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 더 이상 우린 만날 명분이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나의 모든 계획은 맥주거품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하느니라!
박부장에게 허둥지둥 달려갔다.
『부장님, 보라 절대로 그만두게 해선 안돼요.』
『아쉽지만 본인이 그만둔다는데 어쩌겠나.』
『부장님이 잘 모르시나 본데, 보라에겐 잠재적 가능성이 매우 뛰어나다고요!』
『잠재적 가능성이라니?』
『전 일할 때마다 시장조사와 분석을 철저히 하거든요. 얻어진 자료들을 계산해서 그래프를 그려봤더니, 재즈댄스 회원들이 앞으로 몰고 올 회원이 기하급수적으로 엄청나더라고요.』
『하긴, 정선생이 인기가 많지. 그러나 뭐 어쩌겠나. 새로운 강사나 기대해보자구.』
으앗! 정말 미치겠네!
퇴근길에 보라를 쫄레쫄레 따라가 버스정거장 앞에서 계속 설득을 해보았다.
『보라야, 잘 생각해봐. 혹시나 갑자기 돈벼락을 맞아 그만두려는 걸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꼭 돈만 있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아냐. 자신의 직장이 있어야 하고 또 그곳에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게 인간의 기본원리거든. 그리고 너 재즈강사 하려고 많이 고생했을 거 아냐. 나중에 맘 변해봐라. 요즘 같은 불경기 속에서 다시 이런 곳에 들어오는 게 쉬운지 알아?』
『씨퐁~ 남이 일 그만둔다는데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왜, 한번 꼬셔서 재미 좀 보려고 했는데 소원대로 안 돼서 그러시나?』
『그게 무슨 소리야. 직장동료로서 참 안 돼서 하는 말이지. 그리고 너한테 빚진 돈도 갚아야 하는데 이렇게 가버리면 미안해서 어떻게 살라고.』
입술에 침 좀 바르고 말했다.
『누가 죽기라도 한대? 걱정 마. 월급날 수금하러 올 테니.』 그러면서 버스에 훌쩍 올라 타버린다.
『보라야! 보라... 아저씨, 멈춰요!』
버스와 함께 달리면서 버스 문을 힘껏 두들겨봤지만 버스는 그런 날 무시하고 떠나버렸다.
헥헥, 신발! 난 손님도 아닌가! 핸드폰을 꺼내 보라에게 계속 전화를 해봤지만 세 번째부터는 핸드폰 전원이 꺼져버렸다.
흐앗! 정말 돌아가시겠네! 이러다가 정말 그만두게 되는 거 아냐?
안돼!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안돼!
지푸라기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으로 재빨리 집으로 뛰어와 잠자는 미래를 깨웠다.
『야, 한미래. 한미래. 빨리 일어나 봐!』
『아웅, 자는데 왜 깨우고 그래.』
『너 보라 그만둔다는 거 알지?』
『웅, 왜.』
『임마, 그럼 같은 선생으로서 못 그만두게 해야지, 지금 잠이 오냐.』
『아웅, 난 또 무슨 큰 일 났다구. 나 잘래.』
『임마, 일어나! 빨리 안 일어나!』 온 몸을 덮어쓴 이불을 빼앗아버렸더니 벌떡 일어나 앉더니 눈을 비벼댄다.
『아우~~ 졸려죽겠는데. 근데 보라언니가 일 그만두는데 오빠가 왜이리 흥분해?』
『으, 응? 이, 임마! 박부장님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박부장님이 왜?』
『너가 더 잘 알잖아. 요즘 가뜩이나 코치들 영업실적 없다고 울고불고 난리부르스를 추는데 거기다가 재즈강사까지 그만둬봐라. 자살하고도 남을 인간이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아까도 보니까 인생 다 산 사람처럼 표정이 다 죽어가던데 뭔 일 나기 전에 빨리 보라 좀 어떻게 해봐!』
『피~, 것 봐. 요즘 회원 너무 없으니 열심히 일해달라고 그랬었잖아. 오빠 책임이 크다구.』
『임마, 이제부터 맘잡고 열심히 하려고 했단 말야! 빨리 일어나 봐! 지금 사람이 한 명 죽게 생겼는데 잠이 오냐!』
『아우~ 이 늦은 밤에 어떻게 하자고 그래~』
『그러니까.... 맞다.. 전화해서 못 그만두게끔...』
잠깐, 핸드폰 꺼져있구나. 아후~ 멍청할 넘!
『됐다. 그냥 자라, 자.』
『피~ 잘 자고 있었는데..』
미래 방에서 빠져 나왔다.
된장, 이제 방법은 하나구나.
그녀가 못 그만두게끔 원천봉쇄 하는 거다!
어떻게?
새로운 강사가 못 들어오게!
새로운 강사를 구할 때 까진 있어야 할 거 아닌가. 그렇다면 계속 못 구하게끔 막는 수밖에!
다음날 센터에 출근하니 재즈강사를 급구한다는 구인포스터가 문 앞에 두 개씩이나 붙어있었다.
은근슬쩍 주위를 휙휙~ 확인하고 아무도 안 볼 때 표범처럼 달려들어 구인포스터를 모두 찢어버렸다. 그리고 완전범죄에 입각하여 그 종이로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개울물 쪽으로 훨훨 날려버렸다.
신발! 개울가 다리 위에 떨어지냐!
개울가로 뛰어내려가 종이비행기를 종이배로 변신시켜 개울물 위에 붕붕 띄어주고서 센터로 들어왔다.
