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초반. 군인친구들을 둔 사람들은 모두 경험했듯이
나도 그때는 친구들이 군대를 가면 면회를 가거나 편지를 쓰는 것이 일이었다.
발렌타인데이때는 작은 상자에 몇개씩 초코렛을 넣어 소포를 보내주기도했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편지를 써주기도했는데.
친구들이 다 한꺼번에 군대를 갔기에
어떤날은 집에돌아오면 우체통에 각기 다른 군인친구 7명이 한꺼번에 편지를 보낸적도 있었다.
그럴때면 난 연예인이 된 기분으로 편지를 읽곤했는데
후에 돌아오는 답장의 압박은 내게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이기도했었다.
하지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귀찮아하지않고 열심히 편지를 써줬는데
이새끼들이 상병쯤되자 편지하는것에 흥미를 잃고 시간이 남아도니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전화는 거의 수신자부담이었고..
어느 달에는 수신자부담 요금만으로 휴대폰 요금을 씹팔만원을 내기도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면회.
한 친구를 가면 다른 친구도 안 갈 수 없었기에
전국을 순회하며 면회를 다녔는데
어떤날은 약속을 했다가 일이 생겨 못가게 될 상황이 생겼지만,
친구가 이미 외박을 나가있었던 상태라 연락할 길이 없었기에
부랴부랴 같이가기로 한 친구들과 함께 고속버스터미널로 달려갔는데
이미 친구가 있는 부대까지 가는 차는 끊겼고
어쩔 수 없이 그 근처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잡아타고는
마지막 종착지에 내려 7만원을 주고 택시를 타고서야 면회를 간 기억도 있다.
그래도 멀리서왔다고 군인신분에 없는 돈에도 불구하고 순대를 사주는데 염통은 왜 다 니가 쳐먹냐.
그렇게 면회를 갈때면 빈손으로 갈 수 없었기에
집밥이 먹고싶다는 친구들말에 된장찌개에 오징어볶음 계란후라이를 싸들고가서 먹이고오곤했는데
그때 내 별명이 한병장.
군대 얘기를 너무 못이박히게 들어 귀를 파면 귀에서 맛스타향이 나....
음식도 냉동 전자렌지에 돌려먹는게 더 맛있고
라면도 스파게티 뽀글이가 제일 맛있어.
어쩐지 그때 내 모습은 혹한기 훈련을 막 끝마친 이등병 꼬라지.
그당시 난 대학교 휴학을 꽤 길게했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내가 군대갔다더라는 말도 들려오곤 했다.
생각해보니, 당시 소개팅을 나가면
"전공이 뭐에요?" 라고 물어봐야할걸
나도 모르게 "보직이 뭐에요?" 물어봤다가 집에 쓸쓸히 돌아왔었지.
면회를 하러 부대로 찾아가면
꼭 혼자나오지 않고 후임이나 선임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는것이 피라미드처럼 늘어나서
나중에는 아예 내가 쓴글을 프린트해서 대표로 한사람에게 보내기도 했었다.
그렇게 쓴글의 답장으로는 내가 쓴 병맛글에 대한 독후감을 받았는데
하나같이 다 '참 재미있었다'라고 보내는 것이
입시위주의 주입식교육의 병폐를 느끼게 해주는 씁쓸한 기분이긴개뿔 그럴꺼면 편지쓰지마라.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휴가기간.
어떤 친구는 일병때 일병정기로 9박10일을 나왔는데
하필 그때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9박10일내내 맨날 만나서 코찔찔흘리며 울부짖는것을 달래주느라
살이 3kg이 빠진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박일병그새끼 죽었는지살았는지 소식도모름.
그때 당시 군인친구들이 내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었던 방법은
몰래 전투식량을 한두개씩 보내주거나
건빵에 들어있는 별사탕을 편지에 넣어주거나였는데
어차피 도착하면 편지봉투겉면이 오돌도돌하게 다 뭉개져서 못먹어 너나먹어라.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군대에서 쓰는 건전지 뭉태기였는데
다쓴거를 보냈는지 알람시계에 꼈다가 다음날 시계멈춰서 지각했다 개꺢ㄲ끼야
어떤 친구는 군대에서 내가 이성으로 느껴졌는지
미친듯이 전화를 하며 날 구속하곤했었는데
전역하니까 나보고 형이라고 부르냐왜.
코에 수염난거같다고 면도좀하래.
그때는 솜털이 섹시하다더니.
지금은 나이도 먹었고, 남자인 친구들도 몇명없어서
주위에 군인인 사람은 없지만
가끔 오늘처럼 옛 기억에 잠길때면
강원도는 겨울과 여름 두계절을 갖고있으며
부대안에서 키우는 개 입에서는 짬냄새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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