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쯤엔 교회마다 밤늦게까지 행사가 많았다.
남중을 다니는 이유로 평소에 대면하기 힘든 여학생들을 볼수 있다는 일념에 어
줍잖게 다니기 시작한 교회였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행사에 참석했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교회문을 나설수 있었고
지름길이자 귀찮은 검문(치열해던 80년대의 민주화 물결 아시죠? 동네에 중앙
대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밤늦게 어슬렁 거렸다간 불심검문 걸리기 쉽상이었죠)을
피해갈수도 있을 코스를 택하기로 결정했다.
똥...고...개...
똥고개로 가기로 결정했다는 표현을 굳이 쓰는 이유가 있었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이름과는 달리 예전부터 워낙에 소문이 무성했던 장소이기도 하
거니와 아주 길고 경사가 심한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는 난코스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3명의 친구와 큰길가를 지나 드디어 똥고개 어귀로 들어섰다.
왠지 모르게 오싹해지는 기분을 감추기 위해 저마다 큰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지
만 엄습해 오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조심스런 걸음을 띠고 있는데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길 앞쪽에서 갑자기
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의 정체는 왠 아주머니였고...
"학생들 여기서 사당동 가려면 어떻게 가야되지?"
새벽 1시가 다되가는 시간이었다.
옛날에 공동묘지 자리였다는 소문도 있었고 심지어 여자가 목매달아 죽은 일도
있었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나도는 장소에서 사당동엘 어떻게 가야되냐고 묻는 정
체불명의 아주머니 자체가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순간 다들 약속이나 한듯이 말없이 마구 뛰었다.
공포는 전염된다고 했던가...
아주머니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갑자기 큰길쪽으로 후닥닥 뛰어 내려가 버렸다.
돌연한 아주머니의 행동에 더 놀라고...
한바탕의 소동이 가라앉은 다음에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다.
뒤돌아 큰길로 나가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사춘기 소년들의 치기 때문이었을까 계속 가보기로 한것이다.
충격을 가라앉히기 위해 과장된 수다로 일관하며 오로지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는데
꼬마라는 별명을 가진 녀석이 슬그머니 오른쪽 옆으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다들 숨을 멈추었지만 절대로 따라서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녀석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큰 흙더미 위에 잡초와 나무가 제멋대로 얹혀있는 듯한 형국의 지저분하고 나즈막한 산이었다.
낮에는 동네 아이들이 즐겨찾는 놀이터도 되고 별다른 느낌이 안드는 곳이었지만 칠흙같은 밤에는 180도 분위기가 바뀌는 곳...
맨 꼭대기에는 흉가인지 아닌지 구분이 모호한 낡은 집한채가 있었다.
바로 그 집앞에 몬지 모를 희뿌연 물체가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긴머리를 늘어뜨린 하얀옷을 입은 여자였다...
과장된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던 꼬마 녀석은 대번에 표정이 굳어버리고
꼬마녀석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나머지도 무의식적으로 그 장면을 보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의 상황은 잊지못할 악몽이라 해두자...
여자는 낡은 집앞에서 차가운 달빛을 받으며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창백한 얼굴 때문에 유난히 더 검어보이는 긴 머리카락을 마치 빗질이라도
하듯 쓸어내리고 있었다.
너무도 무표정해서 더더욱 소름끼치는 느낌의 여인이 갑자기 움직였다.
울퉁불퉁한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집 사는 사람일꺼라고 억지로 생각을 몰고가던 일행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길게 자라있는 지저분한 잡초와 돌출된 작은 바위 덩어리들이 가득한 산비탈을 타고
너무도 쉽게 스윽 내려오는 걸 보고 자신들의 생각이 여지없이 틀렸다는걸 깨달아야 했다.
여인은 순식간에 날 듯이 산을 내려와 산 밑자락에 나란히 세워놓은 어른키 중간
높이 정도의 담장에 턱 서서 동생 일행과 같은 속도로 담장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걷는거라고 할순 없었지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일행과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공포가 극에 달할때는 걸음조차 안 띄어진다고 했던가...
천근만근 무겁기만한 다리... 사고조차 얼어버려 큰길로 도망칠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어느정도 그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을 때 꼬마녀석이 또 일을 내고 말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듯한 심정으로 애써 여인의 존재를 모른척하며 움직이던 일행을 배신하고 앞으로 혼자 마구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차라리 큰길쪽으로 도망칠 것이지 하필 위쪽으로 뛰어 올라가는 바람에 일행은 반사적으로 같이 따라 뛰었다.
담장위의 여인도 비슷한 속도로 나란히 움직였다.
예의 그 표정없는 싸늘한 얼굴을 돌려 힐긋힐긋 바라보며 말이다.
이미 꽤 멀찍이 도망가 산쪽에서 벗어난 꼬마의 뒷모습을 보며 굳은 다리로 힘겹게 뛰고 있는데
길가에 있던 집에서 대문이 열리고 나타난 중년남자가 꼬마를 불러 세워 말을걸고 있는게 아닌가.
어른이 나타났단 생각에 어느정도 안심을 하면서도 뒤도 안돌아보고 계속 뛰었다.
