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요즘은 예전처럼 의사하면 다 돈 잘벌고 부자라는 인식은 많이 없어지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것이 의사에게 유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이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의사들 힘들다 힘들다 해봤자 듣기 싫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힘든거 알면서 선택한 일인데 왜 그렇게 힘들다고 하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힘든 거 알고 선택한 일입니다. 그런데 힘들다는 말이 나옵니다.
의료 민영화가 화두가 됩니다. 요새는 조금 뜸해졌지만 말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정말 잘 돼있는데 왜 바꾸냐고 하시는 분들도 보입니다.
우리나라 의료, 정말 잘된 것 아닙니다.
이런 개같은 시스템에서는 절대로 환자분들이 (저도 언젠가 환자가 되겠지요) 왕같은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동네 허름한 식당에서 3500원짜리 밥을 시켜먹으면서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듯,
의료수가가 이렇게 선정되어 있다면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지금의 고급을 지향하는 병원? 삼성의료원, 아산병원 모두 대기업 소유고, 대기업 이미지 개선 및 탈세를 위해 존재하는 병원입니다. 삼성과 현대가 절대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해 병원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혹시나 많은 삼성의료원, 아산병원의 선생님들이 불쾌히 들으실까봐 한마디 덧붙이면 병원은 훌륭하지만 그 기업의 목적은 훌륭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이나 그렇게 호화롭습니다.
강남 성모병원? 그 재단의 힘이 엄청납니다. 종교재단은 다들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이외에 빅5라고 쳐주는 서울대, 세브란스는 좀 다른 예입니다. 서울대는 서울대이고, 세브란스는 졸업생의 힘이 엄청납니다. 일년에 모이는 기부금만 200억 정도가 된다고 들었습니다.(확실치는 않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자본을 바탕으로 갖고 있는 병원은 밖에서 보기에 삐까뻔쩍합니다. 환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 힘은 의료제도가 아닌 기업이지만 말입니다.
몇달 전 화제가 되었던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아주대학교 병원에는 외상외과가 있다고 합니다. 아주대병원 외상외과에서만 연간 적자가 8억이라고 합니다. 아주대학교 병원도 IMF 이전에 세브란스 병원을 위협하는 위치에 있었고 지금도 연간 수입이 전국 6위라고 하지만 적자가 나는 '환자를 살리는 분야'에 계속 집중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실제로 전국에 외상외과 분야가 있는 병원은 아주대병원이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적자만 나는 분과이니 정말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외상외과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병원이 없는 것입니다.
의료 수가가 너무 쌉니다. 위절제술에 들어가는 인력이 얼마인데,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가격밖에 안됩니다.
죽어가는 사람 살리려는 응급 수술을 해도 고급 식당에 가서 둘이 식사하는 돈 밖에 안됩니다.
(의사가 받는 돈이 아닌, 병원에 돌아가는 돈이 그렇습니다. 의사는 대형병원에서 월급쟁이죠.)
계속 이런 식이라면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대형병원은 버티고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외의 모든 의료는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대우는 나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의사도 사람입니다. 바쁠때는 일주일동안 8시간 정도 잡니다.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에 말입니다. 그런데 받는 돈은 200만원 정도 밖에 안됩니다. 아무리 친절하고 싶어도 친절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하루에 8시간씩 자고 16시간만 일해도 된다면, 정말 모든 환자분들의 애환을 듣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발 의료를 막다른 길로 몰아가지 말아주세요.
우리한테 돈을 더 줘야 양질의 의료를 보여주겠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제 월급이 안늘어도 좋습니다. 의료수가가 오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의사가 일해야하는 시간이 적어지고, 더 일을 제대로 하고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시간 안 줄어도 좋습니다.
제 동료가 일하는 시간이라도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동료라도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의료 보험 재정이 파탄 나는 것은 다 알고 계실겁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
보험료가 낮기 때문에.
보험 공단이 병신이라.
제발 보험료가 오르면 좋겠습니다. 아니 보험료가 오르지 않아도 좋습니다. 국민들이 보험공단을 대상으로 시위라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파업하고 싶은 생각 간절합니다. 세상 어떤 직업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욕먹고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파업을 하면 환자에게 돌아갈 피해가 더 크고, 솔직히 말해 의사가 더 욕먹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말이 좋아 의사지 저희는 노예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의 마음으로 환자를 보고 싶은 권리를 빼앗긴 노예입니다.
개같은 의료 시스템을 무너지지 않게 댐의 구멍을 막고 있는 노예입니다.
적자에 적자를 계속하는 병원, 적자에 적자를 계속하고 있다는 의료보험 공단을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노예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보험공단이 무너지고 의료 민영화가 올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국민 여러분을 위해 의료민영화를 막기 위해 일하는 건 아닙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 밥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죠.)
의료 민영화가 되면 우리는 노동자가 될 것입니다.
민영화로 인해 생길 대형병원의 이사장이 주라는 약을 주고
과잉진료를 유도 당하고 의사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인 처방권 마저 잃은 지금보다 더 심한 노예가 될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런 쓰잘데기 없는, 쓰고보니 결국 나 힘들다는 말 밖에 안되는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분이 한명이라도 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의료민영화가 안되게 막아주는 국민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지금의 의료시스템이 많이 잘못돼 있으며
언젠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인식만 가져주셔도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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