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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굉장히 유쾌하신 분들임. 좋게 말하면 유쾌한 거지만 가끔 철이 아직 안들었나 싶을때가 있음. 항상 집에서 끝없이 장난을 침.
장난칠 사람이 부족해서 나를 낳았나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볼때도 있었음.
영장이 나오고 나와 가족들은 함께 의정부로 향함. 입소하기 전에 보충대 앞 부대찌게 집에서 밥을 먹었음. 밥을 먹는 도중에 부모님과 동생이
뭔가 눈빛을 교환하는게 느껴졌음. 설마 입대하는 날인데 별일 있겠어 생각하고 밥을 먹은 뒤 화장실에 감.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이미 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음. 아차하는 생각과 함께 가게 밖으로 뛰어나왔지만 수많은 인파때문에 가족들을 찾을수가 없었음. 졸지에 21살 먹은 미아가
되어버린 나는 쪽팔림도 잊은채 엄마를 외치며 사방으로 뛰어다녔고 이내 구석에 숨어 내 모습을 보며 키득거리는 가족들을 발견할 수 있었음.
그렇게 점심을 먹은 후 입소시간이 한시간 정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나에게 부대 안으로 들어가라고 함. 내가 군대를 가는건지 아니면 여름성경학교에 가는건지 헷갈리기 시작함. 조금이라도 바깥공기를 더 마시고 싶었던 나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좀더 있다가 들어가겠다고 했으나 급기야 가족들은 나를 구속한채 질질 끌고가기에 이름. 남들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싶어 안달이 나있는데 나는 그렇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처럼
질질 끌려가 결국 그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1등으로 훈련소에 들어감. 내가 여기를 나간다면 반드시 친자확인 부터 하리라 마음먹고 군생활을 시작함.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었음.
운좋게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자대배치를 받았지만 면회를 오지 않음. 그러다가 집에서 온 편지가 부대에 도착함. 그 안엔 편지와 시진이 들어있었음.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과 편지들이었음. 근데 가족여행의 이유가 바로 내 생일파티겸 가족들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음. 21년 동안
한번도 하지 않은 생일파티를 그때 처음함.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당사자인 내가 없었다는 것 정도.. 사진들 한장한장엔 깨알같은 멘트들이 적혀
있었음. 생일 케익 앞에서 와인잔을 든채 환하게 웃고있는 아버지 사진 아래엔 '아들아 너의 군생활에 건배.' 라고 적혀있었고 동굴안에서 찍은 사진에
적힌 '아들아 이곳은 너의 남은 군생활 만큼이나 어둡구나'라는 멘트에서 멘붕이 오기 시작해 더이상 제대로 편지를 읽을수가 없었음.
그러다 일병휴가를 나가게 되었음. 들뜨는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음.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액자가 눈에 들어옴.
이건 또 뭔가 싶어 봤더니 가족사진 이었음. 엄밀히 말하자면 나만 빼고 자기들 끼리 우리가 지구상에서 가장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다 라는 표정으로
꺄르르 웃고 있는 가족 사진 이었음. 어이가 없어 사진을 자세히 바라보다 액자 구석에서 무언가 발견함. 액자 구석에는 내 증명사진이 꽂혀 있었음.
난 내가 무슨 고인이 된줄 알았음.
이 막되먹은 장난질의 하이라이트는 내가 해안에 근무하고 있을때 일어났음. 원래 해안에 근무할때는 기본적으로 면회나 외출이 모두 통제되지만
우리부대가 당나라 부대라 그런건지 주말에 가끔 면회객들이 찾아왔음. 두개소대만 생활하는 독립소초라 따로 위병소나 면회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한두시간 정도 외출을 보내주고는 했음. 남들이 면회오는걸 지켜만 봐야했던 나는 어느날 집에 전화를 걸어 그동안의 불만을 토로했음. 남들은 면회와서 얼굴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는데 왜 나는 그럴수 없냐며 그간 쌓인 울분을 토해냈음. 그런데 이게 실수였음. 주말에 쉬고있는데 부대로 전화가 옴. 지금 거의 부대앞에 도착했으니 어서 준비하고 나오라는 것이었음. 설레는 마음으로 그간 입을일이 없어 고이 모셔두었던 a급 전투복을 꺼내입고 소초장에게 부모님이 오실거 같아 잠시 외출해서 점심좀 먹고 오면 안되겠냐고 말을 했고 소초장은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음. 설레는 마음으로
부대 정문 앞에서 근무자들과 수다를 떨며 가족들이 오기를 기다렸음.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부대 너머로 낯익은 차 한대를 발견했음. 나를 발견한
가족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아무리 짓궃어도 역시 가족이 최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뒤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는 동생의
모습을 발견했음. 차가 부대앞에 도착할 때쯤 뒷 창문이 열리더니 동생이 왠 봉투를 하나 투척하고는 그대로 부대를 지나 유유히 사라졌음.
봉투 안에는 치킨을 비롯한 음식들이 들어있었음. 얼굴보고 맛있는거 먹고 싶다고 했더니 진짜로 얼굴만 보고 맛있는 것만 놓고 간 것임. 졸지에
에어서폿을 받은 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떠나는 차의 뒷좌석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동생의 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았고 내 마음은
그새 달려든 근무자들에 의해 갈갈이 찢겨진 치킨처럼 산산히 조각났음.
내가 군대에서 보낸 편지나 사진을 한장도 빠짐없이 지금까지 잘 보관하고 있는 우리 부모님 이지만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뛰쳐들어 가고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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