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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상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만 가만히 있기 어려워 다시 글을 적는다
나에게도 할 일이라는 것과 준비해야 할 시험이라는 것이 있기에 대충 보이는 것들만 짧게 반박하고 끝내려 한다. 애초에 당신이 본인이 가져온 통계는 맹신하면서 내가 제시한 통계는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에 딱히 길게 이야기해봐야 그리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탓도 있다. 그나저나 언제 내가 WEF 성격차지수가 완벽한 통계라고 주장한 적 있나.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UNDP 성 불평등지수의 멍청함을 지적하려 들고 온 통계였지. 그보다 JTBC 팩트체크는 끝까지 다 본 게 맞긴 한가? 결론적으로 앵커는 WEF 성격차지수의 격차 측정에 다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문제점만으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으로 말을 맺는데.
어쨌거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는 정확해야 한다는 말은 내 쪽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알아들어줘서 고맙다. 앞으로는 되도록 UNODC 통계처럼 조사 년도도 측정 방법도 제각각인 수치들을 한데 모아두기만 한 중구난방한 자료를 쓸 때는 그 중구난방함에 대한 설명이라도 한 줄 적어 주길 바란다.
우선 여성혐오란 존재하지 않으며 여성과 남성의 피해량이 다른 것은 단지 물리적인 힘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일 뿐이라는 당신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당신은 앞선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16번과 17번,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물리적 힘의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지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라는 주장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우스운 일이다. 비윤리적인 설명이므로 지양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보겠다. 단순한 육체적 힘의 차이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면 노인정과 유치원, 초등학교 등은 하루 건너 하루씩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어야 옳다.
상식적으로 성인 여성과 아동 남성 중 어느 쪽의 육체적 힘이 더 강하겠는가. 당신의 말처럼 이 사회의 살인자들이 정말로 단지 순수한 악의에 젖어 물리적 힘의 차이만을 기준으로 약자를 선별하여 폭행하고 살해하는 것이라면 그 피해의 대상은 여성이 아닌 아동과 노인, 특히 특정 연령 미만의 아동이여야 한다.
그러나 2015년 통계청 경찰청 범죄 통계 상 6세 이하부터 15세 이하까지의 남성 살인기수와 살인미수 피해자는 22명, 6세 이하부터 15세 이하까지의 여성 살인기수와 살인미수 피해자는 30명으로 총 피해자는 52명이다. 또 동일한 연령범위 내의 2014년도 여성·남성 피해자 수는 54명이다. 그러나 그에 비해2015년의 20세 이하부터 40세 이하까지의 여성 살인미수와 살인기수 피해자는 93명이었고 동일 연령범위의2014년도 여성 피해자 수는 111명이었다.
성인 여성보다 무력 면에서 더 취약계층인 아동의 살인미수와 살인기수 피해자 비율이 성인 여성보다 거의 절반 가까이 적은 지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여기서 전체 아동인구 수 대비, 혹은 여성 인구 수 대비 범죄 피해자 비율을 따져보지 않았다는 항변은 무의미하다.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범죄자들은 무조건 더 약한 피해자를 물색하여 이들을 선별적으로 살해해야 하므로 피해자의 연령비와 성비는 오직 가해자의 결정에 달린 문제가 되며 전체 인구대비 피해자 비율을 따지는 행위는 무의미한 일이 된다.
또 당신은 아이를 살해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이므로 아동살해가 적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여성을 살해하는 것은 아동을 살해하는 일에 비해 덜 비윤리적인가? 어떤 귀속지위를 지녔을 뿐인 누군가를 살해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를 살해하는 일에 비해 더 윤리적일 수 있나? 여성은 다른 집단과 동일한 목숨의 무게를 지닌 인간이 아닌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부터가 여성혐오다.
어쨌건 여성은 물리력으로 여성보다 더 약자에 속하는 아동보다도 두 배 가까운 숫자로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뻔하고 있다. 심지어 이는 20세 이하부터 40세 이하까지의 여성 피해자 인구만을 추려낸 수치이므로 앞서 아동 피해자의 범위에 넣었던 15세 이하까지의 여성 피해자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의 여성 피해자를 추산해내면 이 수치적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그보다 애초에 물리적인 힘이 더 강한 개체가 약한 개체를 공격하는 현상이 자연적인 것으로 옹호될 것이었다면 인간이 도무지 왜 인간이 되기로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귀속지위에 따른 차이로 인해 불평등을 느끼는 개체가 없도록 평등한 사회를 구성해보자는 것이 사회계약의 주된 성질 아니었나? 당신의 태도는 여성 피해자의 수가 남성 피해자의 수보다 많은 것은 신체적인 조건 상 불가피한 일이며 고로 이런 불평등해 대해 항의하는 목소리들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투정이라고 치부하는 듯 하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이런 불평등이 무슨 까닭에서든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이를 인정하고 바꾸고자 하는 스탠스를 보이면 되는데 당신은 이를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이다. 당신은 사회를 진보 시킬 의지가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또 페미니즘이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펴는데, 지금의 불평등한 사회를 직시하고 고발하면 여성이 이 불평등한 구조에서 착취당하던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뭐 어쩌라는 건가 싶다. 그리고 내가 언제 여성이 자발적으로 피착취자가 되었다고 말한 적 있나. 부모님들이 통상적으로 아들의 외박은 조금 걱정하고 말면서 딸의 외박은 엄금하고, 유영철이 굳이 여자만 죽이고 다니면서 여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뭐 어쩌라는 건가. 여기에 여성의 자의적인 선택이 끼어들 자리가 있나? 아버지는 밤길 나다니지 말라고 말하고 살인자는 여성을 죽이고 길 가던 바바리맨은 굳이 이쪽으로 와서 바지를 내리는데 여성더러 도무지 어쩌라는 말인가. 마술이라도 부려서 바바리맨의 바지를 도로 입혀줄까. 아 참 아니지. 어떻게 해 보려고 지금 이러고 있지. 여러분, 선량한 대다수의 남성분들 사이에 숨어있는 몇몇 범죄자 여러분, 여성을 죽이지 맙시다. 폭행하지 맙시다. 강간하지 맙시다. 여러분이 안 하면 피해자도 안 생깁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무지 가해자가 피해망상 증세를 호소했다는 점과 피해자를 보고 곧장 달려들었다는 상황에 대한 묘사는 그렇게 잘 하면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화장실에 들어오기 전 한 시간 가량을 화장실에 숨어 치밀하게 범행 대상을 물색하며 예닐곱명의 남성 화장실 이용자를 그냥 무사히 돌려보냈다는 지점은 왜 계속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나? 또 범행 하루 전부터 계획적으로 도기류를 구비해 두었다는 점은?
