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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50735
    작성자 : Dementist
    추천 : 13
    조회수 : 1524
    IP : 112.144.***.208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3/06/20 00:40:43
    http://todayhumor.com/?panic_50735 모바일
    [한국 괴담]각 지방의 전설과 설화들 -서울,경기2- <BGM>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Fuhnb
     
     
    소몰이 노인과 무학

    <서울·往十里(왕십리)>

    조선 건국초. 송도 수창궁에서 등극한 이성계는 조정 대신들과 천도를 결정하고 무학대사에게 도읍지를 찾아달라고 청했다.
    무학대사는 옛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진 계룡산으로 내려가 산세와 지세를 살폈으나 아무래도 도읍지로는 적당치 않았다. 발길을 북으로 옮겨 한양에 도착한 스님은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뚝섬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지세를 자세히 살핀 스님은 그곳이 바로 새 도읍지라고 생각했다.
    『음, 땅이 넓고 강이 흐르니 과연 새 왕조가 뜻을 펼 만한 길상지로 구나.』
    무학대사는 흐믓한 마음으로 잠시 쉬고 있었다. 이때였다.
    『이놈의 소는 미련하기가 곡 무학 같구나. 왜 바른길로 가지 않고 굳이 굽은 길로 들어서느냐?』
    순간 무학대사의 귀가 번쩍 뜨였다. 고개를 들고 돌아보니 길 저쪽으로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이 채찍으로 소를 때리며 꾸짖고 있었다.
    스님은 얼른 노인 앞으로 달려갔다.
    『노인장, 지금 소더러 뭐라고 하셨는지요?』
    『미련하기가 꼭 무학 같다고 했소.』
    『그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신지요?』
    『아마 요즘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좋은 곳 다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무학대사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공손히 합장하고 절을 올리며 말했다.
    『제가 바로 그 미련한 무학이옵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곳이 좋은 도읍지라고 보았는데 노인장께서 일깨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좋은 도읍지가 있으면 이 나라 천년대계를 위하여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은 채찍을 들어 서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10리를 더 들어가면 주변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노인장, 참으로 감사합니다.』
    무학대사가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순간, 노인과 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스님은 가벼운 걸음으로 서북쪽을 향해 10리쯤 걸었다. 그때 스님이 당도한 곳이 바로 지금의 경복궁 근처였다.
    『과연 명당일구나.』
    삼각산, 인왕산, 남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땅을 보는 순간 무학대사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만면에 미소를 띤 스님은 그 길로 태조와 만나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여 도성을 쌓고 궁궐을 짓기로 했다.
    『스님, 성은 어디쯤을 경계로 하면 좋겠습니까?』
    태조는 속히 대역사를 시작하고 싶었다.
    『북쪽으로는 삼각산 중바위 밖으로 도성을 축성하십시오. 삼각산 중바위(인수봉)는 노승이 5백 나한에게 예배하는 형국이므로 성을 바위 밖으로 쌓으면 나라가 평안하고 흥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핵대사의 뜻과는 달리 조정의 일파는 이를 반대,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아야 한다고 강경히 주장했다. 태조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존경하는 스님의 뜻을 따르고 싶었으나 일등 개국공신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학대사와 대신들의 도성 축성에 관한 논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 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학대사는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으면 중바위가 성안을 넘겨다보는 형국이므로 불교가 결코 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도전 일파 역시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아야 유교가 흥할 수 있다는 지론이었으므로 무학대사 의견에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입장이 난처해진 태조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 결정키로 했다.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낸 이튿날이었다. 밤새 내린 눈이 봄볕에 다 녹아내리는데 축성의 시비가 일고 있는 인수봉 인근에 마치 선을 그어 놓은 듯 눈이 녹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정도전 등 대신들은 이 사실을 태조에게 즉시 고하고 이는 하늘의 뜻이므로 도성을 인수봉 안으로 쌓아야 한다고 거듭 주청했다.
    『거참 신기한 일이로구나. 그 선대로 성을 쌓도록 하시오.』
    이 소식을 들은 무학대사는 홀로 탄식했다.
    『억불이 기운이 감도니 이제 불교도 그 기운이 다해 가는구나.』
    성이 완성되자 눈이 울타리를 만들었다 하여 눈 「설(雪)」자와 빙 둘러싼다는 울타리〔圍〕의 「울」자를 써서 「설울」이란 말이 생겼고 점차 발음이 변하여 「서울」로 불리워졌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노인이 무학대사에게 10리를 더 들어가라고 일러준 곳은 갈 「왕(往)」자와 십리(十里)를 써서 「왕십리(往十里)」라고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소를 몰고 가다 무학대사의 길을 안내한 노인은 바로 풍수지리에 능했던 도선국사의 후신이라 한다.
    이런 유래로 왕십리에 속했던 일부 지역이 도선동으로 분할됐다. 도선동은 1959년부터 행정동명으로 불리다가 1963년 법정동명이 됐다.
    왕십리 청련사 부근에는 무학대사가 수도하던 바위터가 있었고 주위에는 송림이 울창했다고 하나 지금은 주택가로 변해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청련사 밑에는 무학과 발음만 같고 글씨는 다른 무학봉이 있고 이 이름을 딴 무학초등학교가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무학봉에서 도선국사가 수도했다는 전설도 있어 왕십리는 도선·무학 두 스님의 인연지인 것 같다.
    그 밖에도 서울에는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무악재는 무학 스님의 이름에서 연유한 「무학재」가 변한 것이고, 청량리는 청량국사에서 비롯된 지명이라고 한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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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3월 이영숙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소몰이 노인과 무학" 편에 인용된 지명이 제가 알고있는 내용과 달라 혼돈스럽기 까지 해서입니다.
    무학대사가 도성 안으로 넣고자 했던 곳이 북한산 "인수봉"이 아니라 종로구 홍제동에 있는 인왕산 선바위입니다.
    국사당 위쪽 선바위에 가면 지금도 그 바위의 유래에 관한 상세한 안내문이 있습니다.
    다시한번 살펴보시고 틀린 지명이면 바로 잡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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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루터의 구렁이

