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대 초록환타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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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은 어둑 어둑해져 있었다.
근방에는 이미 추수가 끝나 휑한 벌판, 군데 군데 서있는
누더기를 걸친 허수아비가 더없이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늦 가을의 바람은 차가웠다.
위위위윙.. 귀를 에는 듯한 한기에 나는 코트 목주위를 다시 여미었다.
주위는 아무도 없었다. 금방 비가 올듯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걷노라니 이내 황량한 아스팔트길 앞으로 십자로가 나타났다.
길 옆으로 나있는 건초로 지어진 저장고는 버려진듯 수더분했다.
나는 잠시 길을 멈춰섰다.
순간-
버려진 건초더미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묘한 소름이 전신을 훓었다.
다시 한번 새차게 바람이 불면서 늙어 죽은 고목나무를 흔들리게 했다.
싸악! 싸아아아-!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가 어서 길을 가라며 재촉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조심스럽게, 너무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게 걸음을 떼었다.
누가보기에도 나는 민감해져 있었다. 그게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뚜벅, 뚜벅, 뚜벅..
서서히 다가오는 저녘 어둠, 싸한 밤 공기가 코에 스며들었다.
거칠게 닳은 아스팔트위로 천천히 울리는 내 발걸음은 마치 누군가 나를 뒤따라 오는 듯했는데,
나는 차마 뒤돌아보지 못했다.
진짜로 무언가가 있을까봐서 였다.
잠시 걸음을 멈춘 나는, 이내 실없이 웃고는 다시 발을 들었다.
걸었다. 아니, 걸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귀에 들리는 섬뜩한 목소리..!
- 멈춰봐..
멈춰봐.. 멈춰봐..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한마디를 들었을 뿐인데
미친듯이 떨리는 심장과 몸을 주체하지 못해 돌리지 못했다.
- 고향길인가?
고향길인가? 고향길인가? ...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는 믿음이 있다, 신념이 있다.
너 따위에게 휘둘리는 믿음없는 자가 아니다!
나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후들거리는 다리를 들어 천천히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다.
-킬킬킬킬킬..
킬킬킬..킬킬킬..
소름끼치는 웃음소리..
다리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듯 했으나 간신히 힘을 주어 땅을 디뎠다.
- 가지마, 회개하면..
회개하면.. 회개하면..
- 참된 축복을 네게 줄게. 네 영혼을 내게 맡기고, 편히 쉬어라
편히 쉬어라.. 편히 쉬어라..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섬뜩하고 쇳소리같던 목소리가 한순간에 내 모든 사고와 이성을 녹일듯이 달콤해졌다.
모든것을 부드럽게 풀어버리는 목소리..
아아.. 그렇다고, 알겠다고 대답하고 싶다..
쌀쌀한 가을 날씨마저 푸근한 여름날 같이 따사로왔다.
하지만.. 이건.. 안돼!
"으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길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끼하하하하하하, 어디가? 어디가?
어디가.. 어디가..
남자 목소리인지 여자목소리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아니, 인간이 가질수있는 목소리가 아니다.
두려움을 긁어대는 끔찍한 목소리다.
- 태생을 바꾸면 돼, 네 잘못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끈질기게 따라오며 귓가에 토해내는 목소리..
나는 반 실신 상태로 겨우 십자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허억! 헉! 헉!" 2분가량을 뛰었을 뿐인데도 온 몸이 땀에 젖었다.
십자로가 끝나는 모퉁이에서 나는 발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엎어지면서 구르기 시작했다.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저주받은 목소리는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침착히 먼지투성이가 된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손을 양 어깨로 교차시켜 올린뒤 그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벗겨진 상체, 남자의 등뒤로 검은 문신이 새겨져있다.
둥그런 원에 삼각형을 교차시킨 커다란 별..
"루시퍼님, 천상의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이만 저를 업화의 지옥으로 거두어 주시기를"
땅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남자의 머리에 붉은 뿔이 돋았다.
등에는 검은 한쌍의 날개가 살을 찢고 돋아 오른다.
그는 악마다.
악마는 잠시 자신이 뛰어온 십자로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십자로, 빌어먹을 천족 같으니"
악마가 땅을 힘차게 한번 구르자 뜨거운 화염이 뒤덮인 억겁의 지옥이 보인다.
그는 사라졌다.
십자로 위로, 그를 안타까이 바라보는 순백의 날개가 있다.
회개하지 못한 자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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