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은 혼란스러운 머리속을 정리하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니, 누구나 이런 상황에선 냉정할수 있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무...무슨... 소리를...."
"드시죠"
어느새 청년은 물을 지훈의 앞에 내밀었다.
"우선, 물이라도 한잔 드시고 마음을 진정 시키시죠."
지훈이 물잔을 집어 물을 마실때, 사내는 이어 말을 이어갔다.
"우선 혼란스럽게 해드려서 죄송하군요, 하지만 저희가 이걸 바로 보여드리지 않았다면 저희를 믿어주시지 않았겠지요."
"...."
지훈은 긍정한다는 눈빛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사실 그 화면을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자신이 얌전히 사내의 말을 듣고 있었을지도 의문이었으니까.
"저희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김지훈씨와 같은 분들에게 복수의 기회를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복수의 기회..? 그런 말도 안되는...."
"음..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준비한 정보들을 들어보시면 복수를 하고싶어 지실테니까요."
마치 즐거운듯이 실눈을 일그러뜨리는 사내가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지훈은 곧 나오는 정보들의 충격에 모두 잊고 말았다.
"..... 이상이 저희가 조사한 사건의 전말입니다."
아까와 같이 지훈은 부들부들 떨수밖에 없었다.
같은 사람이 한짓이라고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저희가 아까 보여드린 동영상과 카카오톡 내용은 가해자들이 서로 주고받는걸 저희가 입수한거죠. 동영상중 일부는
인터넷에도 올라와 있더군요.."
"어떻게.. 그런짓을...."
"이제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생기셨을거라 믿습니다. 그럼, 이제 다시 저희 일에 대해 설명을 해드릴까요?
저희는 김지훈씨와 같이.. 복수를 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분들을 지원해드리고 있습니다."
"복수를 할 수 없다?"
"이런.. 아직 말씀을 아직 안드렸군요... 혹시.. 경찰들이 사건을 대충 무마하려는 낌새는 없으셨는지요?"
지훈은 경찰들이 했던 행동, 자신과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 조금... "
"아마 그랬을겁니다. 그 이유는.. 이봐! 명부좀 줘"
청년은 또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파일 뭉치 하나를 건넸다.
"자.. 여길 보시죠. 여기 나와있는 이름들이.. 동생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들입니다. 그중에.. 여기 보시면
김영철이라고 있죠? 검찰 고위 간부의 아들이죠. 그리고.. 여기, 정형식이도.. 유명한 재력가의 아들이죠."
"........"
"이제 아시겠죠? 김지훈씨께서는 당장 복수를 하려고 해도, 그들의 손끝하나 건드릴수 없을겁니다."
"...."
"아니, 실제로 경찰들이 수습을 잘해서인지는 몰라도, 김지훈씨께서는 사실여부도 모르고 계셨으니까요."
너무 충격적인 내용을 계속 접하다보니 오히려 머리가 냉정해지는 것일까.
지훈은 냉정하게 되물었다.
"그 빌어먹을 개새끼들을 찢어죽이고 싶은건 당연한겁니다. 저로서는.. 하지만, 이렇게 저를 도와준다고 해서
당신들에게 이득이 되는건 뭐죠?"
"하하, 그것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단지.. 언젠가는 선택의 기로에 서시게 될겁니다."
"선택의... 기로?"
"아아.. 그것에 대해선 지금은 자세히 말씀드릴수 없는것이 죄송할 따름이군요..하지만 저희는 그것으로 인하여
충분히 저희만의 이득을 얻고 있으니까요. 걱정 안하셔도 될겁니다"
일반적으론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할 추상적인 조건을 내걸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애초부터 연고 하나 없는 자신을 도와주는 자체가 의심스로운 상황 아닌가.
'저치들은 어떻게든 이득을 얻을수 있겠지.. 그렇다면...'
지훈은 사내가 가져온 정보를 다 보는 순간 결심했다. 이것들은 살가치가 없는 짐승들이라고.
히지만 사내의 말대로 실제로 그들에게 위해를 가할수는 없을것이다. 그들은 사회적 강자이기 때문에...
지훈 자신도 자세하게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살면서 겪고 배워온 모든것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이용할 수 있는건 다 이용해야 할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훈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 복수를 지원한다는 것은.. 어떤식으로..?"
"하하, 마음을 굳히신것 같군요. 일단 여기 적힌 곳으로 가십시오. 아, 지금 지훈씨의 모든것을 남겨놓고 가셔야 합니다.
말그대로 몸만 가는거지요."
".. 그게 무슨 말인지.."
"음. 지훈씨는 이곳에 가셔서 일종의 트레이닝을 받게 될겁니다. 모두 복수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시고..
설마 아무 준비도 없이 바로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안하셨겠죠?"
"....."
"그리고 지훈씨가 이곳을 떠나시면 저희도 준비해야 할것이 많으니까요."
"준비..라뇨?"
"아.. 지훈씨 본인만 동의하신거니까요. 혹시 어머님께서.. 실종 신고라도 하시면 곤란하거든요. 저희 나름대로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 제 가족관계까지 조사를 하신겁니까?"
"하하, 죄송합니다.. 직업이 이렇다 보니.. 이해하시지요. 대신, 어머니도 저희가 책임지고 티나지 않게 모실테니
지훈씨는 걱정안하셔도 될겁니다."
"이렇게 까지.. 도와주시는 이유는 모르겠네요"
"아아.. '그 때'가 오면.. 아시게 될겁니다"
사내는 씨익하고 웃었지만 역시, 정감은 가지 않았다.
지훈은 집요하게 묻고 싶은 생각이 차올랐지만 이야기 흐름을 봐서 쉽게 알려줄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훈은 직감했다. 이미 자신은 내릴수 없는 급행열차를 탄 것이라고.
하지만 내릴수도, 스스로 내릴 생각도 없었다.
'그래.. 그 년놈들을 찢어 죽일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겠어."
"그럼 어떻게.. 언제쯤 출발 하실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지훈은 가해자들의 목록이 적힌 명부를 구겨잡으며 잡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