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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48322
    작성자 : 설마이건
    추천 : 4
    조회수 : 702
    IP : 222.97.***.99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2/11/20 20:47:16
    http://todayhumor.com/?lovestory_48322 모바일
    6.25전쟁 어느 학도병의 일기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8508

     

     

    6월 25일 일요일

    아침 비 차차 개다.


    오늘 새벽 38선에서는 공산군의 공격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단다. 국군이 잘 싸우고 있다고 하니까 안심이다. 전에 38선에서는 가끔 전투가 벌어졌지만 이번에는 좀 양상이 다른 것 같다.



    6월 27일 화요일

    흐리고 비오다.


    국방부는 서울을 사수한다고 안심하라는 가두방송을 했다. 안심해도 될까? 공산군이 의정부를 지나서 도봉산까지 내려왔다고들 했다. 무서운 탱크! 탱크는 대포를 맞아도 폭탄을 터뜨려도 흠칠할 뿐이라고 한다. 정말 무서운 모양이다.


    덕만이가 두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우선 한강을 건너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한강까지 갔으나 한강교는 이미 군부대의 경계를 받고 있어 건널 수가 없었다.

    절망적인 우리는 한강 상류로 갔으나 배가 있을 리 없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만이 빛나고 있었다. 한강이 바다처럼 광막해 보였다.


    절망 앞에서 인간은 신으로 귀착한다. 신을 향한 기도.

    백발의 노인을 만나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6월 28일 수요일

    새벽 3시경 두 번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을 들었다. 아침에 한강교가 폭파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여섯 사람이 되어 다시 남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7월 2일 일요일

    용인 쪽으로 가다가 인민군을 만났다. 그들 중 몇은 말을 타고 있었다.


    복부에 총상을 입고 신음하는 국군 상사를 만났다. 도와주고 싶었으나 한사코 거절하면서 최후까지 적을 죽이겠다고 적지를 향해 기어갔다.

    10분이 지났을까...... 수류탄 폭발음을 들었다. 끝까지 적을 죽이겠다던 국군의 자폭의 순간이 눈에 선하다.

    아! 인간이 죽을 자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엄숙한 것이로구나!


    얼마쯤 걸었을까 기진맥진...... 쌀자루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우리 일행은 미리내까지 왔다. 김대건 신부님의 묘역이다. 우리가 미리내에 도착한 것은 천주님의 가호가 있어서다. 안드레아 신부님 묘역에서 형언키 어려운 감격과 깊은 감회에 젖었다. 의미 모를 눈물도 주르르 흘렸다. 다시 남쪽으로 길을 떠나야한다고 생각하니 부모님 안부가 앞선다.


    이대로 쫓겨 간다면 결국 어디까지 갈 것일까...... 만약 국외로 쫓겨난다면 언젠가는 다시 와서 빨갱이 세상에 포교의 씨앗이 되리라. 덕만이와 내가 안드레아 신부님 묘역까지 온 것은 그러한 계시를 주시려는 천주님의 인도가 아니었던가. 분명 천주님의 인도다.



    7월 3일 월요일

    안성을 거쳐 평택까지 왔다. 평택에서 김철규 신부님을 만나 경향신문사 지프로 청주까지 왔다. 덕만이는 두 동생 때문에 청주에 머무르고 나는 계속 김 신부님과 대구까지 왔다.



    7월 18일 화요일

    맑다.


    김효신의 집을 찾았다. 효신이는 학도의용대에 지원했고 나만 남았다. 효신이 부모님께서 효신이를 대신하여 집에 머물러주길 바랬다. 뭔가 망설이고만 있을 때는 아니다.

    조국은 지금 위난에 처해있지 않은가. 결심이 중요한 때다.



    7월 20일 목요일

    쾌청한 날씨다.


    대구역에 나갔다가 학도병 모집 벽보를 보았다.

    “가자! 김석원 장군 휘하로!”

    이 귀절이 나를 뜨겁게 했다. 김신부님께 상의했다.

    조국이 위난에 처해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쫓겨만 다녀서야 될까. 나는 결심했다.



    7월 25일 화요일

    쾌청.


    동아빌딩엘 갔다. 학도의용대 본부는 2층에 있었다. 학도병 지원서에 날인을 했다. 벌써 많이들 모였다.

