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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danzi.com/blog/archives/94887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너무나 평범해서 그냥 잊혀져 버릴 수도 있었던 날이었다. 그 날, 뭔가 새로운 것을 본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나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평범한 경기도 모처의 평범한 동사무소 게시판이지만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눈에 띈다. 자세히 들어다 보니 이렇게 생겼다.
이 지역 교회에서 전도축제를 한다는 안내 찌라시다. 동사무소에서 지상파 디지털 방송 전환 공지를 가리면서까지 이런 전단지를 게시할 리는 없을 거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게시판을 가리고 있는 유리가 잠겨 있지 않아서 누구나 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열의 넘치는 신도나, 지나는 어린아이가 저렇게 붙여놓았겠지.
교회에서 전도하는 거야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전도 안 하는 교회가 이상한 거니까. 동사무소 게시판에 저런 것이 붙어있는 것도 그저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하지만 전단지의 면면을 살펴보면 결코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선 전도축제의 제목부터가 '바람바람성령바람 전도축제' 다. 라임 돋는 제목에 절로 마음이 경건해진다. 감히 전단지를 수거하여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우리 같이 디테일을 살펴보자.
'바람바람 성령바람'. 아니 그런데 '진돗개 전도왕' 은 뭐지? 기독교 전도와 진돗개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아아 이런 것이다. 진돗개처럼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교회 안 가겠다는 사람에게 전도하려는 마음을 먹었으면 진돗개처럼 끌고서라도 교회로 가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요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개에 빗대어 말하기도 하는데, 이 분은 스스로 개를 칭하는 패기를 가진 분이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도왕이 한 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분이 진돗개 전도왕, 그리고…
부흥전도왕
파워전도왕
웃음전도왕까지. 이렇게 '전도사천왕'이 완성된다.
물론 진돗개 전도법이 만능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진돗개 전도법을 보완/발전 시키기 위해 나온 자매품 전도법이 있기 마련.
그것은 바로바로 풍산개 전도법이었던 것이다. 아마 어딘가에는 요크셔테리어 전도법이나 푸들 전도법도 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개처럼 전도해서 정승처럼 구원하자는 깊은 의미가 아닐까. '개독'이라는 말은 어쩌면 이런 깊은 뜻을 가진 순수한 기독교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저 구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체모를 친근감이 느껴진다. 전도를 '영업'으로 바꾸고, 교회를 '회사'로 바꾸면 정말로 친근해진다. '영업을 해야 회사가 산다!'
왠지 유익하고 은혜로울 것 같은 이 축제에 참가하고자 하였으나, 내가 이 전단지를 발견한 것은 6월 10일이었으니 '바람바람성령바람 전도축제'는 이미 끝난 뒤였다. 너무나 아쉬웠다. 이 교회는 나의 인연이 아닌가보다 하고 단념하고 있었다.
인생의 묘미가 있다면 그건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것이 아닐까. 우연히 지나쳤던 한 전단지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이번에는 용달 탑차로 이어졌다. 지난 번 전단지를 발견한 곳 근처에서 나는 또다시 이런 것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때 그 교회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를 홍보하는 차량이었다. 자애롭게 웃고 있는 태진아의 얼굴 때문이었을까. 나는 언뜻 이 근처 어딘가 새로 연 성인나이트 홍보 차량인 줄만 알았다. 우측에 있는 천국문 지옥불 사진을 야한 사진으로 착각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냥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나는 거의 잊고 있었던 '바람바람성령바람 전도축제' 전단지를 기억해냈다. 그 전단지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진을 찍고 스캔을 떠놓을 때, 이걸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는 상태였다. 내가 왜 그랬을까. 어쩌면 운명이었으리라. 우연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역시 길을 가는데 어떤 분이 이런 봉투를 나눠준 것이다. 봉투 안에는…
이런 전단지가 들어있었다. 진돗개 전도법이란 이런 것인가. 교회 홍보물을 접하면 대체로 짜증이 나곤 했으나, 이 정도가 되자 이제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당시, 나는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연예인 초청 전도축제' 는 마침 내가 참석 할 수 있는 시간에 열렸다. 나는 혹시 모를 구원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참석을 결정했다.
때는 2012년 5월 26일 화요일. 마침내 그 날이다. 저 멀리서 문제의 그 교회가 보인다.
물론 이 동네에 그 교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렇게 으리으리하게 지어놓은 교회가 한 블럭에 하나씩은 들어서 있었다. 교회는 동네 공원에서 우유 영업하는 아저씨들보다 훨씬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각종 이벤트, 저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날은 연예인 초정 전도축제 제 1일차로 션&혜영이 나온다고 쓰여있었다. 내가 교회에 가려 한다는 사실을 안 어떤 분은, 그 션&혜영이 지누션의 션과 정혜영 부부가 아닐 수도 있으며, 션&혜영이라는 팀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해서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나 혼란은 잠시 접어두자. 이제 조만간 알게 될 터이니.
