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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7 16:51수정 : 2014.05.17 17:07
레드기획
‘삼성 방송’이라고 호명되는 집단에서
최소한 개인 손석희는 실패하지 않았다
몇 년 전, 그러니까 손석희 사장이 아직은 교수이던 시절 한 언론계 선배는 손석희가 수년째 ‘신뢰받는 언론인’ 1위를 차지하는 것을 두고 “하여간 잘생긴 사람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했다. 맞다. 심지어 그는 잘생기기까지 했다. JTBC 보도담당 사장 손석희, 당대 가장 영민한 뉴스의 앵커 그리고 가장 차가워서 뜨거운 언론인.
“삼성이란 언터처블은 없다”
손석희가 JTBC를 어떻게 바꾸었느냐에 대해선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JTBC라고 쓰지만 종합편성채널로 묶어버리고, 따로 강조점을 두어 ‘삼성 방송’이라고 호명하는 그 집단을 과연 일개인이 돌파할 수 있느냐를 ‘관전’하고 싶어 했다. 이건 결론이 났다. 그는 해냈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훨씬 전부터 그의 뉴스는 ‘보도’라고 하는 사회적 합의의 원형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였다. 국지적 차원에선 비교급으로 삼을 방송 뉴스가 없다고 할 정도의, 상대적으로 독보적인 완성도였다. 지상파 방송의 한 기자는 “그 뉴스룸이 우리 뉴스의 내일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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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16일, JTBC 기자가 구조된 단원고 학생에게 사망한 친구의 이름을 언급하며 질문을 던져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사과하는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JTBC 화면 갈무리 |
손석희의 성패를 가름할 잣대라고 평가받던 삼성 문제에서도 그는 기술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정면으로 마주했다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측면으로 피해가지도 않는 적절한 ‘강단’을 보여줬다. JTBC의 한 부장급 기자는 언젠가 한 토론회에서 “손 사장 이후 삼성이라는 언터처블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그런지의 여부는 둘째 문제다. 손석희의 JTBC가 삼성이란 ‘트라우마’를 갖고 있지 않으며, 이제는 삼성과 상관없이 ‘아비튀스’를 구축할 수 있다는 보편 인식을 말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최소한 개인 손석희는 실패하지 않았다.
손석희에 대한, 손석희 뉴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탐구돼야 한다. 손석희가 그저 실패하지 않음에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 것일까. 손석희는 시스템에서 쫓겨난 자였다. 한때 그는 저기 저 ‘부조리한 공적 영역에 정의로운 사람’이 있음을 알리던 증표였다. 포승줄에 묶여 수의를 입었지만, 믿을 수 없이 해맑게 웃던 그의 모습은 이른바 ‘방송 민주화’라는 것이 누구의 힘에 의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가장 적확하게 잡아챈 기록이었다. 누구도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이도 부정하지 않던 ‘언젠가 손석희 MBC 사장’설은 방송 민주화 이후에 그런 귀결이 순리라는 믿음의 산물이기도 했다.
손석희는 그 시스템에서 가장 잘 단련된 ‘무기’였다. 사생활에서조차 ‘중립자’를 표방하며 <100분 토론>과 <시선집중>을 통해 성역 없는 말솜씨란 무엇이고, 말로 시대를 구획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지속적으로 입증해왔다. 그 세월 동안 손석희는 언제나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이었고, 방송이란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만족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우리도 한때 가졌다고 믿던 빛나는
그 손석희를 쫓아낸 것은 놀랍게도 MBC라고 하는 시스템이었다. 손석희가 화려했던 시절에 이미 달성됐다고 치부되던 방송 민주화라는 시스템은, 그러나 ‘악당’들에 의해 쉽게 파손됐고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아무렇지 않게 범하기 시작했다. MBC를 상징하던, MBC라는 집단의 구심이 되던, 그래서 사람들에겐 그들이 곧 MBC이던 이들이 속절없이 솎아졌다. 취재에 배치되지 못한 기자들은 방황했고, 아나운서들은 마이크를 잃었다. PD의 저널리즘은 금지됐고, 노동조합의 활동은 처절한 불법이 됐다. 그 결과, 뉴스는 과거 어느 날만큼이나 평화로워졌고, 저널리즘은 순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석희는 그 MBC에서도 버텼다. 과거 손석희는 한 인터뷰에서 1992년 MBC 파업 상황과 자신의 현재를 회고하며 “기회주의자였던 나야말로 노조 활동으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당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참여해본 일원만이 할 수 있는 후일담이자, 그 과정의 깨달음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권리가 어떤 수준으로 합의돼 있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좋은 언론인은 어느 사회에서나 희소한 자원이다. 말하자면 손석희는 한국 사회가 정당한 시스템을 구축하며 배출해낸 가장 희소한 자원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그를 시스템은 쫓아냈고, 비난받기 쉬운 개인이 된 그는 모두의 냉소를 견디며 붕괴된 시스템 바깥에서 기꺼이 시스템을 구축해가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시스템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가 도저히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지점에 좌표를 설정하고 스스로 시스템이 되겠다고 돌진하는 모습에 뭔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세월호 참사 첫날, 손석희는 방송 역사상 유례없던 사과를 했다. 그 사과의 옳고 그름, 아쉬움과 호불호를 떠나 그는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를 대중에게 직접 속삭일 수 있는 유일한 언론인이다. 대중에게 진심을 속삭일 수 있는 시스템. 스스로 시스템이 된 사내. 이제는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지 더듬어지지조차 않는 기자 사회, 그 말석에서 보기에 그는 경외다. 이제는 사라진, 그러나 한때 분명 우리도 가졌었다고 믿던 빛나는 시스템이다.
김완 <미디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