어쨌건 피해망상에 대해서 이번 대자보에서도 언급한 이야기를 반복하자면, 피해망상은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독재정권 하의 조현병 환자들은 정부로부터 자신이 도청을 비롯하여 감시당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린 비율이 높았다는 사실 모르나. 같은 맥락에서 만일 그 해당 가해자를 누군가 정말로 모욕했다고 한들 특별히 여성이라는 한 쪽 성별의 사람들만이 괴롭히고 무시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왜 가해자는 굳이 ‘여성이 나를 무시했다’는 피해망상을 겪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08%로 비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1.2%인 것에 비해서도 극히 낮은데, 왜 그 낮은 확률을 뚫고 고작 ‘남이 나를 무시했다’는 망상 때문에 길 가던 무관하고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느냐는 말이다. 보통 남이 본인을 무시하면 살해하는 일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혐오범죄에서는 흔한 케이스이기는 하다. 나보다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어야 할 대상이 그런 권력 낙차를 거스르면 홧김에 살해해놓고서는 피해자가 ‘기어올랐다’고 말하기. 혐오범죄의 전형이 그거다. 어쨌건
그리고 사회의 주류적 의견은 늘 옳나? 정부가 늘 옳나? 권위를 가진 지식인 집단이나 공적 집단은 늘 옳나? 이번 A대위 사건에 대해 정부가 보여주는 태도가 옳나? 도대체가 말이다. 우리가 ‘틀린 권위’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공룡을 비늘 덮인 거대 냉혈동물로 믿고 있을 거란 말이다. 당신의 태도는 전근대에는 매우 훌륭한 국민의 그것이라고 평가 받았을지는 모르나… 이만 하겠다.
또 당신의 말처럼 2008년 호주제 폐지를 통해 태어난 아이가 오직 부친의 성만을 따라야 하는 법안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말하면 자그마치 무려 2008년까지도 자녀가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성만을 따라야 하는 악법이 존재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당시 호주제 폐지 시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얼마나 많은 남성권력의 반대에 맞서가며 싸웠는지 당신은 아는가. 이때의 페미니스트들도 지금의 우리가 겪는 것과 다르지 않는 권력의 저항을 맞았다.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남성 노인들이 거리에 나와 호주제 폐지 시위를 벌이는 페미니스트들의 옆에서 호주제 폐지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때의 싸움에서 승리해 호주제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나는 여전히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시대착오적 남성권력과 싸우는 중이다. 누구를 뜻하는지 알겠나.
그리고 여검사, 여변호사, 여의사, 여교수 등 전문직 앞에 여성의 성을 따로 표기한 호칭이 많겠나 남교사, 남간호사와 같이 남성의 성을 따로 표기한 호칭이 많겠나? 이는 당신이 평소 언어생활을 영위하며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만 제대로 파악하고 있더라도 금세 알아차릴 문제다. 또 한가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설명을 해볼까. 아직 이 한국사회에는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천박한 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며 앞서 이야기한 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의 전문 직종들은 이 사회가 숭배하는 ‘좋은’직종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 ‘좋은’직업을 지닌 직업인의 디폴트가 대부분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느끼는 바가 없나.
그리고 그에 반해 교사와 간호사는 어떤가? 물론 마찬가지로 ‘좋은’직종으로 인지되고 있다고는 하나 교사는 직종 내 급격한 여초현상으로 인해 그 직종이 이제껏 지녔던 사회적 권위를 잃는 중이다. 신안 여교사 성폭행 범죄를 비롯한 비선호 지역에서의 교사 대상 성범죄와 남학생들의 교사 대상 성희롱 등, 교사들의 성범죄 피해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 간호사의 경우 3교대라는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이직률이 33.9%나 되는 직종이다. 어느 간호사는 간호사 성비를 반으로 맞추자는 여성혐오자의 주장에 제발 그러자며 환호를 하던데.
어쨌거나 특히 여성이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실태를 볼까. 이들은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업무량을 꾸역꾸역 처리하면서도 발리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들의 극악한 근무환경은 매스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초, 중, 고등 교사의 여초현상에 대한 이야기는 끝없이 논란이 되는데도 어린이집 교사의 여초현상을 문제 삼는 매스컴은 없다. 아 참, 그거 아나. 국내 대부분의 교대들은 입시에서 특정 성별이 75~80% 이상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성별 쿼터제’라는 제도를 시행한다는 것. 그런데 이로 수혜를 입는 성별은 다름 아닌 남성이다. 실제 대부분의 교대에서 이 성별 쿼터제에 의해 매년 남학생들이 자신보다 입학성적이 더 높았던 여학생들을 제치고 대학에 합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은 언제나 초, 중, 고등학교에 여초현상이 심각하다며 소란을 부린다. 실제 교육현장에 남교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대학에 여교수가 부족한 것도 사실인데 이런 교수직종의 남초현상을 문제 삼는 매스컴은 없다. 왜일 것 같나.
