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스포주의)
셜록을 처음 접한건 대학교에서였다. 극작론 여교수님께서 셜록에 잔뜩 반하신채로 셜록 101을 가져오셔서 분석하게 하셨다.
그것을 계기로 필자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셜록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시즌3를 열성적으로 기다린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물론 시즌2의 극단적인 결말때문에 너무 허무맹랑한 전개가 아닌가. 어떻게 수습하려고 저러나... 했지만
수습했다. 그것도 아주 neat하게. 만족스럽게.
이번 에피소드 302의 the sign of three라는 제목. 셋의 징후. 이 제목의 의미는 에피소드 끝에서 셜록의 대사로 알려주는 듯했다.
왓슨과 메리의 결혼 거기에 아기까지. 이렇게 셋이 될 것이라는 징후.... 캬.. 정말 neat한 전개였지만..
"흠.. 근데.. 뭔가 아쉬워.."
한번 더 살펴보자.
시즌 1에서 셜록은 왓슨을 만나 왓슨을 '데리고'다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셜록이 왓슨을 데리고 다닐 이유가 없다. 혼자 사건 다 해결 할거면서 왜?
물론, 원작이 그러니까.... 추리 소설에는 독자의 평균 추리력보다 떨어지는 관찰자 인물이 필요하다는 교과서적 이론이 있으니까....
그래도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셜록정도 되는 머리가 룸메이트를 아무나 구하지는 않았을텐데.. 셜록의 입장에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건 바로 왓슨의 열정이다. 왓슨의 인간적인 열정.
셜록은 오로지 재미로만 사건을 추리하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감정을 읽지 못하는 소시오패스다.
전쟁 후유증을 떨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왓슨의 인간적인 열정. 사실 셜록에게는 없는 것이다.
셜록은 첫대면에서 왓슨의 그것을 읽어낸다. 302편에서도 친절하게 설명한다. 자신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할 때, 왓슨은 사람을 살리려 했다고.
그러고보면 왓슨은 여태껏 boring을 연발하는 셜록에게 타박주면서 제대로 사건을 해결하라고 시켜왔다. 마치 열정이 이성을 자극하는 것처럼.
셜록 형 마이크로프트도 엄청나게 똑똑하지만 그에게는 왓슨이 없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금붕어로 생각하는 마이크로프트보다 셜록이 발전하는 이유다. 왓슨 덕분에.
그들은 그렇게 몇년을 동고동락하면서 결국 모리어티라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그 결과는 사실 참담하다.
그것은 셜록 스스로가 자살로 위장하고 2년간 도피하는 것이었다. 모리어티는 그렇게나 강한 적이었다.
문제는 모리어티처럼 강한 적이 아직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면 셜록과 왓슨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두 다리로는 흔들린다. 세 다리로 지탱해야 더 강해진다. 삼위일체. 트라이폿. 삼각대. 삼각법. 등등.
이제 대충 눈치 채셨는가. 왓슨 부부와 아기의 "셋"은 트릭이다. The sign of three는 셜록, 왓슨, 메리다!
이렇게 풍성한 프로파일링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301)
셜록은 냉철한 이성, 왓슨은 인간적인 열정, 그들만으로 흔들리고 부족했던 것은 메리의 감성이 없어서다.
그렇기에 에피소드에서 둘다 소령의 방 번호를 외우지 못하고 있을 때 메리는 외우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에게 소중한 손님이니까.
인간은 이성과 열정만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셋이 소령의 방 앞에 모였다. 열정이 문을 부수겠다고 할 때 감성은 그럴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감성은 이성에게 문제를 풀라고 독려한다.
사건을 해결한다. 셜록은 발전한다. 이제 그들은 더 강한 적을 마주할 수 있다.
혹자는 왓슨이 결혼했으니 셜록 혼자가 되는 건가? 했을지 모른다.
오호, 반대다. 오히려 한명이 더 늘었다.
이렇게 302 에피소드는 이 셜록이라는 시리즈가 도약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물론 셋의 징후가 생길 때 속이 메스껍고 취향이 달라지고 괜시리 화가 나는 것처럼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기존의 재미를 잇고, 더 재미있는 추리를 선사할 것인지는 과연 의문이지만,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셜록>이야, 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장치를 과감하게 사용했고, 덕분에 앞으로의 전개도 너무너무 기대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