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 블로그에서 퍼온겁니다. 읽는 분들에 따라서 세대차이를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읽어보시길.. 재밌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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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끝내고 어두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저는 라디오에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아시안컵 예선 마지막 경기, 쿠웨이트와 한국의 경기 중계를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도통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는 선탑자 탓에 AFKN과 NHK와 북한 방송까지 고루 들은 다음에야 겨우 신문선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그런 지 얼마 안되어 이동국의 프리킥 슛이 '꼬올~~~~' 소리를 불러 왔을 때 저는 핸들을 잠시 놓은 채 환호를 질렀답니다. (그러다가 마누라한테 진탕 혼났습니다만) 그러더니 또 이동국이 한 골, 그러다가 차두리가 한 골을 넣어 3대 0으로 저 멀리 앞서 나가더군요.
라디오 중계에 일희일비하던 60년대 축구팬이 되어 환호를 반복하다 보니 그 스코어 3대0은 까마득히 잊고 있던 한 추억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한국 쿠웨이트 3:0 (후반 종료시엔 4대 0으로 벌어졌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쿠웨이트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우리 나라 축구 대표팀이 가장 맥을 추지 못하는 상대입니다만 이 난적 쿠웨이트를 통쾌하게 3대 0으로 완파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회 예선이었지요. 당시로서는 홍안의 신진이었던 최순호 선수가 두 골을 넣으면서 홈그라운드의 쿠웨이트팀 콧대를 갈 지자로 꺾어 놓았지요. 마침내 4강에 올랐을 때 한국팀은 어렵고 까다로운 상대이지만, 그래도 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팀을 만났습니다. '일본이었냐?'고 성급하게 물을 분도 계시겠지만 아닙니다. 상대는 북한이었습니다.
경기 시간은 새벽 두 시였나 그랬습니다. 저는 그 전날부터 흥분에 휩싸여서 잠을 안자야 된다며 어머니에게 먹으면 잠 안온다는 커피를 달라고 조르다가 군밤을 맞기도 했었지요. 반공 교육을 충실히 받은 열 살짜리 꼬마에게 그것은 축구 경기가 아니라 전쟁이었습니다. '때려잡아' 마땅한 북한 괴뢰 도당을 우리 대표팀 '화랑'이 '무찌르는' 광경이 보고 싶은 것이었고, '호시탐탐' 문전을 노리는 북한의 공격을 막아내는 우리의 '철벽수비'를 구경하고 싶은 것이었으며 차제에 '초전박살'을 노린 우리의 공격수들이 북한의 골문을 '융단폭격'하는 모습에 열광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저 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다음 날 눈 비비고 나타난 제 친구들도 동일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온 동네가 그 새벽에 불이 환했으니 동네 사람들도, 나아가 당시 3천만 국민 대다수가 아마 그런 심리로 브라운관 앞으로 집결했을 겁니다.
경기장은 쿠웨이트였지만 그곳은 남한의 홈그라운드로 보였습니다. 중동 건설붐이 한창이던 시절, 스탠드는 열사의 땅 쿠웨이트에서 피 섞인 땀을 흘리며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지요. 요즘도 국가 대표팀이 어느 나라를 방문하면 교민이 많건 적건 응원단이 순식간에 조직되고 응원 연습에 목이 쉬며, 경기 쫓아다니느라 발이 부르튼다는데 그 당시, 이름조차 낯선 남의 나라에 와서 갖은 고생 다 하다 철천지 원수(?)와 외나무다리에서 격돌하는 고국의 축구팀을 맞은 노동자들의 심정은 대충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그야말로 열광적인 응원이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 소리는 물론 없었지만 아리아리 동동과 삼삼칠 박수는 떠나갈 듯 했지요. 그러나.......
북한은 전반 초반 페널티킥을 얻어 손쉽게 한 점을 얻었습니다. 그 뒤로 공을 슬슬 돌리면서 시간을 보냈지요. 그걸 지켜보는 제 속이 뒤집어집니다. 아버지 입에선 쌍소리가 튀어 나오고, 공을 빼앗아 보겠다고 부지런히 뛰어다니던 이영무 선수의 머리를 북한 선수가 발로 차 버렸을 때는 스탠드 전체가 들고 일어나서 쌍욕을 해 댔지요. 시간은 자꾸만 흘러 후반 30분이 지났습니다. 북한 괴뢰 도당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낙동강 교두보'까지 밀린 상황입니다. '인천 상륙'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북한 수비진은 만만치 않았지요. 그리고 차범근 장군(?)은 이미 독일로 날아간 뒤였고......