    <여주·신륵사>

    초여름 새벽, 한 젊은이가 길떠날 차비를 하고 나섰다.
    『어머님, 다녀 오겠읍니다. 그동안 건강에 유의하십시요.』
    『내 걱정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그리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여자를 조심해라.』
    『네, 명심해서 다녀오겠읍니다.』
    봇짐을 고쳐 멘 젊은이는 늙은 어머님을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어머님 계신 방문을 되돌아보며 사립문을 나섰다.
    젊은이는 어머님 꿈이야기가 왠지 불길했다. 해가 떠오르자 날씨가 더웠다. 젊은이는 강가로 내려가 저고리를 벗고 얼굴을 씻었다.
    기분이 상쾌하면서 시장기가 들었다. 젊은이는 물가에 앉아 주먹밥을 먹었다. 길 떠날 준비와 혼자 계신 어머님을 위해 집안 일을 살피느라 간밤에 잠을 설친 젊은이는 포만감과 함께 졸음을 느꼈다.
    얼마쯤 잤을까. 젊은이는 문득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살폈다. 주위는 여전했다.
    『분명 꿈을 꾸었는데… 이상하다. 전혀 기억이 안나다니.』
    그러나 꿈은 풀리질 않았다.
    ─얘야, 부디 여자를 조심해라─. 신신 당부하시던 어머님 말씀을 떠올리면서 젊은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여자가 있었던가?』
    젊은이는 꿈 속을 더듬으며 개나리 봇짐을 어깨에 메는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렇지, 봇짐 속을 보자.』
    젊은이는 짐을 풀었다.순간 젊은이는 화다닥 뒤로 물러섰다.
    한 마리의 큰 구렁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젊은이가 큰 돌멩이를 들어 구렁이를 향해 던지려하자 구렁이는 스르르 몸을 풀어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따. 젊은이는 돌을 든 채 물끄러미 구렁이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래, 저 구렁이가 사공에게 쫓기던 여인이 틀림없어.』
    젊은이는 비로소 꿈속의 일을 기억해냈다.
    스승의 심부름으로 나루터에 도착한 한 童子僧이 사공에게 배를 태워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뭐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꼬마상좌가 돈이 어디서 나서 배를 탈려고 해. 중이라고 배를 거저 탈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한다.』
    『네, 배삯은 있읍니다. 태워 주세요.』
    『어디 그럼 삯먼저 내놔봐.』
    童子僧은 엽전 꾸러미를 꺼냈다. 돈 꾸러미를 본 사공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너 그 돈 어디서 난 거냐? 바른대로 이르지 않으면 관가에 고할 것이다.』
    『이 돈은 報恩寺를 중창할 시주돈예요. 스님께서 강건너 대장간에 갔다 주라고 하셔서 가는 길입니다.』
