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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52445
    작성자 : 뿡분
    추천 : 14
    조회수 : 1274
    IP : 112.146.***.64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3/07/11 15:11:04
    http://todayhumor.com/?panic_52445 모바일
    단편] 그녀를 조심하세요 <2>
     
     
     
     
     
    2>
     
     
    “스토커는 남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사람을 뜻해요. 제가 보기엔 그쪽보다 그 단어에 어울리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틀린가요?”
    “……싫어.”
     
    여자의 눈은 금세라도 눈물을 왈칵 쏟을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그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나를 보며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 당신이 싫다고. 싫어, 끔찍할 정도로.”
     
    시간을 확인한 경찰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고소 진행 하실 겁니까?”하고 묻는 그의 말투엔 여전한 귀찮은 기색이 묻어나고 있었다. 나는 이에 부정도 긍정도 아닌 모호한 반응을 취했다. ‘어째서?’라는 의문이 머리에 맴맴 돌았다. 스스로 인기인을 자청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맹목적인 증오를 받아야할 정도의 삶을 살아오진 않았다고 확신했었다. 아니,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어째서, 나를 미워할까’라는, 다분히 유아적인 집착이 사고를 정지시켰다. 진심으로 다가가 묻고 싶어진다.
     
    ‘왜 나를 따라다녔습니까? 왜 나를 끔찍해하는 거죠?’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억울해, 정말…….”
     
    여자의 웅얼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확실히 깨닫는다.
    나로 인해 살인자란 누명을 뒤집어쓰고 조사 받았던 사실을. 그 때문에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걸.
     
    “뻔히 목격자가 있는데 범행을 발뺌하는 겁니까? 불 안 질렀다고? 하기사 여기 잡혀온 사람들치고 순순히 죗값 받겠다 나서는 사람이 드물지~암요. 억울하시죠?”
     
    그녀는 제 또래밖에 안 되는 젊은 경찰의 비아냥거림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또다시 묵묵히 숙여진 머리카락이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CCTV 확인하셨습니까?”
    “뭐요?”
    “저 여자 분이 방화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있느냔 말입니다.”
    “목격자가 셋이나 있어요.”
     
    경찰의 삐딱한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무른다. 그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그런데 이런 건 왜 묻는 겁니까?”
     
    그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하세요.
     
    “신고하러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
    “진행하실 겁니까?”
     
    나는 여자를 응시했다. 저절로 처연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니오, 하고 작게 대답했다. 스스로도 못 말릴 변덕이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여자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CCTV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마 저 여자 분은 아닐 거예요”하는 혼잣말에 가까운 내 말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인성에 대한 믿음은 아니었다. 단지 저 지극히 소심한 여자가 일대를 돌아다니며 방화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나는 작은 의혹을 제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여자는 풀려났다. 우스울 정도였다. 약자는 늘 약자로 남는다. 여자는 약자였고, 과거의 사건을 되짚어보면 가족이나 친구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약점을 노련하게 숨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자는 오히려 드러내는데 익숙했다. 그녀의 기괴한 행색과 결코 정상적이라 볼 수 없는 대응력이 무고한 여성을 용의자로 몰고 갔던 건 아닐까. 그들은 희생양이 필요할 뿐이다. 일을 빠르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쾅쾅! 도장을 찍고 서류철 사이에 숨기곤 덮어버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던 거다.
     
    나는 마침 경찰서를 재방문 하다가 우연히 그녀가 귀가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창백한 다리로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다. 치렁치렁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도 여전했다. 앞이 보이기는 하나? 저 머리를 잘라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저것 때문에 심장이 떨어질 뻔한 게, 어디 한두번이란 말인가.
     
     나는 정문을 빠져나간 여자를 앞질러 보행을 가로막았다. 우뚝 멈춰 선 여자가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운동화에서 시작해 바지를 타고 올라와 가슴과 목을 지나, 마침내 엷은 미소를 머금은 내 입가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우리 화해하죠? 마침 한동네에 살잖아요. 이웃사촌도 사촌 아니겠어요?”
    “……비켜.”
    “사촌 싫어요? 그럼 친구할래요?”
    “비키라고 했어.”
    “그럼 그쪽도 제 인생에서 비켜줄 건가요?”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디서 꾸깃, 구겨지는 소리라도 들리는 듯하다.
     
    “제 집에 찾아오지도 않을 거고, 우편함에 이상한 글귀나 사진을 넣지도 않을 거고, 밤마다 몰래 따라다니지도 않을 건가요? 대답해요. 지금 당장이야 내가 꼴도 보기 싫겠지만, 내일, 아니 오늘 밤만 해도 내 집 앞에 슬그머니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어요?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경찰에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밖엔 없어요. 그래도 좋은가요?”
     
    “……누가 너 따윌 찾아간대? 미친놈. 완전히 자뻑 수준이구만…….”
     
    “날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요?”
    “……내가 왜.”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겠다고?”
     
    “……나도……나도 그 동네 살고 있어.”
     
