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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isa_514822
    작성자 : 혼돈의강
    추천 : 16
    조회수 : 1265
    IP : 175.120.***.65
    댓글 : 40개
    등록시간 : 2014/05/21 00:02:04
    http://todayhumor.com/?sisa_514822 모바일
    '노무현 대통령, 이제 당신을 내려놓습니다' 윤태영 전비서관(오마이뉴스)
    0520-4.png

     윤태영씨는 왼쪽 두번째입니다. 천호선씨도 보이네요.





    윤태영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5월 20일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 양해를 얻어 전문을 옮겨 싣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이제 당신을 내려놓습니다

    윤태영 전 비서관의 참회록…못 가진 사람 편이었던 그를 기억하며

    윤태영 전 참여정부 청와대 부속실장

    2009년 5월 19일. 화요일의 늦은 오후.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역사 안에서도 봄은 떠나고 있었다.

    초여름의 길목,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선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부지런한 걸음으로 떠나는 이도 있었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이도 있었다. 봉하에서 돌아온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네 시간 전 진영읍내에서 봉하 사저의 비서들과 식사를 함께 한 나는 곧바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식당을 나오기 직전에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구속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보석 심리가 열렸는데 최종 결정이 다시 연기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큰 숨을 길게 내쉬었다. 크게 낙담할 그의 표정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지만, 그의 굳은 얼굴은 시선의 정면에 그대로 멈춰있었다. KTX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그 모습을 지우기 위해 수십 번 머리를 가로저어야 했다.

    서울역사를 나서기 전 매표소 앞에서 잠시 망설임이 있었다. 코레일 비즈니스 할인카드의 이용 횟수가 마침 이 날로 한도를 다 채운 때문이었다. 3개월이나 6개월이 기한인 새로운 할인카드를 구입할 것인가의 망설임이었다.

    이날 오전 봉하 사저에서는 그가 자리한 가운데 회의가 열렸었다. 그 자리에서 나를 포함한 집필 팀은 해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6개월여에 걸친 임무가 끝난 것이었다. 팀원들과 논의한 끝에 내가 해체를 제안했다. 그는 아무런 반대의견 없이 받아들였다. 미완의 과제들은 분담되었다. ‘진보주의 연구’는 미래발전연구원이, 대통령 회고록은 내가 전담하기로 했다. 초고를 완성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달라고 그에게 청했다. 이로써 당분간 그를 대면할 일이 없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지난 반 년 동안 봉하에 내려와 머무는 날들이 많았었다. 그의 집필 작업을 보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임무도 끝이었다. 사실상 그를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볼 기약이 없는 셈이었다. 회고록 초고가 언제쯤 완성될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도 특별히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비즈니스 할인카드를 구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망설임은 있었지만 나는 냉정함을 선택했다. ‘대통령께서 힘드시지는 않을까?’ 하는 일말의 죄송스러움이 있기는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으며 카드 구입을 포기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나흘 후 아침.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찍 잠에서 깨어나 거실을 맴돌던 중이었다. 김경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틀이 멀다 하고 언론보도 대응과 관련한 통화를 하던 터였다. ‘조간에 또 해괴한 기사가 났다보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김경수의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

    “대통령님께서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리신 것 같습니다.”

    방 한쪽 구석에 기댄 채 주저앉았다. 수십 분이 지난 후 김경수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유서 같은 게 컴퓨터에 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눈앞이 하얘지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이웃에 사는 송인배가 ‘내 차편으로 서둘러 내려가자!’고 했을 때 나는 망설였다. 그곳에 내려가는 것이 두려웠다. 끔찍한 현실을 그대로 대면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강권에 못 이겨 차에 몸을 실었다. 서거 소식은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충청도 구간을 통과하고 있을 즈음에 접했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슬픔도 안타까움도 아니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죄책감이 있었다. 또렷이 되살아오는 그의 한마디가 있었다. 한 달 반쯤 전인 4월 초, 집필 팀 회의를 마치고 서재를 나서던 그가 갑자기 뒤돌아서며 던진 말이었다. 그 말이 귓속을 타고 들어와 가슴을 아프게 후벼팠다.

    “내가 글도 안 쓰고 궁리도 안하면 자네들조차도 볼 일이 없어져서 노후가 얼마나 외로워지겠나? 이것도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글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네들과도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없으면 나를 찾아올 친구가 누가 있겠는가?”

    이 말에 시사(示唆)가 있었다. 암시가 숨어 있었다. 그렇게 생각되었다. ‘이 글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네들과의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 그렇게 끝난 것이었다.

