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불법 관권선거 잇달아 확인돼... 관련 기사 삭제하거나 윗선에 막혀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경북 안동에서 새누리당이 관권이 개입된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언론이 일제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관련 내용을 다룬 보도가 사라지거나 취재를 완료한 기사가 데스크의 반대로 삭제된 사실도 확인됐다. 현역 국회의원이 관련 보도를 막았다는 정황이 나오면서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안동시의원 마선거구 천진숙 예비후보는 지난 3월 30일 안동시내 한 식당에서 지역구 내 새마을 부녀회원 등 15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는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도 동석했다. 문제는 식사 비용을 시의회에서 처리한 것이 확인되면서 불거졌다.
천 예비후보는 식사가 끝나고 비용을 외상했다. 이후 식당 주인은 외상을 갚은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식사 비용을 갚기 위해 온 사람은 시의회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은 신용카드로 식사 비용 19만원을 계산했다. 식사 비용 결재 흔적은 시의회 지출결의서에 발견됐다. 결의서에 따르면 식사 비용 명목은 '의회운영업무추진비'로 명시돼 있었고 세부 사항으로 '2014부처님 오신 날 봉축탑 점등식 참석의원과 간담회시 식사제공'이라고 써놨다. 지역구 유권자를 상대로 식사를 하는 것도 부적절한 선거운동일 수 있는데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시의회의 공금까지 유용하고 공문서까지 위조한 것이다.
한 종합일간지 지역 취재본부 A기자는 식당 주인과 인터뷰를 하고 신용카드 결재 영수증과 시의회 지출결의서까지 확보한 뒤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그리고 A기자는 "안동 지역에서는 시의회 예산이 의원들의 선거운동에 사용되는 등 쌈짓돈으로 전락했다는 비판과 함께 시의원 예비후보의 밥값을 시의회 공무원이 공금으로 결제한 것은 관권선거의 한 절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라고 기사를 썼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는 현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취재계획을 보고하고 지면 배치까지 확정돼 있는 상태였는데도 기사가 최종 작성됐지만 데스크가 일명 기사를 '킬' 시켰기 때문이다.
A기자는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애초에 취재 계획을 발제해서 오케이 사인을 받고 기사를 작성했고 취재 지시까지 받았다. 중앙에서도 종합사회면으로까지 배치가 됐는데 보도를 미루더니 갑자기 '액수가 적다. 팩트가 부족하다'고 해 기사가 나오지 못했다"고 전했다.
A기자는 "관련 내용은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새누리당과 시의회가 조직적으로 관권선거를 은폐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기사가 빛을 보지 못하면서 A기자는 취재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를 지역 방송사, 지역 일간지, 인터넷 언론사 등에 제공했지만 관련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관련 내용을 인지한 경찰 역시 사건 초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안동 시의회 지출결의서 전부를 조사하겠다며 수사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식사 비용을 '의회운영업무추진비'로 처리한 안동시의회 지출결의서 내용
기사가 삭제되는 일도 발생했다. 인터넷 매체 FMTV 경북총국은 지난 15일 < '안동지역 불법선거 도 넘었다'는 지적 일어 > 라는 기사를 통해 열린사회를 위한 안동시민연대의 성명서 내용을 바탕으로 천진숙 예비후보의 관권선거 개입 문제를 보도했다. 하지만 해당 기사는 인터넷에 올라온 지 1시간이 되지 않아 삭제됐다.
더욱이 식사 자리에 동석했던 김광림 의원이 논란이 불거지자 언론사들을 상대로 입막음을 했다는 정황까지 나왔다.
천진숙 예비후보는 식당 주인과 나눈 대화에서 '시의회 쪽 관계자가 와서 결재했는지 안했는지 모른다고 하라.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이 지역 언론 보도를 막는 작업을 해놨다. 증언하게 되면 모두 다친다. 나 하나만 내려놓겠다(사퇴)'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끝까지 모른다고 하면 선관위에서 문제가 안된다고 했다'는 내용의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대화 내용은 녹취록으로도 확보돼 있다. 기사 보도가 윗선에서 차단되고 기사가 삭제되는 일도 천 예비후보가 전한 김광림 의원의 언론보도를 막았다는 작업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이유다.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은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관권 선거와 관련해 "경찰 조사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시 옥동에 거주하는 김모(47)씨는 "불법과 부도덕이 명백하게 드러난 사건에 대해 안동을 포함한 경북 지역 전 언론사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며 "지역 실세 권력들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소문이 굉장히 무성했는데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통장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벌인 정황이 포착돼 선관위로부터 고발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달 23일 장대진 새누리당 도의원 후보 배우자가 송현동 주공아파트 통장 이모씨를 동원해 부녀회 임원 및 주민대표 모임 행사를 개최했다. 이들은 부녀자 회의실에 모여 불을 끄고 새누리당 후보자를 기다리는 동안 주민들에게 발각되기도 했다. 해당 모임에는 새누리당 장대진 도의원 후보와 김성진 시의원 예비후보 뿐 아니라 권영세 안동시장 후보도 동석했다.
안동시 선관위는 지난 2일 장 후보의 배우자와 통장 이씨를 '서면 경고' 조치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이상규 안동시선관위원장(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장)이 문제를 제기해 이례적으로 재심의에 들어가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정 후보 배우자와 통장 이씨를 고발 조치했다. 권영세 안동시장 후보와 김성진 시의원 후보, 장대진 도의원 후보 등 3명에 대해서도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열린사회를 위한 안동시민연대 강서구 집행위원장은 "시의회 판공비를 현직 의원의 선거운동에 써 온 것이 관례였다면 국민의 세금을 불법적으로 관권 선거에 동원한 것이어서 분노할 수밖에 없다"며 "안동 지역에서 벌어진 이 같은 일은 명백한 관권선거다. 진실규명과 함께 책임자를 법적 처벌해야지만 불법 행위를 근절하고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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