. 1969년, 많은 사회적 운동들이 활성화되면서 이 또한 동성애자 집단에게 영향을 미치게 돼 스톤월 항쟁의 자극제 역할을 하게 된다.
1950년대와 60년대 사이 매우 적은 시설들만이 동성애자들을 맞이하였고 그중 대부분이 술집이었다. 비록 술집 주인이나 매니저는 게이가 아니지만, 상업적으로 그들을 맞이해 돈을 벌곤 하였다. 스톤월 인은 규모가 작은 술집으로써 마피아의 통제하에 운영되어 오면서 가난하고 어린 친구들, 동성애자, 드래그퀸, 트랜스젠더, 집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주류를 제공했다.[5][6] 1960년대에는 경찰이 수시로 그런 부류의 술집을 단속을 해왔지만 스톤월 인을 제어할 수 없게 되어 버렸으며, 동성애자들은 그 기세를 몰아 군중을 모으고 항쟁을 일으킨다. 뉴욕 경찰과 그리니치 빌리지에 거주하는 동성애자 사이의 긴장감은 몇 날 밤의 시위로 분출되었다. 마을 거주자들은 경찰들에게 잡힌다는 불안감도 잊은 채 그들의 성적 성향을 표출해내었고, 동성애자들을 위한 집결지를 설립해 좀 더 활동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스톤월 항쟁 후 뉴욕에 있는 동성애자들은 성별과 계급, 세대 간의 장애물을 마주하며 지역사회와 결합해 나가려고 노력해왔다. 반년 후, 두 개의 동성애자 운동 조직이 뉴욕에서 형성되면서, 두 조직이 뭉쳐 사회적 대립에 대해 대치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데 전념했으며, 세 곳의 신문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권리를 확립시키는 것을 촉진시켰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동성애자 인권 조직은 미국 전역에 설립되었다. 1970년 6월 28일, '게이 퍼레이드'라는 행진이 시카고 로스엔젤레스와 뉴욕에서 열렸으며, 그것은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로 전해 내려온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퍼레이드가 다양한 지역에서 열리고 있으며 '게이 퍼레이드' 행사는 매년 6월 마지막 날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며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7]
http://ko.wikipedia.org/wiki/%EC%8A%A4%ED%86%A4%EC%9B%94_%ED%95%AD%EC%9F%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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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행사를 하냐하면 그 날이 동성애자 권리를 위한 기념일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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