결론을 내리자면 이 사회는 ‘좋은’ 직장이 보편적으로 남성의 것일 때는 이를 문제삼지 않다가 이 ‘좋은 직장’을 여성이 더 많이 차지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호들갑을 떤다고 얘기해볼 수 있겠다. 그 정도에서 그치기만 해도 일단은 고마울 텐데 심지어 여성인력의 비율이 높아진 직종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는 하락하기까지 한다. 도무지 살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그리고 당신은 OECD 성별임금격차가 직장 내 업무, 직급, 교육 수준, 근속 기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통계라고 말하는데, 애초에 그렇다면 그런 직급의 차이나 교육 수준의 차이가 왜 나겠나. 여성의 능력이 남성보다 부족해서?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나? 당신이 제시한 조건들을 꼼꼼하게 다진다면 2016년 기준 여성이 남성보다36.7%나 사회의 재화를 덜 분배 받고 있는 이 현실이 정당해질 것 같나? 여성이 남성에 비해 거의 40% 가까이 임금을 덜 받아야 할 정도로 이 사회에서 무능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국내의 ‘공무원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라는 제도를 한번 살펴보자.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지방공무원 7, 9급 공개경쟁채용 시험에서 이 제도의 적용을 받아 추가 합격한 616명 중458명이 남성이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교대의 성별쿼터제 혜택을 받는 성별은 늘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점도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 여성이 남성보다 직급이 낮을 일이 있나? 유리천장과 경력단절이 아니라면 말이다. 정말 여성의 교육수준이 남성보다 낮을 일이 있나? 일단 당신이 WEF 성격차지수를 반박한 바에 따르면 여성의 교육수준이 남성보다 낮지는 않을 것 같던데 말이다. 아, 물론 아직도 여성들은 가정 내 남성형제가 있으면 남성형제보다 교육적 지원을 극도로 덜 받기는 한다. 내가 대자보에 기술했듯 대입 중에 남동생 돌보던 친구도 있었고 아는 언니는 집안에서 본인 대학 등록금 대주기가 힘들다며 쩔쩔매는 와중에 남동생은 게임하느라 잘 가지도 않는 비싼 학원을 끊어주더라며 화를 냈다. 그리고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치안 문제 탓에 주거비에 남성보다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므로 먼 지방의 대학으로 진학할 때 가정으로부터 남성보다 더 높은 수준의 대학 입학장을 요구받기도 한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 만큼 더 투자할 가치가 있는 입학장을 들고 오라는 말이겠지. 그러나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어쨌건 당신이 말한 지점들을 고려하더라도 14년간 OECD 성별임금격차 압도적 1위라는 대한민국의 명성에 크게 흠이 날 것 같지도 않거니와 당신이 이야기한 지점들에서 남성과 여성간의 차이가 생겨나는 까닭 역시 여성혐오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아둔다면 좋겠다.
그리고 노총각 문제, 노총각 역시 노쳐녀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원하는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지 않은 개인으로서 사회적인 압박을 받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나는 이를 부정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노처녀와 노총각을 향하는 사회적 시선의 차이점을 볼까. 노처녀의 경우에는 흔히 ‘남성에게 선택 받지 못한 객체’라는 시선이 뒤따르는데 비해 노총각에게는 ‘여성을 쟁취하지 못한 주체’라는 시선이 뒤따른다. 인간을 객체로 보는 것과 주체로 보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인간에게 주체라는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까지 설마 설명해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겠다. 그리고 다음으로 넘어가서 노처녀에게는 일반적으로 ‘이기적이라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사는 년’이라는 질타적인 시선이 쏟아진다. 그러나 노총각은 어떤 시선을 받나. ‘뒷바라지 해 줄 마누라 하나 없이 남자가 혼자 불쌍하게 산다’며 흔히 동정의 시선을 받지 않나? 시골의 남성들이 결혼할 여성을 찾지 못한다며 여성들을 ‘도시만 좋아하는 속물적인 년들’로 매도한 역사가 이미 깊지 않나. 왜 이런 차이가 존재할까. 당연히 결혼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이기에 이를 피하는 여성과 남성이 각각 다른 시선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통계청의 혼인상태 별 및 맞벌이 상태 별 가사노동시간 통계에 따르면 2014년 맞벌이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은 40분인데 비해 맞벌이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194분이다. 이처럼 단순히 가사노동의 분담이라는 측면에서만도 여성과 남성은 불평등하다. 동일한 임금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거의 5배에 달하는 가사노동을 감당해야하건만 여성들은 사회로부터 이런 남성과의 불평등한 계약을 맺도록 압박당하고 있다.
또 한국 여성의 연령계층별 경제활동 참가율은 가운데가 푹 꺼진 쌍봉형을 보이는데, 이는 여성들이 아직도 자녀 출산 및 독박육아의 영향으로 한창 경제활동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경력단절을 겪는 인구가 많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설마 또 ‘그건 구세대의 이야기이고 현재는 다르다’라는 주장을 펼 생각인가? 기성세대의 여성들은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이 아닌가? 이들이 겪는 불평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심지어 이 문제는 당신의 주장과는 다르게 과거 세대 여성들만의 문제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여성들은 여전히 입사시험을 볼 때 면접에서 면접관이 자녀계획을 물으며 임신을 하면 직장을 그만 둘 것이냐, 도중에 나갈 사람은 뽑고 싶지 않다고 압박면접을 보는 일이 잦다며 호소한다.
그보다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은 내 문장을 흉내 낸 것인가? 아무리 학습이 모방으로부터 시작한다고는 해도 타인의 문장을 그대로 끌어다 쓰기보다는 스스로 말하는 방법을 터득하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은 박근혜가 비난받는 이유는 여성이기 때문이 아닌 범죄자인 까닭이라고 얘기하는데, 굳이 그렇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잘 안다. 나는 지난 겨울 촛불시위에 꼬박꼬박 참여한 사람이고 박근혜 탄핵에 대해 아무런 유감이 없다. 내가 유감이 있는 쪽은 “앞으로 100년 내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말라”고 말한 박지원 전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의 발언 쪽이다. 대자보 본문에 분명하게 명시를 해 놨는데 그걸 왜 헷갈리나. 아니면 헷갈린 것이 아니라 일부러 곡해했나.
어쨌건 말 잘 했다. 당신의 말대로 박근혜는 여성이라 부패한 것이 아니라 그냥 부패한 정치인이었던 것뿐이다. 부패는 남성 정치인도 잘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을 가지고 여성 전반을 싸잡아서 100년간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말라는 생각 없는 발언을 하다니. 내가 그 지점에 대해 유감을 지니지 않을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나?