    왜 몰랐을까? 그 안타까운 호소를 왜 잊고 있었던 것일까? 질곡의 봉하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무의식이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어쩌면 집필팀의 해체에 동의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또 우리를 붙잡을 힘이 없었던 게 아닐까?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붙잡아야 하지만 더 이상 자신에게는 이들을 붙잡을 근거가 없다고 포기해버린 게 아닐까?

    지난 반년 동안 집필 팀은 말과 글에 관한 한 그의 수족 역할을 해왔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글의 한 대목에서 나는 내가 감당해야 할 죄책감의 근거를 확인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꽉 막힌 심장에서 피가 역류했다. 깊은 후회의 감정이 모든 감각을 마비시켰다.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눈시울의 뜨거움도 없었다. 차는 부산대 양산병원을 향해 달렸다. 이십 년 전 처음 대면했던 초선의원 노무현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떠올랐다.

    다른 국회의원과 ‘다른’ 국회의원 ‘노무현’

    1989년 초 여의도의 국회의원회관. KBS 소유의 아파트를 빌려 의원회관으로 사용하던 시절. 큰 방 하나를 둘로 나눈 작은 공간들이 비교적 젊은 초선의원들에게 배당되었다. 그의 사무실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88년 5공청문회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의원회관에 근무하는 젊은 야당 보좌진들에게 인기 최고의 우상이었다. 참모진과 허물없이 친구처럼 지내는 노 의원의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마침 친구와 학교 후배들이 그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인사도 드릴 겸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외부 일정을 마친 노무현 의원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내 친구를 보자마자 억센 부산 사투리가 섞인 욕을 퍼부어댔다. 내 친구인 보좌관이 요즘말로 며칠 동안 잠수를 탄 것을 놓고 꾸지람을 하는 것이었다.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전긍긍 하는데, 이번엔 친구 녀석이 한술 더 떠서 의원에게 대들었다. 물론 욕은 아니었지만 ‘뭘 그런 것 갖고 그러시냐?’는 투였다.

    가만히 오가는 말을 듣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말만 거칠게 할 뿐, 내용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대화였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권위주의와 수직적 문화가 지배하던 당시의 의원회관 분위기에서는 파격 그 자체였다. 청문회 스타의 욕설, 그리고 보좌진과의 수평적 대화. 정치인 노무현과의 첫 만남이 나의 뇌리에 아로새겨놓은 키워드였다.

    그는 고상한 척하지 않았다. 다른 국회의원과 많이 다른 국회의원이었다. 없는 권위를 굳이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기존의 권위에 맞서는 사람으로 분명히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속칭 ‘비주류’임을 드러내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그 후 20년에 달하는 정치역정 동안 그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 시간을 관통한 흐름이었다.

    그는 못 가진 사람, 못 배운 사람의 편이었다

    그는 비주류의 대변자였다. 못 가진 사람, 못 배운 사람의 편이었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과 기회주의자들의 반대편이었다.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직한 사람, 미련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착한 사람에게는 한없는 애정을 표현했다. 권력으로 남을 짓밟고 이웃의 아픔을 무시하는 못된 사람에게는 끝없는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킨 그의 캐릭터가 있었다. 변호사였고 국회의원이었지만 그는 끝내 기존 주류사회로의 편입을 거부했다.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90년 3당합당이었다. 그는 대세의 정치를 거부했다.

    3당합당을 계기로 정치인 노무현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꼬마민주당에서 그의 야권통합노선을 지지했다. 잠시 출판사에 몸을 담고 있을 때에는 자서전을 펴내는 일을 맡았다. 구술 과정에서 그의 대책 없는 솔직함을 접할 수 있었다. 예전의 잘못된 여성관이나 부부싸움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남다른 모습이 그의 세계로 한걸음 더 다가서게 만들었다.

    가끔 마주칠 때마다 그는 따뜻한 눈인사를 건네주었다. ‘우리 편’이라는 표현으로 애정과 관심을 표현했다. 낙선이 거듭된 오랜 원외 생활과, 기득권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캐릭터 탓에 그는 항상 외로운 처지에 있었다. 그 빈 공간을 메워준 것은 동지적 관계의 젊은 참모들이었다.

    2001년 초에는 나도 본격적으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캠프에는 명망가도 없었고 의원급도 거의 없었다. 아무도 그를 대통령감으로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는 기존 정치권의 인식으로는 철저한 이방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자산이 있었다. 노사모라는 팬클럽이었다.

    우월의식과 싸우는 일도 대통령의 몫이었다

    “에이씨!”