오늘도 어느 때와 같이 코치대기실에서 미팅을 가졌다.
모두 모인 미팅시간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빌빌거리는 연기를 해댔다.
이유는 잠시 후 알게 될 것이다.
『자네, 오늘 어디 아픈가?』
박부장 말에 더욱 헬렐레~ 하면서 오뚜기처럼 앞으로 왔다 뒤로 왔다 휘청휘청을 연발했다. 『부장님, 저 오늘 너무 어지러워요.』
『그 몸으로 일 할 수 있겠나?』
『아무래도 오늘은 카운터 일이나 봐야겠어요.』
『음, 모두들 영업 나가고 오늘은 대수가 카운터 보도록.』
앗싸! 성공이다.
대기실에서 나오자 개뼈다귀와 말대가리가 야리꼬리한 시선으로 날 갈구면서 한마디씩 날린다.
『씨펄~ 동갑이라 웬만하면 태클 안 걸려고 했는데 보자보자 하니까 뺀질뺀질해서 안되겠네. 벌써부터 요령이나 피우고 말야.』
『니미! 오늘 내가 카운터 볼 차롄데!』
이번엔 개뼈다귀가 삿대질까지 해가며 외친다.
『야! 너 여기 들어와서 청소한 거 말고 한 게 뭐 있냐!』
어쭈? 청소씩이나 해 준 사람한테, 뭐? 한 게 뭐 있냐? 이걸 그냥! 『정말 미안해. 내가 몸이 허약해서.. 아... 어지러워..』
『띱새! 분위기도 안 좋은데 가지가지 꼴깝을 떠는구나.』
뭐! 띱새? 꼴깝?
으아, 성질 부리기 시스템 작동!
버퍼링 70%... 80%.... 90%.... 안돼! 이성을 잃지 말자! 다 된 밥에 재 뿌릴 순 없다!
뿌드드득!
『분위기 흐려서 정말 미안해. 나중에 나도 열심히 할게. 아.. 어지러워라..』
모두들 영업을 나가고 센터에는 나와 박부장과 미래만 남게 되었다.
미래는 열심히 째즈 레슨을 하고 있고 박부장은 스쿼시 레슨을 들어갔으며 난 카운터에 앉아 회원들이 들어올 때마다 열심히 탈의실 락카 열쇠와 옷을 건네주고 있다.
그래봤자 지금까지 두 명 건네주었지만.
그리고 재즈댄스와 스쿼시레슨 시간이 되면 마이크를 잡고 멋지게 방송도 때려주었다.
과연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자청했겠는가.
1번. 예쁜 여성회원들에게 살랑살랑 꼬리 흔들려고
2번. 논땡이 까려고
3번. 동이녀석 덮치려고
4번. 카운터 좀 털어 보려고
혹시나 이 안에서 답을 찾은 백성들은 그만 '뒤로' 버튼을 눌러 방에서 조용히 퇴장해달라.
아직도 내 캐릭터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구나.
내가 이곳에 남은 이유는 바로, 지금 울리고 있는 이것 때문이다.
때르르릉~~
『거기 째즈 강사 구하죠?』
『안녕하십니까? 고객의 만족을 위한 s.k텔레콤입니다. 고객님 무엇이 불편하신지요?』
『거기 휘트니스센터 아닌가요?』
『고객님, 잘못 거셨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때르르릉~~
『안녕하세요? 구인광고보고 전화....』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유 해브 어 웡 넘버. 플리즈 체크 유어 넘버 앤드 트라이 어게인.』
때르르릉~~
앗! 바쁘구나!
이번에도 수화기를 드니 아리따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벼룩신문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씨펄~ 어떤 새끼가 우리 집 전화번호를 냈어! 여긴 가정집이라구! 가정집!』
『어머나, 죄송합니다.』
푸하합! 내 연기실력이 제대로 먹히는구나.
앞으로 이렇게 며칠만 버티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있어야 한다.
난 왜 이렇게 연기를 잘 하지? 다시 한번 연예계로 도전해볼까?
『벼룩신문보고 전화 온 사람 없나?』
앗! 박부장이다.
『한 통화도 없는데요.』
『빨리 구해야 할텐데.』
순간, 전화벨이 우렁차게 울려댄다.
잽싸게 수화기를 낚아챘다.
된장, 옆에 박부장이 있으니까 긴장되는 구나.
프로는 이런 상황일수록 침착해야한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광고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예? 짜장면 보통이요? 여기 중국집 아닙니다!』
『여보세요, 휘트니스센터 아닌가요?』
『뭐? 팔보채? 야 임마! 너 장난전화 할래!』
『여보세요! 혼선됐나?』
『너 또 걸면 죽는다!』
뚝!
『왜? 누군데?』
『어느 미친넘이 짜장면 배달해달라고 하잖아요.』
『장난전환가 보군. 참, 누가 구인포스터를 버렸나본데 다시 좀 부치고 오게나.』
그러면서 새로 작성한 구인포스터를 건네준다.
우라질! 짜증나게 이런걸 왜 자꾸 만드냐!
밖으로 나와서 구인광고포스터를 조작했다.
휘트니스 재즈강사 급구!
성별 : 여자는 사절!
나이 : 20세 이상인 사람은 거절합니다.
시간 : 오후 6시~11시 (청소하고 가려면 새벽 1시에 끝남)
전공 : 재즈댄스, 스포츠댄스, 살사댄스, 방송댄스, 나이트댄스. 최소한 경력 2년씩은 있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