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부
- 남자 이야기 -
은주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집안을 둘러 본 후 나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밥은 먹었어?"
챙겨 먹지 않았기에 은주에게 걱정을 시키기 싫어 시선을 외면하며 거짓말을 했다.
"응..."
이제는 은주의 표정만 봐도 거짓말을 알아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 은주야~ 이렇게 거짓말만 한다고 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너 마저 날 미워하면...-
여전히 나를 염려하는 듯한 걱정스러운 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일단 몸도 안 좋은 것 같은데 방에 가서 쉬고 있어.."
"괜찮은데.."
"내가 저녁을 다하면 부를께.."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은주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은주의 고집이 나를
내 방으로 걸어 들어가게 했다.
약간의 현기증이 나서 침대에 잠시 누워 있으려 했는데 잠깐의 졸음이 어느새 꿈까지 꾸게 되는
깊은 잠이 되고 말았다.
한 번쯤 본 듯한 은주의 꿈을 꿨다.
그녀가 나에게 잘가라는 듯 힘 없이 손을 흔들며 울고 있었고,
다가갈수록 그녀가 점점 멀어져 손을 애써 뻗으면 닿을 듯 한데, 닿지 않는 나의 손을 보며
은주가 서글프게 우는 꿈이였다.
그러던 중에 누가 흔들어 깨워서 눈이 뜨였고, 눈 앞에 은주가 보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손을 뻗으니 은주의 손에 내 손이 닿았다.
-이건 꿈이 아니구나...-
그리고 언젠가 이 꿈을 꾼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듯 해서 곰곰히 생각했더니
은주를 처음 만나 같이 대구에 올라갈 때 버스에서 꾼 꿈이였다.
그 때는 은주가 그냥 울고만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그 꿈을 끝까지 다 꾸었다.
-갑자기 왜 슬퍼질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까..?-
은주가 차린 저녁을 먹을 때 은주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울고 있는 걸 보고
불길한 예감이 가슴에 배어들었다.
계속 보기가 힘든 은주의 표정에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데, 힘들게 은주가 말을 꺼낸 듯 했다.
"내가 면도 해줄까?"
"괜찮아.."
평소에 부리지 않던 은주의 고집에 승낙을 했고, 은주는 정성스레 면도와 머리를 감겨 주었다.
이 감촉 이 느낌을 평생 잊지 말라고 은주의 손이 나에게 애처롭게 사정을 하는 듯 했다.
씻고 난 후 은주와 같이 앉아 있을 때 은주가 텔레비젼을 보며 말했다.
"오빠.."
"왜?"
"나..오빠를 오늘 꼭 품고 싶어.."
은주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 은주야 내가 상상한 그 것이 맞는 거니..?-
- 너를 지금 품으면..품게 된다면 평생 강요된 추억만 떠올리며 살 것 같은데..-
이유를 알 것 같은 가슴 아파오는 은주의 제의에 힘없이 대답을 했다.
"아니..나중에 우리 결혼하면.."
"오늘 그냥 오빠를 꼭 품어야 겠어.."
-이렇게 강요된 추억이라도 남기고 싶은게..그게 네가 바라는 거니?-
-그래 은주야 니가 그래야만 마음이 편하다면..-
옆에 앉은 은주의 어깨를 감싸지고 은주의 머리에 입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래..오늘 우리 은주 품을래.."
평생을 그리며 추억을 하고 싶은 은주와 함께 만든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렸다.
야속하게 지나가 버린 시간이 아까워 밤새 뜬 눈으로 지새다 옆에 누운 은주의 인기척에
눈을 감았다.
은주는 내 얼굴을 살며시 만지고 있었다.
은주의 설레이는 스킨쉽에 눈을 떠 은주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입맞춤 전에 은주의 입에서
예상하던 날카로운 단어들이 나를 아프고 슬프게 할까 싶어 끝까지 눈을 감고 있으려 했다.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는 은주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그러나 은주 목소리에 나의 의지와 다르게 은주에게 중독 되버린 입술은 장애가 있는 듯
은주의 목소리에 반응을 했다.
