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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bqan0
Ⅰ.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공통점 및 간단한 전황
일단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에 당당히 기록중이야 이유는 알잔아 범인이 안잡혀서 공소시효는 이미 지나버렷지. 지금 미제사건은 다 이런현황이지
간단하게 요약해서 볼게
1. 화성 연쇄 살인사건 -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차례로 살해되었으나 범인이 잡히지 않은 미해결 살인사건.
2. 이형호 유괴 살해사건 - 1991년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에 살던 이형호(당시 9세) 군이 30대로 추정되는 남성에게 유괴되어 살해당한 사건이다.
3.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 1991년 3월 26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살던 우철원(禹喆元, 당시 13세) 등 초등학교 학생 5명이 개구리를 잡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사건.
공통점에 대해서 말해볼게
1. 살인사건 - 화성도 그렇고 이형호도 그렇고 개구리소년까지 모두 피해자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지 그리고 피의자는 안잡힘 , 화성사건은 용의자가 잡앗으나 다시 풀어줫지. 근데 이것도 확실한 용의자로 추측이 될뿐 잡아서 까지 않는한 누가한지는 미스테리인게 함정이지..
2. 용의자들이 상당한 지능범이다.
3. 이 3가지 사건은 모두 영화로 제작 되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실화바탕>
<이형호 유괴 살해사건 실화바탕>
<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실화바탕>
이토록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화제를 낳았던 사건들 그중 가장 ㅈ같은 사건
화성연쇄사건을 모티브로한 살인의 추억을 자세히 설명해볼게
(이걸 설명하면서 하는게 실제로도 도움이 많이되고해 영화가 그때당시 기사나 언론 그리고 경찰 수사조사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라 상당히 세세하게 나와있거든 읽판에서 영화리뷰한다고 머라하지마 ㅠ 화성연쇄살인사건 정리하는데는 이보다 더 좋은건 없을것같아서 말이지)
1부 끝
+++++++++++++
Ⅱ . 살인의 추억 소개 (스포일러./ 안봣으면 이참에 꼭한번봐라 후회는 안한다)
우리들에게 살인의 추억은 아마도 전미선 노출이라는 면하고 희귀한 패티쉬를 가진 개객기라는거
이런것만 기억될지도 모르겟지만 일단 포스팅을 해보자
네이버 평점 9.27 /// 다음평점 9.4
분류 :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개봉일 : 2003. 04. 25 15세 관람가
출연 : 송강호, 김상경, 박해일, 고서희, 전미선, 변희봉
제작비 32억원 // 2003년 한해동안 570만명 관람객 // 여담이지만 외쿸에서 상도 받음.. (궁금하면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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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내용 리뷰
1986년 경기도, 젊은 여인이 무참히 강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2개월 후, 비슷한 수법의 강간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일대는 연쇄살인이라는 생소한 범죄의 공포에 휩싸인다
사건 발생 지역에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수사본부는 구희봉 반장(변희봉)을 필두로 지역토박이 형수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김뢰하)
그리고 서울시경에서 자원해 온 서태운(김상경)이 배치된다
육감으로 대표되는 박두만은 동네 양아치들을 족치며 자백을 강요하고,
서태윤은 사건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지만,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은 처음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다
용의자가 검거되고 사건의 끝이 보일 듯 하더니,
매스컴이 몰려든 현장 검증에서 용의자가 범행 사실을 부인하면서 현장을 아수라장이 되고 구반장은 파면당한다
수사진이 아연실색할 정도로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살해하거나 결박할 때도 모두 피해자가 착용했거나 사용하는 물품을 이용한다
심지어 강간 살인의 경우, 대부분 피살자의 몸에 떨어져 있기 마련인 범인의 음모조차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후임으로 신동철 반장(송재호)이 부임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박두만은 현장에 털 한 오라기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근처의 절과 목욕탕을 뒤지며 무모증인 사람을 찾아 나서고
사건 파일을 검토하던 서태윤은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범행대상이라는 공통점을 밝혀낸다
선제공격에 나선 형사들은 비오는 밤
여경에게 빨간 옷을 입히고 함정 수사를 벌인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것은 또다른 여인의 끔찍한 사체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다시 감추고 냄비처럼 들끓는 언론은 일선 형사들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형사들을 더욱 강박증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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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체적인 영화 요약이자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전체적인 요약이야 영화를 본사람은 얼마나 미치도록 잡고 싶어햇는지 보는내내 느낄수 잇엇을꺼야
아무튼 평점도 많고 감독까지 또다른 열린결말을 제시하고 한때 큰 이슈가 됬엇어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사건에 대해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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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사건 전말
사건 전말이라고 부르기에는 끝이 없는 사건이긴한데 편하게 전말이라고 할게
사건 정리: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4년 7개월에걸쳐 13세 소녀에서부터 70대 노파에 이르기까지 연령을불문하고 성폭행 후 엽기적 살해라는 희대의 연쇄 성범죄 살인사건. 2006년 마지막 9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수사에 동원된 경찰만 연인원 205만명, 용의자 수가 21,280명, 지문대조40,116명, 유전자 대조 570명 등으로단일 사건으로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 미제사건이므로 범인의 범행동기나 범행 목적 및 심리상태를 알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경찰관들과 이 사건을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프로파일링이 가능하다.