당신은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고 싶다고 적어두었다. 그리고 내가 들었던 바에 의하면 본인의 입으로 ‘여성혐오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처럼 만연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만연함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여성 할례가 일어나지 않으면, 여성들의 참정권이 제한 받지 않으면, 전쟁 지역과 같이 군사 권력에 의한 대규모의 여성 강간살해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만연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토로하는 두려움의 경험들은 일상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데도 이 사회의 여성혐오는 “만연하지” 않은가? 그것을 판단할 권력을 누가 감히 당신에게 주었나. 이 사회의 여성혐오가 만연하고 만연하지 않고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여성 당사자들뿐이다. 당신의 악한 현실왜곡에 포스트잇과 A4용지로 반발의 목소리를 내었던 그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결정할 일이다.
그래, 또 만일 당신의 주장과 같이 이 사회에서 여성 할례가 일어나지 않아서, 이 사회가 형식적으로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취급하고 있어서, 우리보다 더 악한 상황 속에 고통받는 여성들에 비해 우리가 행복하고 안전한 인간들이라면, 우리가 시리아 내전지역의 당장 같은 난민 남성들로부터, 난민수용소의 관리자들로부터 강간살해당하는 시리아 여성들을 비교대상으로 끌어와 천박하기 그지없는 ‘상대적 행복’을 느끼며 이에 만족해야 하는가? 당신은 만약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하지 않음’을 성공적으로 설득해낸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그 비열한 의도에 따를 생각이 없다. 우리는 인간이 모두 다 평등하다는 사회계약에 합의한 주체들이다. 우리가 선 이 자리에서 우리가 받고 있는 차별을 고발하고 평등을 요구하는 행위는 평등을 누려야 할 사회적 주체로서 당연히 해야 할 행위였다.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1주기 추모 대자보를 붙인 페미니스트는 단지 그것을 행했을 뿐이다. 이 사회에 여성혐오가 존재함을 인지하고 피해자를 추모하며, 또 피해자와 함께 그 화장실에서 살해대상자로 지목되었던 우리 자신을 위로하며 평등과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여성의 목소리를 먼저 가려버리려 든 이는 누군가. 철저히 남성권력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고 해석된 통계조각들을 들고 와 우리의 두려움을 헛된 망상으로 치부하려 든 무례한 이는 바로 당신이 아닌가.
그리고 근거 없는 비방에 시달린 이는 과연 누군가.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반 익명 사이트인 ‘에브리타임’의 자유게시판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꼴통페미”, “페미충”, “메갈 쿵광이” 등으로 호명당하며 “실재하는 악의와 위협은 님들이 하시는 운동부족과 폭식인데 그럼 님들은 자기혐오자임?”과 같은 저열한 모욕을 받을 동안 당신은 무슨 비방을 당했나. 나는 최소한 ‘에브리타임’에서 학생들이 페미니스트들을 뚱뚱한 여성으로 상정하여 외모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는 동안 당신에 대한 인신공격이 올라온 것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성별간의 권력낙차다.
당신과는 이미 한 번 이 복도에서 마주쳤고 딱히 당신에게 내 실명과 학과를 감출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소속과 이름을 감추고 대자보를 붙이는 와중에도 저열한 공격들이 판을 치는데 내가 나의 개인정보를 공개하게 된다면 어떨까. 실상 물리적으로 내 등에 칼이 꽂히는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더라도 나는 아마도 수많은 남학생 단톡방에서 품평당하고 조종당할 것이다. 나를 불온하게 여기는 당신들에 의해 내 사회적 입지는 위협당할 것이다.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내용에 관한 제 반박입니다.
독백이 대화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연세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영학부에 재학하고 있는 17학번 이건희입니다. 몇 주간 저는 지쳤습니다. 처음 대자보를 쓸 때에만 해도 저는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품격 있게 토론하고 대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인문예술대학의 몇몇 페미니스트 분들 중 일부는 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저를 남성권력의 수호자라 멋대로 재단하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저는 항변했지만, 저를 향한 욕설과 근거 없는 비방은 매섭기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글을 쓴 것은 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원했기 때문이고, 일부가 저를 비난한다 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저는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토론을 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이제 “더 상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만 가만히 있기 어려워 글을 적는다” (이하 그 글, 그 글의 작성자는 글쓴이로 칭함) 라는 대자보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글쓴이가 WEF 통계를 들고 오신 것은 UNDP 통계의 멍청함을 지적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 보겠습니다.
첫 대자보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UNDP 성 불평등 지수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변수들만 가지고 통계를 낸 것입니다. 이것에 어떠한 ‘멍청함’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전에 지적하신 모성 사망비와 청소년 출산율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답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청소년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니며, 지적하신 모성 사망비와 청소년 출산율 이외의 다른 부분(여성 의원 비율, 중등 학교 이상 교육 받은 비율, 경제활동 참가율)이 점수가 낮았다면 통계에서 높은 순위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2. JTBC 팩트체크 앵커는 “WEF 성격차지수의 격차 측정에 다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문제점만으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라고 말했다는 내용에 대해 보겠습니다.
JTBC 팩트체크 김필규 기자는 2014년 10월 29일 “우리가 WEF 성격차지수117위의 하위권이라고 자학할 필요는 없지만, 양성 평등을 위해서 나아갈 길이 멀다는 것은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으로 해석하신 것입니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는 “이 조사 지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는 성 불평등이 남아 있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저는 성 불평등은 ‘여러분들이 주장하시는 여성 혐오가 아닌, 성과 관련되어 차별 받는 모든 일’ 이라고 생각한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또한 JTBC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여성 임원 비율과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 부분의 순위가 낮은 이유는 과거(대략 40대 이상) 여성의 지위가 사회적으로 낮았던 것과, 경력 단절 (이후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때문이라고 제가 앞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3. UNODC 자료가 중구난방이라는 점에 대해 보겠습니다.
글쓴이께서 말씀하셨듯, UNODC 자료는 중구난방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각 나라마다 범죄 집계 방식, 기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10년도 UNODC 각국 강력 범죄 피해자의 남녀 비율 통계’ 에서는, 미국과 같은 대부분의 국가들은 ‘살인’ 그 자체만을 집계했으나 한국 등 일부 국가는 미수, 방조, 예비, 음모죄 역시 모두 포함시킨 바 있습니다.