    동승은 또렷또렷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건네주지. 어서 타거라.』
    동자승을 태운 배가 강심으로 밀려나갈 무렵 한 여인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나룻배를 불렀다.
    『여보세요, 잠깐만 기다려요.』
    『안돼요. 배를 띄웠으니 다음 차례를 기다리시오.』
    『잠깐만 사공, 저 여인을 태우고 함께 갑시다.』
    동자승이 사공에게 청했으나 사공은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탄 손님은 스님이라 외간 여자와는 함께 타지를 않소.』
    『아니 내가 언제 그랬소. 기왕이면 함께 가는 것이 사공에게도 이롭지 않소. 어서 배를 기슭에 대세요.』
    사공은 하는 수 없이 배를 기슭 여인을 태웠다.
    『고맙습니다. 스님.』
    여인은 동자승을 향해 인사를 하더니 허리춤에서 엽전을 꺼내 사공 빌밑에 던졌다. 그리고 나서 동자승을 향해 돌아 앉았다.
    『스님은 어디로 가세요?』
    『예, 절 중창에 필요한 연장을 마추러 대장간에 가는 길입니다.』
    『절을 중창하시면 시주를 거두시겠군요. 저도 시주를 하고 싶으니 저희 집에 같이 가 주시지요.』
    『고맙습니다. 소승은 보은사 사미승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공이 갑자기 노를 들어 여인을 후려치며 외쳤다.
    사공이 내려치는 노를 피해 물 속으로 뛰어든 여인은 금방 한마리의 큰 암구렁이가 되어 달아났다 그 바람에 놀란 젊은이는 잠에서 깼다. 해가 서산에 기울 무렵 젊은이는 나루터에 닿았다.
    늙은 사공이 빈 배에 앉아 있었다.
    『노인장 나루를 건네 주시겠읍니까?』
    『어서 타시시요. 헌데 젊은이 이렇게 늦게 어디를 가시오.』
    『과거를 보러 가는 길입니다.』
    『나루를 건너면 30리 안에는 인가가 없는데 어디서 유하실려고?』
    『인가가 없다니요?』
    젊은이는 그제사 사공을 똑바로 보았다. 꿈속의 그 사공과 닮은 것 같았다.
    『이곳이 麗江나루가 아닙니끼?』
    『여강 나루이지요. 그러나 젊은이는 새벽부터 길을 잘못 들었소. 젊은이는 오늘 낮에 강가에서 암구렁이를 보았지요. 이 길은 저승으로 통하는 길이오. 나루를 건너면 報恩寺가 있지만 누구도 살아서 절에 닿는 사람은 없소.』
    『노인장, 저는 그럼 죽은 것입니까? 산 것입니까?』
    『죽지는 않았소이다. 다만 젊은이의 孝心 때문에 여기 이른것이오. 당신 어머니는 오늘 아침 당신이 길을 떠나자 곧 숨졌소. 지금은 보은사 羅殺이 됐는데 절이 퇴락해 거처할 곳이 없어 절 아래 동굴에 머무는데 그곳은 百?女라는 마귀의 집이라오. 그 마귀는 당신 어머니께 집을 빼앗기고 화가 나서 당신을 해치려 했으나 다행히 나한테 들켜 당신을 해치지 못한 것이오.』
    『그러면 꿈속의 동승이 저입니까?』
    『그렇소. 당신 전생 모습이오. 전생부터 보은사 중창서원을 세운 당신은 아직도 이행 못하고 있소. 오늘 이런 기회도 모두 부처님의 계시입니다.』
    조선 성종 4년, 장원급제하여 여주 고을 원님이 된 젊은이는 대왕대비 특명으로 보은사를 크게 중창했다. 그후 부처님 신탁으로 중창했다 해서 神勒寺라 개칭했다. 지금도 신륵사 탑 밑에는 젊은이의 어머니인 나찰이 살고 있다고 한다.
     
