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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은 세간에 알려진대로 고시3관왕의 천재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이른바 80년대 군부정권하에서 자신의 학교동문들은 군부정권타도에 앞장서고 민주화시위 대열에 동참하고 있을때, 오로지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하여 고시에만 매달렸습니다. 그의 그런 선택이 무조건 틀렸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세상에 충분히 목소리를 낼수있는 위치에 있을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할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의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라는 책을 보며 잠시나마 존경하던 때도 있었지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른바 t1, t2 가치판단법이라는 나름의 가치판단 방법을 소개하였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사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대의를 버리는 행위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판단법이었습니다.
"A가 B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하자. 그러나 A를 먼저하면 나중에 B를 할수없고
B를 먼저하면 나중에 A도 할수있다고 할때 어느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럴때는 B를 먼저 선택하고 나중에 A를 하는것이 낫다는 사고방식이다.
나는 이런 식의 판단방법에 대하여 나름대로 't1, t2판단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ㅡ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中" ㅡ
80년대 전두환쿠데타정권 시절 그에게 당면한 시대적 과제는 A(민주화운동), B(고시공부) 이 있었습니다. 그는 A와 B중에 어떤 일을 먼저할 것인가 고민을 했지만 결국 B를 선택했지요. A는 언제든지 나중에 할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그러나 그의 행보는 어땠습니까. 고시3관왕이라는 타이틀을 달성하고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이 나라의 민주화운동의 무임승차하기만 했지, 그가 앞장서서 한일은 없더라도 최소한 동참은 했습니까?
결국 그가 했던 가치판단은 자신의 출세를 위한 양심의 외면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과거 행적은 어떠했습니까?
1999년 정치권을 뒤흔든 송파갑 국회의원 공천 파동,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파문,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BBK 사건 변호, 특수학교 설립 반대 재판 변론 등 고승덕 후보의 과거 행적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1999년에 당시 자민련 공동여당의 박태준 총재의 사위였을 때,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신청했다가 곧바로 철회,
2007년 이명박대통령 후보를 위한 BBK법률적 대책을 맡았고,
2008년 결국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서 국회의원(서초을)에 당선.
2011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시절 한나라당에서 전당대회 때 돈봉투를 살포했다며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을 공격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회주의적 출세만을 추구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지속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급기야 이번에 그의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캔디고(고희정)씨의 양심선언까지 나오면서
그가 최소한의 인륜도 저버린 극단적 이기주의자임이 드러났습니다.
이것도 그의 t1, t2 판단 법에따른 행동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까요?
아마 전처 자식들에게 나중에 잘해주면 된다라는 가치판단을 하였을 듯 합니다.
그러나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그는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자신의 자식에게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의 출세를 위해 양심을 외면하였을 뿐이죠.
이런 사고체계는 공부를 하는 오로지 성적을 내기 위한 학생, 고시생에게는 아주 좋은 모범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될 수 있을지언정,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따듯한 인성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이기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리더로서의 자격은 없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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