그리하여, UNODC에서는 최신 개정 통계를 만들었습니다. (Global Study on Homicide 2013) 이 통계에서는 범죄에 대한 집계 기준이 모두 같습니다. 여기서는 한국의 범죄율(살인)이 10만 명당 0.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22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녀 피해자 비율은 어떨까요? 대륙별로 볼 때, 여성 피해는 아시아 (29%), 유럽 (28%) 순으로 높았습니다. 언뜻 보면 아시아 대륙에서 피해가 많은 듯 보입니다.
그러나, 전체 인구를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시아와 유럽은 살인 범죄 피해 자체가 적기 때문에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통계에서도 이 점을 지적합니다. "세계적으로 봤을때는 남성의 피해자 비율이 매우 높지만, 몇몇 국가들, 동아시아와 유럽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거의 동등하게 살해당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나라들에서 살인범죄 자체가 적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Some countries in Eastern Asia and Europe are nearing gender parity in terms of the share of victim killed, though many of those countries do have particularly low rates of both male and female homicide)
이 책자에서는, 남성 살인 피해자가 많은 국가는 갱단 및 마약 조직의 활동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The global male homicide rate is almost four times that of females (9.7 versus 2.7 per 100,000) and is highest in the Americas (29.3 per 100,000 males), where it is nearly seven times higher than in Asia, Europe and Oceania (all under 4.5 per 100,000 males). This is due in large part to the higher levels of homicide related to organized crime and gangs in the Americas than in other regions.]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이 생깁니다.
1) 범죄조직의 싸움이 많은 나라일수록 남성 살인피해자가 많다.
2) 남성이 많이 살해당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 살인피해자의 비율이 낮아진다.
3) 결국 범죄조직이 날뛰는 국가일수록 여성이 안전해 보이는 착시효과를 가져온다.
또 한국 경찰청 살인 피해자 통계 (2014년)에 의하면 한국의 살인 범죄 피해자 중 46%는 여성입니다. 그러나 이는 일본 (51%) 홍콩(55%)에 비해 높은 수치가 아닙니다. 이를 통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국은 특정 성이 유난히 많이 살해당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국제 규범이 만들어진 통계가 새로 나왔으니, 이를 가지고 함께 논의합시다.
그리고, 전 대자보에서 제가 “흉악 강력범죄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부분의 피해는 여성이 더 많이 입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한 부분을 바로잡겠습니다. 2013년 충남대 박광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경찰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강력범죄 피해자는 남성이 66%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여성부와 통계청이 조사한 ‘2013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서는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 중 10명 중 8명은 여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왜 존재할까요?
통계 산정 방법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충남대 교수와 경찰이 조사한 자료에서는 강력범죄를 살인, 강도, 강제추행, 강간, 폭력 5가지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여성부가 조사한 자료는 흉악 강력범죄를 살인, 강도, 방화, 강간으로 규정합니다. 폭력과 강제추행 피해자 수는 각각 20만, 1만 2천명이며 이를 배제할 시 상당한 왜곡이 일어나게 됩니다. 폭행 상해의 피해자 중 67.1%는 남성입니다. 이러한 자료를 배재한 통계는 당연히 여성 피해자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4. 범죄가 물리적인 힘의 차이에서만 기인한다면 범죄는 아동과 노인에게만 집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보겠습니다.
범죄는 물리적인 힘의 차이에서만 기인하지 않습니다.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오로지 피해자가 자신보다 물리적으로 약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저는 전 대자보의 16번 논쟁에서 “강간은 자신의 성 욕구 충족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인데, 이를 위해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강한 물리력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강간이 일어나는 원인은 자신의 성 욕구 충족이라 밝혔는데, 왜 범죄의 원인을 물리적인 힘의 차이에서 찾는지 모르겠습니다. 살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쓴이께서 제 글을 오독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범죄자는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범죄를 저지릅니다. 범죄의 목적에는, 강간의 경우 성 욕구 충족, 살인의 경우에는 재산상의 이익이나 개인적 갈등으로 인한 살인 충동 따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어린 아이보다 성인 이성에게 자신의 성 욕구를 투영합니다. 또, 성인이 어린 아이와 재산상의 다툼을 하거나, 살인 충동이 들 정도의 갈등을 빚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아동의 범죄 피해자 비율이 성인 여성보다 낮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5. “당신의 태도는 여성 피해자의 수가 남성 피해자의 수보다 많은 것은 신체적인 조건 상 불가피한 일이며 고로 이런 불평등에 대해 항의하는 목소리들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투정이라고 치부하는 듯하다.”라는 주장에 대해 보겠습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그렇게 느끼셨다고 하니 유감입니다. 글쓴이께서는 제가 마치 물리적인 힘이 강한 개체가 약한 개체를 공격하는 것이 자연적이라고 옹호한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 주장을 곡해해 함부로 단정짓지 마십시오.
또한, 여성 피해자가 남성 피해자보다 많은 것이 불평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남녀가 같은 수로 피해를 입어야 평등이 실현되는 것입니까? 이런 부분은 남녀를 구분해 특정 성이 불평등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더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6. “페미니즘이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펴는데, 지금의 불평등한 사회를 직시하고 고발하면 여성이 이 불평등한 구조에서 착취당하던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뭐 어쩌라는 건가 싶다.” 라는 주장에 대해 보겠습니다.
저는 페미니즘이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혹시 전 대자보 5번 논쟁에서 “이 사회는 여성들이 자신을 범죄로부터 보호할 남성 파트너를 필요로 하게 만든다는 주장”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는 여성을 약자로 규정하는 여성 혐오적 발상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한 부분에 있어 그렇다고 생각하신 것이라면 글을 다시 읽고 오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던 바는,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남성 파트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사회가 완전히 평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남녀 모두가 자신의 성으로 인해 손익을 보는 부분이 있고 그것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여성이 이러한 구조에서 착취당한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사회를 직시하면 여성이 착취당하는 것이 드러난다는 주장을 하기 전에, 본인이 색안경을 끼고 사회를 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또, “내가 언제 여성이 자발적으로 피착취자가 되었다고 말한 적 있나” 라는 부분에서는 제가 “글쓴이께서 이렇다고 말했다.” 라고 한 것처럼 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오해의 소지는 최소화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7. 제가, 가해자가 화장실에 숨어 치밀하게 범행 대상을 물색하며 예닐곱명의 남성 화장실 이용자를 그냥 무사히 돌려보냈다는 점과 도기류를 범행 하루 전부터 구비해 두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는 주장에 대해 보겠습니다.