이 교회 담임 목사님의 간단한 예배? 찬양? 그런 것이 지나가고,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션&혜영이 나오는 걸까? 과연 이 션&혜영은 우리가 알고있는 진짜 그 션과 혜영일까?
아아 나왔다. 우려했던 짝퉁은 아니었고, 진짜 션이었다. 그러나 션의 아내인 정혜영 씨는 오지 않았다. 션은 자신의 신앙과, 이웃과 나누는 삶에 대한 '간증'을 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 나는 진짜 션이 나와서 극도로 정상적인 간증(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보기엔 강연이었던)을 하고 들어가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실망했다. 나의 옹졸한 마음속에서는 이쯤에서 뭔가 빵터지는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션의 강연을 듣고 느낀 점은, 유니세프에 다시 정기후원 해야겠다는 생각. 션 돈 많아서 좋겠다는 생각. 이렇게 강연 뛰어서 기부하는구나 하는 업자적 마인드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때, 역시 해답은 말씀에 있었다.
션의 이야기가 끝나고, 목사님께서 공지사항은 전달하시면서 '보지 않으신 분은 반드시 보시고, 이미 보신 분은 안 보신 분들 데리고 가서 다시 보라' 며 추천한 차체제작 컨텐츠가 있었다. 그건 바로…
두둥
'천국문 지옥불' 이라는 연극이었다. 목사님 말씀에 따르면 지난번 공연을 보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 스물다섯 명, 그 전 공연을 보고는 서른다섯 명이 주님을 영접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연극이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한 것일까. 어쩌면 나마저도 헤어나오지 못할 영적 카리스마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저 공연, 반드시 보러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교회를 나오며, 으리으리하고 쾌적하며 웅장한 건축물에 압도당함과 동시에, 이런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던 비결도 알게 되었다.
'천국문 지옥불' 연극을 하는 날짜를 "짝수주일" 이라고 했는데 나같은 비교인은 그게 무슨 말인지 고민해야 했다. "짝수주일" 이란 매월 짝수번째 일요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지난 7월 8일도 짝수주일이라 나는 또다시 그 교회를 찾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김용민 양말을 신고 갔다.
내가 이날 연극에서 보고 들은 바를 이곳에 적는다. 내가 현장에서 느낀 은혜로움을 독자 여러분께 털끝만큼이나마 전달 할 수 있기를. 주님 도와주소서. 아참, 연극 이야기를 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은 이 연극의 주 관객은 초등학생들과 단체로 마실나오신 할머니들이었다. 다른 회차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연극이 시작되면 예수님이 객석 뒤쪽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타난다. 주위에 따르는 나쁜놈들이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리면서 길을 채근한다.
예수님은 끝내 십자가에 매달리고…
사탄의 무리가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쓱 내려오더니…
사탄의 무리를 장풍으로 제압한다.
뒤에 있는 스크린에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후 암전이 되고 장면이 전환된다.
무대의 세 여자는 대학생이다. 벤치에 앉아있는 여대생은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등록금 대랴 어머니 약값 대랴 성실하게 살고 있다. 이 친구가 경제적 고난을 겪고 있음을 알게된 뒤, 자신들과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한다. 초딩 저학년들이 우글거리는 앞에서 '나 룸살롱 다녀' 라는 대사를 하는 배우들도 민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일하는 곳은 룸살롱이었다. 성실한 여대생은 친구들의 유혹을 뿌리친다. 그러나 어느날, 이 친구들이 밥먹자고 불러내서 나가보니 그곳은 룸살롱.
일을 하네마네 실랑이 하다가…
갑자기 쾅 터진다. 진짜다. 갑자기 쾅 터진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영화 매트릭스의 엘리베이터 폭발 장면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렇게 이번 에피소드의 등장인물 3명은 모두 죽는다.
죽고 나니 천국문 앞에 와있다. 성실하게 살았던 여대생은 천국에 가고, 룸살롱 종업원 두 명은 지옥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놀라운 내용의 연극이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여자주인공의 태도였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딱 이런 태도로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착하게 살았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으니까 천국갈 거야 까르륵' 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죽음에 이토록 기뻐할 수 있다는 것도 물론 놀라웠다.
그러나 남편 없이 병든 몸으로 외동딸 하나 데리고 살다가, '룸살롱 화재사고'로 하나뿐인 딸을 잃은 주인공의 어머니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이 연극은 옴니버스다. 이야기는 숨가쁘게 전개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한 부부가 나온다.
남편이 제사 지내야 하는데 교회로나 나다닌다면서 짜증내다가 '그래 이혼해' 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혼하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둘 다 죽는다.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남자는 지옥에 간다. 이 연극에 나오는 모든 '착한 여자' 캐릭터는 70년대 드라마의 며느리 캐릭터랑 거의 같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한 가족이 나온다.