"응?"
나의 대답을 들은 은주의 서글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많이 힘들지?"
내가 힘드니 나만 정말 힘들 줄 알았는데 은주의 물음에 나만큼 아니 나 이상으로
은주도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도 사랑해 오빠..죽을만큼.."
가슴 아프도록 설레오던 이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 긴 했지만,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는
은주에게 웃어 보였다.
은주는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결심한 듯 말했다.
"오빠를 죽을만큼 힘들게 했을테니 스스로 용서가 안 될테니깐...그래서.."
잠시 말문이 막혀버린 은주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이내 다시 입을 떼었다.
"그래서 나 지금 오빠 옆에 있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오빠를 너무 힘들게 해서.."
-나만 힘든 줄 알았어...그래서..미안해..네가 큰 결심을 하면서 나를 놓아주 듯 나도 널 놓아줄께..-
은주의 질끈 감은 눈 옆으로 보기만 해도 가슴 아픈 눈물이 흘러내렸고, 정말 잡고 싶었지만
나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쩔수 없이 은주를 놓아 주려 말했다.
"그래 은주야..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집을 나서는 은주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은주야 네가 가는 모습을 끝까지 보면 너를 못 가게 막을 것 같아서..그러면 네가 더 힘들까봐..-
-이렇게 아픈 척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만히 있는거야..근데 그게 더 힘드네..-
집을 나선 은주를 확인하고 자리에 일어서 창문 너머로 걸어가는 은주를 바라보았다.
-..가지마....은..주야..-
결국 모퉁이를 돌아서며 내 시선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고, 은주가 사라져 버린 창문에 기대어
한 동안 멍하니 앉아 혼잣말을 했다.
"사랑해..정말 사랑해.."
-그녀 이야기 -
대구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포항을 떠날 땐 남들 모르게 훌쩍거리던 울음이
버스가 대구에 가까워 질수록 오빠와 점점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걷 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펑펑 울었다.
지쳐버린 감정에 마음이 아프니 어느 순간 몸까지 아팠다.
-오빠..나 정말 아파...이게 상사병인가 보네..그 때 오빠가 잡았으면 못 이긴 척 안기려 했었는데..-
-그래도 우리는 이게 최선인 거겠지?-
몸이 너무 아파 다음날 학교에도 가지를 못 했다.
침대에서 앓고 있는 나를 본 엄마는 내 걱정에 안절부절 못하는 듯 했다.
엄마의 걱정하는 모습에 신경이 쓰여 말했다.
"엄마 괜찮아..하루만 쉬면 괜찮아 질꺼야..."
"그래~ 이 못된 년아..."
엄마의 걱정 섞인 욕설에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내일은 학교 갈꺼야.."
그리고 잠자코 듣고 있던 엄마가 내 모습을 뚫어지 듯 보면서 말했다.
"엄마가...미안해.."
-엄마.. 오빠를 반대한 건 가슴에 평생 묻지는 마..그럼 내가 더 힘들꺼야...-
나의 마음이 엄마에게 들렸는지 한 동안 지긋이 보던 엄마는 내 방에서 나갔다.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나를 발견한 현희는 나의 안색을 살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 할 때 현희가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언니~ 어제 결석 했던데...."
"응..많이 아팠어.."
현희는 내 얼굴을 보며 눈치만 살피다 말을 꺼냈다.
"토요일에 오빠 만나러 간다더니...왜 그렇게 아팠어요?"
나를 걱정하는 현희에게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남긴게 없어.."
현희가 궁금하다는 듯 나에게 되물었다.
"네? 그게...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야...이제 나는 아무것도 없어.."
현희는 나의 말에 눈치를 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너무 피곤해 보여요...빨리 집에 가서 쉬세요~"
나를 걱정해주는 현희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말했다.
