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사진을 더 찾을 수가 없네요 그래서 부분부분 사진과 짧은 에피소드를 적어봤습니다.
1.은하철도 999는 사실 노아의 방주다.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늦은 밤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날은 여전히 덥고 습했으며 여기에 여행오는 커플들이 손을 잡고 안다니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탈 칸 앞에 대기하기 위해 천천히 걷는데 멀리 승차선에 있는 가로등이 수명이 다했는지 껌뻑껌뻑 거렸다.
나는 신나는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을 들으며 걷고 있는데 순간 친구가 손으로 나를 가로 막고 멈칫 거렸다.
"아... 왜 더워죽겠는데 왜 남의 가슴을 만져싸"
친구는 아무말 없이 하늘 쪽을 유심히 보고만 있었다. 곧바로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나의 시선이 따라갔고 도착한 곳은 껌뻑껌뻑 거리는 가로등이였다. 그리고 왜 껌뻑껌뻑 거리는 지 이해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콘스탄틴의 키아누리브스가 차도에서 벌레들로 뭉쳐진 괴물과 싸우는 장면이었다.
수십의 아니 수백의 메뚜기떼들이 가로등을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엄지손가락의 크기였다.. ㄷ ㄷ ㄷ;
우리는 그 악마들을 물리치고 기차에 탈 수 있었고 나는 중간에 입벌리고 자다 그 악마중 하나가 내 구강상태 점검을 불시에 왔었다는 것을
친구의 증언으로 알게되었다.... 까딱하다가 강제 베어 그릴스가 되어 시식할 뻔했다...
(차마 친구는 그 악마가 너무 무서워 물리치지 못했다고 한다. 절대로 악마숭베하기 위해 지켜본 것이 아니라 했다...ㅅ)
기차 안에는 모기, 메뚜기. 거미 등 많은 숲속의 친구들이 동행했었다.
*혹시나 인도 기차여행중 갑자기 멈춰서 한참을 안가게 되면 딱 두가지다. 기관사가 급한 볼일이 생겼거나 가는길이 기관사 동네라서 아는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떨어서 잠시(?) 정차중인 것이다. 그럴 때는 꼭 인정을 베풀어 한숨 푹 주무시길 대신 입을 벌리지 마세요..
2. 비를 몰고 오는 자에게 자비를..
나는 희한하게 내가 머무는 곳에는 항상 비가 동반했다. 인도역시 다를 바 없었다. 도착한 첫날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우리가 북인도를 점령하고 네팔로 넘어 갈때까지 비구름이 우리를 따라왔다. (한달중 보름이상 비가 왔다)
우리는 어느 마을에 도착하고 숙소에서 짐을 풀고 쉬는데 비가 그쳤다. 그리고 우리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근처에 유명한 전통 춤꾼이 있다길래 금방 보고 오면 되겠지 하고 전통춤을 보러 갔다. 거의 끝날쯤 비는 미친듯이 왔고 거기 있던 사람이 지금 밑에 마을로 못내려간다 그러니 여기서 하루 자고 가라고 제안했지만 우리는 민폐를 끼칠 수 없어서 자고 갔다..응?
아침이 되니 비는 그쳤지만 너무 많은 비가 내려 마을이 물에 잠겼다. 물은 내 허리까지 잠겨 있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물을 헤쳐서 숙소로 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건 그냥 헤쳐간다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인도는 거리에 소들이 많다! 개들도 많다! 고로 응아도 많다!!!!!!!!!!!!!!!!!!!!!!!!!!!!!!!
한참을 물을 헤치고 가다가 나는 흠칫 놀랏다 사람머리가 떠내려가는 것이였다!! 아아!!! 아악!! 나도 모르게 그사람쪽으로 향했고 나는 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돌아가야했다. 그건.. 그거슨.. 사람머리만한 소 응아가 우리와 함께 헤엄치면 떠내려왔던 것이다.
마치 그 소 응아는 우리에게 " 님들 수영 못함? ㅋㅋㅋㅋ " 듯한 자태로 빠르게 내려갔다.
그날 나는 하루종일 비누칠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그 마을에 찼던 물은 빠지고 마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굉장히 여유롭다 못해 평화로웠다.
심지어 도랑에 비오던날 한 아기가 물에 휩쓸려 빠져죽었는데도 저렇게 옆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참고로 아이가 죽으면 그 시체에 경찰을 제외하고는 건드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사람들이 쳐다보기만 하길래 이상하다 생각했었답니다)
2. 님아 그 밥을 빨리다오
보통 인도나 네팔에서 아침은 새벽6시쯤 나가서 빵을 사가지고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곤함과 게으름형님이 동시에 오시는 바람에 9시쯤 슬금슬금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친구와 나는 간단하게 토스트와 볶음밥을 시키고 이런저런 오늘의 계획과 우리는 왜 여자사람조차 주변에 없는가에 심각한 토론을 했다.
