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6일)로 20주째 결방되는 <무한도전>이 또 다른 의미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최장기 결방. 자의든 타의든 MBC 노동조합 파업의 상징이 된 <무한도전>은 지난 11일 임원진 회의에서 김재철 사장이 "계속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외주화 검토를 언급한 뒤 '폐지설'까지 나돈 상황이다. '무도인' '무도팬'의 애달음이 깊어지는 가운데, 연출자 김태호 PD 이하 제작진을 지지하는 결연한 의지 또한 굳건해지고 있다.
"무한도전을 건든다는 건, 말하자면 삼촌 팬들 앞에서 아이유를 인질로 삼아 협박하는 거랑 비슷하지..."
어느 팬이 김재철 사장에게 던진 촌평이다. "외주제작? 건드리면 안 되는 게 있다"고 MBC를 비판한 사진작가 오중석을 비롯해 만화가 강풀, 조정 코치 김지호 등 <무한도전> 출연자들은 팬들과 함께 김태호 PD와 <무한도전>을 지지하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사측이 <무한도전>의 런던올림픽 특집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에서 보듯, MBC는 김태호 PD 이하 <무한도전> 제작진이 노조에 발목 잡혀 방송 정상화에 차질을 빚게 만들고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MBC는 15일 특보를 통해 "축소, 결방, 스페셜 방송 등 편성 변경 비율이 파업 초기 24.8%에서 5월 넷째 주에는 9.4%로 현저히 낮아졌고, 재방 비율은 10.5%에서 3.0%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무한도전>을 제외하고 파업 이후 결방된 <시사매거진 2580> <웃고 또 웃고> <우리 결혼했어요> <불만제로> 등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편성을 채워 "<무한도전>을 제외하고는 편성의 정상화가 이루어진 셈"이란 논리를 펴고 있는 것.
이 상황에서 파업에 적극 동참하는 김태호 PD와 <무한도전> 제작진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외주제작은 생각지도 않고 있다는 출연진 또한 <무한도전> 녹화일에 맞춰 얼굴을 맞대며 서로의 감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2009년 3월 김재철 사장 취임이후 방송된 특집 중 김재철 사장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는 아이템 말이다. 이른바 '김재철 사장을 위한 시즌2 특집'. 특유의 풍자와 촌철살인이 살아있는 <무한도전>이니 만큼 실명을 뺀 '사장님 특집'으로 만들어도 무방하겠다. 물론 이 특집은 파업이 무사히 끝나고 김재철 사장이 퇴진한 뒤 방송돼야 한층 재밌을 것으로 예견된다
▲ 만화가 강풀이 그린 '무도' 응원 웹툰
ⓒ 강풀 트위터 태그: 무한도전
- <무한상사> 시즌2, "사장님 퇴임은 안 됩니다"
이진숙 MBC 홍보본부장은 "김재철 사장이 절대 물러나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실로 무한한 직장 상사에 대한 사랑이요, 충정이다. 할리우드 액션을 통해 노조를 폭력 무리로 둔갑시킨 권재홍 보도본부장도 같은 부류다. 이밖에 많은 간부들은 김재철 사장의 썩은 동아줄을 부여잡고 MBC의 명운을 흔들고 있다. 배현진 아나운서 등 일개 개인이 파업 후 받을 지탄을 떠올려보면 오히려 애처로울 지경이다.
파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던 지난 1월, <무한도전>은 '무한상사' 특집을 통해 보스에게 목매는 직장인의 비애를 그린 바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방점은 유재석이 분한 '보스'의 전횡만큼이나 비굴한 간부에게 쏠렸다. 마치 파업 후 상황을 예견이나 한 듯이. 시즌2에서 MBC 파업 후 간부들이 보여준 목불인견의 '사장님 사랑'을 그대로 패러디해도 '대박'이 날 것이다.
- <죄와 벌> 시즌2, '김재철 고소 사건'
최근 경실련은 김재철 사장을 업무상 배임과 부동산실명제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언론시민단체가 수사를 촉구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의 검경은 MBC 노조 정영하 위원장 등 5인의 업무방해죄 등에 대해서는 즉각 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으로부터 2번이나 기각되는 굴욕을 맛봤다.
자, 2010년 2월 길의 '방뇨 사건'을 토대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법정극을 만들었던 김태호 PD라면 '카드왕' '숙박왕' 김재철 사장의 비리에 대해 실감 나는 법정드라마를 만들고도 남는다.
김재철 사장의 <사랑과 전쟁> 뺨치는 애정 행각을 재연드라마로 만들면 금상첨화다. 만약 시즌2에 김제동·이효리 등 연예인 증인의 출연이 힘들다면 김민식 PD· 신정수 PD와 최현정 아나운서·최일구 앵커 등 김재철 사장으로부터 징계 등을 받은 스타 PD와 아나운서들이 증인으로 나설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게 순리다.
▲ '무도' 김태호 PD에게 '김재철 사장' 특집을 제안합니다
ⓒ 유성호 태그: 김재철
- <타인의 삶> '사장님 편'
박명수는 의사로, 정준하는 야구선수로 타인의 삶을 살았다. 동갑내기이면서 다른 직업을 지닌 이들의 삶을 살며 '인생의 소중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웠다. 이제 멤버들이 나이는 다르지만 '사장님의 삶'을 살아 볼 차례다.
법인카드를 제 것인 양 사용하고, 집보다 특급호텔과 동네 사우나를 들락거리며, 여성 무용가를 특히 '애정'하여 그 오빠까지 MBC 직원으로 채용하고, 격무에 시달리다 못해 주말 북한산 등반을 업무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는 그 사장님 말이다. 김태호 PD라면 분명 취재진과 만나 사장님이 "저, 그런 사람 잘 몰라요"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급 대사는 꼭 방송에 삽입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그리고 <돈을 갖고 튀어라> 시즌2
비록 김재철 사장 취임 전인 2008년 8월에 방송됐지만, '레전드'로 회자되는 방송인만큼 '사장님을 위한 시즌2 특집'에도 꼭 삽입돼야 마땅하다. <런닝맨>이 인기를 얻기 전, 예능 속 추격극의 원조야말로 <무한도전> 아니었던가.
일단 제목부터 살짝 바꿔보자. '사장님을 잡아라' 혹은 '돈을 갖고 튀는 사장님을 잡아라'로. 배임과 횡령을 일삼은 사장님, 출근은 고사하고 사우나와 인근 공원, 북한산 등으로 요리조리 잘도 숨는 사장님을 쫓기 위한 숨 막히고 스펙터클한 추격의 드라마야말로 결방으로 <무한도전> 금단 현상을 겪었던 무도 팬들을 위한 최고의 서비스다.
그리하여 마지막, 유재석·박명수·정준하·정형돈·하하·길·노홍철이 사장님 대역 연기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파업으로 일자리를 빼앗긴 데 대한 울분을 쏟아낸다면 재미와 감동, 눈물을 버무린 클라이맥스 아니겠는가.
오늘도 '<무한도전> 결방의 의미'와 같은 기사가 쏟아진다. 이나영·박지성 등이 출연하는 가상방영표가 등장했을 정도다. 이제 MBC 파업을 넘어 한국 방송의 역사에 길이 남을 <무한도전> 결방의 역사는 지금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사장님의 자발적 협조가 필요하다. 만약 경찰 조사나 구속으로 출연은 쉽지 않을지 모르니, 어서 퇴진부터 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