1. 범인은 단독범일 것이다
2. 지리학적으로 안정된 연쇄살인범일 것이다.
3. 피해자에 대하여 극단적이고 가학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4. 살인을 통하여 성적인 만족을 추구한 자로 보인다.
사건 전개:1986년 9월 15일 71세의 이 할머니의 피살을 시발점으로 10차에 걸쳐 피해자를 강간, 살해. 살해 방법은 손으로 목을 조르는 액살과 파해자의 스타킹이나옷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교살을 사용.
범행 수법:
대부분 피해자를 피해자의 옷, 스타킹, 팬티등을 이용하여 양손을 결박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며, 목을졸라 살해. 대부분의 사건에서 강간한 흔적이 있고, 범행후반기로 갈수록 피해자의 음부를 훼손하거나 이물질을 삽입하는 음부난행의 경향이 두드러진다. 피해자의양손을 묶는 매듭이 같은 방식으로 되어 있고 피해자의 속옷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이전까지는 모발이나 정액 등의 흔적을 남겨왔으나 당시 수사 기술로 확인할 방법이 없어 활용하지 못했으며, 6차 사건에 이르러 발자국을 남겼지만 소나기로 인해 많이 흐려진 상태여서 정확한 발 사이즈조차도 확인할 수없었다.
사건의 주요 특징:
1.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다.
2. 피해자가 젊은 층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하다.
3. 피해자의 음부가 크게 훼손되었다. (4,6,7,9 차)
4. 사건 현장이나 피해자의 음부 안에서 정액 또는 머리카락, 담배꽁초 등이 발견되었다.
5. 피해자의 대부분이 목이 졸려 살해되었다.
6. 피해자의 국부에서 9개의 복숭아 조각이 나오고, 가슴이 19차례나 도려질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대담하다.
일단 간단 요약표야 세세하게 하나씩 들어갈게
일시 및 장소
피해자
발생개요
1차
1986. 9. 15. 06:20 경.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현 부림중기부지 내)
이00(71세)
수원에서 열무 등을 판 다음 안녕리 딸 정00가에서잠을 자고 06:20경 귀가 중 피살.
2차
1986. 10. 20. 22:00 경.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
박00(25세)
결혼관계 상담 차 송산 수양모가에 갔다가 20:00경귀가 차 버스를 타러 가다 강간 피살
3차
1986. 12. 12. 23:00 경. 태안읍 안녕리 축대 위
권00(24세)
19:50경 수원에서남편 김00과 헤어져 혼자 귀가 중 피살.
4차
1986.12.14. 23:00경. 정남면 관항리 수로 둑
이00(23세)
수원에서 선을 보고 22:00경 버스 타고 정남에서하차, 귀가 중 강간 피살.
5차
1987.01.10. 20:50경.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
홍00(18세)
수원에서 친구와 헤어져 22:35경 황계리에서 버스하차, 귀가 중 강간 피살
6차
1987.05.02. 23:00경. 태안읍 진안리 야산
박00(30세)
23:00경 남편을 마중나갔다가 강간 피살
7차
1988.09.07. 21:30경.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안00(52세)
20:40경 수원에서분식집 일을 마치고 마을 입구에서 버스 하차, 귀가 중 강간 피살
8차
1988.09.16. 02:00경. 태안읍 진안리 피해자 방
박00(13세)
안방에서 잠을 자다 강간 피살
*89.07.25. 피의자 윤00(22) 검거
9차
1990.11.15. 18:30경. 태안읍 병점5리 야산
김00(13세)
17:00경 하교 후병점 지하도에서 친구 이00와 헤어져 귀가 중 강간 피살
10차
1991. 04. 03. 21:00경. 동탄면 반송리 야산
권00(69)
수원 딸 집에 갔다가 20:00경 동탄 소재지에서 버스하차, 귀가 중 강간 피살
잠깐!! 본격적으로 세부사항으로 들어가기전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던 J씨를 소개할게
===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J씨 [사건재발생]
화성연쇄살인사건은 현재 미제사건으로 판정되어
몇 해전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로 방영이 되기도 했는데요.
