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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전영기 |
밀양 고교생 44명에 당한 성폭행 사건 피해자, 8년 지나도 ‘악몽’은 그대로 | | |
사건 후유증과 2차 피해 당하며 고통에 계속 시달려 가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로 석방된 후 사회생활 중 |
2004년 12월 밀양 성폭행 사건 수사와 관련해 여성 대책위의 항의 방문을 받은 당시 울산 남부경찰서장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사건 당시 울산 남부경찰서에 연행된 가해 학생들. ⓒ 연합뉴스 |
가해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 2005년 4월 울산지법은 기소된 10명 전원에 대해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렸다. 피의자들은 보호 관찰 처분 등을 받으면서 법적인 단죄가 마무리되었다. 호적에 ‘전과자’라는 빨간 줄도 남지 않았다. 피해자가 당한 상처와 고통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지금은 모두 풀려난 상태이며, 대학에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경남경찰청 소속의 황 아무개 순경(27·여)은 가해자의 친구였다. 그는 2004년 사건 당시 가해자 미니홈피에 그의 행동을 옹호하는 글을 남겼다. 이 내용이 8년 만인 지난 4월에 알려지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경남경찰청은 황순경을 대기발령 상태에서 조사했고, 의령경찰서로 발령을 냈다. 기자는 8월16일 황순경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외근 중이어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대신 상급자인 부서 과장에게 근황을 물어보았다. 그는 “어릴 적 철모를 때에 올린 글로 인해 나름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본인도 느끼는 것이 많았다고 본다. 말이 별로 없고, 잘 근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황순경은 사건이 있은 후 경주 소재 대학을 졸업했고, 2010년 순경 공채 시험을 통해 경찰에 입직했다. |
학교 폭력 서클 ‘밀양 연합’은 정말 사라졌을까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뒤에는 학교 폭력 서클인 ‘밀양 연합’이 있었다. 가해 학생들이 여기에 소속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기자는 사건 이후 ‘밀양 연합’이 존재하는지를 취재했다. 그랬더니 현재 ‘밀양 연합’은 해체되고 없었다. 사건 당시에도 조직 체계를 갖춘 ‘폭력 서클’이라기보다는 지역에서 노는 학생들의 ‘친목 단체’에 가까웠다. 경남 지역 언론사의 한 기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밀양 연합’이 실제 있었다고 보기에는 약간 애매했다. 이 단어도 예전에 조폭을 수사하던 경찰들이 만든 것이다. 확대 해석된 면이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성폭행 사건이 있은 뒤 지역에서는 학생들의 ‘사적 모임’에 대해 민감해했다. 각 학교나 관내 경찰에서도 학생들의 동향을 예의 주시해왔다. 기자는 가해 학생들이 다녔던 밀양 밀성고, 밀양 세종고, 밀양전자공고에 전화를 걸어 교내 폭력 서클의 유무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모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교내 폭력 서클’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했다. 밀양 세종고의 교감은 “8년 전에 일어난 일을 왜 새삼스럽게 꺼내느냐,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으면 잘 지도하는 것 아니냐”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밀양 밀성고의 교감은 “학교 차원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강사도 초청하고 자치 활동도 하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설문조사도 자주 실시해서 금품 갈취, 폭행, 왕따 등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현재 우리 학교에는 학생들 사이에 ‘폭력 서클’ 같은 것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밀양전자공고의 교감은 “우리 학교는 실업학교이다 보니 인문 학교보다 일찍 하교한다. 학교 밖에서 다른 것들을 접촉할 기회도 많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켰을 때의 엄한 책임을 강조한다. 또, 학교에서 폭력을 야기하거나 교사의 지시를 불이행하는 것에는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역 학원을 담당하는 밀양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계장은 “그 애들(당시 가해 학생들)은 모두 성장했다. 사건 당시는 학교 폭력 관련 처벌이 약했고, 학교에서도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법이 강화되었다. 학생들이 학교 폭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도 없다. 우리 경찰도 학교 교사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으면서 정보 교환도 하고 동향도 파악하고 있다. 밀양에는 학교 폭력 서클은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
“성폭력범 처벌 수위 높여야 한다 ” 밀양 성폭행 사건 피해자 지원한 강지원 변호사 인터뷰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피해 가족이 새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는 데도 노력했다. 피해자가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전학하는 데도 힘을 써주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심리 치료를 위해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재판이 끝난 뒤에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강지원 변호사를 통해 사건 전후를 들어보았다. 피해자와는 언제까지 연락이 되었나? 1년 전까지는 연락을 했다. 지금은 왜 연락이 안 되는 것인가? 내가 자꾸 언론에서 관심 대상이 되니까 피한 것이다. 가족들이 도움을 주는 우리를 너무 어려워했다. 그래서 도와주었던 사람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심리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휴대전화의 번호도 바뀌고 연락이 안 된다. 피해자 가족은 서울에 와서 어떻게 지냈는가? 서울에 와서도 너무 고통스러워했다. 가정생활이 어렵다 보니 어머니도 일을 해야 하고, 본인도 일을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도 지속적으로 하지 못했다. 그동안에도 말 못할 사연이 아주 많았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던 남동생이 서울로 왔다. 여동생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문대학을 나온 것으로 안다. 동생은 언니에 비해 성격도 씩씩하고 밝았다. 동생들은 아버지의 폭력을 덜 받았다. 그래서인지 엄마에 대한 적개심도 덜 했다.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심리 치료는 어디까지 진행되었나? 피해자 가족들은 가슴속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엄마도 가정 폭력의 희생자였다. 내가 보기에 이 가족은 가장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가정 폭력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엄마와 딸이 서로 상처를 받다 보니 많은 충돌도 있었다. 우리가 심리 치료를 하려고 무척 애를 썼는데, 워낙 상처가 크다 보니 치유하는 데 힘이 많이 들었다. 당시 경찰의 수사 과정이 문제가 되었다. 얼마나 개선되었다고 보는가? 경찰은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면서 피해자의 고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경찰은 오히려 피해자를 윽박지르고, 마치 ‘사고 친 아이’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골치 아픈 일이 벌어졌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는 가해자들의 가족에게 욕설도 듣게 했다. 진술 녹화실을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는데, 녹화실 자체가 없었다. 한마디로 조사하는 경찰관들에게 인권 의식이 없었다. 지금은 당시 사건을 계기로 조사 관행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피해자들의 체감에는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여자 경찰관이 조사할 때도 심리 상담 같은 훈련을 받은 경찰관을 투입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성폭력 문제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개선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성폭력은 재산을 강탈하는 강도죄보다도 훨씬 무거운 인격적 살인이다. 청소년들 간의 성폭력 문제도 지금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 청소년기에 있을 수 있는 일쯤으로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가해자들에게 관대하게 처벌하는 판사나 검사의 인식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만 죽으라고 하는 사회 풍토가 시급히 고쳐져야 한다.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성폭력은 인격적 살인이다. 단순 성추행하고는 또 다르다. 그래서 남자들의 생각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여성을 주먹이나 돈으로 얻을 수 있다는 비열한 생각을 고쳐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바뀌지 않는 한 성폭력은 없어지지 않는다. 정부 당국이 앞장서서 노력해야 하는데,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강지원 변호사는 밀양 성폭행 사건 피해자들의 지킴이였다. 무료 변론을 자청한 후 피해자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피해 가족이 새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는 데도 노력했다. 피해자가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전학하는 데도 힘을 써주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심리 치료를 위해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재판이 끝난 뒤에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강지원 변호사를 통해 사건 전후를 들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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