     
    나옹 스님의 효심(孝心)

    <이천·영월암>

    지금으로부터 6백여 년 전, 고려의 유명한 스님 나옹화상(법명 ??, 1320∼1376)은 춘설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길을 시자도 없이 혼자 걷고 있었다. 지금의 양주땅 회암사에서 설법을 마치고 이천 영월암이 있는 설봉산 기슭을 오르는 스님의 발길은 찌뿌듯한 날씨처럼 무겁기만 했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가까이서 울리는 요령소리가 스님의 귓전을 울렸다.
    『허, 또 누가 이생을 하직한 게로군.』
    자신의 출가 당시 화두였던 사람이 오고가는 생사의 도리를 되뇌이면서 막 산모퉁이를 돌아서려던 나옹 스님은 초라한 장의 행렬과 마주쳤다.
    상여는 물론 상주도 없이 눌ㄱ수그레한 영감이 요령을 흔들며 상엿소리를 구슬피 메기고, 그 뒤엔 장정 하나가 지게에 관을 메고 무거운 듯 힘겹게 걷고 있었다. 바로 뒤엔 두 명의 장정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따랐다.
    행렬은 스님을 보자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허리를 굽혔다.
    『누가 갔는데 이처럼 의식도 갖추지 못하고….』
    『예, 아랫마을 돌이어멈이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거참 안됐구먼. 얼마 전 아들을 잃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더니…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마지막 가는 돌이어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염불을 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평소 마을을 지나다 몇 번인가 본 돌이어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난 뒤 충격을 받아 남의 집 물건을 예사로 훔치고 자주 마을 사람들과 싸우는 등 포악해졌다. 처음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도 나중엔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가두어야 한다고 하여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그만 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마음마저 착잡한 스님은 문득 출가 전 자신이 고뇌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스님이 스무살 때였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자고 약속한 절친한 친구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 비통에 잠긴 나옹은 「사람은 죽으면 어딛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어른들께 수없이 되풀이했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벗과의 사별을 인생의 근본문제로 받아들인 나옹은 그 길로 공덕산 요연 스님을 찾아갔다.
    『여기 온 것은 무슨 물건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으나 보려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이 말에 요연 스님은 나옹의 공부가 보통 경지가 아님을 알았다.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라.』
    나옹은 그곳을 떠나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앉아서 용맹정진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스님은 더 높은 경지를 체험하기 위해 1347년 중국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났다. 연경 법원사에 도착하여 그 절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화상을 만나 계오(契悟)했다. 2년간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 처림에게 법의와 불자를 받고 사방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친견하던 스님은 어느 날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솟아올랐으나 스님은 출가사문의 본분을 내세워 멀리서 왕생극락을 기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어머니 생각을 모두 떨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스님은 선정에 들어 어머니의 행적을 좇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옹 스님의 어머니 정씨는 뜻밖에도 환생하지 못하고 무주 고혼이 되어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자신을 원망했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했던 자신의 불효가 한스러웠다.
    「자식이 출가하면 구족이 복을 받는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업장이 얼마나 두터우시길래 구천을 맴돌고 계실까. 혹시 아들의 모습을 못 보고 눈감으신 정한이 골수에 맺힌 것인 아닐까?」
    스님은 지옥고에 허덕이는 어머니를 제도한 목련존자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천도하기로 결심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 법당 뒤 설봉산 기슭 큰 바위에 모셔진 마애지장보살님 앞에서 어머니 천도 기도를 시작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옥의 한 중생까지도 제도하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나옹 스님의 독경은 간정했다.
    그렇게 기도하기 49일째 되던 날, 나옹 스님은 철야정진에 들어갔다.
    새벽녘 아직 동이 트기 전, 나옹 스님은 지장보살님의 전신에서 발하는 환한 금빛 광채를 보았다. 그것은 눈부신 자비의 방광이었다.
    스님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지장보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지장보살님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듯했다. 고통받은 지옥 중생 때문에 지옥 문전에서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지장보살님이 어머니를 천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아, 지장보살님께서 내 기도에 감응하시어 눈물로써 현현하고 계시는구나.」
    나옹 스님은 기도가 성취되어 기뻤다.
    『어머니, 이제 아들에 대한 섭섭하신 마음을 거두시고 편히 극락에 드십시오.』
    기도를 마친 나옹 스님은 선실에 입정하여 이미 천도왕생하신 어머니를 보았다.
    그 이후부터 영월암 지장보살님 앞에는 선망 부모의 왕생극락을 빌면서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려는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에서 14안거를 성만하면서 후학을 제접하고 신도들을 교화했다. 이 마애지장보살상은 지난 1984년 12월 보물 제822호로 지정됐다.
     