현재 유력한 용의자는 J씨로 88년 수원지검에서 풀어준 사람이라고 합니다.
몽타주는 다음과 같은데요.
나이는 현재 시간이 흘렀으니 이와 다릅니다.
지금쯤 50대겠네여...
1987년 12월 24일 수원시 화서동 193번지 논에서 수원 여고생 피살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 1월 4일 시신을 발견했는데요.
1987년 1월10일 화성군 황계리 논바닥 짚단에서 발생한 5차 화성연쇄살인과 수법이 흡사한 것으로 보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다음날 수원경찰서 정자 파출소에 수사본부 설치되었구요.
사건 당일 현장부근에서 M군과 J군이 '불장난을 하고 놀았다'는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1월 6일 M군과 J군을 검거해서 둘의 자백을 받았어요.
그리고 1월 8일에 M군이 수갑찬 채로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치장에 그대로 방치된 M군은 1월12일 유치장에서 졸도했습니다.
의식불명상태로 실려가서 수원경찰서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이를 방치한 조광식 형사는 1월 14일 도주를 했다가 자진출두해서
1월15일 구속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J군 어머니의 탄원서 뒤에
J군은 기소유예로 석방되며 2월 18일 M군은 사망하고 맙니다.
조광식 전수사관은 직위해제하고 말구요...
그리고 3월2일 J군은 군입대를 하는데
9월 초 J군 일병이 정기휴가를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988년 9월7일 7차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였으며
ㅡ 목격자 진술 토대로 보면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갸름한 얼굴에 170정도 되는 키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깨가 구부정하답니다.
J군은 신상와 비슷한 모습........
그래서 88년 2월3일 수원지검에서 풀어준 J씨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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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래는 미제사건 추적까페의 한 유저가 개인적으로 추리해본 내용을 옮겨봤습니다.
그냥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가정을두고 보면 될듯하네요..
혹시 한신대학교 학생이 살인마일 가능성은 있을까?
몇가지 사건개요들을 다시금 보도록 하자.
1987년 12월 24일 수원 화서동에서 일어난 합격 여고생 살인사건(김모양 당 19세)
1996년 11월 3일 오산여고생살인사건 (나는 이 두사건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위 도표로 보는 패턴의 의문점
5년 동안 여름에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9월 7일(가을)부터 5월 2일(봄)까지 사건이 일어났는데 무더운 여름인 6월, 7월, 8월은 사건이 전혀 없다.
상식적으로 성폭행 후 살해하기 쉽고 편한 계절이 겨울보다는 여름일텐데 말이다.
이런 패턴은 살인마가 백수가 아닌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것을 추측 가능케한다.
또 한가지 직업적 패턴은 88년 9월 부터 90년 11월 까지 범행이 없었었다.(26개월간)
.............................................................................................
화성연쇄살인사건에 투입된 인원과 실적
총 2,050,000명의 수사인원
용의선상에 오른 대상자만 21,280명
(지문대조 40,116명/8차에서 국내 최초 유전자 감정수사 570명)
수사 중 부수 범죄자 검거 실적 1,495명
위의 통계자료만을 가지고 범행이 허술하기까지했던
당시 연쇄살인마를 추리분석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수 있다.
첫째... 용의자 선상에 쉽게 오르지 않는 나잇대
어린 사람이라던지 혹은 아주 많은 사람일 것이란게 싶게 떠오른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은 범행수법이나 잠복해서 기다릴만큼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을수 있으므로
굳이 구분하자면 노인보다는 용의 선상에 오르지 않았을 어린 사람일 가능성이 훨씬 커보인다.
둘째...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아 공무원이나 그에 준하는 직업군을 가진 사람도 충분히 의심해볼만 하다.
더욱이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다면 이또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경찰이라던지 군인 , 또는 관계기관 공무원들... 하지만 공무원이라고 보기에는 첫번째 분석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럼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을 어린나이의 공무원과 비슷한 직업은 나름 품행이 단정했던 학생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른 짐잠케 만드는것은 범행의 패턴이 범인은 꼭 어떤 전문적이 직업을 가진 인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위 도표와 도표로 보는 패턴의 의문점 참조)
.............................................................................................
화성연쇄살인마가 첫 범행을 저질렀을때와 그후 몇차까지는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을 나이겠지만
시간이 흘러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용의선상에 올라가는 나이가 되었을때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위의 도표를 보면 화성연쇄살인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직업적 시간의 패턴이 존재하는것을 볼수있다.
그런 연속돼는 패턴으로 본다면 처음 살인마는 미성년자였지만 그는 성장하여 대학교에 들어간걸로 보여진다.
그럼 이제부터 위의 도표 패턴의 의문점에 대해서 하나씩 짚어 보고 추리해 보도록하자!
