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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eaders_5178
    작성자 : 달달무
    추천 : 10
    조회수 : 299
    IP : 211.58.***.74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2/12/02 23:50:56
    http://todayhumor.com/?readers_5178 모바일
    [오유과거]산문 - 몇 달 째 그녀가 우리 집 앞에 서 있다.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의 출몰 시간은 역시나 밤 9시. 말이 좋아 그녀지, 이 년은 몇 달이 지나도록 우리 집 앞에서 이렇게 하염없이 서 있기만 한다는 말이다. 몇 달 째 같은 옷을 입고, 차도 쪽을 바라보며 저렇게 멍하게.

     

    이 재수 없는 여자를 처음으로 본 건 소나기가 철철 내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러니까 비가 내리던 날부터 시작해서, 눈이 내리는 오늘까지도 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이 이름 모를 여자는 이렇게 차도 쪽만 바라보며 멍하게 서 있는 것이다.

     

    처음엔 예쁘고, 나와 비슷한 연령층으로 보여 관심이 갔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몇 달 째 같은 곳을 보며, 말도 없이 서있는 저 모습.

    섬뜩하다.

     

    물론 말을 걸어본 적도 있었다. “뭐 하세요?”, 그러나 묵묵부답으로 이 여자는 일관했다. 화가 나서 반말을 치기도 했다. “야, 들리냐? 아님 병신인가? 들리면 말을 해봐.” 라는 말에도 대답은 없었다. 욕도 해보고, 툭툭 치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내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를 한 적도 있었다. 신원 미상의 30대로 추정되는 한 여자가 우리 집 앞에 저렇게 하염없이 서있으니, 집에라도 데려다 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경찰의 대답은 간단했다. 매일 9시에 나타나는 걸로 보아, 그 전까지는 집에 있다 온 거 아니겠냐는 거였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내버려 두라는 거였다. 씨발 피해를 안주긴 개뿔 안 줘? 나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단 말이다. 왜 이웃들은 이걸 가만 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만 이렇게 거슬리는 거야? 나만?

     

    긴 머리가 치렁치렁한 뒤통수에 눈송이가 소복소복 쌓여간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어깨에도 눈이 쌓여가고 있다.

    넌덜머리나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러다간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다. 비 오던 여름부터 시작해서 벌써 5달째다. 이 년 정체를 밝혀내든, 정 안되면 죽여 버리든, 둘 중 하나는 해야겠다.

     

    집에 있는 식칼을 꺼내들어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창문으로 여자의 뒤통수를 보고 있다. 이 여자가 몇 시쯤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움직일 때까지 나는 이 여자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기로 계획했다.

     

    이럴 수가, 어젯밤엔 이 모습 이대로 잠들어버렸다. 이미 날이 샜고 거리에 그 년은 없다. 주머니에 식칼이 꽂힌 채로 창문 앞에 쭈그려 잠든 내 모습.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날 이렇게 만든 그 년의 정체를 오늘 밤엔 무조건 밝혀내리라.

     

    새벽 네 시 반.

    여자가 왼쪽으로 돌았다. 씨발. 움직이긴 움직이네. 저거 진짜 움직인 거 맞지? 잠에 취한 내 환각은 아니렷다. 잠시 잠이 깼다.

    어라, 웃고 있잖아.

    웃고 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저 년이 웃고 있어. 머리끝까지 쭈뼛 서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오늘은 안 된다. 오늘은 저 년이 어딜 가는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겠다.

     

    천천히 걷다 말고 멈춰 서더니.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노려본다. 이런, 으악. 으악! 썅! 온갖 쌍욕이 나온다. 안 되겠다. 도저히 안 되겠다. 이 년 도대체 뭐 하는 년이야 죽여 버릴 거야. 난 집을 박차고 나가 갖고 있던 식칼로 그 년을 미친 듯이 쑤셔버렸다. 소리도 안 지르는 독한 년. 성대가 없나? 다행히도 날 노려보던 그 눈은 이제 감겼다.

     

    내가 사람을 죽인 건가? 필요 없다. 경찰도 신경 안 쓰던 여자 한 명 쯤 죽은 건데 뭐. 내일부터는 이 년 때문에 맘 졸일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행복하다. 휴.

     

     

     

     

     

     

     

     

     

     

     

    “환자 번호 312번, 정신감정 결과입니다. 평소 이중인격을 앓아온 것으로 확인됩니다. 우리 병원에 입원한 지는 5달째입니다. 환자의 또 다른 인격은 30대 젊은 여성의 인격입니다. 환자와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눠온 결과, 인상착의가 상당부분 그의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어릴 적 자신의 어머니가 살해당한 뒤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입은 후, 자신이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어머니를 하나의 인격체로 만들어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특이사항은, 어젯밤 그의 인격이 사라졌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을 죽이는 방법을 택한 것 같더군요. 그런데……. 인격을 죽인 방법이, 환자의 어머니가 살해당하던 그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 같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살인범은 찾지 못했고, 환자 본인조차도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그 순간은 보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부검을 했던 당시 의사와, 사건을 담당한 형사, 그리고 환자 진료를 위해 자료를 건네 받은 저만이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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