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밀게에 올려야 할지 시사게에 올려야 할지는 좀 애매한데 일단 전쟁이니 밀게로.
[1퍼센트 독트린, p22]
...방대한 조직을 갖춘 연방 정부가 어떤 긴급 상황에 처할 경우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효율적으로 작동되지는 않는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되고 서로 상충되는 의제들을 떠안게 된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할지, 누가 시민과 주권, 상관들에게 취하는 조치에 책임을 져야 할지에 대한 규칙들이 존재한다. 이것들을 기반으로 엄청난 일들이 해결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측면이 안고 있는 역기능을 표출하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정부 조직이 상황이 허락되는 한 거짓말을 하고, 시치미를 떼고, 사실을 은폐하려 들며, 때로는 정권 유지 차원에서 어떤 조처를 취하려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지지가 없는 정부는 그저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책, p44~46]
...(2001년)9월 19일, 부시는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별개의 존재인 알 카에다와 이라크의 공격 목표가 하나로 집중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최초의 공식적 시도를 했다. 9월 12일 백악관 상황실 출입구에서 국가안보회의 대테러 국가 안보 조정관 겸 안보 보좌관인 리처드 클라크와 특별히 그 문제에 관해 논의했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한 채였다. 부시는 클라크에게 사담 후세인이 이번 공격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물었고, 클라크는 후세인이 연루되어 있다는 증거는 분명 존재하지 않으며, 이 공격은 명백히 알 카에다의 소행이고, 알 카에다와 사담 후세인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관계라고 설명했다.다시 9월 19일, 부시와 부통령 체니는 조지 테닛의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서 이 사안에 대해 한층 더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부시가 테닛에게 말했다.
"나는 사담과 알 카에다 사이의 연결 고리에 대해 알고 싶네. 부통령이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알고 있다더군."...
...체니가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찾아낸 정보를 테닛에게 들이댔다. 비행기 납치범들 가운데 하나인 모하메드 아타가 공격이 있기 5개월 전 체코 공화국의 수도 프라하에서 이라크 측 고위 정보 관리를 만났다는 것이다...
...테닛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프라하에 파견되어 있는 사무소에서는 그 보고서 내용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입니다."
[같은 책, p48~49]
...체니에게 조지 W. 부시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의 부름에 화답할 기회를 놓진 전직 대통령이긴 하나, 존경하는 인물의 아들이었다. 한편 럼스펠드에게 조지 W. 부시는 지적인 면에서나 진취적인 면에서나 결코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여긴 인물이며, 사담 후세인 제거라는 역사의 부름에 화답할 기회를 놓쳐 그 열등함을 증명한 인물의 아들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고위직에 자리를 잡는다. 외교정책 분야에 대해서는 도무지 경험이 없는 데다 편리하게도 자기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에서 말이다.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제휴 관계는 논쟁적인 비망록이나 잊혀진 토론이 해내는 역할 이상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힘이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100년쯤 지난 후, 학자들이 이 배역들이 늘어선 것을 보고는 사담 후세인은 이제 틀림없이 죽은 목숨이라고 말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2001년 1월 부시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렸던 국가안보회의의 회의 내용이 사담 후세인 정권 전복에 관한 논의였다는 것은 전혀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회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도, 그것은 전복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가 아닌 전복시키는 방법에 대한 논의였다...
다시 말해서, 당시 조지 부시, 체니, 럼스펠드는 처음부터 이라크를 박살낼 생각이었으며, 전쟁의 진짜 원인은 소위 '역사의 부름'같은 환상에 매달린 네오콘과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즉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인물로 역사에 남고 싶었던 조지 부시의 합작이었던 것입니다. 대량살상무기니 미국의 중동 패권이니 석유자원 확보니 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소이거나, 합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억지로 끼워맞춘 이야기 같은 거죠.
그렇다고 전쟁을 할 만한 명분이 있기는 했는가? 네, 전쟁엔 명분이 필요하다고들 하죠. 그러니 그까짓 거, 만들어냅시다.
[같은 책, p353]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대부분이 부통령 체니의 좌뇌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테러리스트들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예상은, 사실상 무기의 보유나 알 카에다와의 연계성에 대한 확실한 증거의 부족에도 1퍼센트의 가능성이라는 한계를 확실하게 충족시켜주는 사실상 "가능성은 낮지만 부담은 높은 사건(low-probability, high-impact event)"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1퍼센트 독트린은 그런 낮은 가능성을 "미국이 대응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확실성으로(as a certainty)"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전쟁 준비를 하면서 증거가 부족하니 어쩌니 하면서 수선을 피우는 사람들은 요컨대 논점을 잘못 읽고 있는 셈인 것이다...
즉 극히 미미한 가능성만 갖고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그리 똑똑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거든요.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속아넘어간 결과는 다들 아시는 대로, 끝도 없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블랙홀에다 무정부상태를 틈탄 이슬람 광신집단 IS의 준동까지 이어졌죠. 미국도 미국대로 엄청난 재정낭비와 사상자를 냈으며 군사기술 발전도 주춤했고(그 동안 중국 같은 후발주자가 엄청나게 치고 올라온 것은 덤입니다), 그 외에도 애국법 등 내부에 많은 비민주적 요소가 발생했고 경찰의 군대화(즉 경찰이 군대 놀이를 하는 것)라는 현상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FBI 산하 부대 같은 경우 작전하는 걸 보면 이게 도대체 미국 내에서 수사를 벌이는 건지 어디 중동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지경이 되었죠.
요약 및 하고 싶은 말
1. 당시 미국은 9.11과 상관없이 이라크를 박살낼 생각이었으며,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9.11은 그저 명분 내지 방아쇠에 불과했다.
2. 정상적인 민주국가라고 해서 다른 국가에 이유없이 싸움을 걸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3. 민주주의라고 해서 철옹성과도 같이 굳건한 체제도 아니고, 지배층은 얼마든지 아랫것들을 속여서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내몰고 사회 환경조차도 뒤틀어버릴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4. 인간의 합리성이나 사회 제도의 완벽함 따위를 과신하지 말자. 그런 건 교과서나 자기개발서에나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