그때 18번을 달고 뛰던 황석근 선수가 라인을 넘어가려던 공을 악착같이 잡아 냈고 이어서 공은 가운데로 넘어왔습니다. 서너 명의 선수가 일제히 점프를 했고 그 가운데 한 명의 머리에 들이받힌 공은 그대로 북한 골대 오른쪽 모서리에 꽂혔습니다. 정해원 선수의 동점골이 터진 겁니다. 후반 종료 10분 전이었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집 안방에서 난리가 났고 온 동네 지붕이 떴다가 가라앉았습니다. 앞집 세탁소에서는 대한민국 만세 소리도 들렸습니다. 쿠웨이트 현지 경기장? 9.28 수복 분위기입니다. 아이를 들고 펄쩍펄쩍 뛰는 사람, 우는 사람, 영차 영차 혼자 부르짖는 사람.....
이제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를 부르짖을 시간입니다. 한 골만 더 넣어라는 간절한 기도가 절로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쿠웨이트에 있던 노동자들은 쉰 목청을 돋구며 응원을 계속했고 남한 선수들도 신들린 듯 뛰었습니다. 그러던 종료 1분 전, 한 선수가 왼쪽을 치고 들어가다가 살짝 가운데로 공을 밀었고 달려들던 정해원 선수가 있는 논스톱 왼발 슛을 때렸습니다. 힘차게 날아간 공은 안간힘을 쓰며 다이빙했던 북한 골키퍼의 손도 헛되이 골 네트를 크게 일렁였지요. 역전골이었습니다.
기적같은 동점골과 역전골을 성공시킴으로써 그날의 전쟁 영웅이 된 정해원 선수는 두 팔을 치켜든채 그라운드를 질주했습니다. 그 표정은 무아지경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정해원 선수는 벤치에서 역시 환호하던 김정남 코치와 격정적인 포옹을 합니다. 2002년 히딩크와 박지성의 포옹보다 열 배는 더 짜릿한, 코칭스탭과 선수의 승전 축하가 아니라 지옥에서 함께 살아난 동지의 포옹같은 느낌으로 말입니다.
또 다시 저희집 안방과 동네가 펄펄 끓는 가마솥이 되었습니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를 부르짖는 승전 축하 퍼레이드만 열리지 않았지 거의 그 분위기에 필적했지요. 골을 넣은 뒤 경기는 오랫 동안 재개되지 않았습니다. 아나운서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고, 일부 한국 응원단이 그라운드까지 들어와 선수들과 흥분에 찬 포옹과 악수를 나눴고 선수들도 북한을 사상 처음으로 깨뜨렸다는 벅찬 기쁨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니까요. 경기장 스탠드는 무너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만큼 껑충껑충 뛰어오르는 사람들로 그득했구요.
그렇게 좋아 미치는 사람들, 북한 축구팀을 눌렀다는 것이 그토록 기쁜 사람들을 느릿느릿 비추던 카메라가 아주 잠깐 아랍 고유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표정을 잡았습니다. 필경 쿠웨이트의 귀족으로 보이는 그들은 한국 사람들만큼이나 환하게 파안대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척 인상적인 웃음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의 승리를 기뻐하는 웃음은 물론 아니었고 명승부를 관람한 관중의 즐거움과도 조금은 거리가 있었지요. 물론 자기들끼리 웃음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영원히 모를 일이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 대화의 내용이 짐작이 갈 것도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제가 우연히 공짜표를 얻어 아시안컵 준결승을 보러 갔는데 남 '태국'과 북 '태국'이 시합을 합니다. 똑같은 외모와 고만고만한 키, 보아하니 자기들끼리 말도 통하는 모양인데 관중석에 앉은 태국인 노동자들은 북 '태국'을 씹어먹을 듯 욕설을 퍼붓고, 역전골이 들어가는 순간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듯 기뻐 날뛰며 만세를 부릅니다. 어떤 태국인은 태국 국기를 흔들며 태국 만세를 부르짖습니다. 남 태국 선수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코치와 끌어안고 있고 어떤 선수들은 부처님의 은덕을 기리며 그라운드에서 절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옆에 앉은 제 친구에게 뭐라고 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태국놈들 참 웃기네. 저렇게 좋을까. 같은 태국한테 이겼다고...... 뭐 어쨌든 저렇게 열나게 뛰니 힘은 다 빠졌겠네. 우리랑 결승전이 몇일이지?"