가해자가 치밀하게 범행 계획을 수립했다면 특정 대상 지정, 대상의 신상 파악, 동선 파악, CCTV 유무 확인 등의 과정이 이루어졌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범행 목적성에 비해 계획성 (특정한 대상을 지정하지 않음, 대상의 신상 파악 X, 동선 파악 X, CCTV 유무 확인 X) 이 비 체계적인 것으로 보아 정신질환 범죄의 특성에 부합한다는 것을 전에도 말한 바 있습니다. 가해자를 심리상담한 프로파일러, 경찰, 검찰 역시 글쓴이께서 지적하신 점을 모두 고려해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문가입니다.
또한, 가해자가 예닐곱명의 남성을 그냥 돌려보낸 점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범죄학 고전 이론 중에는 ‘합리적 선택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범죄자는 범행에 성공하기 위해 범행 대상·시간·장소 등을 자신에 유리하게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가해자가 남성을 돌려보낸 이유가 설명됩니다.
더하여, 비 범죄학계 학자인 황상민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전 교수는 “정신 이상으로 사회에 부적응한 김씨의 혐오는 아마 여성에 국한됐다기보다 사회 전체를 향했을 것”이라며 “단순히 자기보다 약한 대상을 노린 범행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는 발언도 쉽게 둘러대는 변명일 수 있다”며 “어쩌면 노인이나 어린이가 피해자가 됐을 수도 있는데, 그랬다면 (노인 혐오·어린이 혐오라는) 그런 해석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 대자보에서도 언급한 얘기를 반복하자면 피해망상은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는 서천석 교수의 주장은 비 범죄학계 일부 의견일 뿐이며, 이 범죄를 보는 범죄학계 주류 의견은 정신질환 범죄의 특징에 부합하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과는 관계없이 묻지 마 살인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글쓴이께서 주장하는 그 사회적 맥락은 비 범죄학계에서도 황상민 교수와 같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8. “정신질환자의 범죄 확률은 비 정신질환자보다 낮은데, 왜 그 낮은 확률을 뚫고 고작 남이 나를 무시했다라는 망상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것인가?”라는 주장에 대해 보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망상 때문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는 검찰, 경찰, 가해자를 직접 심리상담한 프로파일러의 일관된 의견입니다. 그 낮은 확률을 뚫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는 이 글에서도 앞서 수차례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9. 귄력 낙차를 거슬러 올라 홧김에 살해했다는 것이 혐오 범죄의 일반적인 사건이며 강남역 살인 사건은 이와 같은 전형이라는 주장에 대해 보겠습니다.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어야 할 대상이 권력 낙차를 거슬러서 살해한 것입니까? 앞서 말했듯이, 가해자는 망상으로 인해 사람을 죽였습니다.
또, 그 문단에서 “보통 남이 본인을 무시하면 살해하는 일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물으셨는데, 가해자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입니다. 본인도 이 점을 말씀하시면서 예시를 왜 모두 “일반적으로”, “흔한”, “보통” 등으로 드십니까?
10. 사회적 주류는 늘 옳은 것은 아니며 ‘틀린 권위’에 도전하지 않으면 사실을 직시할 수 없다는 의견에 대해 보겠습니다.
전문가들에겐 당연하게도 권위가 따릅니다. '권위'라는 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 '학계에서 권위있는 학자', 'ㅇㅇ분야에서 권위자'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에서 사용된 권위는 곧 사회적 공신력을 뜻합니다. 글쓴이께서는 학자에게 부여되는 '권위'라는 말과 권력, 패권, 우월주의, 주류와 비주류, 강자와 약자 등의 뉘앙스를 풍기는 '권위'라는 말의 의미를 교묘하게 뭉뚱그려 섞어놓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권위 있는 주장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도전하려 하십니다.
박근혜 씨를 예로 드셨는데 이것은 교묘하게 왜곡한 예시라고 봅니다. 박근혜 씨가 옳지 않았던 것은 그 뒤에 권력을 사유화하던 적폐 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 및 검찰에서 직접 참여한 프로파일러들의 결론, 학계의 주류 의견 뒤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사회 전반에 여성혐오와 남성우월주의가 깔려 있기에, 그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권위자들의 결론도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시는 것인가요? (오늘의 유머 ‘방구석카싸노바’ 님 의견 발췌)
또, A대위 사건을 말씀하셨는데, 그 사건에서는 정부가 권위를 가졌고, 그것이 ‘틀린 권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권위를 가지는 쪽은 정부가 아니라 법률 전문가와 인권 전문가입니다. 마찬가지로, 강남역 살인 사건은 범죄학 전문가가 권위를 가집니다. 이러한 권위는 ‘틀린 권위’가 아닙니다.
어떠한 근거도 없이, 글쓴이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부적절한 권위라 단정짓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11. 호주제 관련 논쟁에 대해 보겠습니다.
글쓴이께서는 제가 모든 것을 유지하려는 남성 권력의 수호자라고 말하지만, 앞선 대자보에서 계속해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의 잘못된 것들을 고쳐 나가는 데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미 여러 번 “이것은 함께 고쳐 나가야 할 부분” 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를 당신이 말하는 소위 ‘두루마기를 입은 시대착오적 남성권력’과 동일시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호주제 폐지는 잘못된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토론해, 거기서 폐지를 주장하는 측이 논리적으로 더 타당하였기 때문에 그리한 것입니다. 글쓴이께서 이의 제기를 하시는 것은 좋습니다. 그 이의 제기로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면 나와서 대화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누구인지 알겠냐는 것은 저를 칭하는 것 같은데, 제가 시대착오적인지 아닌지를 저와 대화를 거부한 글쓴이께서 왜 마음대로 판단하십니까? 제가 당신과의 의견 교환을 요청했을 때, 더 공부하고 오라고 거절한 것은 당신이 아니었습니까? 저와 당신 중 누가 더 시대착오적입니까. 선민 사상에 빠져 멍청한 것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당신이 말하는 ‘진보적인’ 것입니까?
