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688일을 맞이하는 3월 3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6반 정원석 학생과 2학년 10반 이해주 학생의 생일입니다. 반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정원석 학생입니다.
원석이는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서 형도 있고 누나도 셋이나 있습니다. 여자들 많은 집안이라 원석이는 언제나 누나들과 엄마의 안전을 걱정했습니다. 주짓수를 배워서 엄마와 누나들을 지켜주겠다며 열심히 체육관을 다녔고, 누나들한테 호신술을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맞벌이하시는 엄마가 퇴근하시는 시간이면 원석이는 마중을 나가서 집까지 같이 걸어왔습니다. 엄마랑 팔짱 끼고 손깍지 꼭 끼고 걷는 다정한 막내였고, 찻길은 위험하니 엄마를 길 안쪽으로 걸으시게 하는 신사다운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원석이는 예의바르고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아이였습니다. 비오는 날 길에서 파지 줍는 할머니를 보고는 달려가서 파지를 같이 주워드리고 댁까지 모셔다 드린 적도 있습니다. 친구가 차비가 없다고 하자 자기 차비를 내주고 집까지 걸어온 적도 있다고 합니다. 원석이의 꿈은 국군 장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원석이는 갑판 위에 나와 있었습니다. 금방 탈출할 수 있었고 쉽게 구조될 수도 있었지만 원석이는 방에서 자고 있는 친구를 구하겠다며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원석이는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하고 용감한 아이였습니다.
침몰 소식을 듣고 원석이 부모님은 당장 팽목항으로 달려가서 몇 날 며칠 원석이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원석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확인하시던 명단에서 25번째 희생자 이름이 다른 아이였다가 어느 날 원석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수습도 신원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원석이가 다른 학생과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그 다른 학생의 가족분들도 잘못된 연락을 받고 원석이를 자기 아이라고 믿고 데려가서서, 원석이네 부모님이 상황을 아셨을 때는 이미 장례식까지 치러버린 뒤였습니다.
자식을 참담하게 잃었는데 시신이 뒤바뀌어 장례도 제대로 치러보지 못하고 두 번 잃어버린 부모님 심정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원석이 부모님은 국회 농성도 하고 광화문에서 단식도 하시며 열심히 활동하셨습니다. 원석이 어머님은 일주일씩 길에서 잘 수 있는 짐을 언제나 싸들고 다니며 몸이 부서져라 활동하십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함께 해주시는 분들께 언제나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같이 생일을 맞이한 2학년 10반 이해주 학생입니다.
해주는 언니가 하나 있는 두 자매의 막내입니다. 해주는 애교 많고 붙임성 좋은 귀염둥이 막내였습니다. 엄마도 일을 하시고 대학생인 언니는 기숙사에서 살아서, 해주는 저녁에 아빠랑 집에 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아빠하고 친했습니다. 아빠한테 해주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하고 귀엽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였다고 합니다.
해주는 손재주가 좋아서 재봉틀을 잘 다루었습니다. 자기 옷도 고쳐 입고, 가방도 만들어서 들고 다니고, 친구들 옷도 천원이나 이천원씩 받고 고쳐주었습니다. 해주 솜씨가 좋아서 인기가 많아 옷을 고쳐달라는 친구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해주는 그렇게 푼돈을 받아 친구들 옷을 고쳐주고, 받은 돈으로는 친구들이랑 같이 떡볶이 같은 간식을 사먹었습니다.
해주는 자기가 고친 옷이나 직접 만든 가방 등을 아빠한테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해주 방에는 지금도 해주가 쓰던 반짇고리 안에 여러 가지 실과 재봉도구들이 색상별, 크기별로 가지런히 정리된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해주가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해주 방을 새로 꾸며주실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행가기 며칠 전부터 벽지도 조금씩 뜯기 시작하고 커튼도 뜯어냈습니다. 그러나 해주가 탔던 세월호는 침몰했고, 해주 방은 주인을 잃은 채로 덩그러니 남아버렸습니다. 벽지는 아직도 뜯어진 채 새로 바르지 못했고, 커튼도 떼다가 만 채로 그냥 있습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1111은 언제나 열려 있으며 무료입니다. #1111로 문자 보내 원석이와 해주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누나들한테 다정하고 배려 깊은 막내였고 든든한 엄마 지킴이였던 원석이, 아빠한테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막내였던 해주를 잊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