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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들고 나가지 않는 장교는 적절히 무장을 갖춘 게 아니다"any officer who goes into action without his sword is improperly dressed.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군은 예비역을 재소집했고 처칠은 프랑스로 파견되었다. 자기 부대한테 공격신호를 어떻게 내렸냐면 독일 국방군 병장을 화살로 맞추는 걸로 내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로 적을 사살한 군인은 알려진 바론 그가 유일하다. 당시 그의 부대는 탑에 숨었는데 독일군이 나오자 제일 먼저 나온 병사를 쏘았다고. 됭케르크(Dunkirk) 전투 후에 그는 코만도에 지원했다.1941년 12월 27일에 노르웨이에 주둔한 독일군을 공격했는데[3] 수류탄을 던져 무공을 올렸다. 근데 이짓을 하기 전에 백파이프로 카메론의 사내들(March of the Cameron Men)이란 노래를 불었다... 하는 짓은 이상했는데 작전은 성공했다. 참고로 이 작전에서 그는 작전 참여요원 중에서 차선임 지휘관였다. 570명이 참여한 작전에서 서열 2위인 지휘관이 백파이프 불고 수류탄 던지는 전과를 올린 거다. 이 일로 무공십자훈장(Military Cross)을 받았다.1943년엔 지휘관으로 소총수 한 명을 데리고 이탈리아 시칠리 전선에 참여했는데 허리에는 클레이모어를 차고 등에는 장궁과 화살을 매고 손에는 백파이프를 들었다. 적에게 항복을 종용해 42명의 포로를 잡았다. 이 즈음에 그의 행동은 유명해진 후였다.1944년엔 유고슬라비아 전선으로 갔는데 티토가 이끄는 파르티잔 부대와 협조했다. 그는 1,500명의 파르티잔을 이끌었는데 백파이프로 지휘를 했다. 전투 첫날이 무위로 돌아가고 다음 날 파르티잔은 빼고 자기 휘하의 40명 영국군만 끌고 갔는데 박격포 공격을 받으면서 열세에 돌입하자 백파이프로 다시 안 돌아올 거야?(Will Ye No Come Back Again?)를 연주하고 수류탄에 맞아 정신을 잃은 뒤 포로가 된다. 그후 베를린에 끌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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