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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527144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22
    조회수 : 2995
    IP : 119.195.***.230
    댓글 : 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9/14 01:34:07
    원글작성시간 : 2012/09/13 22:58:41
    http://todayhumor.com/?humorbest_527144 모바일
    배경음) 뱃놀이




    달빛이 구름에 가리웠다.

    발길이 시야에 잘 들지 않아 가끔 발을 땅에 내딛는 것이 불안했다.

    시간이 얼마나 깊어 졌는지 감이 안 들었으나, 근처에서 젖은 풀잎 향이
    느껴지는 것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강줄기가 뻗어 있을 것이라 예상이 되었다.

    무과시험에서 떨어지고 나흘째였다.

    분명 나의 활끝은 과녁의 정 중앙을 꿰뚫었고, 길들여 지지 않은 말에 올라타서도 흔들림 없이
    칼을 뽑아 내가 갖은 모든 기량을 선보였다. 다만 나의 들끓어 오르는 기백과 무용심은 채점관들의
    주목을 이끌지 못하는 인형놀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장원으로 이름이 불려 나간 사내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그는 사내대장부라 불리기에 왜소한 키와 호리호리한 체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 두터운 살집 하나 없는 팔뚝으로 검을 집는다는 것이 내게는 의아스럽고 못마땅했다.
    나와 단 다섯합만을 주고받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 그런 약골이 장원이라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디 귀족의 자재가 뇌물로 등용길에 오른 것이 틀림이 없었다.

    당장 허리춤의 칼을 뽑아들어 사내와 결판을 짓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으나, 나라님 결정이 번복될 리도
    없을 것이 뻔함이거니와 그런 샌님 같은 놈을 힘으로 억누른다는 것을 무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 과거일을 기약 할 수는 없었다.

    명백히 무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 내가 이번 과거에 장원을 할 수 없었다면, 다음 과거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었다. 당장 결판을 짓는 것이 사내로서의 마땅한 도리라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한양에서 산 스무고개를 지나 사십 리쯤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유명한 뱃놀이 터였다.

    그곳은 향간에 소문이 무성한 장소로 낮에는 사람들이 배를 끌며 계절구경에 나서기 일품인 명소라 일컬어졌으나,
    밤이면 귀신이나 도깨비가 나타나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며 밤새 노리개처럼 가지고 놀다가 목을 따서 그 피를
    마시고 즐긴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때로는 귀신들이 물가에 서 있는 사람들의 발목을 낚아채 물가 깊은 곳으로
    몸을 끌어내리며 물을 마시게 하여 숨통을 막아 죽이고선 영영 그 시체를 끌어 안고 살기도 한다고 한다.

    귀신들은 원래 사람들이 보통 인식하는 것 처럼 머리를 풀어해친체 피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기에 역한 모습을
    띄우지 않고 때로는 유곽의 기생처럼 아리따웠으며 때로는 집에 계시는 어머니처럼 넉넉한 인상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고 하였다. 때로는 문어처럼 흐물거리는 도깨비를 보았다는 자가 있는가 하면, 혈귀처럼 얼굴이
    시뻘건 구척 장신의 장정을 보았다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씨에 기품이 있고 재치가 뛰어나 사람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이 능숙하며
    사람이 꾀에 속아 덤벙대는 모습을 보며 그 멍청함을 손가락질해 비웃었다고 한다.

    지금 북쪽 최전방을 호령하는 대장군이 젊은 시절 이곳에 들러 귀신들을 불러모아 술잔치를 벌였다는 일화는
    무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들어봤을 이야기로 귀신들은 다음날 아침 대장군의 기백에 감복하여
    큰절을 하고 그의 앞길에 금가루를 뿌려주며 축복을 빌어 존경을 표했다한다. 실로 그 덕이었는지
    그는 젊은 나이에 관직에 올라 북방에서 넘치는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였고 지금은 대장군의 위치에 올라있었다.


    '나도 그놈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장원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참을 걸어 달빛을 담은 강줄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며 뱃터를 찾자, 근처에 아낙처럼 보이는 운영이 눈에 띄었다.

    허리춤의 칼자루를 확인하는 손에서 축축한 땀이 흥건했다.

    아낙에게 다가서자 아낙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묘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었다.

    "무사님이 이 밤에 물가에는 어인 일이신지요?"

    "밤잠을 못 이뤄 바람 좀 쐬러 나왔소."

    "이곳이 어떤 곳 인줄은 듣고 오셨답니까?"

    "뱃놀이 터가 아니오?"

    아낙이 웃음을 지으며 물가로 시선을 돌렸다. 온통 하얀 옷을 입은 아낙은
    소문에서와 같이 기생처럼 고운 자태를 하고 있었고, 다소곳한 몸가짐에서 기품이 흘렀다.

    "그럼 저와 뱃놀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아낙의 뒤켠에 작은 배 한 척이 동여맨 밧줄에 몸은 의지한체 물결을 따라 살살 흔들리고 있었다.

    "저 배에는 노자루가 보이질 않소만?"

    "그런 것은 뱃놀이를 하는 것에 방해만 된답니다."

    아낙이 가슴팍에 다소곳이 손은 얹은 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마음이 불안해져 자꾸만 허리춤의
    칼자루를 만지작거리자 아낙은 슬쩍하고 내 허리춤을 흘겨보았다. 그리고 이내 깊은 미소를 띄며 물었다.

    "소녀가 도깨비가 둔갑한 몰골로 보이십니까?"

    아낙의 웃음은 나약해진 내 마음을 비웃듯 기분 나쁘면서도
    반반한 얼굴 형색 때문인가 기묘한 색기가 흘렀다.

    "무사님이 제가 두려우시다면 어쩔 수가 없지요. 저 혼자 배에 오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이런 위험한 곳에 여인을 혼자 둘 수는 없지요. 함께 오르겠습니다."

    내가 먼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배에 오르자 나루터에서 아낙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배에 올라 아낙에게 손을 뻗어 부축해주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러자 아낙은 알 수 없는
    어색한 웃음을 머금은 체 내 손을 의지해 나루터 끝에서 배를 향해 발을 디뎠다.

    "겁이, 없으시군요..."

    아낙의 말에 옆을 돌아보자 배가 슬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표정이 굳은 아낙은 흔들리는 배 위에 선체 자세를 흐트러트리질 않았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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