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1일째다.
어제는 자기 전에 친한 형에게 전화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오랜만에 놀이터 한복판에서 펑펑 울었다.
아 창피해. 아무도 안봤겠지. 나는 아빠가 마냥 사랑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돌아가신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복받쳐오를 것 같다.
어제도 그래서 울었던 것 같다. 엉엉
오늘은 주소지 이전을 했다.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 상태여야 입원할때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엄청나게 까칠하게 굴었는데 누나가 기프티콘으로 커피 한잔을 보내줬다.
기프티콘을 까보니 릴렉스하라고 써있었다. 고마웠다. 그 후로 릴렉스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은, 다니던 회사에 단기 알바로 복직했다.
프리랜서 계약이었는데 나는 그래도 본부장님이 나를 어느정도 단가로 취급해주시는지 가만히 모르는척 지켜보는 얌체짓을 했다.
단가를 후려치려는 기미가 보이면 바로 거절하고 간병에 집중해야겠다는 정신무장을 하고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무척 잘 쳐주셨고, 도의에 어긋나지 않게 잘 대해주셨다.
근무시간도 내 개인사정 우선으로 해도 상관없도록 플렉시블하게 잘 협의되었고
9월 11일까지 단기로 근무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의 배려가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본부장님이 페이를 말하는 순간 나는 바로 계약하겠다고 했고, 지금 이시간 후로 바로 업무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래요 나 쉬운 남자야.
1시간동안 프로젝트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구체적인 개발에 대한 일정을 짜면서 오후를 보냈다.
오늘은 이렇게 만족스러운 액수로 만족스러운 계약을 했다.
하지만 이게 중요한게 아니다. 엄마와 아빠의 추후 행보가 중요한거지.
아빠는 요양병원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나중에는 단호히 거부하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허리수술로 장기입원하게 되면 누구도 아빠를 봐줄수가 없다.
아빠는 그냥 집에 혼자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는데, 내가 볼땐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아빠는 슬슬 대소변을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좋아지셨고, 혼자 걸어다니지도 못하게 되었다.
결국 스스로 움직여서 다리를 계속 써서 재활을 해야하는데, 그걸 스스로 못하는게 문제인거다.
즉 지금 옆에 사람이 붙어있어야만 하는 상태인데, 엄마가 입원하면 그것도 불가능하다.
내가 일과 간병을 동시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병원으로 들어가서 지내시도록 설득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불편하다.
아빠 사실은 제가 후레자식인데요 입원을 하시는게 신상에 좋으실 것 같아요.
라는 내용의 말을 어떻게 이쁘게 해야 잘 설득할 수 있을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기분이다.
어떤 포지티브한 말도 나를 포지티브하게 만들어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오늘 6시에 칼퇴근을 하고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고 나니 굉장히 마음이 편해졌다.
이친구는 고등학교때부터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선생님이 되었는데, 옛날엔 남몰래 이친구를 좋아한적이 있었다.
물론 그 마음은 티낸 적 없이 조용히 혼자 정리했고, 예나 지금이나 친구로서 지내고 있지만.
내가 혹시 외로워서 얘랑 다시 밥이나 먹자고 연락을 한건가, 라는 자문을 해봤지만 대답은 No다.
어떻게 해도 연애하는게 상상이 안되는 이성이 있는 법인데, 내겐 이 친구가 그렇다.
오랜만에 만난(한 2년?) 그녀는 온갖 부업으로 살벌하게 돈을 벌어들여 여행과 자기 취미에 말 그대로 쏟아부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녀온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녀석의 얼굴은 민낯이었지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 이렇게 재밌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
얘도 힘들게 사는 앤데. 절대 집이 잘 사는애가 아니고, 온갖 현실적인 고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걸 내가 아는데.
그래도 그걸 이겨내고 재밌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나니
이렇게 안좋은 일에 파묻혀서 허우적거리는건 좀 한심하게 느껴졌다.
힘을 내야 한다. 지금 이렇게 내가 우울해하는건, 어리석은 짓이다.
부모님 두분 때문에 내가 힘들어하지만, 정작 두분은 더 힘드실거다. 씩씩해져야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활기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