12. 전문직 앞에 여성의 성을 따로 표기하는 논쟁에 대해 보겠습니다.
글쓴이께선 교사의 여초 현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러한 해석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초 현상을 이유로 그 사회적 지위가 낮아져야 한다면, 18세기부터 여성 독점적인 직종인 간호사의 사회적 지위는 현재 바닥을 쳐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합니까? 간호사의 경우는 여성이 많은 비율을 차지한 직종은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다는 주장의 반례가 되겠습니다.
교사 직종에서의 여초 현상이 교사의 사회적 권위를 하락시킨다는 주장의 근거로서 교사 대상 성범죄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점을 드셨습니다. 그러나, 성범죄는 피해자의 직업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는 사회적 지위와는 무관합니다. 또, 교사의 사회적 권위가 하락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는 교사의 낮은 임금을 지적합니다. 사회학에서는 높은 진학률, 무상 교육, 교육 의무화가 교권 하락을 일으킨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적들은 교사 직종에서의 여초 현상이 사회적 권위 하락의 원인이 아니라는 반례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의 소위 ‘좋은 직종’의 기저에 남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광부, 운전기사, 건설 노동자 등 ‘안 좋은 직종’의 기저에도 역시 남성이 있습니다. 이는 ‘좋은 직종’을 남성이 독점해서가 아니라 과거부터 남성의 사회 참여가 주를 이뤘기에 언어 생활에도 고착화된 것입니다. 이러한 성 고정관념은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남성이 글쓴이께서 말하시는 ‘젠더 권력’을 이용하여 ‘좋은 직종’의 기저를 독점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습니다.
간호사와 어린이집 교사들의 근무 환경에 대한 지적을 하시는데, 근무 환경이 열악한 것과 사회적 지위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글쓴이께서 말한 ‘좋은 직종’이라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는 놀고 먹는 줄 아십니까? 그들 역시도 매일 새벽까지 산더미 같이 쌓인 서류를 읽고 검토하며, 매일같이 쏟아지는 환자들을 돌봅니다. 그 ‘좋은 직종’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이지 근무 환경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를 이야기하며 근무 환경을 근거로 드는 것은 논점과 빗나간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어린이집 교사들의 극악한 근무환경은 매스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여성 인력의 비율이 높아진 직종에 대한 사회적 대우 하락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이것이 여성 인력의 비율이 높아 그런 것이라면, 남성 인력의 비율이 높은 3D 직업의 근무환경은 매스컴에서 매일같이 드러나야 합니다. 광부의 목숨을 건 극악한 근무환경이 매스컴에 잘 드러납니까?
13. 임금 수준 차이 논쟁에 대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주요 산업은 자동차, 철강, 조선, 반도체, IT, 건축 및 토목 등입니다. 국가 주요 산업인 만큼 임금 역시 높습니다. 이런 산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기계공학, 컴퓨터공학, 건축학 등 이공계열을 전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주로 인문계열, 예술계열, 교육계열 등을 전공합니다.
물론 유리천장이나 경력 단절 등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남녀를 갈라 싸울 문제가 아니라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유리 천장과 경력 단절에 대해서는 이후 더 설명하겠습니다.
임금 수준에 있어서 근속 연수, 성과의 차이 등을 모두 계산한 통계를 내기는 불가능합니다. 만일 기업이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직원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진급 등에서 차등을 둔다면 그 기업의 효율성은 당연히 떨어질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이러한 선택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고등학생도 알 만한 기초적인 내용입니다.
15. 성별쿼터제에 대한 논쟁에 대해 보겠습니다.
글에서 글쓴이는 성별쿼터제가 남성에게 더 이득인 경우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별 쿼터제가 남성에게 특혜를 주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성별 쿼터제는 성비를 맞추자는 것이므로, 남초 직장의 경우에는 여성에게 충분히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 에너지 기술 평가원의 여성 가산점 문제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또, 초, 중고등 교사와 유치원 교사 이야기를 하며 여초 현상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좋은 직종’의 경우에만 그렇고, 고된 업종의 경우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남성들은 ‘좋은 직종’의 여초 현상은 참지 못하고, 고된 직종에는 여성만을 종사시키려 한다는 것입니까? 이는 잘못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운전사, 광부, 건설 노동자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러한 업종은 남초 현상이 심한 업종이지만, 이 업종들에 대해서도 성 편향 현상이 문제시 되지는 않습니다. 입맛에 맞는 예시만을 가져와 견강부회하지 마십시오.
16. 교육 수준이 아직도 차이가 난다는 의견과, 대입 중에 남동생 돌보던 친구의 경우, 아는 언니의 부모님이 학자금을 못 대준다고 말씀하신 경우 등에 대해 보겠습니다.
주장을 하시려면 논리적인 근거를 들고 오시길 바랍니다. 반대로 해 볼까요? 제 친구는 고등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여동생의 학비를 벌었고, 대학 진학을 원하였으나 졸업 후 바로 취업하여 대학에 진학을 원하는 동생을 위해 학비를 벌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을 사회 전체의 일인 것처럼 확대하여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감정에 호소해 논리를 전개하는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17. 제가 임금 격차가 나는 이유로 지적했던 부분들이 여성 혐오에 기인한다는 주장에 대해 보겠습니다.
제가 지적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개인의 전공 선택입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에 종사하려면 이공계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공계를 선택하지 않는 여성 개인들의 선택이 여성 혐오에 기인한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둘째는 근무 시간입니다. OECD 성별 임금 격차는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의 전체 통계를 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 통계는 평균 임금은 고려했지만, 야근과 같은 노동 시간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비교적 많은 시간을 일하는 남성 임금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5년 여성은 주당 평균 40.4 시간을 일하지만, 남성은 46시간을 일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일했으니 주당 임금이 더 높은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18. 노총각과 노처녀의 사회적 시선에 관한 논쟁에 대해 보겠습니다.
