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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무명논객
이제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이 '정치적 주체성'의 위기를 이야기하였으나, 내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정치적 주체성'이 처한 위기는 다름 아닌 '거리 두기'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우리는 대의제로부터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소위 '대표'를 선출하지만 정작 그 대표가 어떠한 일을 하고 어떻게 여론을 수렴하며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을 대표하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거리 두기'로 일관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대표를 뽑지만 정작 그렇게 주권을 '대표'하는 형식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선거와 투표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우게 마련이지만, 정작 그 속에 위치한, 주권자로서의 '정치적 주체'는 사실상 소멸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가 주체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권자로서의 의지 표현(선거)과 더불어 주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의지(참정) 간의 간극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오늘날 이른 바 '보통 선거권'은 대의제 하에서의 참정권으로서, 가장 보편적 권리로 확립되어 있지만 정작 그러한 주권이 표현되고 획득되는 양식에 대해서는 우리는 종종 조롱과 비난으로 응수한다. 가령, 우리는 철도 파업을 향해 그들을 '귀족 노조'라며 비난하는 일련의 프레임과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학자들은 운동과 투쟁의 표현 방법에 대해 논하며 그것이 바람직한지 아닌지에 대해 왈가왈부할 뿐이지만, 그러한 운동과 투쟁의 형식이 주권을 획득하는 양식이라는 지점은 종종 간과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우리는 종종 주권을 박탈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며, 아감벤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끊임 없는 내적 투쟁을 통해 주권 상실의 위기를 모면하려 할 뿐이다. 요컨대,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는 보편적으로 확립된 주권과 더불어 그러한 주권을 박탈하고 소멸시키고자 하는 '체계' 간의 투쟁으로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체계와 주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인민 사이의 갈등으로부터, 우리는 보다 '공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공적 공간의 소멸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보다 민주주의의 형식에 가까워지기 위하여 '공적 공간'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을 펼칠 필요가 있을 것이다.(그것이 폭력적 양상으로 변하는 것에 대해 나는 반대하는 편이지만, 적어도 그러한 운동이 점유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사유는 충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오늘날 소위 '민주주의'의 테제를 걸고 나오는 운동들은 거개가 이러한 '공적 공간'의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물론 여기서 민주 vs 반민주 라는 레토릭의 낡음은 논외 사항이다.)
아주 온건한 수준에서, 오늘날 시민 사회가 처한 위기는 단순히 시민 의식의 부재로 환원될 수 없으며, 또한 투표율의 저조라던가 정당의 카르텔 구조로 이해하는 것 역시 불충분하다. 오히려, 오늘날 시민 사회가 처한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이데올로기의 부재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누구나 차이가 있음을 말하며,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으로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레토릭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의 문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보편성의 문제로 회귀해야 한다.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 그 바탕으로 '너'와 '나'의 '평등'이라는 보편적 문법이 기초가 되지 않는다면,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 선사한 '차이'에 관한 마법의 언어는 인종차별주의조차 "당신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라는 '쿨'한 언어로 치환하게 된다.
나는 오늘날 이데올로기의 부재는 "이데올로기적 비-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져다 준 차이와 다양성에 관한 아주 현란한 언어들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은 보편적 문법을 가질 수 없다는 지점으로부터 이데올로기라고 부를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공적 공간'의 소멸은 바꿔 말하면 '이데올로기의 소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치적 주체를 회복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로서, 이데올로기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이념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수만가지의 사유는 허공에 맴도는 관념 덩어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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