갑자기 꼬마가 일행쪽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마구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이 있던 중년의 남자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집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버렸다.
이젠 오로지 앞만 보고 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죽어라고 꼬마녀석이 있는곳까지 왔다
얼이 빠져있던 꼬마가 겨우 입을 열어 해준말에 소름이 쫙 끼쳤다.
“야... 너희들 뛰어올 때 뒤쪽에 뭐가 따라오고 있었는줄 아냐...?”
“,,,,,,,,,”
“그 여자였어... 근데 한명이 아니었다...”
“그 여자들이 너희 뒤쪽에 바짝 붙어서 같이 뛰어오고 있었어.”
“그런데 그 여자들... 등쪽이 앞을 향하고 있었는데 얼굴도 정면을 보고 있더라... 흐흑...”
그런 얘기들을 털어놓던 꼬마가 갑자기 흠칫하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동생은 사람 머리털이 곤두서는 장면을 그때 처음 보았다고 한다.
녀석의 머리카락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곤두섰고...
녀석은 목덜미를 만지면서 차가운 손같은 것이 목을 휙 스치고 지나갔다고 했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도 이미 체념한 심정으로 계속 집을 향해 가던중에
어느 집에선가 창문을 드르륵 여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살려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소리가 나는곳을 보았을 때 또한번 기절할뻔 했다.
철창살이 쳐진 어느 집 창문에서 그여자가 일행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에 팔을 들어 손바닥을 위쪽으로 향한 자세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여인의 얼굴보다 더 무서웠던게 또 있었다.
설명하기가 애매하지만 창문과 쇠창살 사이의 좁은 공간속에 여인의 상체가 있었고
하체는 창문밑의 담벼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는 기괴한 모습...
말이 필요없었다.
일제히 또 달리기 시작했고 저만치 앞쪽에 불빛이 보일때까지 쉬지 않고 뛰기만 했다.
천만다행히도 그 시간까지 문을 열어둔 가게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코앞에 가게가 보일때쯤 와서야 뛰는걸 멈추었는데 갑자기 또 섬뜻한 느낌이 들면서 아직 끝난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가게는 코앞거리가 아닌 아직도 더 가야되는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가게 안에까지 우르르 뛰어 들어가서야 겨우 안심을 하게 되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뛰어들어온 소년들을 보고 아주머니도 많이 놀랐셨던 모양이다.
“학생들 왜그래? 이시간까지 집에도 안들어가고 뛰어왔나 이 추운 날씨에 땀까지 뻘뻘 흘리고 말이야?”
“아주머니... 저희 정말 이상한일을 당했어요”
“귀신을 봤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그게 정말이야? 학생들?”
“원래는 이시간까지 가게 문을 여는 일은 거의 없는데 오늘은 왠지 늦춰지게 되더라고”
“여하튼 큰일날뻔 했네 학생들”
동생일행은 이구동성으로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고 대충 상황을 들은 아주머니도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라셨다.
동네 토박이 어른들은 똥고개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을 익히 들어 알고있던 터라 아주머니는
오싹해진다며 얼른 가게문 닫고 들어가야 겠다고 하셨다.
아주머니의 배려로 아주머니 아들의 트럭을 타고 집으로 갈수 있게 되었고
아들은 차를 가지러 간다고 나간 후에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가게 문앞에서 차소리가 들렸다.
차가 왔구나 하고 얼른 가게를 나섰는데 웬걸...
바로 가게앞에서 들렸던 소리에 비해 차는 아직 저만큼에서 오고 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오싹해져 다시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트럭이라 앞자리에 많은 인원이 탈수 없었지만 도저히 뒤 화물칸에 탈 엄두가 안나서
앞자리에 다들 포개다시피 해서 집에까지 왔다.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경험이었다...
만약 다시 떠올린다면 그녀가 또 찾아올것만 같았기 때문에...
죽을때까지 모른척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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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너무 길어진 것 같네요.
별로 재밌지도 않은데 여기까지 다 읽어주신 분이라면 정말 참을성이 많으신 겁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고딩때 동생한테 들은건데요.
들을때는 어찌나 섬찟하던지 한동안 밤길 다니기가 무서울 정도였으니깐요...
그런데... 역시나 필력의 부재 때문인가요...
지금 써놓고 보니깐... 흐... 한개도 안무셔... ㅠ.ㅠ
똥고개란 곳은 동작구 흑석동에 실제로 있는 곳이랍니다.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저희집은 그곳에서 이곳 부천으로 이사하게 되었구요.
몇년전에 흑석동에 갈일이 있어서 똥고개 쪽도 가보았는데 개발이 무섭긴 무섭더라구요..
그 지저분한 동산은 싹 밀어져 아파트가 들어섰고 전혀 다른 동네가 되었더라구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예전에 떠돌던 소문들을 알지 잘 모르겠지만...
가끔 문득문득 떠오르는 마음속의 공포의 장소랍니다...
동생은 저한테 딱 한번 이야기를 해준 이후로는 그일에 대해서는 입 꼭 다물었습니다.
다시 물어볼라 치면 손사래를 치면서 절대로 이야기 안해줍니다.
다시 시작될까 겁난다네요...
읽어 주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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