북한과의 사투를 벌인 며칠 뒤의 결승전에서, 한국은 예선에서 3대0으로 완파했던, 그래서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쿠웨이트에게 3대0으로 힘 한 번 못써 보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얘기했었습니다. 북한과의 준결승에서 너무 힘을 뺐다고...... 그리고 그 말이 이해가 됐었습니다. 그날 눈에 불을 켜고 달리던 선수들의 안간힘, 그리고 골 넣은 순간 지옥에서 생환한 사람들같이 포옹하던 김정남 코치와 정해원 선수, 아나운서가 울먹이듯 외쳤던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그리고 북한에게만은 져서는 안된다며 고사리 손을 모았던 저 자신의 기도를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힘이 빠져서 쿠웨이트와의 결승전은 밤새 지켜볼 엄두를 안내고 쿨쿨 잠들어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 날 경기 결과를 도무지 믿지 못해 하루 종일 씩씩거렸으니까요.
북한 축구는 아시안컵 본선에 오르지도 못할만큼 퇴락했고 친선 경기가 아닌 실전 A매치가 벌어진다면 북한은 남한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역시 북한과 경기를 한다고 해서 24년 전의 쿠웨이트에서처럼 무아지경의 호승심(好勝心)을 발휘하는 사람도, 그 승부에 가슴을 조이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겁니다. 남과 북이 사사건건 대립하고 운동 경기 하나에 자기네 정치 체제의 자존심을 걸었던 시대는 바람과 함께 과거의 그늘로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하지만 간간히 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북한을 이기는 일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며 그 어이없는 호승심을 발휘하는 이들이 2004년에도 쉬이 발견되는 것은 오만이나 베트남에게 한국 축구팀이 깨지는 사건만큼이나 황당한 일입니다. 국방 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한 부분을 삭제했다고 해서 "주적이 없는 군대가 어디 있느냐"고 우기는 분들이나 '북한은 바뀌지 않는데 왜 우리만 무장해제하느냐'는 여당 대표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주적'이라는 말 자체가 90년대 중반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이후 첨가된 단어였음을 상기해 본다면 대한민국은 전쟁 이후 반 세기 동안 '주적도 없는 군대'를 가져 왔던 황당 사건인 셈이고, 북한이 안바뀌면 우리도 못바꾼다는 오기는 꼭 '북한에게는 질 수 없다'며 밤새 두 손을 모아 기도하던 어린이의 그것과 다를바가 없지 않습니까?
축구 경기로는 명승부였고, 그날은 기뻐 어쩔 줄을 모를만큼 값진 승리였으나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서글펐던 80년 아시안컵 준결승전이었습니다. 남과 북의 대표팀이라는 명예를 걸고 그들은 외국의 그라운드에서 혈전을 치루었고, 남과 북의 국민들은 혼연일치가 되어 그 체제의 대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져서는 안된다고 서로에게 최면을 걸며 공 하나에 일희일비했고 상대를 저주했고 우리 편의 등을 밀어 댔습니다. 그리고 승리한 순간 세상을 얻은 듯 기뻐했고 어깨를 늘어뜨린 북한 선수들에 대고 통쾌한 손가락질을 해 댔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온 열과 성을 북한과의 대결에 쏟아 부었던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허무하게 너무도 허무하게 쿠웨이트에게 완봉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승전의 녹화 방송 중에 저는 또 한 번 쿠웨이트인의 파안대소를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준결승전 화면에 비친 쿠웨이트 귀족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으되, 그 웃음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들끼리 실컷 싸우고 나니 힘이 없지. 병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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