    누군가 이야기하면 고상한 영어발음이 되고 노무현이 이야기하면 욕이 된다. 물론 우스갯소리이다. 하지만 꼭 우스갯소리만도 아니다. 대통령후보 시절 ‘안시장’이라는 표현이 억센 부산사투리 억양 탓이었는지 일간지에 ‘에이썅’이라는 비속어로 둔갑되어 보도되는 해프닝이 있기는 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대통령이 된 이후였다. 일부에서는 아예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2004년의 탄핵소추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여당이나 일부 언론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같은 진영 내에도 일부이긴 하지만 그런 흐름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고졸 학력으로 거침없는 언사를 구사하는 대통령을 불안하게 보는 사람들은 곳곳에 있었다. 법조계는 물론, 관료사회나 학계에도 있었다. 외부의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조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면 그를 잘 모르는 인사는 한 수 가르쳐줘야 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곤 했다. 일부러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감추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우월의식과 싸우는 일도 대통령의 몫이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사석에서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내가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겪은 것이 있다. ‘왕따’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옛날 어린 시절에 깡패들이 동네를 휩쓸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 강자들의 기득권 질서에 부닥치는 느낌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기득권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다. 예전에 운동하면서 대우조선에 갔을 때 꼭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냥 일반적 분위기 수준이 아니고 아주 심각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그렇게 왕따를 당해왔던 것 같다. 독재와 반독재가 대치하는 지점에서 왕따가 되면서 기득권 질서의 이단으로 몰린 것이다. 독재·반독재의 전선으로 밀고 당긴 것이 아니라 기득권 질서의 이단자로 몰린 것이다. 상징적 표현이 바로 ‘김대중은 빨갱이’이다. 그렇게 규정하면서 기득권 질서에 도전하는 사람으로 몰아간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으면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정말 좋은 책 한번 만들어보세”

    하나하나가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는 타협하기 위해 때로 대화의 손을 내밀기도 했다. 돌아오는 것은 냉정한 거절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세력의 부족함을 느꼈다. 깨어있는 시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기댈 수 있고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역시 말과 글이었다. 말과 글로 깨어있는 시민을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2005년 말 대통령은 부속실장이던 나를 연설기획비서관에 임명했다. 말과 글을 전담하라는 취지였다. 더 밀도 있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라는 의미였다. 큰 기대였다. 그렇게 그는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설명해줄 우군을 항상 원하고 있었다. 2006년 가을, 대변인을 겸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모처럼 외곽으로 나들이 가는 일정에 그가 수행을 지시했다. 평강식물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나에게 제안했다.

    “퇴임하면 봉하로 가세. 가서 우리 정말 좋은 책 한번 만들어보세.”

    그 후 나는 오히려 청와대를 떠났다. 대통령이 퇴임하기 1년 전이었다. 사인(私人)의 신분이었지만 대통령은 그래도 수시로 청와대 관저로 불렀다.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주겠다는 제안도 했다. 자신의 언행을 기록하며 말과 글을 다듬는 일을 계속하라는 것이었다. 그해 여름 대통령은 봉하로 같이 가자는 청을 거두었다. 그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내었다.

    “자네도 정치하려는 생각이 있다고 누가 그러던데 사실인가?”
    “네, 결정한 것은 아니고 고민 중입니다.”

    대통령이 단호한 어조로 나의 말을 잘랐다.

    “자네는 정치하지 말게. 나와 책을 쓰는 일을 계속 같이 하세.”

    국민의 손가락질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봉하로 내려간 퇴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리적 위치가 활동을 제약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 대신 끝없이 사저 앞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있었다. 그들과 소통하는 것은 새로운 기쁨이었다. 하지만 오래갈 수는 없었다. 민주주의 2.0의 개발을 통해 온라인 공간에서 토론의 장을 마련하려던 일도 실패로 끝났다. 그의 도전은 한 풀 꺾이고 말았다. 이른바 기록물 사건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글로 좁혀지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출판사를 차릴 것을 지시했다. 글을 써서 책을 만들고, 책을 팔아서 깨어있는 시민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물론 자기재생산도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해 늦가을에 그는 결국 나를 봉하로 불러 내렸다. 양정철도 함께 내려오도록 했다. 형님(노건평)이 구속되는 상황에서 그의 선택지는 더 이상 없었다. 오로지 책읽기와 글쓰기에만 집중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출판을 준비하던 사무실을 접고는 짐을 싸들고 봉하로 내려갔다. 내가 겪고 있던 깊은 우울증조차도 그는 모두 자신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위로하며 작업을 독려했다. 객관적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글에 집중하려는 그의 생각을 어지럽히는 뉴스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일주일에 서너 차례 회의에만 집중했다. 거기에서 시스템을 만들고 글의 뼈대를 만들었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버티는 방법이었다. 삶의 동력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다.