"오늘 언니랑 영화 보러갈래?"
나의 말에 현희가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언니 미안해요..오늘도 약속이 있어서..."
"아 그렇구나...요즘 누구 만나는 사람있어?"
"아니....예요.."
더듬거리는 현희의 부정이 나에게는 긍정으로 들렸다.
"그래 그럼 재미있게 놀아~"
현희는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웃으며 저 멀리 총총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니 현희가 귀여워서 미소가 지어졌다.
-현희도..참~ 만나는 사람 있으면 뭐가 그리 부끄럽다고..숨기기는..그런데..누굴까?-
그렇지 않아도 조금 피곤해서 쉬고 싶었기에 바로 집으로 향했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자꾸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아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오빠랑 헤어지고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졌나보다..-
씁쓸한 생각을 하니 오빠가 떠오르게 되고 또 다시 괜시리 눈에서 눈물이 나오려 했다.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던 포항에서 언니가 했던 말이 귓가에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안나야!! 손님이랑은 절대 안 되는거야! 남자 만날려면 새로 남자를 만나야지!』
-언니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언니 말이 맞나봐..-
또 다시 감정이 격해저 눈물이 흘렀고,
집에 들어서기 전에 옷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초인종을 눌렀다.
집에 들어섰을 때 엄마가 내 얼굴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그래.. 몸은 괜찮아졌어?"
"응..이제 괜찮아..어제보다 나은 듯 해"
"저녁 먹어야지?"
"응..엄마..나 배고파~"
방에서 옷을 벗고 씻으려 욕실에 들어갈려고 할 때 휴대폰 벨소리가 들렸다.
-오빠가 전화한 걸꺼야...나를 잡으려고?..내가 보고 싶다고?..-
벨소리가 울리는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하며 본 휴대폰 수신번호에는 승훈 오빠가 아닌 희철 오빠의 번호였다.
순식간에 긴장이 풀려 다리가 휘청거려 침대에 걸터 앉아 전화를 받았다.
"은주야~ 내가 전화를 안하면 아예 연락이 끊기겠다~"
"오빠..오랜만이네요.."
내 말을 들은 오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웃음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저녁 먹었어?"
"아뇨...지금 먹으려 해요.."
"너희 집 앞인데 시간되면 나와~"
-집 앞이라면서 시간되면 나오라니...내가 시간이 없다면 어쩔려구..-
말도 안되는 오빠의 말에 집 밖을 살짝 보았더니 오빠 차가 보였다.
"저 시간 안되는데.."
희철 오빠가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깐 시간되면 나오라고~ 계속 기다릴테니~ 대신 저녁 먹지 말고 나와~"
"네?"
"나 지금 저녁을 너랑 같이 먹을려고 안 먹었거든~"
-정말 이 사람 내가 그렇게 좋은가..?-
그리고 또 다시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안나야!! 손님이랑은 절대 안 되는거야! 남자 만날려면 새로 남자를 만나야지!』
-정말.. 언니가 했던 말처럼 나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과 만나야 되는거야? -
자상하고 편한 승훈 오빠와 다른 방식으로 항상 나에게 웃어주고 잘해주며
나를 좋아하는 듯한 희철 오빠에게 잠시 망설이다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나를 본 희철 오빠는 깜짝 놀랐는지 차에서 내려 나에게 다가왔다.
"어제 아팠다던데 괜찮아?"
"네.."
희철 오빠는 내 손목을 잡고 차로 이끌어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고는 나를 태웠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오빠가 나에게 특유의 눈웃음으로 말했다.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어~"
"집 앞에서 기다린다면서..그렇게 부담을 주고서는.."
나의 시큰둥한 말에 여전히 웃으며 오빠가 말했다.
"사람은 부담을 줘야 기억도 잘하고 잘 따라주더라고~"
-역시 승훈 오빠와는 생각 자체가 틀리구나..-
희철 오빠가 갑자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에 화 많이 났어?"
