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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대화 감독도 잘한건 아닙니다.
팀의 부진에는 감독의 책임이 큰게 사실입니다.
작년 어느정도 가능성을 보여줬던 한화가 올해 전력보강을 했음에도 오히려 다시 최하위로 추락한 것은 한감독이 팀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한 탓이 크죠. 뭔말인가 하면, 냉정하게 따졌을때 사실 올해 박사장님/김별명/송신영을 영입했다고 해도 한화의 전력이 타 팀에 비해 그리 좋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프런트는 신이나서 '우승'을 들먹이며 설레발을 쳤고, 선수들도 그에따라 기분이 붕 떠버리는 한편으로 부담감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을테죠. 이걸 잡아줘야 하는 것은 감독 몫이었습니다. 어느 상황에서라도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감독이 이런 것을 컨트롤하지 못하니 팀 분위기가 무너질 수 밖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근 몇년간의 한화의 몰락을 한대화 감독 탓으로만 돌릴수는 없습니다.
감독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는 말이죠. 한화의 추락은 감독 한명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총체적 난국'이고, 감독 하나 자른다고 손쉽게 내년시즌 성적 반등의 희망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감독을 일단 제외해두고, 올시즌 한화 추락의 원인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얇디 얇은 기름종이 선수층
2.외국인 선수 실패와 이후 대체선수를 뽑지 않음
3.코치진 인사에 프런트가 개입
4.시즌 시작 전 현실을 냉정하게 보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전력분석에 실패
1번의 문제인 선수층이 얇다는 것은 전적으로 구단측의 잘못입니다. 한화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인을 잘 뽑아 한방에 에이스급 선수들이 쑴풍쑴풍 잘 나와주던 팀이었죠.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고 안주해버린 탓에 2군시설과 육성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소홀히 해버리고 맙니다. 현재 강팀으로 분류되는 삼성/SK/두산/롯데는 모두 강력한 2군과 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팀들이죠. 두산이야 뭐 팀의 장기가 '화수분 야구'라고 불릴 정도로 2군에서 좋은 선수 길러내는데에 일가견이 있는 팀이고, 2000년대 후반을 호령한 SK제국의 기반도 막대한 훈련양을 바탕으로 한 1,2군간 실력차를 줄인 것에 그 근간을 뒀었죠. 2000년대 초반 하위권을 전전하며 기나긴 암흑기를 보냈던 롯데가 강팀으로 거듭난 것도 2군과 육성시스템을 정비한 이후였고, 모기업의 전폭적인 투자로 만년 강자로 분류되던 삼성이 좀 더 안정적인 기반을 닦고 훌륭한 세대교체를 이뤄내며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높은 효율을 뽑아내게 된 원인도 그 투자의 대상을 장기적 안목으로 바꿔 육성/재활 시스템을 완성한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한화는 어떻습니까? 이제서야 짓고 있다고는 하지만 변변한 2군 훈련시설조차 없는 팀이 한화입니다. 남들은 강력한 2군과 육성/재활 시스템의 필요를 깨닫고 현대화된 야구를 추구하는데, 한화는 여전히 신인 하나 잘 뽑아 한방을 노리는 식의 쌍팔년도 야구를 하고 있다는 소리죠. 야구는 절대로 혼자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게다가 시즌동안 백 수십경기의 기나긴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경기입니다. 한 두명의 선수가 특출나다고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고, 초특급 선수 한 둘 보다는 최상급은 아니더라도 우수한 선수 여럿을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는 팀이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평균치'와 '통계'의 스포츠입니다. 남들은 주전이 부상당해도 준척급의 후보선수들이 즐비하게 올라오는데, 한화는 제아무리 초특급 선수 몇명을 가졌다고는 하나 1군 로스터 채우기에도 급급한 선수층을 가지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리가 없죠.
게다가 선수들의 군입대/전역 스케쥴을 짜는 것은 프런트가 해야할 가장 기본중의 기본입니다. 이걸 잘 하는 구단으로는 삼성이 있죠. 삼성은 국가대표로 뽑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극소수의 특급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포지션별로 공백이 생기지 않게 군복무 일정을 세심하게 조절하기로 유명합니다. 김상수/정인욱/차우찬 등등 20대 초반의 당장 주전급 몇명을 제외하고는 주전 선수 대다수가 군복무를 마쳤고, 매년 유망주들이 군에 입대하는 대신 매년 그만큼의 유망주들이 전역을 하고 구단으로 돌아오죠. 대학/대학원 입학을 지원해줘 군입대를 늦추고 당기는 식으로 관리를 해주는 겁니다. 한화는 어떻습니까? 이거 스케쥴 하나 못 짜서 주전들이 줄줄이 손 잡고 동반 입대를 하는 수준의 팀입니다. 심지어 시즌 중에 주전야수가 영장받고 끌려가는 황당한 사태가 나오는 팀이란 겁니다. 이건 프런트의 직무유기입니다. 가뜩이나 얇은 선수층인데 이런식으로 그나마의 주전들마저 황당하게 보내버리면 팀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죠.
두번째 원인인 외국인 선수 실패도 마찬가지로 프런트의 실패입니다. 외국인 선수를 구해오는 것 역시 프런트의 할 일입니다. 제대로 된 선수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것도, 좋은 선수를 데려오는 것도 프런트의 책임이죠.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고, 성공률이 그리 높을수가 없는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올시즌 한화의 외국인 선수 계약은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배스가 실패했으면 얼른 새 선수를 수급해야 정상인데 션 헨을 데려오는 것에도 한참이 걸렸죠. 그리고는 션 헨이 실패한 이후에는 아예 대놓고 외국인 선수를 1명만 가겠다고 선언해버립니다. 감독이 타자라도 데려와달라 요청하는 것도 묵살하면서 말이죠. 선수층도 얇은데 외국인 선수까지 1명 부족한 상태로 시즌을 끌고 간다? 차 포 떼고 장기하는 셈이죠. 그리고 이건 결국 프런트가 제 할 일을 제대로 안 했다는 소리밖에 안됩니다.