사업에 망한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꼬장을 피우다가, 갑자기 가족들이 모두 '우린 불행해' 라고 말하며 온 가족이 순서대로 독약을 마신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생들 모아놓고 일가족이 통곡을 하며 차례차례 독약을 먹고 자살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글쎄. 훨씬 잔인하고 끔찍한 영화나 드라마도 많겠지만, 내가 여태껏 본 어떤 문화컨텐츠보다 스너프필름스러운 엽기성이 살아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내 자식이 만약에 교회에 간다고 하면 그 교회가 애들에게 보여주려는 컨텐츠를 반드시 사전검열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이 가족은 지옥에 간다.
자살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옥에 간다고 한다.
이쯤 되자 나는 영적인 구원을 지나치게 받은 나머지 내상을 입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는 사진찍기를 포기했다. 마지막이자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는 역시나 화룡점정의 미덕이 있었다.
한 소녀가 있다. 이 소녀는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산다. 할머니와 손녀는 서로가 유일한 가족이자 소울메이트다. 할머니가 손녀가 부모 없이 자라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자 소녀는
'나중에 죽으면 천국 가서 만날 건데요 뭘'
이라는 말을 태연하게 한다.
할머니는 어느 부잣집에서 파출부로 일을 한다. 이 부잣집은 자식들이 아버지 재산을 두고 싸우고 있다. 할머니가 일하는 동안 아들들이 아버지한테 돈 내놓으라고 한다. 한참 싸우는 와중에 갑자기…
또 펑! 터진다. 매트릭스의 엘리베이터 폭발 화면은 주인공들을 죽이기 위한 일종의 데우스엑스마키나일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죽고, 천국문 앞에 섰는데 그 할머니가…
마치 골을 넣은 축구선수처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어려운 가정형편에 조실부모하고 나 하나만 믿고 살던 어린 손녀딸 따위는 천국문 앞에서 가볍게 잊혀지는 것 같다. 물론 같이 죽은 부잣집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
연극이 끝나자, 뒤의 스크린에는 빈센트 워드 감독의 1998년작, '천국보다 아름다운' 의 주요장면이 나왔다.
그리고는 '여러분의 가족이 지옥가는 거 바라지 않는다면 교회로 끌고 오세요' 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연극은 막을 내렸다.
나는 연극이 준 감동의 여운을 좀 더 곱씹고자 객석에 계속 앉아있고 싶었지만 갑자기 주최측에서 헌금 주머니를 돌리는 바람에 벌떡 일어나 나왔다. 그리고 오늘 처음 온 사람들(정확히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줬다.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연극에 따르면 인생이란 천국으로 가는 일종의 시험과 같은 것이다. 교회 열심히 다니면 천국에 가고 잘 안 다니면 지옥에 간다. 이승세계에 홀어머니가 남겨져 있든, 부모 없는 손녀가 혈혈단신 남아있든 그건 신경쓸 일이 아니다. 천국 시험에 합격한 것이 중요한 거니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사후세계가 그러지 말란 법도 없다. 알고 보니 인생이라는 것이 그냥 천국고시 시험일 수도 있는 거니까. 나야 죽어본 일이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다. 아,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도 죽어본 일이 없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지 않으면 이교도가 되는 환경이니 그 사람들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일 게다. 나는 아직 그들이 가진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의 근거를 모르겠다.
나는 종교인들이 가진 사후에 대한 확신이 망상증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에 공감한다. 천국이 어떻고 지옥이 어떻고 하는 상상의 이미지는 많지만, 정작 그런 사후세계를 검증하려는 노력은 없다. 그냥 망상이다.
내가 주제넘게 이야기 하자면 이런 요상스런 천국과 지옥은 불안의 산물인 것 같다. 모른다는 불안감. 어떻게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불안감 말이다. 누구나 어려서 부모님이 제시해 주시는 답을 지침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부모님은 늙어가고, 내가 옛날 부모님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답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쯤 되면 인생이 뭔지 보여야 할 것 같은데 모르겠는 거다.
그래서 답을 알고 있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그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답이 진짜 타당한지에 대한 고민은 미뤄둔 채 말이다. 일단 천국지옥 메커니즘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고,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하니까 믿는다. 거기에서 편안함을 찾는 것 같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면 그 사람이 어떤 방법을 가졌는지 신경쓰지 않고 그냥 믿는다. '다 해주시겠지' 하면서.
이렇게 맹목적으로 답을 구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도 확신을 가지고 답을 강요한다. 종교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나, 우리의 아이들이나…
우리에겐 '몰라요' 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도 삶과 죽음의 답을 모른다. 그래서 모두가 외롭고 힘들다. 모른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순간 망상이 싹트고, 이건 머지 않아 폭력이 된다.
인생이란 원래 잘 모르겠는 거다. 인간은 인간끼리 돕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교회 나가봐서 아는데, 아직 나에게는 교회가 필요한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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