"언제요?"
"그 때 식당에서 너 좋아한다는 말 했잖아~"
"아..그 때는 좀 그랬어요.."
희철 오빠가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은주야.."
"네?"
"오늘 현희에게 들었어"
"뭘요?"
"너의 승훈씨랑 헤어졌다는 거..."
희철 오빠가 여전히 긴장을 하며 말하고 있었다.
"네..헤어졌어요.."
"아..속상하겠다~"
"........"
-어? 이상한데?..아까 현희가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 것 같았는데...설마 희철 오빠랑 사귀는건가?-
긴장을 하고 있는 오빠에게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 혹시 현희랑 사귀지 않나요?"
희철 오빠는 깜짝 놀라며 부정을 하는 듯 손을 펴 휘저으며 말했다.
"그냥 동생이야..아는 동생~ 내가 널 좋아하는데 어떻게 현희랑 사귀냐~!"
희철 오빠의 날 좋아한다는 말에 궁금해 물었다.
"제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요?"
나의 물음에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예쁘잖아~"
예쁘다는 말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단지 그 것 뿐이예요?"
오빠는 다시 긴장을 한 표정으로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해?"
오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
나의 눈을 뚫어지게 보고 희철 오빠가 말했다.
"지금 내 심정은 은주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예뻐 보일 것 같애.."
"정말..제가 무슨 짓을 했더라도?"
"응..예전에 무슨 일을 했던 지금이 중요하니깐~"
-이 오빠 말이 사실일까...진짜 나를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 -
가만히 생각하는 나에게 오빠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런데 은주가 사람 죽이고 그런 건 아니지~?"
희철 오빠의 농담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웃으니깐 얼마나 이뻐~ 그렇게 좀 웃으라구~"
"네..."
"앞으로는 내가 니가 남긴건지 뭔지 하여튼 유일한 사람이 되줄테니깐~"
-현희가 그 것까지 이야기를 했구나...그런데 이 사람 진짜 현희랑 아무 일도 없는 거 맞을까?-
희철 오빠는 저녁을 사준다며 또 다른 이태리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고, 여전히 희철 오빠가
알아서 음식을 주문했다.
비싼 음식이 부담스러워 말했다.
"오빠 굳이 비싼 저녁은 안 사줘도 되는데요.."
오빠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이런 음식을 좋아하고 할아버지가 돈이 많어~"
"오빠 돈도 아니잖아요..."
"뭐~ 내가 외동 아들이고 아버지랑 삼촌 달랑 두 명인데 그러면 그거 다 내꺼지 뭐~"
"그래도...."
"괜찮아~ 우리집이 손이 귀한 집이라 삼촌이랑 아버지랑 나이차가 많이 나거든~"
"......."
"그래서 할아버지가 지금 간당간당 하는데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다 받을꺼니깐~"
-이 오빠 조금은 이상하다...할아버지가 편찮으신데..저렇게 말을 하다니..-
음식이 나오고 오빠는 종업원을 불렀다.
"저~ 아까 제가 말한 그 와인 주세요~"
"네~ 손님.."
잠시 후 종업원이 와인을 가지고 왔고, 오빠는 내 잔에 와인을 따라 준 후 스스로 와인을 따랐다.
"맛 괜찮을 꺼야~ 마셔봐~"
"저 술을 못 마셔요~"
"오늘 같은 기분 좋은 날 한잔 해야지~ 그리고 그 와인은 좀 다를꺼야~"
그리고 나에게 잔을 든 손을 내밀었다.
어쩔수 없이 오빠 잔에 내 잔을 부딪히고 입술만 살짝 대어 마셨다.
예전에 월포에서 승훈 오빠랑 마신 와인보다 더 달콤한 맛이 나는 와인이였다.
