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장에서 본 일이다. 

늙은 택진이 하나가 은행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8천억짜리 통장 하나를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통장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은행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은행원은 택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계좌를 조회해 보고 

"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통장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은행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통장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넥슨이 입금한 돈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은행원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통장을 어디서 위조했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넥슨이 미쳤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거하게 미친답니까? 입금할때 공인인증서는 안필요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텍진이는 손을 내밀었다. 은행원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통장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통장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통장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입금해주딥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세무조사 들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위조한 것이 아닙니다. 넥슨이 미친 것도 아닙니다. 
누가 엔씨 같은 회사를 이 가격에 안삽니까? 
블소랑 길드워가 성공할겁니다. 실패하는 게임도 열에 하나가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하나 성공한 게임으로 회사를 키웠습니다. 
이렇게 게임을 여섯 개를 성공시켜 겨우 이 귀한 '다양[大洋]' 8천억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십몇년이 더 걸렸습니다." 


택진이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택진이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냥 8천억이 갖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