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쯤.
나는 삼류대학에 다니는 고학생이었다.
주 4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집세랑 관리비 등으로 다 나감)으로
끼니를 겨우겨우 때우곤 했다.
대학교 2학년 여름.
나는 더위에 지쳐
아르바이트를 안 하는 날에는
에어컨이 나오는 시민 센터에서 과제를 하곤 했다.
거기에는 「지역 교류 게시판」이라는,
누구든 벽보를 붙여도 되는 게시판이 있었다.
나는 항상 그 게시판을 확인했다.
고등학생 레벨 정도는 자신 있었으니까
과외 알바 자리가 나면 하려고 했다.
하지만 외국어 공부 같이 하실래요? 같은 게 대부분이고
가정교사 모집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그 게시판을 확인하다가 이런 벽보를 봤다.
「7월 0일~0일간 방 정리 도와주실 분 모집. 반나절 5천엔~
TEL XXXX-XX-XXXX 다나카(가명)」
그 날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알바도 안 하는 날이고
게다가 본집에 올라가기 며칠 전이라 딱 좋았다.
5천 엔이라면 집에 가는 차비에 보탬이 될 터였다.
나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게시판에서 방 정리 알바 모집 봤는데요, 거기 지원하려고요···」
남자는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아 네, 그럼 며칠부터 가능하세요?」라고 했다.
「0일 이후에는 언제든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남자는 「그럼 0일··· 아침 9시까지 와주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내 연락처를 알려주고
남자의 아파트 주소를 듣고 끊었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목소리로 추정컨대 30대 중반.
조금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러쿵저러쿵 하다 보니 어느덧 약속했던 그 날이 되었다.
날씨는 맑았고 아침부터 무지 더웠다.
나는「다나카씨네 집에 에어컨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8시 50분쯤 다나카씨 집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띵동 누르자 남자가 나왔다.
「잘 찾아왔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들어와요, 들어와.」
남자는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서툰지
나와 눈도 맞추지 않고 인사하며 서둘러 집에 들어갔다.
나는「실례하겠습니다~」하며 신발을 벗고
남자의 뒤를 쫓아 들어갔다.
에어컨이 잘 돌아가는 시원한 방이었다.
방에 들어가 다시 자기소개를 하고
뭘 정리하는지, 정리는 어떻게 하는지 들었다.
무거운 걸 들어 옮기는 일,
쓰레기를 쓰레기 버리는 곳에 버리고 오는 일,
그리고 간단한 청소가 내 임무였다.
쓰레기는 상당히 많았고
개중에는 꽤 쓸모 있어 보이고, 갖고 싶은 물건들도 있었다.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다나카씨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가져도 돼.」라고 했다.
나는 가지고 갈 만한 걸 골라 가방에 채워 넣었다. (옛날 게임이나 에로책 등)
이래저래 정리가 거의 끝났다.
다나카씨의 방은 깨끗했다.
아니, 처음부터 그렇게 물건이 많은 방은 아니었으니까
꽤 쉽게 끝냈다.
다나카씨는 「벌써···」라고 중얼거리며 잠시 뭔가 생각하다가
나를 휙 돌아봤다.
그리고 뭔가 좀 더 생각하더니 「이제 슬슬 끝낼까?」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치 알바비로 빳빳한 1만 엔짜리 새 지폐를 줬다.
다나카씨는
「혹시 내일 반나절 정도 시간 있어? 좀 더 도와줬으면 좋겠는데.」라고 했다.
나는 「5천엔 더 받을 수 있다, 럭키!」라고 생각하고 바로 오케이 했다.
그리고 다나카씨가 준 물건을 자전거에 가득 싣고 집에 왔다.
다음날 다나카씨 집에 갔더니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앞에서「실례합니다~ 다나카씨 계십니까?」라고 하자
안쪽에서 「있어, 들어 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현관문을 닫고 「실례합니다.」라고 하고 방에 들어갔다.
다나카씨 어디 계신 거지? 목소리가 저기서 들린 건가?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찾아다니는데
다나카씨가 싱글거리며 다가왔다.
다나카씨는
「오늘은 반나절이면 되니까 5천 엔은 미리 봉투에 넣어놨어, 이따 갖고 가.」
라며 흰 봉투 하나를 책상 위에 뒀다.
그리고 「이리 와」라며 내 손을 잡아끌고 방에 데려갔다.
방 옷장 안에 무거운 짐(해외여행용 슈트케이스)이 있는데
그걸 혼자 끌어내는 게 힘들어서 도와달라는 거였다.
다나카씨는
자기가 안에 들어가서 밀 테니까
안에서 신호를 주면
밖에서 힘껏 당기라고 하고 옷장 안에 들어갔다.
옷장에는 자켓이나 정장이 빽빽하게 걸려있어서
다나카씨의 모습은 안보였다.
잠시후 다나카씨가 「당겨」라고 해서
그 짐 손잡이를 힘껏 당겼다.
슥슥··· 슥슥····
조금씩 짐이 움직였다.
무겁다. 60키로 쯤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툭하고 짐이 빠져 나왔다.
어? 비었잖아?
옷장 안에서 파닥파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나카씨? 몇 번이나 불러 봐도 대답이 없었다.
파닥거리는 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뭐지? 뭐지?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됐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옷을 옆으로 치워 봤다.
사실 몇 십 초 안 걸렸겠지만
몇 분은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나카씨는 옷장 안에서 목을 매달고 있었다.
발판을 치운 건 나였다.
바로 내리려고 했지만 로프가 질겨서 벗겨지지 않았다.
칼이 어디 있더라?
아, 어제 다 버렸지···
나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다나카씨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려야 돼···
굵은 로프였다.
가위로는 안 잘리겠지···
어쩌지···
이웃집에 도움을 요청한 건 1분 이상은 지난 다음이었다.
그리고 구급차랑 경찰이 와서 하루 종일 사정청취를 했다.
집에서 부모님이 내려오셔서 날 보시더니 우셨다.
다나카씨는 구급차로 이송되었지만
내리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죽었다.
유품은 거의 없었다. 깨끗하겠지. 다 정리했으니까.
결국
나한테 주려고 했던 봉투 안에서
5천 엔과 함께 유서가 나왔다.
정리해고를 당한 것.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친 것.
빚이 많았던 것 등이 쓰여 있고
마지막에 나한테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적혀 있어서
간신히 자살방조 혐의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한 경찰이 잠시 압수했던 그 5천 엔을 나한테 줬다.
결국 자살하기 전에 신변 정리를 하고 싶었던 것 뿐 이라고 생각했다.
1주일 후
옛날에 다나카씨와 인연을 끊었다는
다나카씨 누나가 날 찾아왔다.
다나카씨는 어떤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 신자였다.
그 종교 때문에 가족이랑 사이가 틀어진 것 같았다.
그 종교 교리 중 「자살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라는 게 있다고 했다.
다나카씨는 죽고 싶었지만 종교 때문에 자살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방법으로 죽는 걸 선택한 것 같았다.
다나카씨 누나는
「폐를 끼쳐서 미안해요, 이거 적지만 받아두세요.」라며
10만 엔을 줬다.
다나카씨의 해석대로라면
나는 사람을 죽인 걸까?
나는 11만 5천 엔을 받고 지옥에 가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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