-승훈 오빠랑 마셨던 술이 남자랑 마시는 마지막 술인 줄 알았는데...-
이런 서글픈 생각에 속이 상했고,
지금 떠오르는 승훈 오빠가 그리워서 한 모금, 잊을려고 또 한 모금을 마셨다.
달콤한 와인은 생각보다 목넘김이 거북하지가 않아 많이 마시게 되었다.
앞에 앉아 있는 희철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데도 전혀 알아 듣지 못 할만큼 취한 듯 했다.
정신을 차려 볼려고 눈을 떴을 때, 앞에 앉아 있던 희철 오빠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술을 못 마시는 나였기에 취해 어지러워 잠이 들었다.
눈커플에 따뜻한 볕이 느껴지고 머리가 아파 눈을 떴을 때 아침이였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주 넓은 침대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 있었고, 어딘지 몰라 어리둥절 했었다.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아랫배에서 불쾌한 통증이 느껴졌고, 그 때 알몸인 것을 알았다.
-어떻게 된거지..? 설마..? -
어떻게 된건지 알고 싶어 희철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 않아 희철 오빠가 전화를 받았다.
"일어났냐?"
"어떻게 된거예요?"
"아직 거기야?"
"어떻게 된거냐고 개개끼야!"
희철오빠의 놀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주야 ~ 알면서 다 묻고 그래~ 어제 우리 사귀기로 했잖아~"
희철 오빠의 말에 그 동안 나를 지켜줬던 승훈 오빠에게 미안해 눈물이 나왔다.
"너는..사귀면...사귀면...다 이렇게 했니.."
"사귀면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니가? 나 운전 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부여잡고 쪼그려 앉아 펑펑 울었다.
-오빠 미안해...오빠가 지켜준 거 내가 지키질 못했네...-
- 남자 이야기 -
은주가 떠나고 한 동안 멍하니 있다가 바로 대구 부모님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을 하니 여전히 지수차가 주차장에 주차가 되어 있었다.
-지수가 또 부모님 집에 왔구나..-
현관문 초인종을 누르니 아버지가 문을 열어 주었고, 나를 본 아버지는 다시 문을 닫으려 할 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버지 말대로 은주랑 헤어졌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가 잡은 닫으려는 문이 열렸다.
"들어와서 이야기 하자꾸나"
"아뇨 이야기 할 것 없습니다..말 그대로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단지 엄마를 보러 온거예요.."
아버지는 묵묵히 거실 쇼파에 앉았고, 아버지는 쳐다 보지도 않은체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 들어서니 침대에 누워 오른팔을 깁스를 하고 있는 엄마 옆에 지수가 앉아
미음을 떠 먹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며 양팔을 벌렸고, 나는 엄마에게 달려들어 꼭 안았다.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울컥한 상황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아프니깐 우리 아들이 보고 싶더라.."
옆에 있던 지수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오빠 저녁은 먹었어?"
"아니.."
"내가 차려 줄께 먹어.."
지수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거실로 나가니 아버지가 날 보며 비아냥 거리듯 말했다.
"그렇게 평생 같이 있을 것처럼 속 썩이더니~"
가만히 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다시 한 번 더 말했다.
"너도 언젠가 자식이 있으면 아버지 지금 심정 이해 할꺼다.."
내 뒤를 따라 걸어나온 지수가 그 말을 듣더니 놀란 듯 물었다.
"오빠! 은주랑 헤어졌어!?"
"응.."
아버지는 다시 나에게 말했다.
"지수가 엄마한테 잘 하더라~ 포항에서 다 정리하고 대구 와서 지수랑 결혼해라~!"
"네~ 다 정리하고 회사도 그만두고 할 건데요.. 지수랑 결혼도 안 할 꺼고 집에도 안 들어 올 겁니다."
아버지는 화가 치밀어 오른 듯 큰소리로 말했다.
"뭐야?!!!"
"그냥 이제 내 마음데로 살꺼라구요!!"
내 말을 듣고 있던 지수가 큰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오빠!! 제발 정신 좀 차려!!"