노총각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이렇고, 노처녀에 대한 시선은 저렇다고 왜 글쓴이 마음대로 단정지으십니까? 글쓴이는 글에서 여성을 객체로 취급했습니다. 또 노처녀를 “이기적이라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사는 년”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은 각자 생각이 다릅니다. 그렇기에 어떤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이러하다고 말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 점을 잊으신 것 같습니다. 글쓴이께서 사회적 시선이 이러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 가사 노동 시간의 차이에 관련한 논쟁에 대해 보겠습니다.
먼저, 이는 부부간에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여건이 개인 간의 해결을 어렵게 만듭니다. 가사 노동을 부부간에 합의해서 할 수 있게 사회적으로 뒷받침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남성의 육아 휴직 사용을 용이하게 하는 부분이 있겠습니다. 현재에는 남성의 육아 휴직 제도가 유명무실합니다. 저는 이것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시간을 말하면서 유급노동시간은 어째서 빼놓으십니까? 한국 남성의 유급노동시간은 하루에 422분으로 OECD 3위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가사노동시간을 같은 시간으로 맞추는 것이 평등입니까? 이는 과거 가정의 모습에서 기인한, 남성이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잘못된 편견 때문입니다. 아직도 남성은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함께 고쳐 나가야 할 인식입니다.
가사 노동 문제는 일방적 착취의 구조가 아닙니다. 복합적 원인이 얽혀 있기 때문에,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20. 압박 면접 논쟁에 대해 보겠습니다.
업무와 관련 없는 압박 면접은, 특히 육아 휴직 사용을 저해하는 부분의 압박 면접은 권리 침해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의식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 경력 단절이 여성의 독박 육아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 보겠습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 이로 인해, ‘여성은 곧 나갈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겨 유리천장이 형성되는 것 또한 고쳐 나가야 할 현상입니다. 경력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선, 의식 개선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육아로 인해 직무에 복귀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위해 남성의 육아 휴직 활성화와, 사회 서비스 확충 등 여러 방안을 사회 전체가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2. 박근혜 씨 관련 논쟁에 대해 보겠습니다.
글쓴이는 전 대자보에 “단 한번 존재했던 여성 대통령의 실패와 부패는 마치 여성 전반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된다.” 라고 쓰셨습니다. 박근혜 씨가 비난 받는 이유가 단순히 성별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이에 대한 반박입니다. 본인이 이를 “잘 안다”고 표현하셨는데, 확실하십니까?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말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잘못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말을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그 말을 하고 난 후 당 차원의 비판과 역풍에 시달린 것은 왜 무시하십니까?
23. ‘만연함’의 기준에 대한 논쟁에 대해 보겠습니다.
사회적 현상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사회의 일원 모두가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서로의 주장 중에 누구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는 사회 구성원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또,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얘기로 풀어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대화를 거부하면 이를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글쓴이께선 대화를 거부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께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요?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24. ‘더 악한 상황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 행복을 느낀다고 이에 만족해야 하는가’ 라는 주장에 대해 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만족하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제 글 어디에도 이런 말은 없습니다. 제가 주장한 것은 우리 사회에 여성 혐오가 만연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문제들의 원인이 여성 혐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회에 있는 문제들을 고치지 말자는 건 아닙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대화하자고 했는데, 대화를 거부한 건 글쓴이셨습니다. 차별을 고발하고 평등을 요구하는 행위가 당연히 해야 할 행위라면, 이에 관한 대화에 응하는 것 역시 당연히 해야 할 행위입니다.
저와 대화를 거부한 글쓴이께서, 제가 이 상황에 만족하면서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지 않은 채 계속 살아갈 것이라고 단정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25. 여성들의 입을 막지 말라는 주장에 대해 보겠습니다.
저는 입을 막으려 한 것이 아닙니다. 저와 의견이 다르니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먼저 인사조차 거부한 무례한 이는 글쓴이이셨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대화와 토론을 환영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 제가 통계 자료를 남성 권력의 입맛에 맞게 재단했다고 (혹은 이미 재단된 자료를 가져왔다고) 왜 글쓴이께서 함부로 판단하십니까? 그에 대한 근거는 있으십니까? 제가 저의 입맛에 맞게 재단한 것인지 글쓴이께서 당신 입맛에 맞게 재단한 것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저는 독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통계 자료의 세부 사항이 무엇인지, 어떻게 조사되었는지를 밝혔습니다.
근거가 없는 주장은 어불성설일 뿐입니다.
26. 근거 없는 비방 관련 논쟁에 대해 보겠습니다.
제가 비방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자보에 붙여진 포스트잇으로 ‘일베X’, ‘씹치남’, ‘한남충’, ‘재기해라’ 등등 많은 비방을 받은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 에브리타임에서도 자신이 욕설 적힌 포스트잇을 뗐다고 주장하는 학우가 있습니다. 글쓴이께서 말하시는 ‘권력 낙차’가 존재한다면 저는 이러한 비방을 받지 않았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비방으로 인해 학교 생활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제 주장에 대한 신념이 있으니 이름을 공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께선 어떠합니까? 비방이 두렵다는 핑계로 익명 뒤에 숨어 저를 비겁하고 저열하다고 욕하지 않습니까? 진정 비열한 것은 누구입니까? 이것이 당신께서 말하는 불평등의 해소입니까?
글쓴이를 불온하게 여기는 이들에 의해 당신의 입지는 위협당할 것이라 하셨지요. 저를 불온하게 여기는 당신들에 의해 제 사회적 입지는 이미 위협당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누이 말했듯이 대화를 위해, 또 제 주장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제 이름을 밝혔습니다.
제가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글쓴이를, 혹은 타인을 비방하는 것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다른 의견과 대화하기를 원했지 저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싸잡아 비열하다 욕하지는 않았습니다. 익명 뒤에 숨어 욕하는 사람이 진정 무례하고 비열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뜻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제가 진심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글쓴이의 생각 자체가 아닌 글쓴이가 저에게 한 잘못된 비판입니다. 잘못된 비판은 독백에 불과합니다. 비판은 건설적이어야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가적인 논의나 질문 혹은 토론을 원하시면 [email protected]으로 연락주십시오.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경영학부 17학번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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