코치진 인사도 문제입니다. 시즌초 프런트가 마음대로 수석코치를 잘랐다는 것은 감독의 수족을 자르는 것과 다를게 없죠. 프로야구판에서 팀을 말아먹기 제일 쉬운 방법 중에 하나가 구단이 나서서 현장 무시하고 제 입맛대로 인사권을 휘두르는 겁니다. 가뜩이나 안 좋은 분위기인데 수석코치를 멋대로 잘라내버리면 감독이 팀을 장악할 방법이 없죠. 구단이 나서서 감독을 레임덕으로 만들어놓고, 경질을 하려면 차라리 빨리 하던가 이제와서 자르는 건 아무런 효과도 없이 그냥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소리밖에 안된다는 겁니다.
시즌 전 전력분석 실패 역시 프런트 책임입니다. 김별명, 박사장님, 송신영 등등 전력 보강이 이뤄졌고, 유창식이 2년차를 맞아 제 역할을 할거라는 기대감과 작년의 아쉬웠던 분패를 생각하면 물론 작년보다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거란 예상은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한화가 올해 기대할 수 있는 맥시멈은 4강 진입 정도였을 겁니다. 위에 말했듯 이미 '안정적'인 전력을 갖춘 강팀들이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테니 말이죠. 넥센이 초중반 돌풍을 일으킨 것도 이제 그나마 1군 선수층 간에는 안정적인 전력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그 넥센이 후반들어 힘이 급격히 떨어지는 이유도 아직 2군까지는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게 원인이죠. 이런 판국에 1군 로스터 짜기도 힘겨운 한화가 겨우 특급 선수 한둘 영입했다고 당장 우승을 논했었다는 것은, 한화팬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화 구단과 프런트가 한국 프로야구를 대체 얼마나 우습게 알았기에 저런 소리를 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시뮬레이션에서 7위가 나오니 뭔가 잘못됐다며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는 일화는 한화 구단의 현실 직시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죠.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었다고는 하나, 이제 자신들에게 뭐가 부족하고 뭐가 필요한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은 없이 그저 허황된 꿈만 꾸고 있었다는 그들이 과연 프로가 맞기는 한걸까요?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한화 추락의 원인에는 물론 한대화 감독이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구단과 프런트의 2군 투자 부족, 제 할일 조차 제대로 안한 나태함, 그래놓고 특급 선수 한둘 데려왔다고 할 일 다했다는 듯한 게으름, 프로의식 부족이 제일 큰 원인입니다. 넥센은 차근차근 전력을 안정화 시켜가며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는데, 한화는 여전히 구시대적 구단 운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어요.
이번 한대화 감독 전격 경질이 화가 나는 이유는, 감독이 잘했다고 쉴드치려는 것도 아니고 감독 탓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단 책임이 더 막중하고 클텐데, 그리고 감독 하나 잘랐다고 뭐 당장 달라질 희망이 보이지도 않는데 이렇게 급하게, 시기도 부적절하게(자를려면 더 일찍 자르거나, 이왕 늦었으면 시즌 끝날때까지는 맡기거나) 잘라버린 이유가 딱 하나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네 잘못까지 몽땅 감독 한명한테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작으로 말이죠.
한화가 지금의 긴 암흑기에서 당장 벗어나기는 힘들어보입니다. 삼/슼/두/롯 4개의 강팀이 워낙 건재하고, 기아도 주전 줄부상의 악몽을 벗어나 선동렬 감독이 2년차가 되어 제 색깔을 드러낼때 부터는 강팀의 면모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넥센도 차근차근 성장을 하고 있고, 엘지는 한화랑 비슷한 외적인 문제(구단의 지나친 현장 간섭, 팀내 유대감 부족 등)가 있어서 그렇지 선수층으로만 따지면 한화보다 뒤지진 않는다고 봅니다(조인성 등 핵심선수들을 줄줄이 빼앗기고 시즌 최하위로 예상되었음에도 한화보다는 위에 있다는게 그 방증이죠..) 거기에 내년부터는 경쟁팀이 하나 더 생겨나는 판국이니.. 당장 순위가 올라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죠. 향후 몇년간 눈앞의 성적을 너무 기대하기보다는 내실을 다져가며 차근차근 한단계씩 올라가는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런트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지며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터인데 비겁하게 애매한 시점에 감독하나만 덜렁 자르고 넘어가려 드는 것 같아 화가 난다는 것이죠.
성적이 나쁘면 감독도 책임을 져야하고, 그 책임의 형태가 물론 경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팀의 부족한 점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쇄신의 목적으로 이뤄지는게 아니라, 서로 책임지기 싫어 떠밀다가 희생양 하나 잡아 꼬리자르기 식으로 이뤄지면 절대 안된다는 거죠. 한대화 감독의 경질은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에 미리 이뤄졌어야 하거나, 혹은 시즌 이후 재계약 포기라는 형태로 이뤄졌어야 합니다. 이 애매한 시점에 일어난 감독 경질은 꼬리자르기란 의혹으로 밖에 보이지 않네요.. 한화 구단은 제발 좀 팬들 생각해서라도 각성 좀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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