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나름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였던 것 같아서 궁금해하다가 케이블에서 하길래 봤습니다. 근데 이건 무슨 사랑과 강간을 구분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묘사한 판타지더라고요.
얼핏 보기에는 나름 괜찮은 설정일 순 있습니다. 섹스와 사랑이라는 상반된 목적으로 연애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어떻게든 여자 한번 따먹으려고 온갖 지랄 발광을 한 발정난 남자와 그러한 남자들이 생각하는 '지들도 원하면서 괜히 튕기는 까진 년들'을 나타내는 여자의 병신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한국의 성평등 의식이 얼마나 후진지 알 수 있는 대목인 것 같다.
욕할만한 내용이 매 장면 나와서 제대로 된 리뷰를 하려면 다시 보면서 계속 일시중지를 해가면서 해야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만 얘기하겠습니다.
1. 성욕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물론 이 자체는 영화로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나올 이유들 때문에 결격 사유가 되죠.
2. 남자의 성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여자의 심리를 왜곡하고 판타지에 끼워맞춘다.
사실 영화상으로 묘사된 남자는 어딘가에 있을듯한 캐릭터입니다. 사고방식이나 행동, 행동의 동기가 일관되고 특정 사건에 대한 반응도 같은 사람이라는 연속성을 어느정도 보여주죠 (그리고 박해일의 연기가 그것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 캐릭터는 반 정도만 현실성이 있고 나머지 반은 마치 남자의 욕구와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장치로서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장면은 박해일이 집 앞으로 찾아가서 쳐들어가는 장면입니다. 마치 밀당을 하는 듯한 설정이지만 명백히 말하자면 성추행과 강간미수를 당한 상태입니다. 거기에 무단 주거 침입과 사생활 침해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행합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자는 마치 애초에 집에 들어와서 섹스를 하길 바랬던 듯이 목욕재계를 하고 집을 치워놓은 상태입니다.
흔히 '튕긴다'는 것을 '거절'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가봅니다. 처음에 No를 했어도 나중에 Yes를 한다면 튕긴거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끝까지 No를 한다면 그건 거절을 한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망상에 빠져있습니다. 마치 모든 상황은 Yes가 나와야 하지만 뭔가가 잘못돼서, 혹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No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현실이라면 끝까지 No를 했겠지만 영화상으로는 애매모호하게 표현을 합니다.
3. 결말이 더욱 가관
이 영화가 그나마 평범한 영화의 수준이 됐으려면 다음과 같은 결말들이 이루어졌어야 합니다.
1) 위의 리뷰 처럼 이 모든 내용이 사실은 감방에서 히죽거리며 시나리오를 쓰는 박해일의 모습으로 끝난다. 결국 강간범의 자기 미화인거죠. (사실 영화 자체가 강간범 미화의 느낌이 지나칠 정도입니다)
2) 강혜정이 복수를 위해 박해일을 납치해서 고문한다. (혹은 강간한다) 뭐 이러면 애초 의도와 장르에서 너무 벗어난거겠지만 애초 의도가 강간범 미화이기 때문에 별로 할 말은 없군요.
4. 어처구니 없는 포장
박해일의 행동이 마치 '솔직'하고 '귀여운'마냥 포장을 하고 폭로 사건이 터졌을때 분노를 하며 학생들을 매질하는 것을 마치 정의감에 불타는 사랑의 히어로로 묘사하는 등 정말 구역질이 다 납니다. 특히 BGM의 활용이 아주 예술이더군요. 샤방샤방한 음악이 나오는 장면을 전부 음산한 음악으로 바꿨더라면 상당히 뛰어나면서도 소름끼치는 명작 스릴러가 됐을텐데요. 하지만 아쉽게도 감독은 이러한 일들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흔한 헬헬헬헬의 발정난 수컷이였을 뿐입니다.
5. 기타 연출력
아무리 영화라도 그렇지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무지하고 무식한 연출 (뭐 애초에 남녀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식한 연출을 했지만) 그리고 주인공에게 유리하도록만 사고하고 행동하는 주변인들. 안그래도 착한사람과 나쁜사람이 너무나 뻔하고 일반화돼서 묘사를 시켜버리면 영화의 질이 떨어지는데 (선악의 대결 자체가 중심인 판타지나 액션과 같은 장르는 당연히 예외다) 그 선악의 방향이 뒤바뀌어버렸다. 그러니 당연히 현실성이 떨어지고 개연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줄거리의 현실성과 개연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즉, 그럴듯한 세계관에서 병신같은 일이 벌어지는게 아니라 (아무리 후진 영화라도 노린게 아니라면 나름 세계관은 덜 병신같다) 병신같은 세계관에서 병신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세계관 자체가 강간범을 미화하기 위해서 창조됐기 때문이다.
6. 더욱 가관인 것은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이다.
위의 리뷰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또 가관이다. 댓글의 내용과 그 댓글들에 대한 추천/반대를 보면 얼추 공감 반 반대 반이다. 뭐 네이버 네티즌 평점이 8점대인 것만 봐도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7. 생각해보니깐 더욱 화난다.
사실 현실세계에서의 강간, 그리고 데이트 성폭력의 문제는 심각하다. 더욱 문제인 것은 무조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섹스를 하기 전에 매번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우습고 (사실 상황에 따라서 "우리 섹스할까?" 라고 묻는 것도 우스운 경우도 많다) 서로 합의하에 한 줄 알았는데 의사 표현을 명백히 하지 않았다고 강간범으로 뒤집어씌우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문제라고 인식조차 하지도 않는건 확실하다. 이 영화에 따르면 여자는 좆같은 남자라도 없어서 안달이고 자기를 강간하려고 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상처를 가진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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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해서 그런지 존대말로 시작했다가 자꾸 반말로 바뀌네요. 여튼 제가 싫어하는 영화 부류는 꽤나 단순했습니다. 한국산 억지 신파, 저질 유머, 섹스를 주제로 하다가 저질 유머를 구사하면서 갑자기 마지막에는 억지 신파로 나가는 한국산 영화, 한국산 국뽕 영화, 한국산 공포 영화, 헐리웃에서 아무런 노력도 없이 돈만 뽑아내려고 만드는 수준 이하의 영화들, 오케스트라 BGM으로 놀래키는게 전부인 공포영화, 심형래 영화 등등. 물론 이전에도 모독적인 수준의 영화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 영화는 영화의 영역을 초월하는 모독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김치녀'를 욕하는 일베의 모습을 보는듯 했습니다. 웬만하면 영화는 취향의 문제라서 터치를 안하는데 만약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물론 이유는 들어봐야겠지만 별 다른 이유가 아니라면) 대놓고 싫어해도 죄책감을 안느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무서운건 평점을 보아하니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결국에는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한 사람이 많을거란 거네요. 소름끼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