    “것 봐요. 우린 이웃사촌이라니까.”
     
    여자는 분한 듯 나를 노려보고 섰다. 그리곤 나를 팍 밀치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화르륵,
     
    불길이 치솟았다. 도시 계획에 따라 형식적으로 조성해 놓은 화단이었다. 그 파릇파릇한 풀잎 위로 불길이 치솟았다. 햇빛을 머금고 빠알갛게 개화한 꽃잎은 삽시간에 불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똑똑히 보았다. 여자의 뒤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분명히.
    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대체 이게…….”
     
    여자가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게 내 곁에 머물렀다. 나는 엉덩이를 찧은 채로 놀란 눈을 굴리면서 여자에게 설명을 바랐다. 그녀는 내 시선을 피했지만 어렵잖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방화의 정체였다. 도무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광경이었지만.
     
    십여분 뒤, 우리는 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햇볕은 따사로웠지만 우리 사이는 냉막하기만 했다. 나란히 붙어있는 두개의 벤치를 하나씩 꿰차고 앉아 있었다. 여기까지 동행하긴 했으나 합석하진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행동이었다.
     
    화단의 불은 근처의 흙으로 덮는 걸로 불길이 잡혔다.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경찰서 앞에서 제2의 방화 용의자로 잡혀들어갈 뻔 했으니까. 주변엔 자연발화될만한 요소가 전무했다. 다분히 인공적이며 고의적인 짓으로 의심받을 수 있었다.
     
    나는 약국에서 사온 연고를 바르고 위에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여자는 벤치 저 끄트머리에 앉아서 나를 보며 손가락을 꿈지럭대고 있었다. 힐끔거리며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한 화상은 아니었지만 죄책감을 느끼기엔 충분한 상처인 모양이다.
     
    여자가 처음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저주에……걸린 거예요.”
     
    나는 마지막 반창고를 뜯어서 붙이면서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고대 주술이죠. 흑마술이라고도 하고, 어쩌면 부두교 주술일지도 몰라요.”
    “……어떤 저주인진 몰라도, 출처가 참 불명확하네요.”
    “전문가가 아니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괴로운 듯 말하더니, 그대로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쩌면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깨며 등은 어떤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석상처럼 그렇게 얼굴을 숙이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울음을 삼키는게 아니라, 단지 괴로움을 다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치게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벌을 받나봐.”
    “누구를 다치게 하려고 했는데요?”
     
    여자가 얼굴을 들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대답은 않고. 한동안 물끄러미 보고 있기만 했다. 다소 둔감한 나는 그 의중을 빠릿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누군데요?”하며 재차 되물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깨닫는다. 나는 두 번째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
     
    그때야 비로소 여자가 시선을 끌어 내렸다. 땅을 쳐다보는 여자를 보다가 갑자기 울컥 뜨거운 감정이 치밀었다. 잠시나마 그녀를 동정하고 친구가 되고자 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이봐요. 나 좀 봐 봐요 . 나한테 저주를 걸었다고 하는 겁니까? 지금? 예?”
    “실패……실패했다구요……!”
    “그럼 아까 그건 뭔데요.”
     
    “그건…….”
     
     그녀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공공장소에서 여자하고 언성높여 싸우는 한심한 놈이 되고 싶진 않았지만 머리에 열이 올라서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21세기에 저주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조금 전에 그걸 봤으니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고……그래도 한가지는 알겠네요. 나를 지독히도 미워하는 군요.”
    “………….”
    “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길가다 비명횡사라도 하나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기야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겠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벌떡 일어섰다. 꼴도 보기 싫었다.
     
    “저주 걸린 사람은 나에요, 당신이 아니라…….”
    “아가씨가 왜요?”
     
    아가씨라는 호칭은 이제 신경 쓰이지 않는 것 같았다.
    여자는 침울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그렇잖아도 좁은 어깨를 더욱 작게 움츠렸다.
     
    “말 했잖아요……실패……했다고.”
     
    나는 머저리에 등신이 확실했다. 왜 그냥 지나치지 못할까.
    저 여자의 웅크린 작은 몸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고 오지랖을 떤 게 벌써 세 번째였다.
     
    “그런데 왜 아가씨가 저주에 걸렸단 거죠?”
    “저주는 반드시 완성돼야만 돼요. 아주 예민한 작업이라서……어떻게든 완성돼야 한다구요.”
    “완성 되다뇨? 실패했다면서.”
     
    그녀는 조금 갑갑한 눈으로, 그러나 여전히 처연한 몸짓으로 설명했다.
     
    “실패했을 땐 저주를 건 사람한테 되돌아와요.”
     
    그리고 작게 웅얼거렸다.
     
    “그렇게라도 완성되는 거라구요. 어거지죠. 꼭, 나처럼.”
     
     
     
     
     
     
     
     
     
    /
     
     
     분량조절 실패한 것 같네요.
     과연 이 얘기를 하편 하나로 끝을 낼 수 있을 것인가..!
     하편 분량이 어마어마해질지도 모르겠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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