     
     
    정조(正祖)의 독백

    <수원·용주사>

    「백성들에게는 효를 강조하는 왕으로서 내 아버님께는 효도 한 번 못하다니….」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는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이 늘 가슴 아팠다.
    왕세손이었던 정조 나이 11세 때, 할아버지 영조는 불호령을 내렸다.
    『어서 뒤주 속에 넣지 않고 무얼 주저하느냐?』
    어린 왕세손은 울며 아버지의 용서를 빌었으나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영조는 뒤주에 못을 박고 큰 돌을 얹게 한 후 손수 붓을 들어 세자를 폐하고 서인으로 만들어 죽음을 내린다는 교서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8일 후,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어릴 때 목격한 당시의 모습이 뇌리에 떠오를 때마다 정조는 부친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만 같았다.
    『저승에서나마 왕생극락하시도록 돌봐 드려야지.』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 묻힌 부친의 묘를 절 가까이 모셔 조석으로 영가를 위로하기로 결심하고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은 보경 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에 대한 설법을 듣게 됐다.
    『불가에서는 부모님의 은혜를 열 가지로 나누지요. 그 첫째는 나를 잉태하여 보호해 주시는 은혜요, 둘째는 고통을 참고 나를 낳아 주신 은혜요, 셋째는 낳아 기르느라 고생하신 은혜요, 넷째는 쓴 것은 부모가 먹고 단 것은 나에게 주시는 은혜요, 다섯째는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뉘어 주시는 은혜요….』
    설법을 다 들은 정조는 부친을 위해 절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임금은 먼저 지금의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 화산으로 부친의 묘를 옮겼다.
    그리고는 가까이 있는 갈양사(신라 문성왕 16년에 세운 절) 터에 부왕의 명복을 기원하는 능사를 세우도록 했다.
    왕은 보경 스님을 팔도도화주로 삼았다. 백성들은 비명에 간 사도세자를 위해 절을 세운다고 하자 너도 나도 시주를 마다하지 않았다. 보경 스님은 8만냥의 시주금으로 4년만에 절을 완성했다.
    낙성식 전날 밤, 정조는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 낙성식장에 친히 거동한 임금은 절 이름을 용주사라 명했다. 이 절이 바로 지금의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송상리에 위치한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다.
    정조는 자신에게 부모의 은혜를 새삼 일깨워주고, 용주사를 세우는데 크게 공을 세운 보경 스님에게 승려로서 으뜸인 도총섭의 칭호를 주어 용주사를 관장하게 했다. 그리고 전국에서 제일 그림 잘 그리는 화공을 찾아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게 한 후 다시 경판으로 각하여 용주사에 모시게 했으니 이는 지금도 원형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또 임금은 궁에서 쓰던 명나라제 금동 향로와 야월낙안도(夜月落雁圖), 우중어옹도(雨中魚翁圖), 촌중행사도(村中行事圖), 산중별장도(山中別莊圖), 고주귀범도(孤舟歸帆圖), 산사참배도(山寺參拜圖), 강촌심방도(江村尋訪圖), 효천출범도(曉天出帆圖)와 용을 정교하게 양각한 8면 4각의 청동 향로를 하사했다.
    임금은 능이 있는 인근 수원에 화성을 쌓아 소경(小京)으로 승격시키는 등 비명에 가신 부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기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용주사를 찾았다.
    어느 초여름날이었다. 능을 참배한던 정조는 능 앞 소나무에 송충이가 너무 많아 나무들이 병들어 가고 있음을 보았다.
    『허허 이럴 수가. 내 땅에 사는 송충이로서 어찌 임금의 아버지 묘앞에 있는 소나무 잎을 갉아먹는단 말이냐. 비명에 가신 것도 가슴 아픈데 너희들까지 이리 괴롭혀서야 되겠느냐.』
    임금은 이렇듯 독백하며 송충이를 한 마리 잡아 이빨로 깨물어 죽였다. 그 이후로는 이 일대에 송충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다. 지금도 용주사 주변과 융릉 지역은 송림이 울창하여 장관을 이루며 특히 용주사 주변의 회양목은 천영기념물 제10호로 지정돼 있다.
    어느 가을날 용주사로 향하던 임금의 행차가 수원 못미쳐 군포를 지나 고갯마루를 오르느라 속도가 좀 떨어졌다. 가마 안에서 임금은 속이 타는 듯 호령했다.
    『여봐라, 어찌 이리 더디단 말이냐?』
    『언덕을 오르느라 좀 더디옵니다.』
    부왕을 그리는 정이 몹시 사무쳐 빨리 절에 다다르고 싶었던 왕의 심정을 기려 주민들은 이 고개를 「지지대」라 불렀다.
     