    효신이 아버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만수무강을 빌었다.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다. 쾌청한 하늘과는 달리.



    7월 26일 수요일

    쾌청.


    학도의용대라는 완장과 태극 마크를 그린 흰 띠를 받았다. 이로써 나는 학생이 아닌 병사가 된 것이다. 이제 적과의 싸움만이 나의 전부다. 용감한 학도병이 될 것을 다짐했다. 병사는 전투를 통해서만 그 생명의 불꽃이 찬연히 빛날 것이다.



    8월 10일 목요일

    쾌청.


    천신만고 끝에 포항에 도착. 교복은 누더기가 되고 신발은 신은 것인지, 벗고 다니기에 체면이 안 서기 때문에 그저 발에 걸치고 있다고 할까. 총도 총이지만 우선 옷과 신발을 보급해 주었으면.

    김용섭 형에게 건의했더니 사람은 빨가벗고 태어났다고 뜻있는 농담을 했다. 그래, 빨가벗고 싸워보자.

    우선 총이라도 받았으면 마음 든든할 것 같다.


    오랜만에 콩나물국을 먹었다. 된장을 푼 국 냄새가 그렇게 향수를 불러 일으킬 줄이야. 기분이 상쾌하다.

    팬티와 런닝을 빨아 입었다. 땟국물이 많이도 나왔다. 팬티가 마를 동안 알바지만 입고 뒹굴었다.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두 개의 호두알이 까칠까칠한 바지의 감촉으로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다니 나도 참 쎈치하구나, 병사답지 않게 말이다.


    내복을 청결하게 빨아 입었으니 이제 언제 죽더라도 수의는 마련된 셈이 된다.

    아! 어머니! 나는 서울을 향해 큰 절을 두 번 했다. 윤재정이란 놈이 날 놀려댔다. 뭣하는 것이냐고. 나는 “네 놈은 몰라! 뜻이 있는 자의 행동은 뜻이 있는 자만이 안다”고 한마디 해줬다. 재정이란 놈이 더욱 의아해 했다. 제법 건방진 소리를 해지만 사실은 어머님과 아버님께 포항 안착을 알린 것이다.


    나비가 춤을 추고 있다. 학교 화단에 활짝 핀 백일홍이 눈부시다. 꽃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가라앉고 평화가 가슴에 자리 잡는다. 이렇게 평화스러운데 왜 전쟁이 터졌을까, 그리고 전쟁은 어떻게 될 것일까......

    쉴 새 없이 오가는 비행기 소리에 마음 든든하다.


    황기태는 애인 자랑을 곧잘 하지만 나도 아끼는 소녀가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 눈매 고운 소녀가 생각난다. 언제나 잘 손질한 세일러복이 멋있었고 고개를 숙이고 치켜뜨던 그 눈매가 명멸하여 나를 사로잡았다. 전쟁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면 그 때 그 소녀에게 말하리라. 전쟁에서 공훈을 세우고 돌아온 영웅처럼 그녀에게 나의 무용담을 들려주겠다면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후 3시 포항여중 강당으로 옮겼다. 초등학교 교실보다는 역시 여자 중학교의 강당이 마음에 든다. 뭇 소녀가 여기서 노래하고 춤추었을 것이다. 희고 예쁜 얼굴을 가진 여학생들이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반가운 소식이 전달되었다. 무기를 지급 받으러 가자는 것이다. 몹시들 좋아한다. 총은 생명이며 애인이다. 병사에게는 총보다 더 미더운 것이 또 있을 수 없고 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이우근의 일기는 8월 10일 치가 가장 섬세하게 그리고 길게 기록되어 있고 밑에 옮기는 어머니에게 쓴 글은 글씨가 바르지 않다. 전투가 약간 소강상태일 때 속필로 적은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이미 죽음을 예감했을까?)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놓았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디어 이 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71명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하고 부르며 어머니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壽衣)를 문득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죽은 자에게 갈아입히는 수의말입니다.


    어머님! 제가 어쩌면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 물러날 것 같진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 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을 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 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 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머님,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되는군요.


    어머님,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게걸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사,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테니까요. 그럼, 이따가 또......

     

     

     

     

     

    포항 전투에서 전사한 학도병의 주머니에서 나온 일기라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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