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02년 본인이 직접 겪은 100% 실화입니다. ========================================================
[도둑 든 날]
"도대체 어떤 새끼야!!!!"
꼭지가 확돌아 머리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사랑이'를 데려갔을까?! 책상옆에 디지털카메라도 있었고, 서랍에 지갑도 있었는데 이 미친 새끼는 강아지만 데려갔다.
시츄 2년생. 범인은 다른 것은 그대로 두고 사랑이만 데려갔다. 애견붐이 일어 시츄 순종이면 3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고는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돈 될 것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옥탑방 입구문은 분명 잠갔는데 이곳 저곳을 살펴보니 녀석은 계단을 올라와서 옥탑방 문 오른쪽 위에 나 있는 다락방창문을 깨고 들어왔다. (다락방은 옥탑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가족을 잃은 기분..아니 이미 가족이었기에 한참을 미친 놈처럼 옥상에서 꽥꽥 거리다가 비로소 이성을 차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너 이새끼 내가 꼭 잡는다!"
[도둑 든 지 1일째]
밤을 새워 고민했다. 다른 물건은 손대지 않고 강아지만 데려간 것으로 봐서는 내가 강아지와 같이 있다는 것을 아는 놈..즉 나를 알고 있는 놈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녀석은 내가 학원 강의를 하러 출근하기 때문에 낮에 방이 항상 비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녀석은 또 이곳에 올지 모른다.
일단 어제 녀석이 이곳에 왔을 때 책상 위 컴퓨터를 이용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켜고 익스플로러를 실행한뒤 '쿠키파일을 모조리 점검하여 로그기록을 살폈다.' 내가 출근했을 시각, 즉 방이 비어 있었을 시각에 특정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프리첼 로그인 기록'이었다. 당시 나는 프리첼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회원수는 2500여명 정도였다. 범인은 바로 그 커뮤니티에 접속했던 것이다. 프리첼측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여차저차하니 로그인 기록을 알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를 일개 개인에게 타인의 로그인 정보를 알려 줄 리 만무했다. 경찰을 통해 정식으로 절차를 밟으라고 했다.
머리를 굴렸다. 지금 이런 의심만으로는 경찰을 설득(?)하기엔 부족하다. 뭔가 필요했다.
'좋다. 내가 밝혀주지.'
자, 내가 범인이라면 어떡할까? 낮엔 항상 비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방...한 번 더 찾아가고 싶지 않을까? 컴퓨터가 있는 책상위에 깔려 있는 유리를 깨끗하게 물청소를 했다. 그리고 출근했다.
[도둑 든 지 2일째]
유리에 지문이 선명하게 찍혔다. 그리고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등판에 '과학수사대'라는 마크를 단 형사들이 능숙하게 그 지문을 떠 갔고...담당 형사에게 인터넷 쿠키파일과 로그기록..그리고 프리첼 접속 시간과 프리첼 담당자의 전화번호를 전달했다.
이제 기다림이 남았다. 사랑이를 잃은 날 온동네에 전단지를 붙였었는데 떼야 할까보다. 범인은 근처에 없을 것이기에.
그리고 밤. 후배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랑이'를 잃고 너무나 힘들어 하는 나를 위로해주는 커뮤니티 사람들이 고맙게도 많았었는데 그 중에 한 녀석이었다. 녀석은 나를 많이 따르고 의지도 하는 편이었고 그런 녀석이 좋아서 술도 참 많이 사주고 했었다. 녀석은 내가 폐인처럼 사는것이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옥탑방 옆건물 작은 치킨집에서 생맥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내방에서 자고 가라...술도 많이 됐고...지하철도 끊겼어.." "고마워요 형..나쁜 새끼..꼭 도둑 잡아야 할텐데.."
둘이 술이 취해 비틀거리며 밤늦게 옥탑방에 돌아와서 널부러져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새벽 1시경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문조회 결과하고 인터넷 접속결과 나왔습니다. 같이 있죠? 지금 출동합니다"
설마...라는 의심은 며칠전부터 계속 들었지만 경찰들이 온다니 어쩔 수 없었다. 10여분후 경찰이 옥탑방을 들이닥쳤고, 그들은 능숙한 솜씨로 녀석을 달랑 들어서 데려갔다.
[도둑 든 지 3일째]
다음날 오전 10시경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씨 경찰서로 오시죠. 녀석이 다 불었습니다. 강아지 찾아야죠" "네." 씁쓸했다. 마음으로 아껴주고 동생처럼 대해주었던 녀석이 범인이었다는 것이. 강아지는 충북 어느 곳에 팔려간 뒤였다. 하지만 녀석이 아주 헐값에 팔았기 때문에 되찾을 가능성은 있었다. 최종적으로 사랑이를 산 사람이 장물임을 알고 샀다는 것이 증명되면 말이다. 하지만 산 사람이 '난 장물인줄 몰랐다'고 해버리면 골치아파 진다. 법이 그렇단다. 물건을 훔쳐서 팔았을 때 그 물건을 산 사람이 소유권을 가지고, 물건 훔친 놈은 벌 받고...뭐 그렇다고 한다. 그 경우 재판까지 가야한다. 하지만 경찰서에 도착해서 경찰 왈, 강아지를 사갔던 사람이 상황을 알고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단다. 고마운 분이다.
녀석은 경찰 책상앞에 머리를 박은채 조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녀석의 옆을 지나면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새끼야. 니가 사람이냐?"
그리고 며칠 뒤 사랑이는 나의 품으로 돌아왔고, 얼마뒤 경찰서에서 요청이 와서 간단히 "인터넷 쿠키파일, 로그기억 분석요령"에 대해서 짧은 강의(?)를 한 뒤 구내식당에서 밥을 얻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