     
     
     
    적장(敵將)의 편지

    <광주·남한산성>

    『여보, 아마 우리에게도 기다리던 아기가 생기려나 봐요.』
    『그렇게 되면 오죽이나 좋겠소. 한데 부인에게 무슨 기미라도…』
    『간밤 꿈에 웬 스님이 제게 거울을 주시면서 잘 닦아 지니라고 하시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태몽인 것 같아요.』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해 영약이란 영약은 다 먹어 보고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올리던 충남 보은의 김진사댁 부인 박시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그로부터 10개월 후, 한가위 달빛이 휘영청 밝은 밤, 김진사댁에서는 낭랑한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기는 자라면서 남달리 총명하여 다섯 살 되던 해, 벌써 천자문을 마쳤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어느 여름날. 돌이는 서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뒹굴기 시작했다. 나이 많은 서당 학우들이 업고 집에 이르자 놀란 김진사는 용하다는 의원을 부르고 약을 썼으나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이 병은 더 심해졌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수리 수리 마하수리….』
    대문 밖에서 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렸다. 시주 쌀을 갖고 나온 김진사 부인은 스님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꿈에 거울을 주었던 그 스님이 바로 눈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묘한 인연이라 생각한 부인은 스님께 돌이 이야기를 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스님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말문을 열었다.
    『그러잖아도 소승이 돌이를 데리러 왔습니다. 절에 가면 곧 건강을 되찾을 것이며 장차 이 나라의 훌륭한 인재가 될 것입니다.』
    김진사 내외는 귀여운 아들을 절로 보낼 수 없어 선뜻 대답하지 못했으나 태몽을 생각하고는 하는 수 없이 스님 뜻에 따랐다.
    스님 등에 업혀 절에 온 돌이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건강해졌다. 낮에는 활쏘기 등 무예를 익히고 밤에는 불경을 읽으며 9세가 되던 해. 김진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고향에 돌아가 상을 치르고 돌아온 돌이는 부친을 여읜 슬픔과 함께 사람의 나고 죽는 문제로 번민했다. 스님께 여쭈어 봐도 「아직 어리다」며 좀체로 일러주시려 하지 않았다.
    사미의 엄한 계율 속에 정진하던 각성은 14세 되던 해 부휴 스님을 따라 속리산, 금강산, 덕유산 등으로 다니며 경전공부 외에 무술, 서예 등을 익혔다. 이렇게 10년이 지나자 부휴 스님은 각성을 불렀다.
    『이제 네 공부가 어지간하니 하산하여 중생을 구제하도록 하라.』
    벽암이란 호를 받은 각성 스님은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 묘에 성묘하고는 한양으로 발길을 옮겼다.
    때는 조선조 광해군 시절. 조정에서는 무과 과거 시험을 치르는 방을 내걸었다. 각성 스님은 시험에 응시했다.
    『김각성 나오시오.』
    각성 스님과 마주한 상대는 홀랑이 가죽 옷을 입고 머르는 풀어 흰수건으로 질쓴 동여맨 것이 마치 짐승 같았다. 두 사람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등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이 회를 거듭하던 중 짐승 같은 사나이의 목검이 부러졌다. 각성 스님은 절호의 기회였으나 상대방이 새 칼을 들고 다시 대적하도록 잠시 기다렸다.
    그때 성난 사나이는 씩씩거리며 규정에 없는 진짜 칼을 원했다. 이를 지켜보던 난폭한 광해군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진짜 칼을 주도록 어명을 내렸다. 다시 징소리가 울렸다. 「얏! 에잇!」기합소리와 칼 부딪치는 소리뿐 장내는 쥐죽은 듯했다. 승부의 귀추가 주목되는 아슬아슬한 순간, 사나이의 칼이 스님의 머리를 후려치는데 스님은 날랜 동작으로 상대방의 칼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오, 과연 장한 솜씨로구나.』
    광해군은 탄복을 금치 못했다. 무과에 급제한 각성 스님은 팔도도 총섭이란 벼슬을 맡았다. 그러나 바른말을 잘하는 스님은 임금에게 성을 쌓고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간(諫)하다 뜻이 관철되지 않자 벼슬을 내놓고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몇 년간 무술을 더 연마하는 동안 나라는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각성 스님은 부처님으로부터 세상에 내려가 성을 쌓고 전쟁에 대비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스님은 곧 대궐로 달려가 새 임금 인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고맙게 여긴 임금은 스님의 옛 관직을 회복하여 팔도도총섭에 명하고 남한산성을 다시 쌓게 했다. 남한산성이 다 이루어지기도 전에 청나라 군사가 쳐들어왔다.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하게 된 인조는 각성 스님의 공을 높이 치아했다.
    『대사의 선견지명이 아니었던들 내 어찌 생명을 보존했겠소.』
    성곽 수호를 관군에게 맡긴 각성 스님은 의승 천 명을 모아 「항마군」을 조직, 북으로 진격했다.
    『나는 팔도도총섭이다. 대장은 나와서 나와 겨루자.』
    이때 적진에서 달려나오던 대장은 갑자기 멈춰섰다.
    『혹시 김각성 장군이 아니오?』
    『그렇소만….』
    『지난날 과거장에서 칼을 잃고 도망간 사람이 바로 나요, 나는 그때 조선의 정세를 염탐하러 왔다가 하마터면 목이 달아날 뻔했지요. 그때 살려준 은혜 잊지 않고 있소. 오늘 저녁 술이라도 한 잔 나눕시다.』
    『술도 좋지만 우선 승패를 가리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소?』
    『좋소. 그럼 내일 싸우도록 합시다.』
    이튿날 아침. 벽암대사는 의병을 이끌고 적진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그 많던 적군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들판에는 편지를 매단 창이 하나 꽂혀 있었다.
    『김각성 장군! 지난날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그냥 돌아가오.』
    편지를 읽은 스님은 의병을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돌아와 장경사를 건립했다.
    훗날 조정에서는 스님의 공을 기리기 위해 남한산성에 「청계당」이란 사당을 지어 매년 추모제를 올렸다.
     