한참 이야기후 우리는 여친을 못만드는게 아니라 안만드는거다 라며 결론을 냈다. 그시간이 10시였다.. 10시.. 우리느 9시쯤 음식을 주문했었다.
한시간이나 안나왔다. 우리는 인도이모에게 우리 밥 안나왔다라며 몸뚱아리를 굴리며 겪하게 어필했고 인도이모님은 웃으며 지금 하고 있다고 기다리라 했다. 그리고 밥이 나왔다. 단순한 야채볶음밥에 딸랑 토스트인데 11시가 다되어서야...나왔다.. 강제 아점이 되었다.
다른 식당도 거의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다만 큰 레스토랑이나 페스트 푸드점은 빨리 나옵니다. 동네 식당이라..) 도데체 뭐하는데 이리 걸리지 하며
주방장을 주시했다.
만들다 갑자기 담배를 피우고, 만들다 갑자기 동네아는 형과 대화를 하고, 만들다 갑자기 사라진다.
역시!! 인도는 여유로워 아하하하 아주 !!!! 여유롭다!!!!! ㅅ ㅂ
하며 을의 입장이 되어버린듯한 느낌으로 주시면 감사하지요 하며 허겁지겁 먹기만 했다.
* 인도의 페스트 푸드점 (맥*날드 같은) 곳은 레스토랑 식이다. 자리에 앉으면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 준다.)
3. 그들이 사는 세상
인도에 도착하게 되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구걸하는 사람과 빵빵거리는 차와 릭샤들이다. 그중에 구걸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아이들, 13살에 아이를 거리에 낳아서 그자리에서 구걸하는 소녀, 기형적으로 태어나 한쪽 고환이 비정상적으로 커져서 양손으로 들고 다니며 구걸하는 아저씨
인도에서 네팔로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가는 경계에서 친구와 나는 고민에 빠졌다. 네팔돈은 인도에서 쓸수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지 고민끝에
그래! 이왕이면 착한일 한번하자 구걸하시는 분께 드리자 !!
그렇게 우리는 이렇게 착한일 하면 여친사라도 생기겠지? 라며 구걸하는 아이한테 갔다. 그 아이는 배가 고프다며 제스쳐로 우리에게 말을 했고
나는 정말 따뜻한 웃음으로 그래 이돈으로 (사실 돈이 꽤 많이 남았다 네팔에서 3일은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수 있는 돈이였다) 밥 사먹으렴 하고 돈을 주었고 우리는 서로 뿌듯한 모습으로 멋있는 척하며 엄지를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정말 해맑게 그돈을 버렸다... 버렸어!!! 버렸다고!!!!!!!
그아이는 네팔돈은 휴지보다 못하다는 듯한 화난 눈빛으로 우리를 쏘았고 우리는 끝까지 엄지를 올리며 미안하다 몰랐어.. 라며 쿨하게 돌아섰다.
4. 티벳에게 자유를 !
네팔에 가면 티벳 임시정부가 있다. 그곳에 달라이 라마가 지내고 있으며 만나기 위해선 예약을 해야하지만
예약하는데에만 한달에서 세달이 걸린다고 한다.
네팔 식당에 가면 티벳에 관한 포스터가 붙여져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 현재 중국은 티벳을 자유로부터 억압하고 있으며 후대 달라이 라마를 중국에 가두고 있다 >라고 한다
달라이라마는 티벳의 정신적 지주이며 티벳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후대 달라이 라마를 중국이 가두고 있다라는 것은 다음 달라이 라마가
뽑혔는데(나이가 8살? 이라고 했다. 초대 달라이 라마는 술법중 환생할 수 있는 술법을 익혀서 계속 환생할 수 있다고 함, 달라이 라마 선출방법은 이전 달라이라마가 자주 사용하던 물건들을 나열하고 그것을 고르는 것을 시작으로 그 외 여러시험이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차후의 티벳의 선동을 막기위해 후대 달라이 라마를 몰래 가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티벳을 마지막으로 여행을 끝마쳤습니다.
아.. 나중에 알았는데 다시 뉴델리로 오고나서 쇼핑센터에서 쇼핑을 신나게 하고 귀국했는데 도착하고 뉴스를 보니 우리가 쇼핑하고나서 한시간 후에 그 쇼핑센터는 폭탄테러로 폭파됐다고 합니다.........................ㅎㄷ ㄷ 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