여름에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위의 내 추리가 맞다면 이 의문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된다.
가족과 살인마가 사는 곳은 범행장소가 아니기에 방학을 하여 집으로 돌아가 방학을 보냈다고 보여진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드는데.. 그럼 왜 "겨울방학 기간에는 범행이 일어났는가" 라는 의문이다.
이걸로도 여러가지 추리가 가능해진다.
살인마의 가정은 그리 부유한 집안이 아니였던것같다.
여름에는 농사같은것을 도와줘야하기에 집에서 일을 도와줬을것이기에 범행을 하기에는 시간도 없었겠지만
항상 가족들와 일을 해야하니 가족들의 시선을 피하기엔 많은 부담과 제약이 따랐을것으로 여겨진다.
겨울에는 집으로 갔다하더라도 농한기로 여름에 비해 시간적으로 여유도 꽤 있었을것이고,
가족들과 부대끼는 시간 또한 적어 가족들의 시선을 피하기에 여름보다는 꽤 더 수월했을것이다.
위의 추리로 본다면 살인마의 집은 범행을 저질럿던 지역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범행장소에서 도보로 충분히 범행을 행할수 있는 지역이였을것이다.
대략 시간으로 따져본다면 도보로 1시간30분에서 2시간정도의 거리일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간 정도가 용의선상에서 제외될수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범행을 행할수 있는 지역으로 추측되기때문이다.
첫 연쇄살인을 시작했을때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
위의 도표 7차와 9차(8차는 모방범죄)사이의 시간을 보면 대략 26개월의 공백이 있는것을 볼수있다.
이 시간을 위의 추리들에 대입해보면 살인마가 군대를 다녀왔을 시기였다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해진다.
당시 군대는 30개월 정도였다는걸 감안해 본다면, 살인마가 군대에 입대한 시기는 6차와 7차사건 사이였다는걸 알수있다.
6차사건 직후에서(1987년 05월 02일 ~ 1990년 11월 15일) 9차사건 직전까지의 시간은 정확히 3년 6개월이다.
그럼 정확한 군입대시기는 7차사건이 단서가 된다. 7차사건은 1988년 09월 07일인걸 감안하면,
화성연쇄살인마는 일병휴가를 나왔을때 7차사건을 저질럿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병휴가를 6개월후에 나올수 있다는것을 감안해본다면
화성연쇄살인마의 군 입대일은 1988년 2월 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무리 빨라도 1988년 1월 쯤일것이다.
입대일만 놓고 봐도 화성연쇄살인마는 대학생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종강을 하는 12월이 지나 이듬해인 1월이나 2월에 입대... 당시 대학생의 전형적인 입대 기준일이다.
아마 나이가 차면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선상에 오를수도 있다고 느꼈을것이고, 그런 심리적인 압박으로
인해 군대에 갈수있는 최대한 빠른 나이와 시기에 선택한 시기가 1월이나 2월에 이였을수도 충분히 있다.
군입대한1988년 연쇄살인마의 나이가 21살이라고 본다면 첫 범행때의 연쇄살인마의 나이는 19살이란는 결론이 나온다.
위의 추리분석으로 봤을때 내가 또다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연장이라고 보는1987년 12월 24일 수원 화서동에서 일어난
합격 여고생 살인사건(김모양 당 19세)또한 또 다른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하나라고 보는데 큰 무리가 없어보인다.
한가지 덧붙히자면
피해자들이 살해된 범행시간대를 보면 살인마는 시간에 대해 크게 게의치 않는 점을 엿볼수있다.
이점이 살인마가, 모든 사건은 아니지만 다수의 사건 범행당시에
화성연쇄살인마의 거주지가 범행장소 근처 일거라는것을 추측을 하게한다.
결 론
화성연쇄살인마는 한신대에 재학중이던 학생이였을것이다.
화성연쇄살인마는 1988년 1월에서 2월에 군입대한 학생이였을것이다.
현성연쇄살인마는 주위사람들에게 비교적 품행이 단정했다고 보여졌을것이다.
화성연쇄살인마는 범행장소 주변에 거주하였지만 태어난곳과 가족이 사는곳은
범행장소에서 도보로 1시간 30분에서 2시간정도의 거리의 지역이였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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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범죄심리학자이자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교수는 먼저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는 대부분의 형사에게 트라우마"라며 송강호가 영화에서 연기한 형사의 이미지에 대해 착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후 표창원 교수는 영화와 실제 사건 간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전체 10건의 사건 중에서 비오는 날에 발생한 사건은 2건, 빨간 옷을 입은 피해자는 1건"이라고 밝혀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그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에 대해 "계속해서 범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미 사망을 했거나 다른 범죄로 장기간 복역 중일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TV데일리 기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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