"아니! 여태껏 정상이였는데 이제 정신을 안 차릴려고.."
내 말을 들은 아버지가 다시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니 마음데로 살아봐라! 이 나쁜놈!!"
"은주랑 헤어졌으니 엄마는 보러 종종 올 겁니다.."
그리고 부모님 집을 나서 현관문 밖의 벽에 기대어 작은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저도 지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힘없이 차에 올라 타 시동을 걸고 포항으로 다시 가려 할 때 지수가 달려왔다.
"오빠 잠깐만!!"
지수의 목소리가 들릴 때 못 본 척, 못 들은 척 악셀을 밟았고, 차 뒤에서 지수의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렸다.
"오빠!! 난 기다릴께!!"
다음날 회사에 출근을 해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많이 챙겨준 부장님에게 목례를 하고
사직서를 올렸다.
"강과장 이게 뭔가?
"네..집에 일이 있어서..회사를 그만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도 있을텐데.."
"네??"
"일이 있다면 휴직계를 내면 되잖는가!"
부장은 나의 사직서를 내가 보는 앞에서 찢어 버렸다.
"내가 전무님에게 강과장에 대해 잘 말할테니 언제까지면 되겠나..한 달이면 되겠나? "
"고..맙습니다..부장님..."
"그럼 가봐~"
은주 때문에 방황을 할 것 같아 좀 쉬려 사직서를 냈는데 부장은 나에게 한 달간의 휴직을 주었다.
휴직을 내고 바로 대구로 향했다.
은주가 항상 걸어가는 모습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은주가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은주야 나 미치도록 네가 보고 싶어..-
그러나 그 날은 은주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종일 굶었지만 전혀 배가 고프지가 않았고, 차라리 허기지고 어지러우니 은주가 내 옆에 있는 듯한
그런 착각이 허기짐보다 더 좋았다.
칠곡의 모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여전히 은주가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은주를 기다렸다.
저 앞으로 힘없이 등교 하는 은주의 모습이 보였다.
몇 일사이에 더 앙상하게 보이는 은주에게 달려가 안고 싶었지만, 나를 보면 더 힘들어 할 것 같은
은주의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이렇게 바라만 봐도 난 네가 좋아.."
-빨리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한 번 더 보고 싶으니깐...-
그렇게 바라던 저녁 노을이 지고 은주가 잘 보이는 곳에 서서 또 다시 은주를 기다렸다.
저 멀리 걸어서 오는 은주의 모습이 보였다.
-은주는 아침에도 그리고 저녁에도 여전히 예쁘네..-
이렇게 넋 놓고 쳐다보는 중 은주의 발걸음이 멈추었고, 갑자기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들키지 않으려 은주의 시선을 피해 숨었다.
그리고 은주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길 모퉁이로 사라져 버렸다.
혹시나 은주를 한 번 더 볼수 있을까 싶어 은주집 앞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은주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주시를 했다.
-은주는 지금쯤 저녁을 먹었을까?? 아파 보이던데 저녁도 안 먹고 자는건 아니겠지??-
여러 생각을 하던 중 아파트 입구에서 고급차가 한 대 들어와 은주가 사는 아파트에 주차를 했다.
주차가 된 차에서 시동이 걸린 체 운전자는 내리지를 않고 가만히 있었다.
-저 차 뭐지?? 누굴 기다리나?-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다시 은주와의 추억을 떠올리다 머물고 있는 모텔에 가려할 때
은주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은주처럼 보이는 여자가 걸어 나왔다.
-어? 은주인가?? 어?? 진짜 은주네..-
그 때 아까부터 서 있던 차에서 남자가 내려 은주의 손을 잡고 차에 올라 탔다.
40부 끝..
6편에 복선으로 깔아 놓은 꿈 이야기를 40부에서 써 먹네요..
눈치 채신 분이 계실려나..
오타 지적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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