     
     
     
     
    나녀(裸女)의 유혹

    <소요산·자재암>

    『이토록 깊은 밤, 폭풍우 속에 여자가 찾아올 리가 없지.』
    거센 비바람 속에서 얼핏 여자의 음성을 들었던 원효 스님은 자신의 공부를 탓하며 다시 마음을 굳게 다졌다.
    『아직도 여인에 대한 동경이 나를 유혹하는구나. 이루기 전에는 결코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
    자세를 고쳐 점차 선정에 든 원효 스님은 휘몰아치는 바람과 거센 빗소리를 분명히 듣는가 하면 자신의 존재마저 아득함을 느꼈다. 「마음, 마음은 무엇일까?」 운효 스님은 둘이 아닌 분명한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무서운 내면의 갈등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지직」하고 등잔불이 기름을 튕기며 탔다. 순간 원효스님은 눈을 번적 떴다.
    비바람이 토굴 안으로 왈칵 밀려들었다.
    밀려오는 폭풍우 소리에 섞여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스님은 귀를 기울였다.
    『원효 스님, 원효 스님, 문 좀 열어주세요.』
    스님은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망설였다. 여인은 황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스님을 불렀다.
    스님은 문을 열었다. 왈칵 비바람이 방안으로 밀려들면서 방안의 등잔불이 꺼졌다.
    『스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찾아와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비를 맞고 서 있는 여인을 보고도 스님은 선뜻 들어오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스님, 하룻밤만 지내고 가게 해주세요.』
    여인의 간곡한 애원에 스님은 문 한쪽으로 비켜섰다. 여인이 토막으로 들어섰다.
    『스님, 불 좀 켜 주세요. 너무 컴컴해요.』
    스님은 묵묵히 화롯불을 찾아 등잔에 불을 옮겼다. 방 안이 밝아지자 비에 젖은 여인의 육체가 눈에 들어왔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스님,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제 몸 좀 비벼 주세요.』
    여인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해 있던 스님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공연히 들여놨나 싶어 후회했다.
    떨며 신음하는 여인을 안 보려고 스님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비에 젖어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것. 내 마음에 색심이 없다면 이 여인이 목석과 다를 바 있으랴.』
    스님은 부지중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여인을 안아 침상에 눕히고는 언 몸을 주물러 녹여 주기 시작했다. 풍만한 여체를 대하자 스님은 묘한 느낌이 일기 시작했다. 스님은 순간 여인을 안아 침상에 눕히고는 언 몸을 주물러 녹여 주기 시작했다. 스님은 순간 여인을 침상에서 밀어냈다.
    「나의 오랜 수도를 하룻밤 사이에 허물 수야 없지.」
    이미 해골물을 달게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도리를 깨달은 스님은 다시 자기 정리를 시작했다.
    「해골은 물그릇으로 알았을 때는 그 물이 맛있더니, 해골을 해골로 볼 때는 그 물이 더럽고 구역질이 나지 않았던가. 일체만물이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였으니 내 어찌 더이상 속으랴.」
