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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뉴질랜드 빅토리아대학 심리학과의 스테판 린드세이(Stephen Lindsay) 교수는 과거에 열기구를 탄 경험이 없는 사람 20명을 모집하여 기억 조작에 대한 실험을 했다.
먼저 린드세이 교수는 피험자 몰래 피험자의 가족들한테서 피험자의 어린 시절 사진을 받아서는 피험자가 어린 시절에 열기구를 탔던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몇 장씩 조작하였다. 그리고 그 조작된 사진들을 몇 장의 진짜 사진과 섞어서 피험자에게 보여주며 그들에게 사진 속 장면에 대해 기억나는 것을 최대한 회상해보라고 했다.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면 눈을 감고 명상을 해 보라고 종용하기도 하고 시간을 줄 테니 잘 생각해 보라고도 하면서 며칠 차이를 두고 같은 과정을 두 번 더 시행하였다.
» 그림 2. 2002년 린드세이 교수가 거짓 기억을 형성시키기 위해 사용한 진짜 사진(왼쪽)과 합성된 가짜 사진(오른쪽). 4세에서 8세 사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생일파티나 가족 휴가에서 찍은 사진을 받아서 열기구에 탑승하고 있는 사진을 포토샵을 이용해 합성하였다. 거짓 기억을 유도하기 위해 합성된 열기구 사진들을 다른 진짜 사진들과 섞어서 그럴듯한 이야기와 함께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자 결국 절반에 가까운 피험자들이 어렸을 때 열기구를 탔던 기억을 회상해 냈다. 심지어 조작된 사진에도 담겨 있지 않았던 세세한 내용까지 그제야 생각났다며 술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실험이 끝난 뒤 피험자들은 실험 내용을 듣고서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몇몇은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오히려 자신이 지금까지 열기구를 탄 적 없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워낙 간단해 보이는 실험이라서, 거대한 기계나 최신 장비를 이용해 뇌에 뭔가를 주입하는 복잡한 실험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약간 허탈할 수도 있지만 거짓 기억과 거짓 정보를 심는 것은 워낙 쉬운 일이라서 지금까지 다 큰 어른뿐 아니라 갓난아이, 고릴라, 쥐 등 여러 동물을 대상으로도 비슷한 기억 조작 연구가 수행되었고 성공적으로 기억을 조작할 수 있었다. 특히 인간은 거짓 기억의 형성에 취약해 심리학자들이 수행한 다양한 실험(어린 시절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 난폭한 동물의 공격을 받았던 기억,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 등)에 대해 15~50%에 달하는 피험자들이 쉽게 착각에 빠진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억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정보처럼 생각해 왔다. 어떤 이유로 인해 그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거나(혹은 ‘억압’되거나!) 기억하지 못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과거 기억은 변형되지 않은 채 우리 뇌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적절한 기제가 존재한다면(예를 들어 과거 사진을 보거나 최면술의 도움을 받는다면) 기억을 다시 있는 그대로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 조작에 관한 위와 같은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우리 기억이 생각보다 쉽게 변형되거나 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기억은 어딘가에 숨겨진 채 풀려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변형되거나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억 조작은 중요하지 않은 소소한 사건들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기억이 이토록 쉽게 조작된다면 어디 무서워서 인생을 살 수나 있을까? 안타깝게도 중요한 기억이 조작될 수도 있는 것 같다.
기억 조작에 대한 사례 가운데에는 많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1989년, 에일린 프랭클린이라는 여인은 자기 아버지 조지 프랭클린이 20년 전인 1969년에 자신의 어릴 적 친구였던 수전 네이슨을 살해했다고 고발했다. 1991년 1월, 아버지 프랭클린은 1급 살인이라는 배심원의 유죄 평결을 받고서 무기징역 형 선고를 받았다. 아버지와 별 문제없이 살던 딸이 어느날 갑자기 자기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지목해 감옥에 보낸 것이다. 이런 뜬금없는 사건에 딸이 내놓은 증거는 다름아닌 20년 만에 회복한 자신의 기억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최면술을 비롯해 심리치료를 받던 그는 치료 도중에 너무 끔찍해서 자신 안에 억압되어 있던 과거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고 결국 20년이 지난 그제서야 신고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에일린은 수전 살해 사건 말고도 자신의 아버지가 또 다른 18세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했으며 다른 두 건의 살인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과거 기억을 근거로 별 다른 증거 없이 아버지 프랭클린에게 1급 살인 유죄 평결이 내려졌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아버지 프랭클린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연방법원에서 다뤄진 항소심에서 원심은 뒤집혔고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이뤄진 수사에서 발견된 디엔에이 검사 결과 같은 다른 증거들은 아버지 프랭클린의 결백을 증명해주었고 그의 알리바이도 확실해졌다. 결국 아버지 프랭클린은 무죄로 석방됐다. 프랭클린의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지는 6년 7개월 4일 동안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완전한 코미디이자 비극입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1980~90년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른바 ‘기억회복 운동(Memory recovery movement)’에 의한 비극적인 사례이다.
당시 여러 가지 심리적 질환을 치료받기 위해 심리치료사를 찾아갔던 많은 여성들이 위의 사례와 비슷하게 심리치료를 받던 중에 어린 시절 부모나 친척에게 당한 성추행 기억을 되찾았다는 고발이 잇따랐다.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성폭행이나 성추행 기억을 ‘회복’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부모 및 친척인 가해자에 대한 뒤늦은 법적 소송이 줄을 이었었다.
민망하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재판은 길어졌고 그동안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사람들은 손가락질 해댔다. 대부분의 경우 항소심에서라도 무죄가 밝혀졌지만 이미 가정은 회복할 수 없게 무너진 뒤였다.
1차 출처 : 사이언스온(http://scienceon.hani.co.kr/118328)
2차 출처 : 루리웹 Dreamwalk 님(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327/read?articleId=23190584&bbsId=G005&itemId=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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