    4월 초 퇴임한 대통령과 봉하에서 일년을 같이 지내다시피 한 강금원 회장이 구속되었다. 이어서 정상문 비서관이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집필 회의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홈페이지에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나는 봉하를 떠나 집으로 올라왔다.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날이었다. 온 국민의 손가락질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4월 말 그는 검찰에 출두했다. 나는 봉하에 내려가지 않았다. 가서 위로를 해드려야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아침부터 차를 몰고 외곽을 방황하다가 어느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 두 병을 샀다. 편의점 내부의 TV 화면에 헬기에서 찍은 대통령의 차량 행렬이 보였다. 나이가 지긋하신 주인아저씨가 나를 흘끗 보며 말했다.

    “이런 날 술이라도 먹어야겠지요.”

    5월이 되었지만 시간은 여전히 더디 흘렀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그가 나를 찾았다. 집필 팀 회의를 재개하니 다시 내려오라는 지시였다. 집필 팀은 함께 미니버스를 타고 사저에 출입했다. 그래야 카메라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래도 회의는 계속되었다. 가끔씩 말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있는 그의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그는 괴로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5월 14일 목요일, 오전 회의를 마치고 나는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그가 이튿날 오전에도 회의를 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는 매일 회의를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여전히 그리운 사람이다

    2009년 5월 25일, 서거 이틀 후의 일이었다. 봉하마을 인근 공단지역의 식당에서 이병완 비서실장, 양정철 비서관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TV 뉴스를 보던 주인 할머니가 우리 보고 들으라는 듯 한마디를 했다.

    “쯧쯧 서울대 나왔으면 저리 되었겠나?”

    그 한마디가 아프게 가슴을 쳤다. 목구멍으로 밥을 넘길 수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문구를 보면 더욱 민망했다.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이었다. 글쓰기에 목말라 있던 그였다.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말벗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차마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했을 뿐, 그는 어쩌면 간절하게 무언의 호소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회한과 자책감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영결식과 화장을 마치고 봉하로 돌아올 때까지 일주일, 나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옆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눈물이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수의로 말끔하게 갈아입고 평안한 표정을 되찾은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에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울음이 터진 것은 사십구재가 치러지고 안장식이 끝난 후의 일이었다. 귀경하기 위해 묘역을 찾았을 때 비로소 나는 눈물을 쏟았다. 정말 한없이 울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다시 울지 않았다. 자책감이 눈물샘을 완전히 막아버린 듯싶었다.

    어느 덧 5년의 시간이 갔다. 5년 내내 심신을 괴롭히는 병들과 싸워야 했다. 힘겹게 기록을 정리했고 첫 책을 펴냈다.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두 달여간 어지럼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이 되면 꿈에 그가 나타났다. 나중에는 제발 나타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올렸다. 그 5년 동안 책을 펴낼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오기를 기다렸다. 적어도 그의 언행이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되지 않는 상황을 기대했었다. 연목구어였다. 그는 여전히 여당에 의해서든 야당에 의해서든 현실정치에 살아있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출간을 늦출 수도 없었다.

    가슴에 응어리로 맺혀있던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렇게 해서라도 그에 대한 자책감을 덜어내려는 노력이다. 내가 자유로워져야 조금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그를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가 나에게 준 과분한 사랑,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과 글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 제대로 보답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는 여전히 그리운 사람이다. 힘겨운 정국 상황에서도 비서의 아침 첫 인사에 활짝 웃으며 화답하던 표정, 기자와의 산행 약속시간에 늦자 모자를 쓴 채 관저의 복도를 성큼성큼 뛰던 모습, 비서들의 무거운 분위기를 일거에 날려버린 상쾌한 휘파람 소리, 언젠가 순방국의 휘황찬란한 궁전 내부를 보다가 잎이 큰 화초를 목격하고는 혼잣말로 ‘저거 쌈 싸 먹으면 좋겠다’며 은근히 야유를 보내던 유머, 또 다른 나라에서 마주한 엄청난 규모의 호텔 건물 앞에서 ‘게가 구멍이 크면 죽는다’며 일침을 놓던 특유의 입담, 비서의 잘못에 크게 화를 내며 꾸짖어 놓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분위기를 풀어주던 그 미소에 이르기까지, 이제 그 모든 것을 가슴에 묻으며 놓아드리려고 한다.

    진정한 기록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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