    이 여인을 목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여인으로 보면서도 마음속에 색심이 일지 않으면 자신의 공부는 온전하다고 생각했다.
    스님은 다시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여인의 몸을 비비면서 염불을 했다. 여인의 풍만한 육체는 여인의 육체가 아니라 한 생명일 뿐이었다. 스님은 여인의 혈맥을 찾아 한 생명에게 힘을 부어주고 있었다. 남을 돕는 것은 기쁜 일. 더욱이 남과 나를 가리지 않고 자비로써 도울 때 그것은 이미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이 되는 것이다.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구별이 없을 때 사람은 경건해진다. 여인과 자기의 분별을 떠나 한 생명을 위해 움직이는 원효 스님은 마치 자기 마음을 찾듯 준엄했다. 여인의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여인은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 앞에 일어나 앉았다. 여인과 자신의 경계를 느낀 스님은 순간 밖으로 뛰쳐 나왔다.
    폭풍우가 지난 후의 아침해는 더욱 찬란하고 장엄했다. 간밤의 폭우로 물이 많아진 옥류폭포의 물기둥이 폭음을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스님은 훨훨 옷을 벗고 옥류천 맑은 물에 몸을 담그었다. 뼛속까지 시원한 물 속에서 무한한 희열을 느끼는데 여인이 다가왔다.
    『스님, 저도 목욕 좀 해야겠어요.』
    여인은 옷을 벗어 던지고는 물 속으로 들어와 스님 곁으로 다가왔다. 아침 햇살을 받은 영인의 몸매는 눈이 부셨다. 스님은 생명체 이상으로 보이는 그 느낌을 자제하고 항거했다. 결국 스님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너는 나를 유혹해서 어쩌자는 거냐?』
    『호호호, 스님도. 어디 제가 스님을 유혹합니까? 스님이 저를 색안으로 보시면서.』
    큰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순간 스님의 머리는 무한한 혼돈이 일었다.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이란 여인의 목소리가 계속 스님의 귓전을 때렸다. 거센 폭포소리도 들리지 않아싸ㄷ. 계속하여 여인의 음성이 혼돈으로 가득 찬 머리 속을 후비고 들어올 뿐.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을 거듭거듭 뇌이면서 원효 스님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폭포소리가 들렸고 캄캄했던 눈앞의 사물이 제 빛을 찾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의식되는 눈앞의 경계를 놓치지 않고 원효 스님은 갑자기 눈을 떴다.
    원효 스님은 처음으로 빛을 발견한 듯 모든 것을 명료하게 보았다.
    「옳거니, 바로 그거로구나. 모든 것이 그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는 그 도리!」
    스님은 물을 차고 일어섰다. 그의 발가벗은 몸을 여인 앞에 아랑곳 없이 드러내며 유유히 걸어나왔다 .주변의 산과 물, 여인과 나무 등 일체의 모습이 생동하고 있었다.
    여인은 어느새 금빛 찬란한 후광을 띤 보살이 되어 폭포를 거슬러 사라졌다. 원효 스님은 그곳에 암자를 세웠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뜻대로 한 곳이라 하여 절 이름을 「자재암」이라 했다. 지금도 동두천에서 멀지 않은 단풍으로 유명한 소요산 골짜기에는 보살이 목욕했다는 옥류폭포가 있고 그 앞에는 스님들이 자재의 도리를 공부하는 자재암이 있다.
     
     
    출처 : 부다피아 http://www.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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