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현재 서울시내에 있는 유치원들 대부분이 사설 유치원입니다. 견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도 많지만, 상당수는 운영에 실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방향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정해져야 관리 감독이 가능해지겠죠. 무조건적으로 부실 유치원을 정리한다고 하는 것도 대안 없는 즉흥적 행사가 되겠구요, 교육청 혹은 시청의 예산을 추가적으로 투입하는 것도 단기적 발상입니다.유치원 전반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기본적인 원칙이 서야 합니다. 병설 유치원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치원 발전을 위하여 어떤 관리 기구가 필요한지 하는 것 모두 유아교육이라는 큰 틀에서부터 고민되어야 합니다. 저희가 정책으로 내세우는 유아교육 공교육화 또는 공영화는 현행 유아교육 체제를 재편하는 틀입니다. 이 큰 틀 내에서 유치원 육성계획과 관리 감독 등의 시스템을 준비하겠습니다.
다툼은 어느 사회에서나 필연적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그 성격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요. 더구나 아직 사회성을 획득하지 못한 어린이들은 이기적 속성에서 기인하는 다툼 요인을 당연히 갖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경향성이 폭력 등의 파괴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인성의 피폐라는 지극히 나쁜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한 자녀 가정이 많아지면서 형제애도 모르고 자라는 어린이들이 급증하고 부모의 과도한 관심과 애정 때문에 삐뚤어지는 자기애를 가진 어린이들이 늘어나는 현재에, 이런 폭력적인 유형의 행동양식이 일반적인 것으로 인식될 위험이 상당히 큽니다.
어린이 교육은 자신의 이기심이 자신을 넘어 주위로 확산되는 과정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기심에 종속된 채 살아가는 어른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입니다. 흔히 ‘어른들의 유아성’이라고 불리는 경향들은 바로 이런 인성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됩니다.
집단화한 폭력이 일반적이라고 파악하는 현실인식은 어쩌면 유아교육 자체를 포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기애로부터 시작하여 형제애, 가족애, 친족애, 고장애 등으로 확산되어지는 교육과정은 집단화한 폭력의 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질문 내용에 대한 찬성 쪽이 엘리트 교육을 주장하는 분들의 주장입니다. 선도 그룹을 위하여 하위 그룹이 희생해야 한다는 의식이 존재하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사람을 위한 교육은 폭력성의 표출을 제어하고 그것을 이기심의 확장에서 얻어지는 사랑의 영역 확대를 통해 포용해내는 일입니다. 사회성 부족은 모든 유아기 어린이들의 대표적 특징이고, 기질이 예민하다는 것은 다른 아이보다 특별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피해를 입어도 당연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어린이들을 고정된 틀 속에서 이해하고, 이런 어린이가 바른 어린이다 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살아 있는 교육은 사라집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린이를 일반적인 잣대 속에서 재단해서는 아이의 미래도, 우리나라의 미래도 창의성 없는 무미건조한 것들이 될 것입니다.
억울한 심정을 눌러 참아가며 성장해야 한다면 그러 교육은 사이코패스를 양산하는 교육일 것입니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에 목소리를 높이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행동으로 하는 어린이들이 훌륭한 어린이 아닐까요.
잘못한 일이 없이 피해를 당했는데 가해자가 부당한 행사를 사과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런 장치 없이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하는 공간에서 스스로 견뎌내라 하는 것은 또 한 번 가해하는 일입니다. 어른들도 그런 상황을 극복해내기 쉽지 않습니다. 자기 소신을 잃은 채 식물처럼 살아가는 인간이 훌륭한 인간이라면 그런 교육이 바람직하겠지요.
성장하면서 많은 어린이들이 변해갑니다. 그 변화를 바람직하게 끌고 가는 것이 교육의 역할입니다.
한 영역을 주관하는 기관이 그 영역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책임 방기입니다.
유치원과 학부모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건 유치원 편을 들어준 것일 테지요. 집단과 개인 학부모 관계는 개인 학부모가 약자입니다. 교육청은 당연히 약자의 편을 들어 중재해야 합니다.
말씀하시는 내용만으로는 정확한 판단이 어렵습니다. 아이들 증언의 사실성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교사가 원생들의 집단 내 갈등 문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등을 자세히 알아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다만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는 상황은 분명하기에 이 상황은 피해자 중심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원하시는 처벌이, 같은 원생을 가진 부모로서 가혹하지는 않으리라 짐작됩니다만, 수용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됨으로써 오히려 원만한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는 쪽으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유치원과 교육청의 불성실이 큰 문제로 보이고, 회복적 정의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더라도 원만한 대화가 최우선되어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교사는 무조건 학생들을 책임져야 합니다. 세월호 참극의 과정에서 보여준 교사님들의 헌신이 바른 교사상이 아닐까요.
우리나라 전반이 ‘책임’하고는 거리가 먼 듯합니다. 그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부패’와 같은 고리로 엮이면 국가가 총체적 난국에 빠질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아웃시키기 위해서 책임을 주어주는 것이 아니라, 희생이나 사고를 막고 단체의 효율적인 운영을 꾀하는 의미에서 책임선을 분명히 하고 책임을 지도록 강제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면서 주위로부터 받는 사랑에 행복해하는 어린이들을 꿈꿉니다. 우리말도 잘 구사하지 못하는데 영어를 강제로 배워야 하고, 초등학교가 무엇인지 모른 채 서울대학교라는 말부터 들어야 하는 교육은 절대 아닙니다. 인성과 창의는 교육의 기본입니다. 기본에만 충실해도 좋은 유아교육이 이루어진다 생각합니다.
세부적인 혁신은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라는 큰 틀에서의 변화를 기대해주십시오.
애들도 다 키워서 동요와 멀어진 지도 한참 됐습니다. 약간 당황!
“올챙이송”
밝고 명랑하고 경쾌해서 좋습니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